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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에 있어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1년 동안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 장면 1.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2004년 총선에서 후보자로 등록한 다음 날 지역구민과의 간담회에 참석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음식물 자원화시설이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치되지 않도록 막겠다"는 발언이 다였다. 그러나 그는 그 말 때문에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그가 발언을 한 시각이 현행법상 공식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날을 4시간 30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공식선거운동 돌입 전,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결국 조 전 의원에게 당선 무효형인 벌금 150만 원이 선고됐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진보정당 의원이 배출됐으나, 1년 5개월 만에 직을 상실하게 된 순간이다. 조 전 의원은 당시 "마음으로부터 승복하기는 힘들다, 정치인으로선 무기징역형을 받은 셈"이라며 비통함을 감추지 않았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이라면, 조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할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이 법으로 만들어져, 본회의를 통과됐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의 일이다.

선관위는 지난 5일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핵심은 '말'과 '후보자 본인이 직접 건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상시 허용하는 데 있다. '선거운동 기간'을 따로 규정해 해당 기간 외의 말과 전화를 통한 선거운동을 막았던 기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기간' 규정을 없앴다. 이 개정 의견이 통과된 후라면 조 전 의원에게 '말'로 인한 사전선거운동 혐의를 씌울 수 없게 된다. 이로써 '사전선거운동 금지'를 깰 물꼬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는 11일 실시되는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5일 오후 서울 청계천에 선관위 투표 참여 캠페인으로 전국에서 출마한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내걸려 있다.
 오는 11일 실시되는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5일 오후 서울 청계천에 선관위 투표 참여 캠페인으로 전국에서 출마한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내걸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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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풀지 않는 사전 선거운동 규정은, 사실상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항"(김래영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이는 국회의원 스스로가 인정하는 지점이다. 현 민주당 의원인 유승희 의원은 지난 4월 "사전선거운동금지 조항은 나같은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유리하지만 정치 신인의 도전을 어렵게 만든다"고 밝힌 바 있다. 2004년 '예비후보자 등록 기간'을 결정하기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유시민 의원도 "현직 국회의원은 1년 내내 또는 4년 내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을 했다.

즉, 현역 의원의 경우 '지역구 관리'라는 명목 하에 자유롭게 진행돼 온 말과 전화를 통한 선거운동을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선관위 개정 의견은 이를 정치신인에게도 개방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광고 등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요구되는 선거운동의 경우 기간 제한을 남겨뒀다. 말은 풀되 돈은 묶어 두기 위함이라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실상 사전선거운돔 금지 규정을 대부분 없앤 거라고 볼 수 있다"고 자평했다.

선관위가 제출한 의견에는 정치신인에게 작용했던 '진입장벽'을 해소하는 방법도 포함됐다. 정해진 기간에만 등록이 가능했던 예비후보등록제를 폐지해 상시 등록이 가능하게 한 것. 다만 선거운동은 선거사무소 설치와 명함 배부, 어깨띠 착용 등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분야로만 한정했다. 다소 제한적이지만 예비후보들은 명함과 어깨 띠 착용을 통해 '이름 석자'를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찬성의 뜻을 밝히고 있다.

선관위는 26일 안전행정위원회에서 해당 개정 의견을 보고했다. 여야 의원들은 입을 모아 "선거운동을 상시화 하면 돈이 많이 들 것이다", "4년 내내 어깨 띠 두르고 다니라는 거냐"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결국, 안행위 차원에서 개정 의견 관련 토론을 한 차례 더 갖기로 했다.

개정의견은 처리 첫 관문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향후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서 관련 법안을 만들게 될지, 안행위 차원에서 법안을 처리할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계속해서 처리가 미뤄질 시 올해 안 법안 통과에서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곧 다가올 국정감사(9월), 재보궐선거(10월), 예산안 심사(11월)만으로도 국회 일정이 빠듯하다. 당연히, 내년 지방선거 적용도 요원해 진다. 선관위가 26일 안행위 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유다.

선관위, '말은 풀고 돈은 묶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 국회 제출

'현역 vs 예비후보자' 개정 의견 두고 극과 극
'말'과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상시화 하고, 예비 후보자 등록 역시 상시화 하는 선관위의 개정의견에 대해 현역 의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소속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예비후보자가 상시 선거 운동을 하게 되면 선거 다음 날부터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명함 돌리고 어깨띠 두르고, 문자 보내면 선거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며 "정치쇄신특위 의원들은 100% 다 반대"라고 말했다.

정치쇄신 특위 야당 간사인 문병호 민주당 의원은 "선거법이 네거티브 방식을 규정하고 그 외에는 허용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 개정의견은 옳은 방향"이라면서도 "사전선거운동을 무제한으로 하는 건 취지는 좋으나 선거의 조기과열과 유권자의 선거 피로감, 후보자의 경제 부담 가중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현역 의원들과 경쟁해야 하는 원외지역위원장들은 입을 모아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영호 서대문 을 지역위원장은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어깨띠를 걸고 명함이라도 돌릴 수 있는데 그게 어디냐 싶다"며 "예비후보자가 돼도 특별히 비용 드는 부분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만 가능하다, 현역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겠지만 이 정도는 통과시켰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과 경쟁해 내리 3번 쓴 잔을 마신 김 위원장은 "현역 의원들은 의정 활동 자체가 언론 보도되고, 의정보고서도 하나의 홍보물로 만들어서 전 주민에게 배포할 수 있지 않나"며 "현역 의원들은 굉장한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현역 프리미엄에 맞서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역 밑바닥을 도는 것밖에 없다"며 "오죽하면 '모기와의 전쟁'을 한다며 뉴타운 회충 박멸 활동을 수십차례 했겠냐"고 토로했다.

김종희 용인 병 지역위원장도 "현역은 행사에 가도 소개 받고 마이크도 잡지만 우리 같은 원외 지역위원장은 마이크도 안 준다, 명함도 제대로 없다"며 "예비후보로 등록되면 명함도 가질 수 있고, 어깨띠라도 두를 수 있어 그나마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과 3번 맞붙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는 "한선교 의원은 길거리에서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면 낯이 익으니 '한선교가 저걸 하네'라고 하지만, 내가 하면 '저 아저씨는 누군가' 신경도 안 쓸 것"이라며 "어깨띠를 두르면 나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 쪽(현역 의원)은 보좌관 등을 동원해 팀을 짜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한 쪽은 아예 배제돼 있는 거 아니냐"며 "(정치관계법이 개정되면) 돈 안들이고 유권자 많이 만나는 방향으로 개선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선관위 개정 의견에 따르면, 후보자가 집이나 차에 선거 홍보물을 붙일 수 있게 했고 광고를 제외한 인쇄물(선거운동 목적 시 금지) 등을 올리는 것도 허용된다. 

더불어, '집회의 자유'도 허용된다. 그동안 선관위는 4대강, 무상급식 등을 선거 쟁점이라 지칭하며 이와 관련된 시민단체, 정당, 종교단체 등의 찬성·반대 활동이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불허해왔다. 이에 "지나치게 정치개입을 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던 선관위가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집회·모임만 개최할 수 없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에 나선 것이다.

또, 유권자와 후보자가 만날 수 있는 접촉 경로도 다양화 했다. 대표적인 예로 '토크 콘서트'가 가능해 진다. 유권자와 (예비) 후보자가 실내에서 만나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정책과 공약에 대해 얘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론기관이나 이익단체들이 여는 대담·토론회도 언제든 가능하도록 열어뒀다. 정당이 정강·정책 등을 언론을 통해 홍보하고 연설하는 데 대한 제한 규정도 삭제했다.

언론이 정당·후보자의 정책·공약에 대해 점수 매기기도 허용된다. 지난 해 대선 당시 <오마이뉴스>는 각 후보의 10대 공약에 대해 공약 인기도를 측정하기 위해 '하트주기'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후보자 정책 서열화 금지 조항에 위반된다고 판단, 주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결국 <오마이뉴스>는 하트주기 방식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으나 다음 지방선거부터는 이를 부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돈 줄은 묶었다. 선관위가 제출한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에 따르면, 후보자는 정치 자금이 오고간 후 48시간 내에 그 내역을 선관위 회계 프로그램에 입력하도록 했다. 돈의 흐름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같은 맥락에서 선거 비용이 아닌 정치 자금의 수입·지출 명세서도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다.

또, 선관위는 정당에 지급되는 선거비용 보전금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선거 시, 후보자 등록 마감 후 정당에 선거 보조금을 지급하고, 선거가 끝나면 또 선거비용을 보전하는 현행법을 바꿔 정당에 선거비용 보전 금을 지급하면 이미 지급된 보조금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감행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중 국고 지원이 줄어, 수 십 억 원의 선거비용 보전금이 감액될 것으로 예측된다.

선관위는 대통령·시도지사 선거 방송 토론회 참석에도 제한 규정을 뒀다. 1차 토론에는 현행처럼 국회의석 5석 이상 정당, 여론조사 5% 이상 후보 참석을 그대로 적용하되, 2차부터는 '여론조사 지지율 10% 이상'의 규정을 만들어 토론에 참석하게 한다는 것이다. 3차 토론의 경우, 여론조사 1·2위로 제한을 더 좁혔다.

'이정희 방지법, 자의적 해석 가능 여부' 등...한계점 여전히 있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첫 TV토론에 앞서 취재진의 요청으로 손을 잡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첫 TV토론에 앞서 취재진의 요청으로 손을 잡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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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선관위의 개정 의견에 대해 시민사회 단체와 학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선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일단 유권자나 후보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선거에 드는 돈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의 기본 취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며 "기존에 비해 전향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예비후보자 상시 등록의 경우 후보자와 유권자의 접촉면을 대폭 늘린다는 측면이 있다"고도 말했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 역시 "전반적으로 선거운동의 방법에 대한 규제 폐지로 후보자와 유권자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해주겠다는 의도, 그리고 선관위의 선거규제를 정치자금에 대한 규제로 이동하겠다는 기조는 바람직하다"며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를 기존의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물론 한계점은 있다. 일명 '이정희 방지법'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우세하다. 이 간사는 TV 토론 규정에 대해 "헌법 기관인 선관위가 소수 정당을 배제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며 "판단은 유권자가 하면 될 일이고, 공정하게 토론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헌법기관의 자의적 기준으로 선거의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 왜 10%이고 왜 상위 두 후보인가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2차 토론회까지는 기존 방식대로 하되, 3차 토론회에서부터 컷 오프제를 도입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이 간사는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간사는 "아직도 공직선거법에는 '선거운동 목적이 아닐 시'라는 제한 조항이 있는데, 선거운동의 정의 자체가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이에 대한 명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치 자금에 대해 기부자의 측면에서 고액 기부자의 인적사항도 인터넷에 공개돼야 한다"며 "이중 지원 문제과 관련해서 정당의 정치 자금난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으니 정당의 후원회를 부활시키고 비영리법인의 정치 기금 기부도 허용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평가는 "전향적인 방향"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현역 기득권을 일부 내려 놔야 한다는 지점에서 "상임위 통과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라는 평이 뒤 따른다. 의원들이 자신의 이해가 달린 부분에 대해 흔쾌히 찬성표를 던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선관위는 26일 안전행정위원회에서 해당 개정 의견을 보고했지만 '현역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기득권 내려놓기'를 주창하고 있는 국회의 생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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