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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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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5일 국가정보원 내부 전자게시판 중 하나인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게시판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확대부서장 회의에서 강조한 내용을 국정원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공간이다. 

"불법집회나 불법노조를 등한시한 부분이 있는데, 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정상화해야 하며 특히 일부 언론의 편향된 정부비판·좌파옹호에는 적극 대처해나가야 함."

약 2개월 후, 양천구청 공무원 출신인 양성윤 당시 통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후보는 구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서울에서 열린 공무원 시국대회에 참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양천구청은 서울시에 양 후보의 중징계를 요청했다. 양 후보는 "국정원 등 각종 기관에서 압력이 들어와 (구청이) 중징계를 요청하게 됐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양천구청 관계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에서도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부터 게시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중 일부 내용은 같은 기간 일어난 국정원 개입 사건들과 상당한 연관성을 보인다. 특히 ▲종북좌파단체 대응 및 공격 ▲여론조작 시도 ▲국내 정치 현안 개입 관련 발언이 개시된 전후로 지시 내용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듯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국정원 개입으로 논란이 된 사건들이 원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진행됐을 가능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종교단체 정치개입 바로잡아야" 지시 후 종교행사 중단·사찰 주지 교체

2009~2012년 원세훈 지시(발언) 전후 '국정원 개입 논란 사건' 비교 분석
 2009~2012년 원세훈 지시(발언) 전후 '국정원 개입 논란 사건' 비교 분석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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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첫 지시에 이어 원 원장은 같은 해 6월 19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종북좌파 단체들이 시민단체·종교단체 등의 허울 뒤에 숨어 활발히 움직이므로, 국가의 중심에 서서 일한다는 각오로 더욱 분발해주기 바람"이란 지시사항을 게시했다. 이는 전날 전교조 소속 1만 7천여 명의 교사들이 정부의 공권력 남용과 특권층 위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국선언을 발표하자,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의 정부비판을 사전에 견제하기 위한 대응으로 보인다.

닷새 뒤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 등은 국정원의 방해로 환경영화제 예산이 줄어들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2004년부터 매년 환경영화제에 2억여 원씩 보냈던 환경부와 서울시는 2009년 갑자기 지원금을 보류했다. 당시 이 사무총장은 "국정원 조정관이 서울시 담당 본부장에게 전화해 지원금을 보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무총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원 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이 시민단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위의 원장 지시 전후로 '아름다운재단 후원 대학·기업 압박' '범민련 사건' '한국진보연대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국정원이 시민사회단체를 과도하게 수사하거나 활동을 방해한다는 의혹이 일었다.

2010~2011년 불거진 국정원 종교단체 활동 개입 의혹도 원 원장의 지시 내용과 연관성이 높은 대목이다. 2010년 2월에는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에 전화해 정부 비판 행사를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2011년 3월에는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 자리에서 퇴출되는 과정에 원 원장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2010년 3월 9일 게시된 "일부 종교단체가 정치활동에 치중하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원 원장 지시 내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종북·좌파단체 대응 지시는 2011년 2월 "종북좌파 관련 내·수사 매듭을 서두르라"는 지시로 확대됐다. 그러자 같은 해 5월부터 청학연대 사건, 왕재산 사건, 전교조 사건, 평통사 사건 등 국정원이 반국가단체로 의심하는 곳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진성준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발간한 정책자료집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제안서'(2012.2)는 "(국정원의) 대대적인 수사, 광범위한 압수수색으로 종북 논란이 확대 생산돼 인권이 유린당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부터 논란이 된 국정원 댓글 사건 역시 원 원장 지시 내용을 실행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원 원장이 2011년 11월 18일 트위터·인터넷과 관련해 "국정원이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지시하자, 곧이어 국정원 산하의 '심리전단'이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됐다. 2012년 12월에 드러난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도 이러한 원 원장 지시 내용에 부합한다.

세종시 등 현안 지시도 사실상 실행... "국정원, 정권 전위부대"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재임기간 중 불법적으로 여론조작에 개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국정원 내부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진선미 의원, "원세훈 원장, 불법적으로 여론조작 시도" 문건 공개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재임기간 중 불법적으로 여론조작에 개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국정원 내부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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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국정원이 원 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내 정치 현안에 개입했다고 의심되는 사건이 있다. 다음은 2010년 1월 22일 원 원장의 지시 내용이다.

"세종시 등 국정 현안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단체들이 많은데, 보다 정공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음.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

당시 정치권에서는 '세종시 원안 고수'와 '원안 수정'을 놓고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해 1월 1일 연기군의회 임창철 자유선진당 의원은 "국정원 직원이 세종시 원안 수정을 받아들이라고 지역 주민들을 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관계자도 당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연기군 관계자들과 접촉한 사실을 시인했다. 사실상 국정원 세종시 주민 회유 사건과 세종시 관련 원 원장 지시의 맥락이 연결되는 것이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원 원장 지시 내용들은 어떻게든 현장에서  실행됐을 것이라고 본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국정원 개입 사건이 의혹이나 논란에 휩싸인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어 진 의원은 "이번 지시 내용 공개로 국정원이 사실상 정권의 전위부대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정원은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의 존재를 사실상 시인했다.


태그:#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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