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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2개월 정도 휠체어를 탄 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다. 한 쪽다리에 깁스를 했을 뿐인데도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나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일시적인 불편도 이런데 장애인들은 어떨까. 직접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봤다. 휠체어 사용에 익숙해지기 위해 약2시간을 연습한 뒤 거리로 나섰다... <기자말>

직접 전동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촬영은 휠체어 대여센터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직접 전동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촬영은 휠체어 대여센터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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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떡해. 저거 고장났나봐."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버스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지난 13일 오후 5시경 서울 강남구청 앞. 간선 301번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친구와 만나기로 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다. 앞서 301번 버스가 도착했지만, 계단식으로 돼 있어 휠체어로는 이용할 수 없었다.

다시 5분을 기다리니 저상버스가 도착했다. 저상버스란 차체 바닥이 낮고 계단이 없는 버스로,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해 2003년 도입된 버스다. 그런데 버스 뒷문 아래에 있는 슬로프(버스와 인도를 연결하는 경사판)가 고장이었다.

자동으로 나와야 할 슬로프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몇 번 시도 해보던 버스기사는 급기야 차에서 내린 뒤 "미안하다"며 버스 화물칸을 열어 갈고리를 꺼냈다. 나오지 않는 슬로프를 버스기사가 갈고리로 힘을 줘 빼내서야 겨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슬로프가 나오지 않자 버스기사가 수동으로 고치고 있다.
 슬로프가 나오지 않자 버스기사가 수동으로 고치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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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출발한 시간은 오후 5시 11분. 슬로프를 고치고 승차하는데 6분여가 걸렸다. 다시 차에 오른 기사는 큰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지체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버스를 타느라 정신도 없었지만, 무사히 타고 난 후에도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히 탔나'하는 생각과 함께 왠지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먼지 쌓인 장애인 전용 좌석..."장애인이 집에나 있지 무슨 민폐냐"

버스 뒷문 바로 옆, 일반 의자를 접고 노약자 탑승석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 아래에는 휠체어를 고정시키는 안전장치 '체어락(Chair lock)'이 설치돼 있었다. 휠체어가 버스와 함께 흔들린 탓에 앞자리 승객이 일어나야 했다.

버스기사는 "이거(안전장치)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내게 양해를 구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듯 실제로 '장애인 전용'이라 붙은 스티커의 글자는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하차용 버튼 주위에는 눈으로 보일 만큼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버스 안의 장애인 전용 좌석은 오랫동안 쓰지 않은 듯해 보였다.
 버스 안의 장애인 전용 좌석은 오랫동안 쓰지 않은 듯해 보였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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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 금호역 정거장에 도착했다. 버스기사가 슬로프를 다시 작동시키는데 이번엔 거리가 말썽이다. 슬로프는 인도와의 적정거리를 유지한 뒤 내려야만 안전한데, 인도와 너무 가깝게 내린 탓에 아스팔트와 부딪쳐 긁는 소리가 났다.

내려서 보니 버스 안 승객들이 이런 장면을 처음 보는 듯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뇌병변1급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장애인이 집에나 있지, 양심 없이 이게 무슨 민폐냐'고 한 적이 있다, 사람들 시선도 곱지 않아 그 후로 버스는 되도록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빠지면 어떡하지?' 너무 넓은 승강장 사이 간격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거리가 넓을수록 노약자를 비롯한 장애인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사진은 3호선 충무로역.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거리가 넓을수록 노약자를 비롯한 장애인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사진은 3호선 충무로역.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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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은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넓으므로, 열차를 타고 내리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지하철 안, 눈앞에서 두 대의 열차를 그냥 보냈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 거리가 생각보다 넓어 휠체어를 탄 채로 건너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휠체어가 승강장 사이에 빠지면 어떡하나, 기관사가 그걸 모르고 그대로 출발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도 들었다.

승강장 사이 간격은 주로 승강장 형태가 곡선일 경우 넓다. 내가 타려는 3호선 금호역과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충무로역의 승강장 틈새 간격을 확인한 결과 무려 19cm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작년 10월에는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승강장 틈새로 6살 꼬마아이가 떨어져 머리를 다치기도 했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김정(35, 뇌병변장애1급)씨는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빠져 아예 앞으로 고꾸라졌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 도착한 지하철의 문이 열리자 심호흡을 한 뒤 리모컨 키를 앞으로 꺾었다. "쿵,쿵." 전동휠체어의 앞·뒷바퀴가 승강장 사이로 빠졌다 올라오며 큰 소음을 냈다. 몇 번 바퀴가 소리를 낸 뒤에야 지하철에 탈 수 있었다.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내겐 휠체어가 위 아래로 흔들리며 허리에 가해진 아픔이 더 컸기 때문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스트레칭도 할 겸 허리를 양쪽으로 돌리니 "뚜둑"하며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났다. 그런 내가 측은했는지 한 할머니가 말도 없이 다가와 아무렇게나 풀린 내 목도리를 정성껏 여며주기 시작했다. 호의는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동정받는 듯한 느낌도 들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마주친 시선을 애써 피하는 사람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보니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 정도였다. 무심하거나, 주시하거나, 모르는 척 하거나. 꼬마아이나 노인은 아예 대놓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은 평소처럼 무심하거나 그도 아니면 애써 시선을 피하고는 했다.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반응이 가장 신경 쓰였다.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나를 흘깃거리며 보고 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안 보던 척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내가 탄 휠체어를 가리키며 "저게 뭐야, 엄마?"하는 아이의 물음에, 아이 손을 잡고 일부러 걸음을 재촉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차라리 일반인들처럼 자연스럽게 지나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더 편했다.

지하철 내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리곤 했다.
 지하철 내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리곤 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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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란 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생리현상'이 문제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소변이 마려웠는데 지하철에서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분당선 강남구청역의 경우 화장실 내부에 장애인 전용 칸이 있었음에도, 외부에 '장애인화장실'이 있다는 표시를 해놓지 않아 한참을 찾아 헤매야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는 실제 장애인들도 겪고 있는 문제였다. 특히나 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 이용이 불가능한 장애인의 경우 더욱 그랬다. 성북 장애인 보장구센터의 이정진씨는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장애인들을 여럿 봤다"며 "한 장애인(뇌병변) 형은 집 밖에 나오면 화장실 가야 할까봐 물이나 커피 같은 음료수 종류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더라"고 덧붙였다.

작년 5월 일부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에 따르면, 공공 지하철 내 장애인 화장실 설치는 의무일 뿐 아니라 남녀구분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남녀 구분이 없는 지하철 역사내 장애인 화장실은 약 30%에 달했다.

장애인으로 '살아본' 하루... 장애인에겐 평생의 고통

마침내 도착한 안국역.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역에서부터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삼청동 카페에 가려면 성인 걸음으로 10여 분 정도를 더 이동해야 한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인도는 그대로 얼음이 얼어 휠체어로 지나가기가 더욱 어려웠다.

깨진 보도블록을 비롯해 인도가 끝나고 시작할 때마다 나오는 작은 턱들이 하나하나 다 장애물이었다. 인도에 눈을 쌓아놓거나 차를 주차해둔 경우도 많아서 하는 수 없이 차가 다니는 도로 가장자리로 지나가야만 했다. 삼청동에는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곳도 많았다. 휠체어에는 속도 제한이 있어 차와 마주쳐도 빨리 피하기가 어렵다. 쉴 새 없이 달리는 차를 피해, 요리조리 도로를 건너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경사진 인도'를 이용할 때였다. 전동휠체어의 브레이크로 조종 가능한 위아래(상-하) 경사보다는 양옆(오른쪽-왼쪽)으로 경사진 경우가 더욱 위험했다. 특히나 도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어 휠체어와 몸도 오른쪽으로 기운 상태인데, 마침 그 쪽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가 지나갈 때는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자꾸만 오른쪽으로 헛도는 바퀴 탓에, 자칫하다 앉은 채로 넘어져 차에 치이면 '끝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취재를 포기하고 일어서서 걸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삼청동 도로. 인도에 차가 주차돼있어 이동이 매우 어려웠다.
 삼청동 도로. 인도에 차가 주차돼있어 이동이 매우 어려웠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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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도착한 시간은 완전히 어두워진 오후 6시 45분경. 총 1시간 45분이 걸린 셈이다. 내가 출발한 분당선 강남구청 역부터 카페 옆의 삼청동 주민센터까지, 포털의 길찾기 서비스로는 최단 시간 '약 44분'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휠체어로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없어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느라 소요된 시간은 총 105분이었다. 일반인이 '44분'이면 올 거리를 휠체어로는 약 2배의 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장애인으로 지내본 하루. 내겐 '잠깐의 불편'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의 주요도시 중 서울은 그나마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구비돼 있는 축에 속한다.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깥으로 '못 나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형벌'에 가까웠다.

장애인이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저상버스, 지하철, 콜택시)의 현황과 문제점.
 장애인이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저상버스, 지하철, 콜택시)의 현황과 문제점.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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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저상버스 노선이 적다는 지적에 서울시 버스정책과 김아무개 주무관은 "기본 9년인 (버스)차량 수명이 만료해야만 저상버스를 도입할 수 있다"며 "저상버스가 장애인들이 원하는 만큼 전 노선에 분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지하철의 경우 1~9호선에 위치한 292개 역 중 11개역은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황이다.

18일 현재, 장애인들은 5호선 광화문 역 내에 천막을 치고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외치며 182일째 농성 중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1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장애인단체, "활동보조인 없으며 죽게 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1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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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성애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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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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