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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출구를 빠져나오기도 전부터, '5분의 퇴근길'조차 프랜차이즈 점포를 피해가기는 힘들었다.
 역 출구를 빠져나오기도 전부터, '5분의 퇴근길'조차 프랜차이즈 점포를 피해가기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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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집은 서울 지하철(경인선) 1호선 간석역 1번 출구에서 250미터 남짓, 걸어도 5분 거리에 있다.

간석역 개찰구를 나서면 정면으로 편의점과 화장품가게 그리고 프랜차이즈 제과점인 신라명과가 눈에 들어온다. 6일 오후 4시, 아직 본격적인 퇴근시간 전이라 다른 점포들은 한산했지만 제과점에서는 두어 명의 손님들이 상품을 고르고 있었다. 역 출구를 빠져나오기도 전부터, '5분의 퇴근길'조차 프랜차이즈 점포를 피해가기는 힘들었다.

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유장희)는 지난 5일 서비스업 중 제과점업, 음식점업 등 16개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확정해 발표했다. 여기에는 특히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이른바 '대기업 빵집'은 동네빵점이 있는 곳에서 500미터 이내에 앞으로 3년 동안 신규입점을 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대한제과협회를 비롯하여 개인점포 업주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했으나 관련 기업들과 한국프랜차이즈협회는 반발하고 있어 골목상권을 두고 충돌의 불씨는 여전하다.

5분의 퇴근길, 프랜차이즈 천국

카페 사장 정진호(31)씨는 "어차피 여기 아니더라도 커피 프랜차이즈 없는 곳이 드문데 어쩌겠느냐"며 "단골손님을 늘려나가는 등 나름의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카페 사장 정진호(31)씨는 "어차피 여기 아니더라도 커피 프랜차이즈 없는 곳이 드문데 어쩌겠느냐"며 "단골손님을 늘려나가는 등 나름의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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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점포만이 아니라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뿌리내린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서울 홍대인근 같은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만이 아니라 주택가 인근이나  기자에게 익숙한 '5분의 퇴근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간석역 1번 출구 바로 앞에는 A카페가 있다. 여기를 기점으로 100미터 내외, 한눈에 들어올만한 거리에 패스트푸드, 카페형 제과점을 포함해서 커피를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점포가 4곳이나 있다.

"유동인구만 있으면 프랜차이즈 점포가 들어서죠. 이른바 '이름 값' 앞에서 우리처럼 작은 카페들은 버티기 힘들어요. 홍보나 메뉴 다양성 등에서 프랜차이즈는 큰 힘을 지니고 있잖아요. '이곳만의 차별화'를 늘 고민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에요"

A카페의 사장 정진호(31)씨의 말이다. 정씨는 작년 여름 이곳에 카페를 열었다. 처음 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때만 하더라도 주변에 커피 프랜차이즈는 없었다. 장소를 계약하고 나서야 주변에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씨는 "어차피 여기 아니더라도 커피 프랜차이즈 없는 곳이 드문데 어쩌겠느냐"며 "단골손님을 늘려나가는 등 나름의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동네는 '빵집 전쟁' 중

간석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 주변 지도.
 간석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 주변 지도.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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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석역은 1호선 급행열차도 정차하지 않는 그야말로 작은 역이다. 주변도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다. 역 출구에서 기자의 퇴근길을 따라서 120미터쯤 걸어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4차선 도로 좌우에는 식당, 편의점, 주점, 휴대폰 판매점 등이 늘어서 있다. 물론 식당, 편의점 등도 프랜차이즈인 것은 다르지 않다.

이 거리에서 1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한 이아무개씨는 "원래 간석역 주변 장사들은 상권이라고 할 것도 없고 동네주민들 호주머니로 먹고 살았다"며 "몇 년 전부터 주변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니까 편의점이니 프랜차이즈 점포니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거리 주변에서는 '빵집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 곳의 프랜차이즈 빵집이 도로를 두고 마주보거나 같은 상가건물에서 영업 중이다. 역 방향으로는 파리바게뜨와 던킨도너츠가  있고, 기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 쪽으로는 뚜레쥬르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던 뚜레쥬르는 문을 닫았다. 지금은 그 자리에 동물병원이 들어섰다. 같은 건물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 중인 배아무개씨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장사가) 별로란 이야기가 들리더니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한 프랜차이즈 빵집에 들어가 기자임을 밝히고 "이 주변에 빵집들이 많은데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자, 가게주인은 "명함 놓고 가시면 인터뷰 할 지 생각해보고 전화 주겠다"고 말했다. 하루를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간석역 인근 사거리에서는 '빵집 전쟁'이 벌어진다. 세 곳의 프랜차이즈 빵집이 도로를 두고 마주보거나 같은 상가건물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곳은 지난해 겨울 문을 닫고 말았다.
 간석역 인근 사거리에서는 '빵집 전쟁'이 벌어진다. 세 곳의 프랜차이즈 빵집이 도로를 두고 마주보거나 같은 상가건물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곳은 지난해 겨울 문을 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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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를 넘어서자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간석역 주변 사거리가 붐볐다.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한아름 사들고 나오던 최아무개씨는 "고등학생인 두 자녀에게 가져다주려고 빵을 샀다"며 "골목상권을 보호하자는 이야기에 공감하지만 일상에서 프랜차이즈가 아닌 곳만 고집하기는 어렵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최씨는 "소비자 입장에서 점포가 크고 할인혜택 등이 많은 프랜차이즈를 무작정 안 가기만은 어렵다"며 "일반 주택가 주변에서만이라도 정부가 규제책을 확실히 마련해야 소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씨와 함께 사거리를 건너자 곧바로 아파트 단지 상가건물에 닿았다. 피자나 떡볶이를 파는 가게에서부터 작은 김밥가게에 이르기까지 프랜차이즈 점포가 아닌 곳을 찾기 어려웠다.

점포마다 퇴근길 가족들에게 무언가 사다 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 프랜차이즈 점포 사장은 "프랜차이즈라고 해봤자 우리도 소상인인 것은 똑같다"며 "재료납품, 메뉴개발, 홍보 때문이라도 프랜차이즈를 선택하지 않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점포 26곳... "대기업은 해외의 기업들과 승부를"

"바로 5분 거리에 기업형 슈퍼마켓도 있잖아. 또 아파트 단지 주변에 편의점도 얼마나 많으냐고. 식료품이나 과일·채소 조금 파는 걸로 그들을 이겨내기는 어렵지. 그냥 아파트 상가건물에 있으니까 동네주민들과 가깝고 친절한 거 이외에 특별한 전략이란 게 있겠어?"

아파트 상가건물 끄트머리에는 동네슈퍼가 하나 있다. 기자가 퇴근을 할 때 맥주 한 캔씩을 사가는 점포다. 이 슈퍼를 운영하는 전명식(59)씨는 "대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서민들이 아니라 다른 대기업, 해외의 기업들과 승부했으면 좋겠다"며 "작은 골목상권도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메꿔버리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때마침 동네슈퍼에서 라면 몇 봉지를 사고 나오던 이아무개씨와 마주쳤다. 그는 기자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주민이다. 이씨는 "출출한데 저녁때가 많이 지나 라면을 샀다"며 "가까이에 기업형 슈퍼마켓도 있지만 라면처럼 소소한 물건은 동네슈퍼에서 사 먹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250미터 남짓, 5분의 퇴근길, 프랜차이즈 점포는 26곳이나 있었다. 그 중 7곳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나머지 역시 대기업은 아닐지라도 전국적인 망을 갖춘 체인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소상인이 오늘도 '골목상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덧붙이는 글 | 박현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골목상권, #프랜차이즈 점포, #간석역, #소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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