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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장하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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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벌써부터 어기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은 다 반역자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하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는 것인데..."


여전했다. 그의 직설적인 말투는 그대로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다. 그를 찾은 이유는 간단하다. 박근혜 새 정부 출범과 맞닿아 있다. 보수 성향인 집권여당과 후보자가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장 교수가 꾸준히 제기해 왔던 문제들이다. 지난 2010년 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무슨 대단한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관련 기사: "복지 좀 누리자는 게 대단한 혁명인가? 기업들, 세금 안내려면 아프리카에 가라") 작년에도 "복지의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복지 지출이 단순히 부담이나 비용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했다.(관련기사: "무상급식은 공짜가 아니라 보험 '공동구매'")

지난달 31일 저녁 그와 1시간 넘게 국제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박근혜 새 정부의 복지공약부터 정부조직개편, 최태원 회장의 구속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답은 막힘이 없었다. 복지국가 해법에 대해선 박근혜 당선인과의 인식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장 교수 역시 "새 정부의 복지공약은 그대로 실현돼야 한다"고 했다. 이를 후퇴시키려거나, 수정해야 한다는 일부 보수진영의 지적에 대해선 아예 '반역자'라는 표현까지 썼다. 공약을 바꾸려면 아예 선거를 다시 해야한다는 말까지 했다. 장 교수의 의지는 분명했다. 박 당선인도 일부 공약수정론에 쐐기를 박았다.

"김용준 낙마? 억울할 수 있지만, 바람직한 방향"

새해에도 그는 바빠 보였다. 1월초 브라질의 대학 등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뿐 아니라 책 집필도 진행중이다. 이번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학 입문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존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커진 것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됐다.

그는 "기존 경제학 내부에서도 치열하게 싸워야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일반 대중과 함께 경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어서 당초 예상한 3월까지 끝낼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다.

- 요즘 한국 소식은 접하고 계신가.
"인터넷이 잘 돼 있으니까, 기본적인 내용들은 파악하고 있다. 물론 뉴스의 뒷얘기, '~카더라' 이런 이야기까지는 못 듣지만."

- 박근혜 새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자인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낙마했는데.
"이야기 들었다. (공직 후보자의) 도덕적 기준이 많이 올라간 것은 좋은 일이다. 예전에 살았던 기준으로 사신 분들은 좀 억울할수도 있다. 요즘 기준에 맞추기가 너무 힘드니까. 개인적으로 그때 잘못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나라 전체로는 높은 잣대를 유지해야하지 않나 싶다."

- 새 정부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는데.
"(정부조직개편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방향은 잘한 것 같다. 예전부터 우리 미래 먹거리를 위한 제대로 된 산업정책을 펴야한다고 했었다. 전체적으로 우리 경제를 한차원 높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고민이 반영된 것 같고...."

- 미래창조과학부 등 신설이나 경제부총리 부활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있다.
"물론 그런 부처를 만드는 것을 '잘했다'고 하지 않는다. 또 경제부총리도 일부 우려대로 모피아(과거 재정경제원출신 경제관료들을 '마피아'에 빗대어 쓰는 용어)들이 쥐고 흔드는 자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경제 운영 방향이나 정책 측면에서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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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범 전에 공약 바꾸라니...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

그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추진해 온 통상교섭본부를 외교통상부에서 떼어낸 것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과 FTA 체결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온 그였다. 장 교수는 "그동안 외교부의 교섭본부쪽에서 막가파식으로 FTA를 추진했었다"면서 "국내 다양한 산업분야 등과의 조정보다는 자유무역(협정) 추진만 앞세웠다"고 비판했다.

-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새누리당 의원)은 통상과 산업을 합치는 건 개발도상국이나 있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 분은 사실상 미국을 천국으로 생각하는 사대주의자 아닌가. 유럽 나라들도 통상을 외교 쪽에 주는 나라가 별로 없다. 영국도 산업과 통합돼 있고. '글로벌스탠다드' 말하면서 미국이 하면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김 의원의) 말이 안 된다는 말씀인가.
"외교부 입장에서 통상 교섭을 누가 할 것인지, 기능적으로 무엇이 더 나은지 여러 의견들은 있을수 있다고 본다. 물론 저는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김 의원 말대로) 통상을 산업쪽과 함께 두는 건 후진국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것 같다."

- 요즘 인수위 쪽에서 복지 공약을 두고 말이 많다. 보수 일부에선 재정문제를 들어 공약 수정론도 나오고 있는데.
"(곧장) 당선인 보고 벌써부터 약속을 어기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은 다 반역자 아닌가. 그렇지 않나. 그런 식으로 (공약을 바꾸라고) 한다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것을 금세 느낄수 있었다. 어이없다는 그의 표정이 그려졌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보세요. (공약을) 해보다가 '정 안되겠습니다, 문제가 많습니다'라고 하면 모를까. 지금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요. 그런데 시작부터 (공약을) 바꾸자고 하면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죠. 그렇지 않나요?"

- '당초 처음부터 복지 계산이 잘못됐으니까 지금이라도 바꿔라'는 것인데.
"그러면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자고 하면 그럴수 있다. (웃으면서) 공약 다시 내놓고, 그것 가지고 국민들에게 다시 선택받으면 된다."

"재벌총수 불법 행위는 처벌해야... 지배구조는 다른 문제"

그는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국가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나름 긍정적이었다. 장 교수는 작년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새누리당 현수막에 복지가 맨 처음 써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당선인의 복지에 대한 인식도 장 교수와 얼추 일맥 상통한다. 박 당선인은 최근 인수위 국정토론회에서 "복지 정책은 낭비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 세이브(절약)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박 당선인은 "스웨덴, 독일 등도 복지정책을 많이 하지만 성장을 헤치지 않고 오히려 발전한다"고도 했다. 장 교수가 그동안 주창해 온 생산적 복지와 비슷하다.

- 보수 여당이지만 박 당선인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웃으면서)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보수 여당도 복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됐으니, 민주주의의 승리 아닌가."

- 그동안 꾸준히 복지국가를 말했는데, 앞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지.
"저는 그동안 유럽식의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려면 적어도 (관련 예산이) 국민총생산(GDP)의 25% 수준은 돼야한다. 지금보다 2.5배 예산을 들여야 하는데... 당장은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 일단 박근혜 정부도 세금을 늘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인데.
"아직 국민들이 복지를 체험하기는 부족하니까 그렇다. 일단 박근혜식 복지를 해보고, 국민들도 '복지를 해보니까 괜찮네'라고 느끼면 세금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황당한 공약보다 조금씩 피부에 와닿는 정책부터 계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이어 복지에 들어가는 세금 증세에 대한 공동구매론을 재차 강조했다. 그동안 꾸준히 역설해온 이야기다. 세금을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같이 쓰는 돈'으로 보자는 것이다. 복지 지출을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로 보는 개념 전환을 강조한 것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말하자면 자기가 내던 병원비 같은 것을 세금으로 내고 의료보험으로 해결하면 국민 입장에선 돈을 아끼는 거예요. 개별적으로 약국에서 의약품 사는 것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같이 정부 기관에서 국민 대표해서 약을 사면 훨씬 싸게 살수 있는 거죠. 연금 등도 마찬가지요. 이러면 국민들에게 좋은 거예요."

그와의 이야기에선 복지 문제와 함께 재벌개혁도 빠지지 않는다. 마침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던 날 최태원 에스케이(SK)회장이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그래요?"라며 "아직 뉴스를 보지 못했다"면서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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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할은 대중과 소통... 정부 입각 생각 안해"

- 아까 오후에 최태원 SK회장이 법정 구속됐다. 회삿돈 횡령혐의로 1심 재판에서.
"그런가? 그동안 내가 재벌개혁에 대해 말하면 일부에선 '재벌 옹호론자'라고 하던데... 재벌총수들의 불법행위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총수든 누구든 횡령이나 배임 등 불법에 대해선 확실히 해야한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으로 이야기되면서 총수의 지배구조 개선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말해왔지만 재벌개혁이 지배구조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에 회의적이다. 어차피 지배구조 이야기는 자본가들끼리의 싸움일 뿐이다. 이씨 집안이나 최씨 집안을 쫓아내면 그 자리에 이름도 잘 모르는 헤지펀드 등이 들어올 수 있다. 과연 그것이 국민경제에 이로운가 하는 문제다."

- 재벌의 골목상권 침해 등 국민적 감정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지금의 경제민주화는 재벌 스스로 불러온 것이다. 골목 상권 침해 같은 문제는 그냥 못하게 하면 된다. 또 그런 것을 재벌이 하면 처벌하면 된다. 나쁜짓을 못하게 해야지, 굳이 지배구조와 연결시켜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자꾸 그런식으로 가면 재벌 해체 하자는 것인데...."

장 교수는 재벌을 개혁하자는 데는 동의한다. 대신 시장자유주의에 입각한 재벌개혁보다는 재벌을 우리 사회에 유익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재벌에 대한 나쁜 행동을 규제해야죠. 어떻게 무엇을 규제할 것인지 분명히 세울 필요가 있어요. 그동안 야당인 민주당의 경제민주화가 국민들에게 잘 와닿지 않은 건 추상적이고 기술적인 이야기들이었어요. 출자총액제한제도라든지... 재벌해체론자 말대로 이씨 일가나 정씨 일가 내몰아 놓고 미국 사모펀드 등이 대주주 돼 봐요. 무슨 문제 생기면 우리 노동자들 데모할 곳도 없어요. 이 사람들 네바다 사막 같은 곳에 큰 집 짓고 살고 있는데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데모해야 하나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금세 흘러간다. 당초 예정했던 1시간의 인터뷰 시간도 이미 지났다. 그의 이같은 복지와 경제민주화 방향은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에게서 논쟁을 불러왔다. 여야 정치권 모두 그의 이야기를 반영하기도 했다. 박근혜 새 정부의 입각설도 꾸준히 나온다. 그와의 인터뷰 때마다 물었다. "정치할 생각 있느냐"고 말이다. 그의 답은 항상 같았다.

"(인수위로부터 연락 받았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교수하다가 장관이나 행정가를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런 쪽은 아닌 것 같아요. 대중과 소통하는 경제학자가 내 역할이라고 봐요. 지금처럼 연구하고, 책 쓰고 대중과 이야기하는 것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박근혜 새 정부에서 당부하고 싶은 세 가지를 짚어달라고. 다시 장 교수의 말이다.

"우선 복지국가와 우리나라의 경제 고도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 잘 판단해서 추진해 주셨으면 해요. 산업과 과학기술 정책 등 임기 내에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만큼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 전환을 기대하죠. 육아, 보육 문제와 함께 경제활동인구로서 여성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해요.

마지막으로 과거사를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특히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역사문제 말이죠. 어쩌면 박근혜 당선인이니까 이것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의 불가피성, 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통해 정리를 해나가야 할 거라고 봐요."


태그:#장하준, #박근혜, #복지국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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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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