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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선 결과에 참담한 마음이다. 며칠이 지나도록 착잡한 심정이 가시질 않는다. 앞으로 5년 동안(건강문제 때문에 5년 후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지만) 괴로운 상태가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60대 중반 세월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패배에 따른 참담한 마음 외로, 무안하고 민망한 마음도 크다. 젊은 세대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하다. 이번 대선에서 60대가 박근혜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는 사실은, 그리하여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사실은 내게 이중삼중의 심고를 안겨준다.

나는 대선 직전에 <60대 친구여, 투표 전에 읽어보시게 - '박정희 향수'가 젊은 세대 앞길 막아>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을 대선이 끝난 후에도 많은 이들이 읽었고, '원고료 주기'에도 여러분이 참여해주셨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더욱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20대 초반 시절부터 갖게 된 고독감

나는 그 글에서 '고독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감내해야 하는 질긴 '고독'을 표현한 말이었다. 나는 그 고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20대 초반 시절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고 전율하듯 진저리를 쳤던 경험을 다시 상기한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당선이 확정적인 가운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지지자가 박 후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나와 감격해 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당선이 확정적인 가운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지지자가 박 후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나와 감격해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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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초로 국민 주권을 행사한 때는 1969년이었다. 7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여 10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배출대대에서 논산훈련소 제28교육연대로 떨어져서 대기병 생활을 할 때 '삼선개헌 국민투표'를 하게 됐다. 동료 대기병 3명과 함께 연대본부 인사과로 가서 투표를 하는데, 완전히 공개투표였다.

맨 앞에 위치했던 나는 깜짝 놀라 맨 뒤로 돌아갔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평생 동안 내 비겁함을 기억하며 부끄러움을 안고 살 것인지, 오늘 당장은 어떤 곤란을 겪더라도 평생 동안 떳떳한 마음을 안고 살 것인지를 빨리 결정해야 했다.

결국 나는 '반대'를 의미하는 'X' 밑에 색인을 찍었다. 순간 깜짝 놀라는 소리들을 들었다.  "어, 이놈 보게!", "이 자식, 미친 놈 아냐!" 졸지에 미친놈이 되어 버렸지만 다행히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기 3명은 연대본부 군수과와 정훈과, 연대장 전령으로 특명 받았고, 나만 제9중대로 떨어졌을 뿐이었다.

9중대 교육조교로 근무하면서 나는 9중대의 기간사병과 훈련병 전원도 공개투표를 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제28교육연대 2500명 전원이 공개투표를 했고, 나를 제외한 전원이 '찬성' 쪽에 기표를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연대장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사실에서 그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연대본부 기간사병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후 식반을 들고 바삐 뛰어가는 나를 큰 소리로 부르는 이가 있었다. 돌아보니 연대장이었다. 그가 다가와서 대령 계급장이 달린 모자와 선글라스와 지휘봉을 땅바닥에 놓더니, 내게 배구공을 튕겨 보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연대장과 함께 토스 연습을 몇 번 해야 했고, 그날 하루 종일 연대장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연대 병력 2500명 중에서 삼선개헌 국민투표에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나 하나뿐이기에 연대장이 나를 알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면 내게 아무 말 없이 배구공을 튕겨 보낸 이유는 뭘까? 혹 '나는 너를 인정한다'는 뜻을 배구공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부터 연대장 문영창 대령의 이름이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적막감을 안아야 했다. 중대별로 전 부대에 걸쳐 공개투표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반대쪽에 기표를 한 사람은 나 하나라는 사실에서 이상한 공포감과 고독감을 감내해야 했다.

그 후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군부대의 공개투표 사실을 알고 있을까? 괜한 의문에 시달렸다. 군인 출신인 그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참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신의 장기집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고, 과정이 비겁하면 그 어떤 목적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평생 동안 박정희를 경멸하고 혐오하게 되리라는 생각도 그때 했지 싶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갖게 된 공포감과 투쟁 의지

나는 논산훈련소에서 조교생활을 하다가 지원병으로 베트남 전장을 갔고, 군대생활 마지막 6개월을 최전방에서 보냈다. 철책선 부대 분대장으로 분단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1972년 5월 제대 후에는 각 학교와 가정들을 상대로 학습지를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해 10월 '유신헌법 국민투표'를 맞이했다.

아버지는 유신체제를 확립하는 것만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며 찬성표를 던지도록 강요하곤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대항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누이동생을 설득하여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결과는 참담하고도 무서웠다. 전국적으로 93%의 찬성률이 나왔고, 내가 살고 있는 태안에서는 무려 97%의 찬성률을 보였다. 100명 중 고작 3명꼴로 반대를 한 셈이었다.

그 사실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감을 맛보았다. 극소수의 반대자들을 정보기관에서 알아보려고 하거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내 또래 20대 청년들도 절대 다수가 찬성 쪽에 기표를 했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찬성률이 나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상한 고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 후 세상 물정을 알아가면서 유신체제에 찬성했던 젊은 세대들 중 일부는 점차 반성과 각성의 세계로 나아가기도 하겠지만 또 일부는 자신의 무지몽매함을 오히려 합리화하려는 쪽으로 더욱 기를 세우게 되리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젊은 시절에는 타고난 술 체질이라 술도 많이 마셨는데, 술에 취하면 거리에서 시도 읊고 가곡이며 운동권 노래도 부르곤 했다. 삼선개헌 국민투표 때 논산훈련소 28연대 인사과 막사 안에서 들었던 '미친놈' 소리도 많이 상기했다. "5·60대 '노털'들이 빨리빨리 사라져줘야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산다"는 험한 소리도 입에 담곤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노상 옆구리가 결리는 것을 느꼈다. 시월유신 국민투표 때 젊은 층도 대거 찬성을 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93%의 찬성률이 나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했고, 내 또래들이 50대, 60대가 되어도 마찬가지 현상이 이 나라를 뒤덮게 되리라는 예감 속에서 불안과 공포도 감내해야 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는 '공명선거감시단'에 참여하여 태안대표로 활동했다. 태안성당 강당건물의 빈 공간 하나를 사무실로 사용했다. 젊은 동지들이 많이 참여했다. 모두 후배들이었다. 섭섭하게도 내 또래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1992년 제14대 대선 때도 '공정선거감시단' 태안군 상임의장으로 활동했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 그리고 농민대표가 공동의장을 했다. 그때는 더 많은 후배들이 참여했다. 젊은 피들이 눈부실 정도로 뜨겁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때도 내 또래 친구들은 없었다. 몇 사람에게 권유를 해보았지만 하나같이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그래도 함께하는 후배들이 있어 늘 고맙고 든든했다. 내가 나이 먹어갈수록 젊은 세대들의 세가 커지는 것을 느끼며 희망을 갖곤 했다. 때로는 이상한 반동도 생겨나고 퇴보 현상도 있겠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희망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가져왔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의 큰 너름새

올해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는 '서산태안 시민캠프' 공동대표로 참여한 다음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서산태안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지역에서 여러 번 유세도 했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었다. 글도 많이 썼고, 기도도 많이 했다. 동시에 세 가지 일을 한 셈이다. 그만큼 허탈감도 크다.

제18대 대통령선거 날인 지난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중학교에 마련된 여의도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날인 지난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중학교에 마련된 여의도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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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크게 무력감을 느꼈던 것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동정표'를 막을 수 없었던 점이다. 박근혜에 대한 동정심이 모든 것을 덮어 누르는 양상이었다. 그것은 연령층이 높을수록 비대해졌고, 특히 여성 유권자들을 압도했다. 명분이나 실리보다도 감성이 가장 크게 작용한 선거가 이번 선거였다.      

속수무책인 심정 가운데서 나는 더욱 젊은 세대에 희망을 걸었다. 젊은 세대들에게 부모님과 대화를 하거나 전화를 하도록 부탁하곤 했다. 젊은 층이 더욱 많이 투표에 참가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50대 이상 연령층의 놀라운 투표율과 박근혜 몰표 현상이 결국 박근혜의 승리를 가져왔다. 젊은 층도 괄목한 만한 투표율을 보였지만 노년층의 극성스러운 동정표를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박근혜를 반대한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 가운데 젊은 세대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을 크게 주목한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30대, 40대는 문재인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 20대의 65%, 30대의 66%, 40대의 55% 이상이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들이 박근혜 당선자를 거부한 셈이다. 젊은 세대 다수가 대통령 당선자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았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비록 미래가 과거에게 발목을 잡히긴 했지만, 그들은 소수가 아니다. 내가 20대 초반 시절논산훈련소에서 삼선개헌 국민투표를 할 때 공개투표장에서 혼자 반대표를 던지고 나서 고독감과 공포감에 떨었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 또 시월유신 국민투표 때 젊은 층도 대부분 찬성 쪽으로 휩쓸려버려 무려 93%의 찬성률로 영구 독재정권을 낳았던 상황과도 180도 다르다.

그들은 절대다수다. 고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공포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물론 친일세력, 군사독재세력, 지역패권주의세력, 기득권세력, 변절세력 등등 갖가지 부정적인 요소들이 다 결합한 새누리당 정권이 5년 동안 어떤 식으로 국정을 운영할지, 뉴라이트 세력은 또 얼마나 발호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민족정기를 말살할지, 어느 정도는 공포심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들은 비록 선거에 패하긴 했지만 그들 연령대에서는 수적 우위를 확보했다. 그들은 열려 있음과 깨어 있음이 장점이다. 그들은 다양한 정보수집 능력과 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수구 족벌언론의 폐해도 잘 알고 있고, 현 정권의 방송장악에 의한 편파방송의 실상도 명확히 알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종편방송들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박근혜 쪽을 도왔는지도 잘 알고 있다. 갖가지 불공정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그렇게 절대다수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수 있었다.

나는 선거기간에 천안역과 서울역 대합실의 모든 TV수상기들의 채널이 종편방송들에 고정되어 있는 것도 보았고, 그 앞에 어른들만 앉아 있을 뿐 젊은이들은 거의 없는 것도 보았다. 그런 그림 가운데서도 젊은 세대들이 내 '희망'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정보수집 능력과 소통 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불공정에 대한 판단 능력, 더 나아가 '의분'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내 '희망'이다. 의로운 분노를 수용할 수 있을 때 젊은 피의 가치는 더욱 꽃피어난다.

오늘은 비록 과거세대에 발목이 잡혔지만, 불공정을 헤아리고 의분을 품을 줄 아는 젊은 가슴들은 50대 이상 연령층의 값싼 동정심을 앞으로는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은 내 '희망'이며 그 희망으로 오늘의 슬픔을 위무한다.


태그:#제18대 대통령 선거, #박근혜, #문재인, #삼선개헌 국민투표, #삼선개헌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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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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