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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조교는 멋있지만 대학 조교는 부끄럽죠."

경남 A대학교에 근무하는 김도진(가명, 26)씨는 대학을 졸업 하자마자 조교 일을 시작했다. "2년을 채우면 정규직으로 바꿔 주겠다"는 교수의 말에 끌렸다. 조교를 하다가 교직원 채용에 응시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도 했다. 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대개 교수가 제자들을 데려와 조교직에 앉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상처만 남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교의 업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떨궜다. 업무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에 '잡일'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잡일의 연속'인 그의 하루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음료수 심부름으로 하루 시작

한 학교의 조교.
 한 학교의 조교.
ⓒ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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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학과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 학교 우체국에 들러 학과 우편물을 챙긴다. 사무실로 가는데 A교수님에게 "과일 주스 좀 사다 달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음료수 셔틀'이 따로 없다. 혼자 근무하는 사무실이지만 지각이라도 하면 눈치가 보인다. 애꿎은 시계만 쳐다본다.

오전 10시, 학과 사무실로 항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학과 교수님이 기고한 칼럼이 언론에 실리면 어김없이 항의 전화가 온다. 마음 같아선 교수님 방으로 전화를 돌리고 싶지만, '항의 방어'도 조교의 책임이다. 

학과 연구소 업무로 점심시간이 늦어졌다. 연구소 업무까지 겸직하는데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한다. 밥도 제 때 못 먹고, 돈도 못 받고... 이럴 때면 억울한 생각이 밀려든다. 

오후 1시, 다른 학과 조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이 시간이 제일 즐겁다. 대개 혼자 학과 사무실을 지키다 보니 외로울 때가 많다. 다른 조교들에게 업무 고충을 털어 놓거나 조언을 구한다.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후 3시, 재무회계팀에 있는 선생님에게 '호출'이 왔다. 어김없이 영수증 문제다. B교수님께서 학과 카드 영수증을 잃어버려서 생긴 문제다. 조교가 대신 간이 영수증으로 때우거나 욕을 먹어야 한다.

오후 5시, 퇴근 시간이 다가 온다. 시계를 바라보며 마음 놓을 틈은 없다. 학과 전용 강의실을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는 전부 조교의 몫이다.

오후 9시, 친구들과의 술자리. 편하게 한잔 할 즈음, 학과 학생에게 전화가 온다. 학생은 내일 C교수님 수업 휴강 여부를 묻는다.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지만, 자잘한 업무는 계속 이어진다. 교수님보다 조교가 편한 탓인지, 학생들에게 연락이 자주 온다.

대학 조교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면서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그 탓에 고충을 토로하는 조교들이 많다.
 대학 조교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면서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그 탓에 고충을 토로하는 조교들이 많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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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조교는 "대학에서 교수의 지도를 받아 학술연구 및 학사업무를 보조"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김씨는 그런 조교와 거리가 멀다. 조교는 대학의 단순 노동직이면서, '교수들의 총알받이'다.

비정규직 늘리는 대학의 '꼼수'

부산 B대학의 행정업무 비정규직 조교로 근무하는 정일택(가명, 31)씨는 정규직 직원들과 동일한 업무를 한다. 하지만 임금에서 큰 차이가 난다. 정씨는 정규직 연봉의 70%를 받는다. 현재 정씨의 연봉은 1500만 원을 겨우 넘는다. 정씨도 정규직 전환을 내심 바라고 있다. 하지만 부질없는 기대일 뿐이다. 2년이 지나더라도 다시 '무기계약직' 이름표를 단 채 일 할 거라는 걸 정씨는 잘 안다.

무기계약직 이름표를 떼는 방법은, 일을 그만 두는 것뿐이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 근로 시간까지 같으면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정씨에겐 먼 이야기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교수님 눈밖에 나거나 학교에서 (안 좋은 일로) 주목을 받으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며 "교수님의 추천으로 들어왔는데, 소송 등으로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발생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조교가 비정규직 보호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비정규직 보호를 못 받으니까, 학교에서 정한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죠. 학교에서는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편하게 쓸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 악용합니다. 학교 교칙도 법적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대학마다 비정규직에 관한 규칙은 다르다. '꼼수'를 부리는 대학도 있다. 채용 기간 2년을 거의 채우면 계약을 해지한 뒤 다시 채용하거나, 근로계약서에 계약 해지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는 사례도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임상민(35) 조직부장은 "근로기준법과 단체교섭권이 우선이고 대학에서 정한 취업 규칙은 최하위 법적 효력을 발휘한다"며 "대학 측의 취업 규칙이 불법이라면 법적 소송이 가능하지만, 언제 직장을 잃을 지 모르는 계약직에게 개인 소송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일택씨는 "공적 성격이 강한 대학에서 먼저 고용 안정이 이뤄져야 사회 다른 분야의 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이번 대선에서 일자리 문제가 이슈인데,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영(가명, 23)씨는 부산의 C전문대학의 조교다. 그는 500여 명에 이르는 학생을 관리하다 보니 매일 정신이 없다. 그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치이는 일이 제일 힘들다"며 "업무에 대한 결정권이 하나도 없으니 잡일만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씨가 일하는 대학은 조교의 노동시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한다. 박씨는 '주 40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학교는 학과 업무가 바쁜 시간에만 박씨를 불러 일을 시킨다. 주간 근무는 오전 10시 출근해 오후 3시까지 일하고, 야간은 오후 4시에 출근해 오후 8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주야간 근무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학교가 요청하면 오늘 야간 근무 했다가, 내일 오전 근무도 한다. 

이런 대학의 꼼수 탓에 대학 조교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용직업분류에 따르면 대학 조교의 월 평균 소득은 118.5만 원이다. 평균 근속년수는 1.7년에 불과하다. 경북의 D대학에 일하는 안창민(가명, 25)씨 역시 80만 원의 저임금에 시달린다. 정해진 노동시간 외에 일을 하더라도 추가 수당은 없다. 

최근 들어 대학의 꼼수는 취업률로도 옮겨 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에 높은 취업률을 요구한다. 대학은 고용 불안 같은 건 고려하지 않은 채 졸업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1년짜리 계약직 조교를 제안하고 채용한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물론 1년 뒤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비정규직 대학 조교, 출구는 없을까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조교들의 이야기. 대부분 업무 고충에 관한 내용이다.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조교들의 이야기. 대부분 업무 고충에 관한 내용이다.
ⓒ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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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비정규직도 노동자로 인정된다. 노동조합도 결성할 수 있다. 하지만 제 역할을 하는 조교 노조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교 노조가 있더라도 대개 친목 모임 수준에 그치거나, 노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사립대학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조교도 직원이지만, 대학 직원 단체에 끼지도 못 해요.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가당키나 하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냥 고립무원 상태에 있는 거죠."

양은영(가명, 26)씨가 근무하는 부산 D대학에는 조교 노조가 없다. 학과 인원이 많은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혼자서 일을 하니 다른 조교를 만날 기회도 흔치 않다. 학내에 직원 노조가 있지만 계약직 조교가 낄 자리는 없다. 계약직 조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자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임상민 조직부장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조교들 스스로 뭉칠 수밖에 없다"며 "노조를 만들어야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하고 단체 교섭권이 생긴다"고 말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7년 공공기관 1만714개에 소속되어 있는 비정규직 중에서 7만1861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당시 교육 기관에서 정규직 전환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대학 조교는 예외였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건 없다.

대학마다 여러 형태의 조교가 있고, 근무형태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하나로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 조교들은 비정규직의 굴레에 빠져 있다. 출구도 잘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김다솜 기자는 <오마이뉴스> 3기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 기자입니다.



태그:#대학 조교 ,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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