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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아찌아 관련한 교과서 오류 시정을 보도하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
 찌아찌아 관련한 교과서 오류 시정을 보도하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
ⓒ 서울방송(SBS) 뉴스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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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찌아찌아'는 한글의 우수성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찌아찌아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주 부톤섬에 사는 토착 부족의 이름이다. 이들이 쓰는 언어가 '찌아찌아어'인데 바우바우시(市)가 이 말을 표기할 문자로 한글을 도입한 게 2009년이다.

관련기사:① 한글, 인도네시아 부톤섬으로 가다  / ② 부톤 섬으로 간 한글

나라와 민족을 떠난 한글은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에서 그럭저럭 정착하는 듯 보였지만 그게 반드시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 <연합뉴스>가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에서 운영해온 한국어 교육기관 '세종학당'이 지난 8월 31일 철수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찌아찌아' 관련 교과서의 오류들

이는 대체로 한국의 재정적 지원이 흔들린 것과 인도네시아에서 한글 문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어세계화재단이 세계 각지에 설립하는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을 개원했던 경북대는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현지에서 철수했다.

 최경봉 저 <한글민주주의>, 책과함께
 최경봉 저 <한글민주주의>, 책과함께
ⓒ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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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인도네시아 정부쪽에서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도입한 것은 중앙 정부의 언어정책을 거스르는 것"이라 지적하고 "인도네시아의 공식 문자인 로만라틴 외에 또 다른 문자 체계를 채택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는 자칫하면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를 안고 있는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과 관련하여 지난 18일 <연합뉴스>는 예의 찌아찌아족과 관련한 내용이 검정교과서에 잘못 실려 정부가 시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현행 고교 검정 국어 교과서 중 일부에서 오류를 발견해 17일 교육과학기술부에 오류 시정 권고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문화부가 지적한 검정교과서의 오류는 고등학교 국어(상) 1권과 국어(하) 4권에서 발견됐다. 그것은 각각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또는 보급)했다', '문자가 없어 소멸할 위기에 처한 찌아찌아어'라는 부분이다.

문화부는 '공식 문자 채택' 관련 부분은 '부족어 표기에 한글 교육 실시'로 수정하기로 했고, '문자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삭제'를 요청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교과서에서 기술한 내용이 명백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관련 법률에 따라 공용어와 고유 문자가 없는 지방어를 모두 로마자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쓰게 된 것은 '공식 문자 체계'로 채택한 것이 아닌 '부족어 표기'를 위한 것이다. 또 이들은 법에 따라 자신들의 언어를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으므로 '문자가 없다'는 기술 역시 사실과 다른 것이다.

언뜻 보면 이번 시정조치의 대상이 된 교과서의 오류는 있을 수 있는 실수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반드시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 조치에 덧붙인 정부 관계자의 언급도 그러한 우려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는 해외 세종학당을 통해 한국어 교육을 지원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한글 보급 사업은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공식적 요청이 없는 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문자인 '한글'과 언어인 '한국어'를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문민족주의를 넘어 '열린 한글'로

 1940년대 우리말도로찾기 운동의 포스터
 1940년대 우리말도로찾기 운동의 포스터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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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무엇이고 '한국어'는 또 무엇인가. 하나는 문자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라고 하는 것만으론 이 생뚱맞은 자문에 대한 답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 평범한 질문 속의 함의는 단순한 문자와 언어라는 구별보다 더 근원적인 한글의 역사성과 한민족의 경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책과함께'에서 최근 펴낸 저서 <한글민주주의>를 꿰뚫고 있는 국어학자 최경봉 교수(원광대)의 견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언어 문제에 대한 논쟁의 저변에는 한글과 관련한 역사적 경험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고, 이는 언어 문제를 언어의 문제가 아닌 '정신'과 '가치관'의 문제로 만들곤 했다"며 언어를 '생활'의 문제로 보자고 제안한다.

<한글민주주의>는 이러한 성찰의 결과물로서 언어를 '정신'과 '가치관'의 문제로 바라보아 온 우리 자신의 언어관을 다시 돌아보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 일관된 관점은 어문민족주의를 넘는 '열린 한글'에 대한 지향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우리 말글이 당면하고 있는 정책과 여러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고 저자는 믿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정부 관계자처럼 우리의 언어의식이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하곤 한다는 걸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혼동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언어의식에 '한글과 한국어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었던 역사적 경험과 상처가 착종되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 경험과 상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거쳐 온 고단한 현대사의 그것이다.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자 민족과 국가의 의미가 새로워졌고 그때까지 비주류의 문자였던 '언문'은 '한글', 즉 '크고 위대하고 유일한 글'이 되었다. 그것은 '독립의 의지'를 일깨우고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일제 침략 앞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겨레의 노력은 한글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물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겨냈다. 한글의 역사적 의미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언어와 문자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소홀해진 대신 민족주의와 결합한 한글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고 그 정체성에 도전하지 못하게 되는 '정신'과 '가치관'의 영역으로 진입해 버린 것이다.

"한자를 쓰면 안 된다.
한글만 써야 한다.
외래어는 고유어로 바꾸어야 한다.
한글 표기는 이렇게 해야 한다.
자랑스러운 한글을 세계에 수출하자……."

이러한 강박은 한글과 그것으로 상징되는 우리 말글을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견지해야 할 주체성의 표지로 세웠다. 외래어 정화운동 같은 경우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어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어문민족주의로 비화하면서 외래어 문제가 언어 아닌 '정치'의 문제가 되는데 일조했다.

'한글 보급' 집착에 서린 '제국주의'

한글과 한국어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강박은 걸맞은 철학의 뒷받침 없이 한글 보급에만 집착하게 되면서 여러 문제를 드러낸다. 저자는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사업'에서 은근히 '한글제국주의'의 기운마저 느끼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 사업의 문제로 저자는 '국가의 공식 문자는 국어정책의 틀에서 결정된다는 상식적 사실을 간과한 것'을 든다. 현실적으로 주권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자국의 어문 정책과 관계없이 소수민족공동체와의 협의만으로 한글을 특정 소수민족어를 표기하는 공식문자로 용인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인도주의는 그 목적과 방법이 모두 인도적일 때만 유의미하다.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이 사업을 벌였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저자가 주장하는 이유다. 저자는 찌아찌아족에게 한글 보급 사업을 주도한 언어학자 이호영이 '한글 보급'과 '한국어 보급'을 혼동하고 있는 것도 꼬집는다.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어와 일본어 보급에 적극 나선 중국과 일본의 사례와 찌아찌아족에게 한국어 교사를 파견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지원을 단순 비교하는 것에도 이러한 혼동된 인식이 전제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글이 '여러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라는 사실이 '한글이 그 언어의 표기에 가장 적합하거나 유일한 문자'라는 사실로 뒤바뀌는 과정의 비이성적 성격은 환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을 겪은 당시 국어학자들 모습. 이들에 의해서 식민지 시기에도 한글은 명맥을 이어 발전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을 겪은 당시 국어학자들 모습. 이들에 의해서 식민지 시기에도 한글은 명맥을 이어 발전했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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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아찌아어의 표기수단으로 한글을 보급하는 사업이 자주 난관에 맞닥뜨리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기본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우수한 한글'과 '한글 수출'이라는 등식을 타고 국가주의의 모양새를 띤 것이 결과적으로 국내 검정 교과서의 오류로 이어졌음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한 것이 아니라 '부족어 표기에 한글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또 찌아찌아어는 '문자가 없어 소멸할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 그들이 써 왔던 로마자 대신 한글을 표기수단을 삼았을 뿐인 것이다.

<한글민주주의>는 토박이말 사용자로서 우리의 '한글'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깨우쳐 준다. 나라의 말글로서 한국어와 한글을 바라보는 일반의 관점은 단순하다. 영어의 위세 앞에서 날로 짜부라지는 한글을 지키겠노라며 한글이 '세계 최고의 문자'이며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사실을 공허하게 되뇌었던 것일 뿐이다.

<한글민주주의>는 민권, 자주, 평화 등 세 개의 주제 영역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한글과 더불어 성장한 민주주의'가 곧 민권이며, '한글로 지켜야 할 주체성의 한계'를 다룬 부분이 자주다. '한글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모색'이 마지막의 평화에 해당된다. 민권과 자주가 우리 말글의 내부를 다룬 거라면 평화는 한글인도주의와 한글제국주의는 물론이거니와 통일시대 남부의 언어 문제, 다문화 시대 소수자의 언어적 권리까지 다룬다.

저자는 한글의 우수성과 정교한 체계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사용상의 우수성'은 다른 개념이라고 말한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찬탄이 한글의 우월성에 대한 찬양으로 바뀔 때 그것이 강박이 되고 그런 비이성적 찬양의 귀결점은 '폐쇄적 나르시시즘이거나 제국주의적 탐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찌아찌아 족의 한글 표기와 관련하여 우리는 한글의 전파는 '한글의 보급'이나 '한글의 수출'이 아니라 '나눔'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한다. 그것이 인도주의와 제국주의의 경계에서 뒤뚱거리는 우리 자신의 태도를 분명하게 다잡는 일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한글민주주의| 최경봉 저| 책과함께| 2012년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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