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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겨울 제 동생이 태어났는데, 당시 저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할머니께서 엄마를 대신해서 미주(米酒), 중국에서는 미주라고 칭하나 기사에서는 막걸리로 번역함) 한 단지를 담갔고, 일찍 일어나서 밥을 했으며, 낮에 햇볕이 따뜻할 때를 골라 술누룩을 섞으셨습니다. 30년 전 중국 후난의 농촌에는 코카콜라도 없고 맥주도 없어 사람들은 대부분 미주를 마셨습니다. 집집마다 미주를 만들 줄 알았습니다. 막걸리는 비위를 따뜻하게 하고 손발을 따뜻하게 해주며 원기를 보양해주기 때문에, 농촌에서 누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산모의 건강 회복을 위해 막걸리로 계란을 삶아 먹었습니다…."

지난 14일 남양주시 유기농 테마파크에서 열린 한·중·일 슬로푸드 국제컨퍼런스
 지난 14일 남양주시 유기농 테마파크에서 열린 한·중·일 슬로푸드 국제컨퍼런스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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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남양주시 유기농 테마파크에서 열린 '2012 한․중․일 슬로푸드 국제 컨퍼런스'. '2012 슬로푸드대회'의 메인 행사로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동아시아 발효식품과 음식문화"라는 주제로 각각 한국과 일본,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 발효식품의 장인들이 참석해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음식 이야기와 자신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철학을 들려주었다.

360년 된 '씨간장' 독을 지키고 있는 담양 장흥 고씨 집안의 종부 기순도 명인은 집 앞 대밭의 대나무를 채취해 구운 죽염으로 20년 동안 장을 담갔다. 장흥 고씨 양진제 10대 종부이자 한국전통농식품 35호 진장명인인 기순도 명인의 된장, 간장은 유명 백화점 명품관의 인기 상품에 올라있을 정도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기 명인은 "담가서 먹을 때까지 10개월 이상이 걸리는 우리 전통 간장이야말로 진정한 슬로푸드이며 민족의 얼과 정신이 담겨있는 음식"이라면서 "장은 모든 음식의 기본이고, 장맛이 좋으면 그 집은 잘된다는 옛말이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많이 따오는 것도 장맛의 힘인 것 같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한중일 슬로푸드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담양의 기순도 명인.
 한중일 슬로푸드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담양의 기순도 명인.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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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도 명인 등 한·중·일 대표 발효식품 장인들 참석

일본 시즈오카 현 카모군에서 5대째 가다랑어 포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야스히사 세리자와 씨는 직접 말린 가다랑어 포를 들고 나와 대패로 깎는 시범을 보였다. '가츠오부시'라는 이름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말린 가다랑어 포는 일본 요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식재료이다. 일본 음식의 기본이 되는 '우려내는 국물'의 주재료이며, 얇게 깎아서 부침 요리 위에 올리기도 한다.

가츠오부시는 가다랑어를 수매해 많은 공정을 거친 후 완성될 때까지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음식이다. 가츠오부시에 발효 곰팡이를 발라 수차례 햇볕에 말리고, 다시 곰팡이를 발라 충분히 수분을 빼낸 것을 '혼가레'라고 부른다. 칼집을 넣는 법, 불을 때는 법, 곰팡이 바르기 등 여러 가지 작업과 기술을 습득하는 데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며, 이 때문에 제품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고 세리자와 씨는 설명했다.

그는 "지금 일본은 화학조미료 때문에 집집마다 있었던 어머니의 맛을 잃어버리고 있다"면서 "가츠오부시를 사서 직접 국물을 내기보다 손쉽게 인스턴트로 나온 제품을 사먹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가츠오부시가 가다랑어(가츠오)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의 가츠오부시 명인인 야스히사 세리자와 씨가 직접 가다랑어 포를 대패로 깎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가츠오부시 명인인 야스히사 세리자와 씨가 직접 가다랑어 포를 대패로 깎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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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먹던 가츠오부시의 맛을 기억하고 그 역사와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는 지역에서 '가츠오부시 깎기 체험' 등을 비롯해 강습회, 이벤트, 전시회 등을 통해 가츠오부시의 전통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츠오부시는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장(醬)과 비슷한 점이 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음식에는 인간의 마음, 그들의 문화와 삶의 양식이 배어든다.

세리자와 씨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가츠오부시를 가츠오로 만든다는 것도 모르는 아이들

중국 후난성의 쌀 발효술(미주, 米酒) 명인인 등영생 씨는 "30년 전 후난의 농촌에서는 모든 가정이 미주(米酒)를 만들 줄 알았지만 지금은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더 많다"면서 "세상이 변하면서 농촌에도 공장에서 생산된 식품이 많아졌다. 막걸리도 속성으로 발효시키는 효모가 나와 공업적으로 빨리 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좋은 술은 시간이 걸리며, 매 과정을 대충 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만드는 모든 순간순간이 술맛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등 씨는 어른이 된 후 도시에서 일을 했지만, 어린 시절 마셨던 미주의 향긋하고 달달한 맛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현대인들이 마시는 음료의 대부분이 공업화된 향료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직접 막걸리 사업에 나섰다. 등 씨의 막걸리는 트위터 바람을 타고 빠른 시간 내에 중국 전역에 알려졌으며, 그의 별명은 '막걸리 선생'이 되었다.

중국 후난성의 막걸리(미주, 米酒) 명인인 등영생 씨.
 중국 후난성의 막걸리(미주, 米酒) 명인인 등영생 씨.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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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회사를 등록하고 중국 수백 개 도시에 지점을 내서 빨리 돈을 벌 방법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빨리 오면 빨리 간다고 했습니다. 사회적인 책임이 없다면 많은 돈을 번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는 '건강한 지속적인 성장방법'을 찾고 있다며, 2년 후 고향 후난에 작은 농장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시골 사람들과 함께 만든 제품은 훨씬 안전한 먹을거리라는 것이다. 찹쌀을 직접 재배하는 과정에서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지 않고, 이 쌀로 만든 막걸리는 훨씬 더 맛이 좋다.

중국에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미주는 <수호전>에 등장하는 108 호한이 마시던 바로 그 술이다. 하지만 이제 옛 영웅들의 전설은 사라졌고, 더불어 미주를 마시는 사람도 사라져간다.

등영생 씨는 최근 북경의 유기농부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식(慢食) 운동을 소개했다.

"만식은 기본적으로 생활에 대한 속도 제어를 뜻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일종의 태도입니다. 중국에 일을 천천히 해야 정교한 작품이 나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환경이 건전하고 식품이 건전하면 우리 몸은 저절로 건강해질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저절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14일 오후 남양주시 유기농 테마파크에서 열린 한·중·일 국제컨퍼런스
 14일 오후 남양주시 유기농 테마파크에서 열린 한·중·일 국제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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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마시던 막걸리 어디에도 없었다"

이번 컨퍼런스의 기조 발제를 맡은 김종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아시아의 세 나라 한국, 중국, 일본은 모두 다양하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발효음식과 음식 문화를 발전시켜왔는데, 세계화와 세계식량체제가 확산되면서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발효음식과 그것을 뒷받침해온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나라는 모두 효율성과 편리함에만 기초한, 전통 식품과 유사한 가공식품들이 개발되어 기존의 전통 음식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서구화된 음식에 빠져 전통 음식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전통 식품의 조리법이 교육되지 않아, 좋은 전통 음식이 전수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역이나 가문 차원에서 전통 음식을 지켜온 사람들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것의 전수를 포기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이번에 한중일 세 나라의 전통 발효식품 명인들을 초청해 그들의 생애와 음식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 이유이다.

김 교수는 "지역의 전통 음식이나 발효 음식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이자 문화이며 뿌리이기 때문에 이 음식들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전통음식, 발효음식의 소멸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양주시가 주최하고 (사)슬로푸드문화원이 주관한 이번 컨퍼런스에는 이밖에도 정혜경 호서대 교수, 토시아 사사키 슬로푸드 일본 부회장, 앨리스 귀스토 중국 슬로푸드 활동가 등이 참석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100여명 이상의 청중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14일에서 16일까지 남양주시 유기농 테마파크에서 '2012 슬로푸드 대회'가 개최되었다.
 지난 14일에서 16일까지 남양주시 유기농 테마파크에서 '2012 슬로푸드 대회'가 개최되었다.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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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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