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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대선의 핵심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다. 특히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도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 민주화 뿐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없을까.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 경제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 협동조합 모델의 상징인 이탈리아 애밀리아로마냐의 볼로냐에 이어, 캐나다 퀘벡의 모습을 짚어본다. 퀘벡 모델은 1960년대 이후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를 이끌어 오고 있다. 경제는 견고한 성장과 함께 일자리도 늘면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학계에선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 부른다. 글로벌 경제위기도 비껴간 이들의 혁명을 찬찬히 따라가본다.<편집자 말>

 캐나다 퀘백주의 옛 퀘백시 전경. 세인트루이스 강을 사이로 도시가 나뉜다. 따로 다리를 놓지 않고 배를 이용해 이동한다.
 캐나다 퀘벡주의 옛 퀘벡시 전경. 세인트루이스 강을 사이로 도시가 나뉜다. 따로 다리를 놓지 않고 배를 이용해 이동한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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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저녁 8시께. 식당 밖으로 빗방울이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캐나다 퀘벡에 들어온 지 둘째 날이다. 20시간에 걸친 비행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다. 시차적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퀘벡의 사회적 경제 모델을 보기 위한 강행군은 계속됐다. 이날 취재진의 저녁 식사 장소는 옛 퀘벡 시내의 챠레스트 이스트(Boulevard Charest Est)의 중국 음식점이었다. 퀘벡 도착 하루 만에 동양계 음식점을 찾았다. 퀘벡시에는 한국 음식점을 찾기 어려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자, 길거리서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레 발길을 돌렸다. 거대한 콘크리트 고가도로 아래에 설치된 뮤지컬 공연장이 눈에 들어왔다. 듀팽 몽메르시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고가도로였다. 이미 공연이 한창이었다. 길가 현수막에는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이벤트 공연이라고 쓰여 있었다.

'태양의 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작됐다. 현대공연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상설 공연장과 순회 공연 등으로 벌어들인 돈만 작년 한 해 1조 원에 달한다. 지금까지 공연을 본 사람만 1억 명이 넘는다. 지난해 서울에서도 공연이 있었다.

 뮤지컬 공연장이 시내 중심가의 고가도로 아래 만들어진 탓에 많은 시민들이 쉽게 찾아올 수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시민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공연을 보고 있다.
 뮤지컬 공연장이 시내 중심가의 고가도로 아래 만들어진 탓에 많은 시민들이 쉽게 찾아올 수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시민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공연을 보고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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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 공연을 길거리서 공짜로 볼 수 있다니…. 이날 공연 제목은 '보이지 않는 길(LES CHEMINS invisibles)'이었다. 공연은 막바지에 들어선 듯했다. 기자 눈 앞에선 현란한 조명과 비트 있는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이 펼쳐졌다. 수십여 명에 달하는 출연진의 화려한 의상과 분장, 아슬아슬한 묘기에 입이 벌어졌다. 빗속에서도 수천여 명의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 낯선 곳에서의 피곤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이런 길거리 문화는 퀘벡에선 일상적이라고 한다.

1억 명이 열광한 '태양의 서커스'의 성공 비결... 발상의 전환과 신뢰

'태양의 서커스'는 캐나다와 퀘벡의 상징이 됐다. 이들은 1984년 퀘벡주의 몬트리올에서 10명의 단원으로 시작했다. 1980년대 서커스는 캐나다에서도 사양산업이었다. 우리로 따지면 유랑극단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동춘서커스'를 연상시킨다. '태양의 서커스'는 이제 세계 최대의 서커스 공연기업이다. 올해 매출만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을 예상한다. 불과 27년 만이다.

무엇이 '태양의 서커스'를 만들게 했을까. 이들이 둥지를 튼 곳은 퀘벡주 몬트리올 북부지역이다. 이곳은 원래 석회석 채석장과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악취와 가스가 이어졌다. 4000톤 이상의 독성 화학 쓰레기를 묻다보니, 지하수와 먹는 물까지 위협을 받았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몬트리올 시는 쓰레기 매립을 중단했다. 모두가 버려진 땅으로 여겼다.

 '태양의서커스' 본사 건물 역시 친환경적으로 설계됐다. 건물 아래쪽은 옛 쓰레기매립지다.
 '태양의서커스' 본사 건물 역시 친환경적으로 설계됐다. 건물 아래쪽은 옛 쓰레기매립지다.
ⓒ 태양의서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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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세계 서커스의 메카로 탈바꿈 시킨 것은 이 지역 출신 젊은 여성 무용가였다.  그는 주민들의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고 몬트리올 시에 제안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 '라 토후(La Tohu)'를 세웠다. 목표는 '서커스를 통해 지구와 인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재원은 노동연대기금을 통해 지원받았다. 지하에 오염된 침출수는 파이프를 연결해 빼내고, 메탄가스는 화력발전 연료로 재활용했다. 주변 지역 1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한다. '태양의 서커스' 본부와 서커스 공연장을 지었다. 1987년엔 국립 서커스학교까지 세웠다.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업교육도 하고, 서커스도 가르쳤다. 일자리도 제공했다. 지역주민의 아이디어와 지방정부, 그리고 시민사회의 협동이 이뤄낸 결과였다.

'태양의 서커스' 최고경영자인 기 라리베르테(Guy Laliberte)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삶의 철학을 길거리 문화로 이야기했다. 그는 "길거리는 신뢰와 충성을 배우게 한다"고 했다. '내가 너를 돌봐주면, 나 역시 너를 도울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이라는 것이다. 꺼져가는 서커스를 되살리고, 세계적인 공연으로 자리잡게 한 원동력인 셈이다.

 '태양의 서커스'를 소개하는 포스터.
 '태양의 서커스'를 소개하는 포스터.
ⓒ 태양의서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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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의 거대한 실험장... 정부·시민사회·협동조합의 끈끈한 연대

캐나다가 보여주는 사회적 기업은 이뿐 아니다. 주거, 의료뿐 아니라 서비스 분야 등 다양하다. 여기에 금융을 비롯한 소비, 농업 등 다양한 협동조합도 존재한다. 시민사회단체도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제 목소리를 내고, 정책에 반영된다.

캐나다 사회경제 모델을 연구해 온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엔지오대학원)는 "캐나다는 퀘벡을 중심으로 정부와 협동조합,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거대한 사회적 경제를 수십 년에 걸쳐 운영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 사회적 경제가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은 경기 불황 때문이었다. 지난 1980년대 초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기업들이 파산하고, 퀘벡 주의 실업률은 치솟았다. 주 정부는 고용 안정을 위해 퀘벡노동자연맹 등과 함께 노동연대기금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저축한 돈 일부를 내놓고, 정부도 매칭펀드 형식으로 참여했다. 주 정부는 기금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세금감면 등의 혜택도 줬다.

김 교수는 "퀘벡의 사회적 경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회연대기금이 풍부하다는 것"이라며 "주 정부 뿐 아니라 대규모 노조, 우리나라의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이 기금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캐나다 최대의 금융 협동조합기업인 데자르댕과 같은 협동조합 등도 연대 기금에 참여하면서 주거, 복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퀘벡주 연대 기금을 통해 만들어진 기업만 1880여 곳(2008년 말 기준)에 달하고, 일자리만 12만6000여 개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풍부한 사회연대기금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기업과 시민사회단체, 협동조합 등이 주 정부와 긴밀하게 서로 연결돼 있다"면서 "이들의 연결통로인 '샹티에(Chantier)'라는 조직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샹티에는 퀘벡의 사회적 경제를 상징하는 조직이다. 프랑스어로 '작업장'이라는 뜻을 가진 샹티에는 1995년에 만들어졌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들, 환경과 노동 등 각종 시민단체의 연대와 협력을 위한 조직이었다. 당시만 해도 캐나다의 경제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고용 감소, 재정 적자 등 경제위기 우려가 컸다.

 캐나다 퀘백주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쓴다. 캐나다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유일한 주다. 프랑스계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캐나다 연방에서도 독자적인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있다.사진은 옛 퀘백시내의 한 모습. 도로 표시판 뿐 아니라 각종 가게 간판 등도 불어로 돼 있다.
 캐나다 퀘벡주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쓴다. 캐나다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유일한 주다. 프랑스계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캐나다 연방에서도 독자적인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있다.사진은 옛 퀘벡시내의 한 모습. 도로 표시판 뿐 아니라 각종 가게 간판 등도 불어로 돼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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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퀘벡의 '조용한 혁명', 그들의 실험은 계속된다

1996년 퀘벡 주의 실업률이 12%에 달하자, 주 정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재정위기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샹티에 쪽에 요청했다. 이어 '퀘벡의 경제·사회 미래에 관한 연석회의(Summit on the Ecomonic and Social Future of Quebec)' 가 열렸다. 이 자리엔 정부 뿐 아니라 협동조합, 노동조합,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 퀘벡의 정치·사회·경제 주체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연석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낸시 닌탐씨는 그해 10월 '자, 연대로 나아가자'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주 정부에 제출했다. 연석회의는 퀘벡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의부터, 각종 사업 프로젝트등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보육과 주거, 환경, 문화 등에서 각종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설립 등을 적극 지원했다.

샹티에의 실험을 통해 이후 10여 년 동안 탁아 서비스를 통해 2만5000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1만호가 새롭게 지어졌다. 쓰레기 재활용 등을 위한 사회적 기업 수십여 개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의 취업도 이뤄졌다. 각종 문화사업을 위한 협동조합 등도 생겨나면서, 일자리 역시 크게 늘었다. 단순한 연대조직에서 출발한 샹티에는 한시적인 사회연대회의 기구였다가, 이제는 정부 내 상설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태인 원장은 "캐나다 사회 경제의 특징은 협동조합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조직들의 네트워크가 잘 돼 있다는 점"이라며 "샹티에의 실험을 통해 사회적 경제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실험은 캐나다 연방정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2004년 폴 마틴 당시 총리 역시 사회적 경제를 핵심 사회정책으로 삼겠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이후 보수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퀘벡에선 사회적 경제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퀘벡 주. 790만 명에 달하는 인구 가운데 프랑스계 사람들이 80%에 달한다.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다. 이들은 스스로 '퀘벡인'이라 불리길 원한다. 영미계 중심의 사회 문화에 반대해온 이들은 1960년대 이후 '조용한 혁명'을 해오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이들에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의 실적은 오히려 크게 향상됐다. 캐나다 최대 금융협동조합기업인 데자르댕 은행은 지난해 자산 규모가 2010년보다 6.3%나 증가했다. 자산이 무려 1900억 달러(218조 원)에 이른다. 장미셸 라베르주 데자르댕 홍보국장은 "작년 말 기준으로 은행 순이익도 15억8200만 달러(1조8170억 원)를 기록했다"면서 "지난 2010년 11억5430만 달러보다 14.1%나 늘어난 수치"라고 말했다(데자르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진다).

퀘벡 농업협동조합 연합체인 라쿠페데레(La Coop federee) 역시 지난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이곳 이사회 의장인 데니스 리차드는 2011년 연차보고서에서 "라쿱 네트워크 등을 포함해 협동조합 기업들이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고 있다"면서 "(협동조합 기업은) 민주적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면서도 고부가가치 경제모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 퀘벡의 실험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취재지원: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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