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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2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근대는 '마을을 버린 사람들'에서 시작해서 '마을을 만드는 사람들'로 끝이 날 것이다."

2008년.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펴낸 칼럼집 <다시, 마을이다>의 한 꼭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조한혜정 교수는 오랫동안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을 제시해왔다. 그는 "인간이라는 생물적 존재의 생존은 기본적으로 소통과 나눔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면서 "미래의 주거는 바로 이런 인간 삶의 기본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근대주의'를 넘어서서 대안적 미래를 만들어 가는 지점에서 사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선언하고, 밀고, 짓는 토건 국가'가 아닌, '소통하면서 서로를 살리는 마을을 만드는 돌봄 사회'로 전향적 선회를 해야 한다는 것이 조한 교수의 주장이다. 

2012년 현재. '마을만들기 모범사례'로 평가받는 전라북도 진안군을 비롯해 광주, 부산, 대구, 수원, 성남, 안산 등에서 마을만들기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마을만들기 지원조례가 제정된 자치단체는 전국적으로 30개가 넘는다. 지난 6월 창원에서는 사흘간 '마을 만들기 전국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다. 전국의 마을만들기 활동가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공부 모임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토건 도시'였던 서울에서도 지난해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3월 지원조례가 제정되었고, 서울시와 주민 사이에서 '중간 지원 조직' 역할을 해줄 '서울시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가 9월 중으로 문을 연다. 

'개발시대' 반성에서 시작 된 90년대 중반 '마을만들기' 운동   

이처럼 '마을만들기'가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마을'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1999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펴낸 '마을단위 도시계획 실현 기본방향(1) 주민참여형 마을만들기 사례연구(정석 외)'에서는 '마을'을 단순히 물리적 범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마을 사람들' 또는 '마을 공동체'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정의한다.

"'마을'이란 단어가 뜻하는 것은 여러 가지다. 첫째는 우리들의 일상생활 환경을 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지를 비롯해 일터와 쉼터, 또는 자주 들르는 장소나 오고가는 거리를 모두 포함한다. '마을'이란 말에는 물리적 측면의 '생활환경' 이외에 또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생활환경을 공유하는 '마을사람들(주민, 시민, 이용자)'과 이들이 이루고 만들어내는 '마을 공동체'와 '마을 문화'와 같은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마을만들기'는 마을삶터를 주민들 스스로 나서서 가꾸어 가는 '삶터 가꾸기', 공유공간에서 벌어지는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개선하며,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단절된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공동체 이루기', 개인공간에만 집착하던 개인들이 진정한 주민으로, 민주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 만들기'를 의미한다.

정석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정석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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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마을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정석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서울시 마을공동체 위원회 부위원장)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80년대까지는 개발 시대였다. 87년 민주화 이후, 90년대 초는 개발시대의 정점이다. 부동산 값 올라서 신도시 만들고 재개발 하고. 교통사고도 최고 기록하고. 그렇게 90년대 초를 겪으면서 전국단위로 민주화 운동 하던 사람들이 지역으로 넘어간다. '개발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지역 생활 운동을 한 거다. 성수대교 무너지고, 삼풍백화점 무너지고, IMF 겪으면서 '우리가 겉으로는 성장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많이 썩어있었구나' 반성을 하게 된 시기가 90년대 중후반이다."

초기 마을만들기는 시민단체 주도로 진행되었다. 김은희 걷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 사무처장은 '마을만들기는 운동이다'(<우리, 마을만들기>)라는 글에서 1993년 도시연대의 안전한 통학로 만들기, 1996년 인사동 거리 활성화, 1996년 부평 상인들에 의한 부평 문화의 거리 만들기, 1996년 부산 희망세상의 지역공동체 반송마을 만들기, 1997년 대구 YMCA의 삼덕동 골목가꾸기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박원순표 '마을', 하드웨어보다 관계망에 방점

서울에서 '관 개입'의 마을만들기가 처음으로 시도된 것은 고건 서울시장 시절인 2001년 '북촌가꾸기 기본계획'. 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북촌 한옥마을을 보존하는 사업이었다.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인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강동구 서원마을, 성북구 선유골, 강북구 능안골, 강서구 내촌마을 등 100호 미만의 단독주택지 네 곳에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지구단위 계획'이 추진됐다. '서울 휴먼타운'이다.

이전의 '마을만들기'와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석 교수는 "이전에는 마을만들기가 주거환경개선이나 하드웨어사업에 치중했다면, 박원순 시장의 마을공동체 사업은 교육, 복지, 일자리, 문화 문제 등을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7월 서초동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큰 관계망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이 단절돼서 혼자 살다보니 너무나 외로워서 자살을 하고 죽어간다"면서 "마을 속에서는 생존경쟁에 치여 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내려놓고 이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다"며 마을을 '힐링캠프'에 비유했다. 마을의 '하드웨어' 보다는 '관계망'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서울시가 '마을만들기'가 아닌 '마을공동체 만들기'로 사업명을 정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정석 교수의 설명이다. 

유창복 사단법인 마을 대표
 유창복 사단법인 마을 대표
ⓒ 유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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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동안 성미산에서 '마을살이'를 하고 있는 유창복 사단법인 마을 대표는 '왜 지금 마을인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공동체의 하나로 가족이 있었다. IMF 때 대한민국의 가족문화가 없었다면 한국이 망했을 거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가족이 피해를 다 흡수했다. 그러면서 가족이 거덜 났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버거운 일이 됐다. 결혼을 해도 애 낳는 게 엄두가 안 난다. 살다가 3분의 1이 이혼을 하게 된다. 가족이 최후의 보루가 아니게 됐다. 가족도 이제 안 되고, 그럼 뭐냐. 없는 사람은 살기 어려워지고, 자살하고, 은둔하고. 젊은이들은 우울증에 빠지고. 그런 점에서 마을과 공동체에 대한 매력과 두려움을 갖게 됐다."

유 대표가 말을 이어갔다.

"매력이 뭐냐. 누구도 돌보지 않고, 내던져진 개인의 삶을 사회적으로 보듬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에 대한 바람이 있다. 함께,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관계망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 반면, 함께 산다고 하면 부담이 있다. 의무나 규율이 있을 것 같다. 주말에 혼자 자고 싶은데 전화하는 간섭, 노출, 불편함 등 사생활 침해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마을을 이야기하는 것은, 개인주의적인 삶의 욕구가 매우 강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딜레마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주민주도' 마을만들기 최대의 적은?

'박원순표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이전의 '마을만들기'와 또 다른 점은 주민주도를 목표로한다는 점이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담당관 관계자는 "초반에 어렵더라도 주민들에게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필요성을 알리고 주민주도로 간다는 것이 굵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즉,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이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시는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마을 부모커뮤니티, 마을 뒷산, 노인마을공동체 활성화 등 다양한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모사업으로 선정되면, 서울시의 지원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주민 3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정석 교수는 "이전의 공모사업이 1년 단위로 (지원 대상을) 뽑아서 돈 주고 정산하는 '배급식'이었다면, 서울시 마을만들기 지원프로그램은 시한 없이 언제든지 우리 마을에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센터에 제안서를 내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뷔페식'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무원이 개입하는 마을만들기'에 대한 우려는 존재한다. 유창복 대표는 "관은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기 때문에 공무원의 눈으로 보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주원 대표 역시 "마을만들기는 주민들과 전문가에게 맡기고, 공무원은 서포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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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교수(서울시 마을공동체 위원회 위원장)는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핵심을 '주민의식'이라고 보았다. 조한 교수는 "전 시장이 시민을 고객님으로 대하면서 복지의 대상이나 소비자로서 바라봤다면, 이제는 주민이 (마을을) 스스로 고치고, 꾸미고 자기공간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이 마을만들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이러한 '주민의식'을 갖고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6년 간 마포구 성미산에서 '마을살이'를 해온 유창복 사단법인 마을 대표는 "성미산 마을만들기를 '중산층 운동'이라고 하던데, 거꾸로 이야기하면 사회적 자본이 있으니 가능했던 것"이라면서 "저소득층, 취약계층은 협동의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잦은 주거 이동 역시 마을만들기를 어렵게 한다. 이주원 ㈜두꺼비 하우징 대표는 "서울은 연 이주율이 20%에 육박한다, 100명사는 마을이면 5년 안에 주민이 다 바뀐다"면서 "교육환경적인 요소도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부동산 투기"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인 ㈜두꺼비 하우징은 은평구 산새마을에서 마을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산새마을 지정할 때 제일 고려했던 것이 자가거주 비율이었다. 온수동 같은 데도 마을만들기에 세입자는 참여하지 않는다. 성미산은 마을 잘 만들어놨더니 전세값 올라서 이사 가는 활동가들 많다. 이처럼 주택문화적인 위험요소가 상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을 가꾸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 전세금 올려달라고 하고, 개발한다고 철거해버리고. 마을만들기 최대의 적이다."

마을공동체 만들기, 이미 시작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5월 8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마을공동체 시민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5월 8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마을공동체 시민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서울시 언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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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도 "역사의 큰 물줄기가 이미 바뀌고 있다"는 박원순 시장의 말처럼, 마을공동체의 '씨앗'은 이미 곳곳에 뿌려져 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밴드를 만들고 장터를 열고 축제도 벌인다. '마을공동체'의 형태는 가지각색이다.

유창복 대표는 "공동체에 대해 상상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유 대표는 "보통 마을이라고 하면 농촌공동체 형태의 마을을 떠올리는데, 생활의 결핍을 함께 하소연하고 해결책을 궁리하고 그 궁리가 그럴 듯 하면 시도를 해보며 생활의 필요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웃 간의 관계망이 마을"이라면서 "세 사람이 마을일 수도 있고, 30명이 마을일 수도 있고, 성미산처럼 생협(생활협동조합) 5000여 가구가 마을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공동체라는 '씨앗'이 '콘크리트 섬' 서울에서 '새싹'을 띄우고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마을 전문가들은 '마을이 대안'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했다. 강릉에서 10년간 마을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는 권상동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협동사무국장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자. 

"1000개의 마을에서 마을만들기가 진행되고 있으면, 사례도 1000개, 문제점도 1000개, 해결방안도 1000개다. 천천히 오랫동안 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중간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수히 많은 좌절들, 실패들을 할 거다. 마을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그게 실패냐? 아니다. 그것을 통해서 주민들이 움직이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마을이 만병통치약이다? 큰 그림과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림으로 나타나는 데는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태그:#마을, #마을공동체, #마을만들기, #마을공동체 만들기,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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