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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판사' 서기호입니다> - '가카빅엿' 양심판사, 사법개혁의 꿈을 안고 소통하다
 <'국민 판사' 서기호입니다> - '가카빅엿' 양심판사, 사법개혁의 꿈을 안고 소통하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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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그러니까 백수와는 종이 한 장 차이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나마 가장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이 직종의 장점이 하나 있다. 출퇴근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남들이 한창 일하는 비수기에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비수기 여행의 장점은 무엇일까? 휴가철인 성수기에 비해 숙박비 등의 요금이 대폭 저렴하다는 데에 있다. 호주머니가 후줄근한 인문사회 분야 저자에게는 그나마 가족에게 내세울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점인데, 철저한 비수기인 작년 5월 2일 '월요일'에 TV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촬영장이었던 포천의 A호텔로 가족을 모셨다.

조식을 포함하고서도 10만 원이 살짝 넘는 완전 착한 가격. 우리 가족은 5층 짜리 76개의 방에 멋진 유럽식 정원을 보유한 A호텔을 그야말로 전세 냈다. 5월의 첫 월요일에 A호텔에 묵는 손님은 우리뿐이었으니까.

그러다보니 반대로 남들이 '피서(避暑)'라는 명목으로 한창 국내외 이곳 저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7월 말 8월 초에 우리 가족은 에어컨이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작은 방에 틀어박혀 '피서'를 한다. 폭이 대략 80cm 정도에 세로 길이가 20cm를 조금 넘어 보이는, 지인에게 얻은(물론 공짜로) 이 벽걸이 에어컨은 폭염주의보라도 내리는 날이면 미지근한 바람을 쉴 새 없이 뿜어댄다.

<국민판사 서기호입니다> 읽으며 에어컨 피서

어느 소설 속의 주인공이 그랬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사람을 죽였다고. 카뮈가 쓴 <이방인>이라는 소설이라는데, 좀 창피하지만 아직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 마음을 대충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 <국민판사 서기호입니다>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이 책을 읽느냐고? '에어컨 바람이 너무 미지근해서'.

에어컨 돌아가는 '피서' 공간에서 읽은 <국민판사 서기호입니다>는 2011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서기호 판사와 김용국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직접 만나거나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이뤄진 긴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서기호라는 한 평범한 청년이 판사의 길로 들어선 뒤, 법원을 바꾸려고 노력하다가 '가카빅엿'을 날린 덕분에 재임용에 탈락해 법복을 벗고 법원을 나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개인적으로 서기호 판사의 학창시절 얘기 중 다음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1991년에 통일운동이 한창이었잖아요. 8.15 행사로 범민족대회를 준비하면서 가톨릭 쪽에서도 뭔가 해보자고 뜻을 모았어요. 당시 경희대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경찰이 불허하면서 원천봉쇄가 됐죠. 저는 집행부였으니까 유인물을 만들어서 친구 한 명과 미리 들어가 있기로 했는데, 아무리 봐도 들어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려는데 정문 앞에서 검문을 하더라고요.

그 순간 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유인물도 잔뜩 가지고 있었으니 더럭 겁이 났죠. 지금 생각해보면 좀 바보 같은데, 우왕좌왕하다가 어느새 검문할 차례가 되어버린 거예요. 택시를 세운 뒤에 그대로 수색했는데 우리는 학생 같아 보이니까 무조건 내리라고 하더군요. 유인물도 있었으니 제대로 걸린 거죠."

이 일 덕분에 서기호 판사는 학창시절 '콩밥'을 먹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좋은 사람이구나! 한창 군사독재와 그 잔재가 서슬 퍼렇게 살아남아 사회가 막장으로 돌아가던 그 시기, 몸부림치는 절규와 외침에 귀를 닫고 고시원에 처박혀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고시준비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설사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오더라도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겪을 수 있는 그런 삶을 경험했던 것이다.

 서기호 판사가 판사임기 마지막날인 17일 낮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정문에서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회원들이 주최한 '국민법관 재임용장 및 국민법복 수여식'에서 '국민법복'을 입고 있다.
 서기호 판사가 판사임기 마지막날인 2월 17일 낮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정문에서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회원들이 주최한 '국민법관 재임용장 및 국민법복 수여식'에서 '국민법복'을 입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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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삶의 궤적이란 그래서 중요한가보다. 2009년 5월 판사회의를 주도하며 촛불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의 인적 책임을 요구한 것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가카 빅엿'이라는 표현을 인용하며 방통위의 SNS 심의규제 방침의 부당함을 지적한 것도, <조선일보> 보도로 인해 '가카 빅엿' 표현이 판사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일자 "판사도 사람이다. 사적 영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발언한 것도 모두 원칙과 상식, 양심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의 삶의 궤적...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 평범한 판사의 양심과 정의는 짓밟혔고, 평생 법관을 꿈꿨던 서기호는 '튀는 판사', 근무 평정이 불량한 '낙제 판사'가 되어 법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소위 엘리트들에게서 찾기 힘든 드문 '격'을 갖춘 한 판사의 삶, 세계관, 인생관, 직업의식을 담고 있다. 인터뷰 형식의 책이 갖는 장점인 생동감과 친근감이 잘 살아 있어서 딱딱한 법조계의 얘기인데도 읽는 맛이 있다.

책에 나오는 사진 한 장이 인상적이다. 서기호 판사가 시쳇말로 법원에서 잘린 날인데, 시민들이 모여서 그에게 '법法'자 대신 '정正'자가 새겨진 국민법복을 입혀준 사진이다. 법조인이 이렇게 멋있어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필자에게 처음 깨닫게 해줬다.

최근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안철수 씨의 책이 화제다. 아마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휴가철을 일부러 겨냥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발간 시점이 절묘하다. 책이 나오자마자 SBS <힐링캠프>에 나와 공공재인 전파를 타고 온 국민의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나는 그 엄혹한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했던 안철수씨보다는 콩밥을 먹었던 서기호씨가 더 좋다. 쩝! 나는 어쩔 수 없는 삐딱이인가보다. 여전히 폭염 덕에 에어컨 바람은 미지근하지만 <국민판사 서기호입니다> 덕에 마음의 울화 온도는 2도 정도 내려간 것 같다.

피서, 이 정도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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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국가의 거짓말>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