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개의 문> 공식 포스터

▲ 영화 <두 개의 문> 공식 포스터 ⓒ 연분홍치마


박원순, 진중권, 변영주 다음은 정혜신이었다.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뭘까? 6월 21일 개봉한 <두 개의 문> GV(Guest Visit)시사회에 참석한 명사들의 이름이다. 14일에는 정혜신 심리학 박사가 종로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린 GV시사회에 참석했다.

객석은 만석이었다. 영화계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관객 1만 명만 넘어도 '대박'이라고 한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은 이제 관객 4만 명 달성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이제 예매 없이 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흥행에 성공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울지마 톤즈> 등은 대부분 따뜻한 이야기다. 그와 정반대로 이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의 마음을 괴롭힌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두 개의 문>을 보러 올까?

정혜신 심리학 박사가 <두 개의 문> GV(Guest Visit)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정 박사는 "(이 영화를 보면) 이전에 갖고 있던 세상에 대한 믿음,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깨집니다"라고 말하며 영화관람의 소감을 밝혔다.

▲ 정혜신 심리학 박사가 <두 개의 문> GV(Guest Visit)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정 박사는 "(이 영화를 보면) 이전에 갖고 있던 세상에 대한 믿음,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깨집니다"라고 말하며 영화관람의 소감을 밝혔다. ⓒ 이규정


정혜신 박사는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 영화를 본다"며 말을 시작했다. 이어서 그는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2차 트라우마에 빠져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크고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고,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는 "(이 영화를 보면) 이전에 갖고 있던 세상에 대한 믿음,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깨집니다"라고 했다.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1명의 경찰관과 5명의 농성자들이 화염에 휩싸여 죽었기 때문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져도 우리는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는 "정신의학에서 노이로제는 '정당한 고통을 회피한 대가'라고 정의한다"며 "그렇게 (고통을 외면하고) 살다보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나중에 따른다"고 "현재의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왜 희망을 말하지 않느냐고요? 현실을 정리하는 게 먼저

홍지유 감독이 <두 개의 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홍 감독은 “어쩌면 희망이 없는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거짓 같다”고 말했다.

▲ 홍지유 감독이 <두 개의 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홍 감독은 “어쩌면 희망이 없는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거짓 같다”고 말했다. ⓒ 이규정

홍지유 감독은 "(영화가) 너무 잔인하고 희망 있는 메시지가 없다고 (관객들이) 말씀하신다"며 말을 이었다. 그는 "어쩌면 희망이 없는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거짓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용산참사'를 재구성해서 '그날의 진실'을 추적할 뿐 그 고통을 해소할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용산참사 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는 '약자'라고 인정받았어요. 그러나 재판에서는 그게 너무나 쉽게 뒤집혔죠. 그분들(생존한 농성자 5명)은 살인죄로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는 감옥이라고 말하면서 잠시 말을 멈추고 감정을 추슬렀다. 감독은 '사회적 피해자'가 '살인죄'로 옥고를 치르는 현실 앞에서 희망을 말하기 쉽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그런데 농성자, 경찰특공대들이 동일한 피해자가 되는 게 어느 지점에서 부적절한지, 그 이상은 무엇인지가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희망을 말하기 이전에 현실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는 "같은 피해자로 쉽게 그들에게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너희들 서로 뺨 때려라'... 지금 국가가 그러고 있다"

왼쪽부터 김일란 감독, 정헤신 박사, 홍지유 감독, 사회자, 김일란 감독이 관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왼쪽부터 김일란 감독, 정헤신 박사, 홍지유 감독, 사회자, 김일란 감독이 관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이규정


정 박사는 홍 감독의 고민을 좀 더 구체적으로 끌고 갔다. 정 박사는 "농성자와 부대원들이 싸울 게 아니죠"라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검사는 한 부대원에게 고 김남훈 경사의 죽음의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의견을 물어본다. 그 부대원은 "농성자들에게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정 박사는 그가 화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법원도 발화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게다가 검찰은 보호자 허락 없이 시신을 부검했다. 그들은 검찰수사기록 3000쪽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경찰 수뇌부가 농성자들이 있는 망루에 다량의 시너가 있는 걸 알고도 무리하게 진압을 명령했음이 명백히 밝혀졌다. 정 박사는 말을 이었다.

"농성자와 말단 대원들이 서로 적개심을 갖는 구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가장 악질적인 교사는 너희 서로 뺨 때리라고 하는 교사에요.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아요. 지금 국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러고 있는 것이지요."

철거된 남일당 건물 자리에서 촛불과 국화꽃으로 희생자들을 추모중인 사람들 시민들이 남일당 건물 자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철거된 남일당 건물 자리에서 촛불과 국화꽃으로 희생자들을 추모중인 사람들 시민들이 남일당 건물 자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두 개의 문> 공식 블로그


뒤늦게 GV시사회에 참석한 김일란 감독은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법정에 서고 용산참사의 진실이 법정에서 밝혀지도록 압박을 해보고 싶다"며 "오는 20일 용산참사의 현장 '남일당' 자리에서 촛불문화제를 열 예정"이라고 했다. 용산참사 이후 남일당은 철거되어 빈 터만 남았다.

GV시사회를 마무리하며 정 박사는 집단 치유를 말했다. 그는 "집단치유는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느끼는 데서 시작한다"며 "마음껏 흔들리시고, 마음껏 슬프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홍 감독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거짓 같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딱 '치유'까지를 말했다. 누구도 희망이란 말을 자신 있게 하지는 못했다. 이들에 따르면 아직은 분노하며 '현실'을 알고 서로를 다독이며 '치유'할 때다. 그러다보면 희망의 차례가 오지 않을까?

두 개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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