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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 성군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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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토방위는 북방이다. 압록강 너머에는 명나라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으름장을 놓고 두만강 건너에는 여진족이 노략질을 일삼고 있다.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는 깜도 안 된다. 더구나 세종 1년, 엄격히 말하면 태종 말. 이종무 장군에게 함선 2백여 척을 주어 대마도를 정벌케 한 후, 왜구는 바짝 엎드려 있다. 조선의 국방력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끼고 있는 양계에 집중돼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세종은 '함길도와 평안도 양계(兩界) 갑사(甲士)에게 다른 사역(役)을 시키지 말라'고 병조에 지시했다. 북방에 조선군 최정예부대를 투입했고 최고 대우했다는 반증이다. 갑사는 무반 관료이자 조선군의 중추 군사력이다. 1만4천8백여 명으로 구성된 갑사는 왕성을 시위하는 경갑사(京甲士)와 4군과 6진에 포진한 양계갑사로 편성된 정예 부대다.

김종서를 앞세워 6진을 평정한 세종은 종성, 온성, 경원을 휘감아 돌아드는 두만강변에 병력을 전진 배치했다. 보유병력이 많지 않는 상황에서 치고 빠지는 여진족을 상대로 정예군을 상주시킨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거기에 세종의 탁월한 전략이 숨어 있다. '넘보지 말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전략은 주효했고 여진족의 침범은 잦아들었다. 조선군이 주둔한 곳이 그대로 경계로 굳었으며 오늘날의 국경이 된 것이다.

두만강 삼각요충지대. 위쪽이 온성, 아래 왼쪽이 종성 오른쪽이 경원이다
▲ 함길도 두만강 삼각요충지대. 위쪽이 온성, 아래 왼쪽이 종성 오른쪽이 경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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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길주에 병마도절제사를 설치했다. 감영이 있는 곳에 군영을 설치하는 다른 도에 비해 이례적인 조치다. 종성, 온성, 경원으로 이어지는 삼각지대를 전략요충으로 평가했고 집중 관리했다. 그 중심에 길주가 있다. 길주는 최전방을 관할하는 전선 사령부였고 절제사는 사령관이었다.

조정은 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익속군(翼屬軍) 4천4백72명, 선군(船軍) 9백69명, 수성군(守城軍) 5백16명. 도합 6천여 명의 군사를 주었다. 이는 갑사병력의 절반에 가까운 대규모 병력이다. 30여 명의 장사를 동원하여 정권을 탈취한 수양은 김종서 입김이 작용하는 함길도 군사가 두려웠다. 서둘러 절제사 이징옥을 해임하고 자신의 심복 박호문을 파견한 배경이다.

길주를 장악한 이징옥이 훈련청 누대에 올라 칼을 빼어들었다.

"수양대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세종대왕의 유명을 무시하고 원로대신들을 죽였다. 수양은 대군이 아니라 인간 백정이다. 존경하는 성군 세종대왕 전하께 누가 될까봐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지만 이런 돼먹지 않은 놈이 전하의 아들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이런 호래말종 같은 놈이 전하의 아들이라는 것이 통탄스럽다."

"옳소!"
"지당하신 말씀이오."

여기저기에서 함성이 튀어 나왔다.

"수양대군은 이제부터 세종대왕의 아들 대군이 아니라 반란의 수괴다.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종사가 위태로울 것이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조카의 왕위를 빼앗을 것이다. 이대로 좌시할 수 없다."

"그놈은 왕위를 빼앗는 것도 부족하여 조카를 죽일 것이오."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던가? 백성들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도성에서는 감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옛 성현의 말씀에 인을 해치는 자는 적(賊)이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했다. 수양 그 놈은 인(仁)과 의(義) 모두를 해쳤다. 수양 그놈은 역적이다. 나는 지금 이 시간, 수양을 잡아 죽이기 위하여 한성으로 쳐들어 갈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명령이다. 살기를 원하는 자는 나를 따르고 수양의 개가 되려는 자는 여기 남거라."

"우 우!"

"와 와!!"

함성이 진동했다. 이징옥이 앞장서 영문을 빠져 나갔다. 3백여 명의 군사들도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동요하는 변방의 군정을 안정시키라는 특명을 받고 밀파된 이행검도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연병장에 홀로 남았을 때 흥분한 군중들로부터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위가 종성 아래가 길주다
▲ 함길도 위가 종성 아래가 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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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 읍성을 빠져나와 장고개(場古介)에서 휴식을 취했다. 불어오는 솔바람에 땀을 식힌 부관 박문헌이 이징옥에게 다가갔다.

"장군!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찾아야 합니다. 3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군사를 더 모아야 합니다. 북방으로 갑시다. 종성에서 군사를 더 모은 다음 계획을 세워 한성으로 쳐들어갑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절제사 휘하에 6천여 명의 군사가 있지만 사령부에 해당하는 길주에는 3백여 명뿐, 나머지는 종성, 온성, 경원에 포진해 있다.

"좋다. 종성으로 간다."

발길을 돌린 이징옥 일행이 종성으로 향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함길도 관찰사 성봉조가 급히 장계를 올렸다.

"전 절제사 이징옥이 새 절제사 박호문을 죽이고 한성으로 향하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종성으로 가고 있습니다. 신은 경성(鏡城) 이남 여러 고을과 6진에 경계를 단단히 하라 이르고 회령부사 남우량으로 하여금 정병 3백 명을 이끌고 나가 이징옥을 잡아라 했습니다. 또한 고산도 찰방 여종경과 길주목사 조완벽에게 종성의 군사를 거느리고 용성평에 주둔하게 하였습니다."

당시 중죄인은 손발이 묶이거나 족쇄를 차고 있었다. 사진은 옛모습을 재현한 낙안읍성 옥이다
▲ 옥 당시 중죄인은 손발이 묶이거나 족쇄를 차고 있었다. 사진은 옛모습을 재현한 낙안읍성 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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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를 받은 수양은 이징옥의 형 이징석과 그의 아들 이팔동을 의금부에 하옥하라 명했다. 연좌로 엮어 처형하기 위한 수순이다.

"수양이 나와 아들을 참에 처하는 것은 물론 삼족을 멸할 터인데 이 일을 어찌하나."

금옥(禁獄)에 갇힌 이징석이 하늘을 보고 탄식했다. 거사 전, 명례궁까지 찾아가 추파를 던졌는데 그도 약발이 떨어졌나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이징옥. 한 때는 자랑스러운 동생이었다. 무예가 출중한 세 아들을 낳아준 아버지 전생(全生)이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헌데 이제는 동생이 밉고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한탄해본들 소용이 없다.

"안돼, 안돼! 탐관오리라는 악명을 들으며 모은 재산이 아까워서라도 난 죽을 수 없어."

6진을 개척한 김종서 장군 휘하에 이징옥이 있다면 4군을 개척한 최윤덕 장군 아래에는 이징석이 있었다. 최윤덕은 압록강 유역을 평정한 공으로 무신으로서는 드물게 우의정과 좌의정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 때 최윤덕이 조정의 법도를 깰 수 없다며 정승 감투를 사양했다. 하지만 세종은 '공(功)에 문무가 따로 없다'며 최윤덕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징석은 최윤덕의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 3천1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파저강에 침입한 야인을 평정한 공으로 중추원사에 올랐다. 수직 상승이다. 욕심이 많은 그는 좌군동지총제, 우도병마도절제사, 중군동지총제, 경상도병마도절제사, 좌군총제 등 군 요직을 거치는 동안 재물에 탐닉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몰락은 모면했다. 하지만 이제 죽음의 문턱에 와있는 것이다.

"살려만 주면 결초보은하겠다. 죽이지만 않는다면 신명을 다 바쳐 충성하겠다."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 다짐해 보지만 전할 방업이 없다. 옥사장 송맹금이 예전 중군 동지총제할 때 데리고 있던 수하였지만 역적 혐의로 엮이게 되니까 본 척도 안한다. 안면 몰수다. 올라가면 끌어내리고 엎어지면 밟아 버리는 게 세상사. 인간이 원망스러웠지만 세상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차가운 금옥에서 가슴을 쥐어뜯었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보내지? 밀지를 내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보낸다?"

오직 믿는 건 한명회뿐, 허나, 일개 참모에 불과한 그가 화살 맞은 호랑이처럼 날뛰는 수양 앞에 얼마나 말 빨이 먹혀들어갈지 의아스럽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 방법은 그거야."

방법은 하나, 옥졸을 매수하는 수밖에 없다. 몸에 지니고 있던 금붙이를 두둑이 내놓았다. 눈이 뒤집힌 옥졸이 남이 볼세라 얼른 금붙이를 궤춤에 집어넣었다. 이징석이 밀지를 옥 밖으로 내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늘이 무너저도 솟아날 구멍이 있을까?

이징석을 하옥한 수양은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좌찬성 이사철, 좌참찬 이계린, 병조판서 이계전, 참판 박중손, 도승지 최항, 우승지 신숙주를 대군청으로 불렀다. 한명회는 당연 참석이다. 숙의를 마친 수양이 함길도 관찰사 성봉조에게 임금의 명으로 하교했다.

"계본(啓本)을 보니 경의 조치가 타당하다. 이징옥은 역적 김종서의 당으로 엄정하게 처치해야 마땅하나 여러 조(朝)를 섬긴 노신(老臣)인 것을 어여삐 여겨 목숨을 보존하여 원방에 유배하려 했는데 명령을 거역하고 신임 장수를 해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다. 경은 역적을 잡아 죽이라. 만일 역적에 부동(符同)하여 명령을 거역하면 이징옥과 죄가 같은 것이니 내가 반드시 용서하지 않겠다."

줄서기를 확실히 하고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엄중 경고다.

병조에 '박호문의 아들 박철손에게 역마를 주어 급히 길주로 내려 보내라' 명한 수양은 강원도와 함길도, 경기도의 경흥대로 각 역(驛)에 상등마를 상시 세워 두고 전령이 지체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 지시했다. 이어 평안도 관찰사 기건에게 유시했다.

"이징옥이 신임 도절제사 박호문을 살해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함길도에 유시하여 잡아 죽이게 하였으나 평안도는 함길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어 염려된다. 경이 이 뜻을 잘 알아서 조치하라. 양덕과 맹산에 방비를 철저히 하여 이징옥이 경내로 들어오면 곧 잡아 죽여라."


태그:#이징옥, #이징석, #종성, #수양대군, #함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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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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