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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채 KT 회장이 29일 오전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협력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이 29일 오전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협력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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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또 다시 '소프트웨어 능력 부재'를 실감했다. 삼성전자는 28일(미국 현지시각)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갖고 있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관련 특허에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했다. 특허 공유(크로스 라이선스)와 MS 윈도폰 개발 관련 협력이라는 형식은 갖췄지만 그간 애플과 특허 소송을 벌여온 삼성 처지에선 사실상 MS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다.

다른 한편에서 삼성전자는 인텔, 리눅스재단과 함께 개방형 모바일 플랫폼인 '티젠(Tizen)' 개발에 나섰다. 이미 독자 플랫폼인 '바다'가 있음에도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한 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삼성의 또 다른 몸부림이다.

"스티브 잡스도 한국선 월 1200만 원 특급 기술자"

한국이 낳은 글로벌 기업이 이렇듯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열세를 보이는 것은 이렇다할 패키지 소프트웨어 없이 SI(시스템 통합) 용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마침 이석채 KT 회장이 이런 국내 현실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KT는 29일 오전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국내 소프트웨어 생태계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분야에선 세계적 IT 강국이면서 유독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겼다.

송정희 KT 서비스이노베이션(SI)부문 부사장은 "대한민국에서 스티브 잡스(전 애플 CEO)도 월 1200만 원짜리 특급 기술자"라면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인력 공급형 용역' 중심의 SI 사업 비중이 80%가 넘는 현실을 꼬집었다.

소프트웨어 용역 개발 방식의 문제점은 크게 2가지다. 우선 소프트웨어 원가 계산을 상품 가치가 아닌 개발 인력 인건비를 중심으로 '품셈' 계산하다보니 스티브 잡스 같은 세계적인 IT 전문가라도 정해진 단가표 내에서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월 1200만 원'이 이 단가표에 따른 개발자 최대 수입인 셈이다.  

한국 SW 업체는 인력 용역회사... 패키지는 온통 외국산

또한 발주 업체가 원하는 틀에 맞춰 개발(커스터마이징)한 소프트웨어다보니 다른 기업에겐 전혀 상품성이 없다. 또 소프트웨어 소유권까지 발주업체에 돌아가기 때문에 개발업체에선 이를 상품화할 엄두도 못 낸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아이크로스테크놀로지 대표 출신인 이현규 KT SI부문 통합플랫폼개발본부장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85% 이상이 SI 중심으로 돌아가 표준화 아닌 용역 형태로 개발해 발주업체가 소유권까지 갖는 형태였다"면서 "패키지 80~90%는 외국산이고 대체 가능한 솔루션을 가진 업체들은 우리처럼 명멸해 갔다"고 토로했다.

이에 KT는 앞으로 소프트웨어를 인건비 기준이 아닌 가치로 평가해 패키지 형태로 구매하고 상품화도 돕기로 했다. 아울러 초보 단계 기술이라도 가치 있는 기업은 직접 M&A(인수합병)해 청년들의 창업 의지를 키우고 해외 진출에도 도움을 주기로 했다.

KT IT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BIT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송 부사장은 "용역을 주다 보면 우리에게 맞춰서 해달라고 해 다른 회사도 쓰기 힘든데 우리도 쓰지만 공생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면서 "우리도 미니 오라클, 미니 MS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석채 KT 회장(가운데)이 29일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 활성화 전략 발표 현장에서 SW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가운데)이 29일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 활성화 전략 발표 현장에서 SW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 K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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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채 "품셈 방식 없애려 공정성 시비 감수"

사실 이처럼 왜곡된 소프트웨어 산업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더구나 용역 발주를 주도해온 KT 같은 대기업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프트웨어 가치를 평가할 만한 객관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선 자칫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석채 회장은 "기업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도 않고 원가를 최대한 줄이는 게 품셈 방식"이라면서 "KT가 공정성이란 눈에 안 보이는 사슬을 끊겠다"고 밝혔다.

KT 협력업체인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역시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면 품셈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어 지난 7년간 그 틀을 벗어난 적이 없다"면서 "좀 더 가치적이고 창조적인 일에 직원들의 열정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KT는 내년 전체 소프트웨어 구매 예산 3~4천 억 원 가운데 10% 수준인 300~500억 원 규모로 소프트웨어 가치 구매를 시작해 2015년에는 3000억 원 규모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KT 같은 한두 회사나 정부의 노력 만으로 뿌리깊은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관행을 뒤바꾸는 건 역부족이다.

이에 이 회장은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구매 관행이나 생각, 투자 방향 변화 없이 소프트웨어 산업 활성화는 구호만 있을 뿐"이라면서 "우린 규모가 작지만 다른 기업들도 공감해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태그:#KT, #이석채, #소프트웨어,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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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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