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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교회'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최근 대형교회 목사들을 주축으로 하는 '기독자유민주당' 창당설이 터져 나오면서, 다시금 교회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명 목사들의 막말, 폭언도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는 교회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기획 '교회 사용설명서'에서 교회 매매와 교회 건축, 막말 목사를 3회에 걸쳐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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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2009년 1월에 발표한 '2008 한국의 종교현황'에 의하면 한국의 개신교 교회 수는 5만8612개다. 이것은 '2002년도 종교현황' 조사의 교회 수 6만785개와 비교하면 2173개(약 4%)가 감소하였다.

한편 각 교단의 교회 수 통계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연간 1000개 가량의 교회가 새로 생겨난다. 그렇게 본다면 2002년에서 2008년까지 6000개의 교회가 새로 생겨났고 문을 닫는 교회의 수는 8000개가 넘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것을 연 평균으로 잡으면 매년 1300여 개가 문을 닫은 셈이고, 이는 하루에 3~4개의 교회가 폐업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들어 교회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폐업하는 교회의 절대다수가 미자립의 작은 교회임을 감안하면, 교회 폐업 현상이 2008년 이후 완화되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매년 1300여 개의 교회가 폐업하게 된다는 추산은 최근 더 심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교회 하나가 새로 문을 열고, 또 문을 닫게 되는 현상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해보자. 각 교단별로 고도성장을 하던 1980년대에 신학생 수는 급증했다. 수요가 그만큼 많으니 공급을 늘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순서가 거꾸로 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교파 간 분열이 극심해지고, 그로 인한 적대감과 경쟁심이 극렬화되면서 교단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 수단의 하나는 교역자 후보생, 즉 신학생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늘어난 수를 감당할 만한 교육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결국 더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신학생들이 대거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이들이 서로 생존을 위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인 결과, 교세가 대폭 신장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교회와 교역자들은 그냥 '실패자'일 뿐이었다. 어느 교파도 실패자를 위한 교단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일부 교단만이 미자립교회가 폐업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원제도를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직을 가지고 있고 교회를 목회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지만, 일할 교회를 찾지 못한 이들(이런 이를 '무임목사'라고 부른다)의 수가 실제 목회를 하고 있는 교역자의 수를 상회하는 실정이다.

그들의 생계를 위한 대책은 어느 교단에도 없다. 일부 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은퇴한 목사를 위한 생계보장제도는 대체로 실패한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1990년대 이후 개신교는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었고, 1995년에서 2005년까지의 변화를 보여주는 '2005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즉 교역자 후보생의 공급은 변함없지만, 그들이 배출되어 일할 자리는 극도로 위축되었다.

'실패한 목회자' 위한 정책 없는 교회... 성장이 유일한 목표가 된 이유

서울과 인근지역의 경우, 교회를 새로 만드는 데는 최소 1억 원 이상의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 정도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는 대개 대학원을 갓 나온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10년 정도 하다 늦게 신학교를 나온 중년의 목회 초년자이거나 다른 교회에서 경력을 쌓은 중견 교역자다. 연령은 대략 30, 40대가 많다. 그들은 예외 없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비혼자가 교회를 전임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교회를 새로 시작한다.

성결교의 국내선교위원회 책임자를 역임했던 김춘백 목사는 교회를 개척해서 3, 4년간 사역한 이가 여전히 미자립상태에 있으면 교회를 폐업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거의 모든 교파의 미자립교회 지원 제도가 전무한 탓에 이런 사정은 거의 모든 교파에서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교역자는 재정자립에 이르기 위해 '올인'한다. 교회 성장이 그의 사역의 유일무이한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김춘백 목사에 의하면, 성결교에서 개척교회의 절반은 자립에 실패하고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은 다른 교파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런 사정이다. 중년의 남자 교역자(일부 교단만이 여성 목사를 허용한다. 그나마 교회의 전임 목회의 대열에서 여성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중 매년 1300명 넘는 수가 실패한 교역자가 된다. 안정된 재정을 위한 교인수 확보 경쟁에서 낙오한 중년의 남자가 이제 교회를 폐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동안 성공만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투여해서 올인했지만 그 대가는 정상적인 실패 처리과정에서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게다가 실패한 경력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나마 교단정치에서 유력한 교역자의 눈에 든 이가 아니라면 다른 수단이 거의 없다. 이때 그이가 할 수 있는 일은 '폐업'이다.

이제 매매의 문제가 남는다. 누군가에게 팔아야 하고, 그리하여 그가 목회를 다시 할 수 있는 자금을 만들어 내거나 혹은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비용을 건져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목사직 매매'가 이뤄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 교회를 팔면서 그 교회에 투여된 그간의 목회의 유형무형의 비용을 함께 파는 것이다. 일반 상업점포의 매매 관행에서 '권리금'이라는 것과 거의 유사한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기준은 교인수와 자릿값이다. 즉 강남지역에서 교인 20명인 교회는 강북의 20명 교회보다 훨씬 비싼 권리금을 발생시킨다.

이런 매매는 교역자의 도덕성이 극도로 추락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즉 그런 매매를 할 수 있는 이는 더 이상 정상적인 교역 질서에 편입될 수 없는 이다. 요컨대 이것은 매우 부정적인 매매 현상으로, 그런 매매가 성립하는 과정은 그 매도자가 도덕적으로 자기 파탄상황에 이르게 되어야 한다.

'교회 매매'의 근원적 문제인 성장지상주의 지양해야

최근 많은 언론들은 이런 교회 매매에 관한 매우 심각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 현상을 보도하였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개신교계는 이에 대해 일부 극단적 사례를 가지고 전체를 폄하하고 있다는 반론을 폈다.

그런데 이 양편의 반응은 공히 이 충격적 사례를 그 행위의 도덕적 파탄성에 주목하여 보고 있다. 즉 양자는 정반대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문제를 매도행위를 하는 교역자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물론, 말했듯이, 그런 매매행위는 매도하는 교역자의 정신적·도덕적 파탄 위에서 발생한다. 그러니 그런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인식만으로 이 현상의 개선은 전혀 상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문제는 개인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배후의 근원적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핵심은 한국 개신교의 성장지상주의에 있다. 한국 개신교 성장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교역자들의 열정적인 포교행위와 연관이 있다. 한국의 어느 종파도 개신교 교역자들처럼 성장만을 위해 열렬히 매진하지 않았다. 성장지상주의적 교역자의 열정은 한국 개신교의 특징이다. 그것은, 위에서 보았듯이, 각 개신교 교파들이 치열한 양적 경쟁을 위해 교역자 후보생을 최대한 늘리고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그들을 생존시장에 밀어 넣어버림으로써 이룩한 성공이다. 시장에 내던져진 교역자들은 오직 성장을 위해서만 목회에 전념하였고, 그들에게 목회는 곧 성장을 위한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학생 수는 급격히 증가하였지만 신학의 질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교육을 받으며 배출된 교역자 후보생들은, 특히 1990년대 이후, 매우 열악한 포교 상황에서 교회 목회의 대열에 진입하게 된다. 특히 미자립교회를 운영하는 중년의 교역자들은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소비사회에서 거의 비소비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가족들을 대면해야 한다. 이런 부담감 속에서 그들은 초초하게 교회 사역에 임한다. 교회의 성장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배우지 못한 그들은 오직 성장만을 위해 프로그램된 사역에 전념한다.

교단 신학교나 교단 부설 연구소 및 교단 총회본부는 포교 위기에 관한 성장주의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교단마다 무리한 수치를 내놓고 성장주의를 더욱 가속화하도록 권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설립의 모험에 뛰어드는 이보다 폐업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단 차원의 보호 장치가 전무한 가운데 그 폐업의 책임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실패 교역자들이 교회 폐업 시장에 발을 딛게 되는데, 그 시장은 온갖 부정적 관행들이 넘쳐난다. 자신의 도덕적 파산상황에서 내딛은 시장이 이러하다면, 그런 이들이 빠르게 그 파행적 매매관행에 빠져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교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추문은 계속될 것

 십자가.
 십자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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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성장만이 유일한 가치인 사회에서 성장에 실패한 이는 단지 교역에 실패한 자가 아니다. 그이는 신앙의 실패자이기도 하며, 존재 자체가 실패한 자가 되기도 한다. 성장지상주의적 한국의 교회 체계에서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 교역자는 대단히 많다. 그런 점에서 성장지상주의를 지양하는 것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가장 근원적인 대책이다.

우선 교회의 위기는 오늘날 한국만이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아울러서 전 세계적으로 교회는 퇴조하고 있다. 재정을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는 교회, 혹은 교회당을 임대해서 겨우 생존하는 교회 등이 부지기수며,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추구해온 관성적 존재 방식이 우리 시대의 인식의 체계나 제도화 방식 혹은 감수성의 틀과 잘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그런 위기가 늦게 시작되었지만, 위기의 양상은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나는 그 위기의 요체를 '교회라는 형식의 위기'로 해석한다. 교회의 방식은 오늘날 그리스도교 위기의 진원지다. 이제 교회라는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교회라는 관성적 존재 양식의 특징은 '팽창주의적인 배타적 공동체'라는 데 있다. 즉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자기중심적 체계가 그리스도교적으로 정착한 것이 교회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질서를 지켜내기 위해 정전화(canonization), 교권화, 교리화의 장치를 발전시켰다. 바로 이런 관행은 서로를 강화하며 교회의 배타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외부를 향해 정복적으로 침투해 가는 양상을 띠었다.  

거창한 얘기다. 논의를 교회 매매에 대한 대안의 차원에서 구체화해보자. 우선 주지할 것은, 지금 한국사회가 포교의 위기에 봉착해서 더 이상 새 교회가 들어설 공간이 없다는 인식이 교역자들 사이에서 팽배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교회주의를 개혁하지 않는다는 가정 위에서만 타당하다.

목회는 신적 위임을 받은 돌봄의 행위다. 목회자는 그런 신념으로 돌봄의 서비스를 행하는 자이다. 한데 현재의 교회주의는 개종자에게 한정된 배타적 돌봄을 제도화했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목회 사역자는 대개 사회 속에 만연한 고통에 무관심하다. 그들의 관심의 핵심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아 그들이 교회에 충성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런 이들에 한정된 돌봄이 목회의 내용이고 목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에 관한 새로운 신학적 논의들은 목회란 사회 속의 고통을 대면하는 행위이다. 즉 배타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현대 신학의 목회에 관한 신학적 기조다. 여기에는 개종이라는 행위가 전제되지 않는다. 교회의 배타적 경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돌봄이 바로 목회인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반론은 교역자의 생존에 관한 것이다. 교회의 회원을 늘림으로써 그들의 기부금으로 생존하는 것이 일상화된 교역자의 생존 시스템인데, 그런 가정 위에서 교역자는 교회의 팽창만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소득으로 인한 생계의 위기는 당연히 미자립교회 교역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저소득계층 모두의 문제다. 그것을 위해 사회복지라는 제도가 필요한 것이고, 그 복지의 대상은 일정 소득 이하의 모든 국민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실질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히 사회적 돌봄의 위임을 받은 목회자의 일이어야 한다. 또한 목회자도, 저소득 계층에 속한다면, 그러한 수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현재의 교역제도는 교회나 교회 사역자가 조세의 책임을 지고 있지 않으므로, 소득 자체가 비공개적이다. 하여 그들은 복지 수혜의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교역자의 생계가 문제라면, 의당 사회복지의 확대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며, 그것은 현대 신학의 목회론에 관한 논지에서 교역자의 사회적 돌봄의 주요한 내용이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교회와 교역자는 외로운 섬에 고립된, 홀로 교회 성장의 책임을 맡은 이가 아니라, 사회의 정의를 위해 일하는 많은 이들의 동료이며 이웃이다. 또한 그런 교회는 개종자들만의 장소가 아니라, 지역의 시민사회의 공공적 재산이다. 아이들의 공부방이기도 하고, 인근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 종단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만약 교회가 재정적으로 위기를 맞아서 교회당을 매매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그 지역의 공공재를 매매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지역의 시민사회가 동네의 공공재를 지켜내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통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된다. 바로 그런 교회를 현대 신학은 권장한다.

문제는 교단이나 교단 신학교가 이러한 대안적 목회신학에 관해 교역자 후보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물론 이것은 교단과 신학교가 대형교회가 중심이 되는 패권적 배타주의를 추구하는 교회주의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양하지 않는 한, 교회주의를 넘어선 교회에 대한 상상이 교역자가 되려는 이의 꿈과 비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교회 매매에 관한 추문들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고, 교회는 그런 추문들로 인해 시민사회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진호씨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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