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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여섯 번째로 고길천 작가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강정마을 중덕해안으로 접어드는 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원래 마을사람들의 사유재산이었다. 착한 섬사람들은 조금씩 자기 땅을 내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농로(農路)를 냈다. 그래서 길은 좁지만 넉넉하다.

 

크고 슬픈 눈을 한 아이는 그 착한 길이 중덕해안에 거의 다다를 즈음에 만날 수 있다. 아이는 기름통에 그려진 그래피티(graffiti 낙서화) 속에서 말없이 묻고 있다.

 

"꼭 이곳에 군사기지를 만들어야 하나요? 우리 섬마을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언제부턴가 이 작품은 기표가 되었다. 평화공동체 강정마을 혹은 해군기지 없는 강정마을을 상징하는. 아이는 그림 속에서 단지 묻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정교한 논리보다 설득력 있다. 그 누구의 연설보다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세상 어느 무기보다 강력하다. 그래피티 한 점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근육을 움직인다. 예술의 힘이다. 

 

'군사용 경고'가 아이의 눈을 통해 '평화를 위한 경고'로 극적 반전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을 그린 이는 고길천 작가. 그는 "군대 있을 때 본 경고 문구가 모티브가 됐다"고 소개했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연평도에서 군 생활을 했다.

 

"회화, 설치미술, 판화 등 가리지 않고  작업하는 '잡탕'"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강정마을에서는 그래피티 작업을 했다.

 

"주민들이 미군 군사기지 이전문제로 한창 싸우고 있을 때 평택 대추리에 갔던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4·3 미술제'를 했거든요. 그때 전국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작업하는 것을 봤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예술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현장예술이 어떤 것인가 고민할 수 있었던 기회였죠. 현장 미술의 특성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의사소통)에 있습니다. 그래서 강정마을 작업을 할 때 커뮤니케이션에 적절한 매체가 뭔가 고민하다가 그래피티를 택했죠."

 

그래피티는 한때 '도시의 골칫거리'로 취급받았다. 스프레이로 지하철이나 담벼락 등에 그린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반항아들의 도발' 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스 해링(Keith Harring)은 이 '골칫거리'를 인종차별 반대나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거리의 예술'로 끌어올렸다.

 

현장에서의 의사소통을 고민했던 키스 해링의 기법과 정신은 그에 의해 고스란히 강정마을에 재현되었다. 고 작가는 다섯 작품을 강정마을에 그렸는데 모두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얼마 전 제 작품이 그려진 드럼통을 가져가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버려진 기름통인 줄 알았는데 주인이 있었던 것이죠. 그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그 통을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중장비까지 동원해서 기름통을 가져가려는데 마을 분들이 막으셨어요. 제 작품이 그려진 기름통을 사고 대신 다른 기름통을 그분에게 사 드렸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드럼통 하난데 마을 분들이 그림이 있으니까 지키려고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작은 것 하나 소중히 하는 그 마음으로 4년 동안 강정마을을 지켜온 것입니다. 저절로 존경심이 납니다. 강정을 오지 않을 수 없는 동기이구도 하구요.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점이 많습니다. 마을 분들의 정직함이 너무 좋아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좋아서 저절로 날마다 강정마을에 오게 됩니다."

 

 

그는 '시내 사람'이다(제주도 사람들은 제주시를 '시내'라고 부른다). 강정마을이 고향도 아니고 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면 강정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다"고 한다.

 

그렇게 강정마을의 안부가 궁금해 2년째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요즘은 강정마을에서 진행하는 '예술행동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다. 6년 전 끊었던 담배를 강정마을 다니면서 다시 피게 됐다. "여러 상황이 답답하고 화나고, 강정 주민들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에 미칠 것 같아서" 안 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해군기지를 정당하고 민주적 방식으로 만든다면 실행한다면 이의제기 않습니다. 지혜롭게 대안을 만들어서 제주도민을 설득해보려는 노력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어요.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도 모자라 협박하고 불법으로 떼쓰며 편법으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 땅을 강탈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정부와 해군 각본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아요.

 

이런 야만적 태도 때문에 제주도민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논리적 정당성 없으면 무조건 안보를 내세웁니다. 일종의 마약 같아요. 자신들이 정당성 없으니까 주민들에게 어떻게든 마약을 투약해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생각을 못하게 마비시키려고 합니다. 정부와 해군은 '안보 마약' 상습 투약범 입니다."

 

분노해야할 때 분노할 줄 아는 이가 청년이다. 그리고 분노의 밑천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관계의 틀에 얽매지 않고 '내 멋대로 사는', 그러나 결코 타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나이 쉰을 훌쩍 넘은 그가 청년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얼굴이 동안이어서가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나이 젊다고 해서 당연히 달 수 있는 장신구가 아니다. '현실' 운운하며 쉰내 펄펄 나는 소리를 해대는 애늙은이들을 우린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그는 "나의 DNA 자체가 제주도고, 제주도로부터 모든 것을 수유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제주도는 모든 이의 어머니다. 그 어머니는 '바람의 딸'일 테고.

 

"어릴 때부터 바람 소리가 좋았어요. 신기함도 주고 두려움도 주고…. 어른들한테 기대려는 공포에 대한 그리움도 주고. 돌풍처럼 센 바람조차 활력을 줍니다. 바람소리는 상상을 자극하는 소리에요. 내 정서 형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예술적 자극도 많이 주었어요."

 

그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강정마을 예술행동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동행'. 영화평론가 양윤모씨가 강제연행 당하는 걸 보고 "피가 거꾸로 치솟아 뭔가 해야 겠다"며 기획한 프로젝트다. 양씨와는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현재 '동행' 프로젝트에는 개인과 그룹 세 팀이 작업하고 있다. 제주도는 대추리와는 달리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마음 있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섬은 더더욱 멀다. 몸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야속한 사랑의 유물론!

 

 

그래도 외롭지 않은 것은 함께 하는 벗들이 있어서다. 탐라미술인협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고경화 작가는 제일 먼저 강정마을로 달려와 주민들을 위무했다. 안혜경 제주아트스페이스C 대표는 '강정마을을 돕는 기금 마련 전'을 주도해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의 작가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기금 마련 전'에서 느낀 것인데요, '어 저 분도 참여 하셨네'라고 놀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분들이 강정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어요. 제주도 사람들은 4·3 때문에 피해의식 많아 겉으로 생각을 잘 내세우지 않아요. 크게 당했기 때문이죠. 제주도에선 통계도 잘 낼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밑에 깔려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게 언제 폭발할지 몰라요. 제주사람들의 마음 속 저변에 깔린 속내를 건드렸을 때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생깁니다. 기금 마련 전에서 다시 그런 것을 느꼈어요. 정부나 해군이 제주사람들을 잘못 건드렸어요."

 

한편 그가 내심 뿌듯해 하는 일이 있다. 세계적인 석학인 놈 촘스키(Noam Chomsky) 미국 MIT 교수의 지지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촘스키 교수와는 2003년부터 4·3관련 자료를 주고받으며 인연을 맺었다. 

 

촘스키 교수는 고 작가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대한 매우 불길한 계획들에 대해 전해 듣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제주도가 평화의 상징이 될 만한 놀라운 과정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소식들은 제겐 감동적"이라며 "저는 선생님과 뜻을 함께하시는 분들이 행하시는 노력에 대해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고 해군기지 건설반대 투쟁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격려했다.

 

이후 촘스키 교수는 <신좌파의 상상력> 저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등 미국 학계인사 40여 명과 함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당장 중지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 작가는 "촘스키 교수는 예술을 알고 청년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배우려는 자세를 놓지 않는 참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예우했다. 

 

그는 오늘도 강정마을 중덕해안에서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원래대로 그냥 있었던 그대로가 최고의 예술이고, 온갖 생명체가 씨줄날줄로 얽혀 있는 그 자체가 최상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최고의 예술'이라 상찬하는 제주도의 놀라운 풍광은 그가 좋아하는 바람이 비와 파도를 몰고 와 조각한 것이다. 어쩌면 그도 바람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 미지의 유토피아 이어도를 찾아가는 제주 사람의 땀과 눈물 그리고 환희를 그려 새기는 제주 바람.

 

처음 그날처럼 선선한 바람은 제주바다에서 느리게 일어나 한라산 능선을 탔다.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제주도, #고길천,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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