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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다섯 번째로 '백합 키우는 남자' 강희웅씨 이야기입니다. 그는 해군기지 문제로 형과 남남처럼 지내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제주 강정에서 태어났지만 화물차를 한 15년 운전했죠. 그러다가 제주 시내에서 꽃집을 하는 친척 부탁으로 꽃집을 봐주게 됐어요. 기름 냄새 맡다가 꽃냄새 맡으니까 기분도 좋고... 그런데 마흔 살 넘어 꽃바구니 들고 다니니까 쑥스럽더라고요."

 

그래서 7년 전부터 비닐하우스에서 백합꽃을 재배하고 있다. '꽃을 든 남자'에서 '꽃 키우는 남자'로 변신한 것이다. 꽃과 어울리는 인상이 따로 있을 리야 없겠지만 강희웅(47)씨의 첫인상에선 '깐깐한 물리선생님' 이미지가 풍긴다. 하지만 한 번씩 슬쩍 흘리는 미소에서 참한 백합꽃이 핀다.

 

꽃과 함께 산다고 그를 아무 때나 실없는 헛헛한 사람으로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한 때 그의 별명은 '액비맨'. 액비는 생선을 비료로 만들기 위해 발효시킨 것이다. 냄새 고약하기로 치자면 중국 두부 처우떠우푸(臭豆腐 취두부)를 능가했으면 능가했지 결코 뒤처지진 않는다.

 

강정마을이 동의절차 없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로 결정되자 주민들은 도청을 찾아가 도지사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도지사 면담은 고사하고 갈 때마다 용역경비와 경찰들로부터 도청 출입 자체를 가로막혔다.

 

심지어 "해군기지 반대하고 도지사가 결정한 일을 반대하는 너희들은 제주사람이 아니다"는 극언까지 들어야 했다. '섬'에서 태어나 '육지 것들'한테 '섬놈'이라고 멸시당하는 것도 화가 치미는 판에 같은 제주사람이 '너희들은 제주사람 아니다'고 낙인을 찍으니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그는 온 몸에 액비를 바르고 용역경비들을 향했다. 거친 욕을 하지도 않았다. "우리 같은 제주사람끼리 얘기 좀 나눕시다게"하며 다가갈 뿐이었다. 지독한 냄새에 경비들의 대오는 무너지는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그는 'X맨'보다 무섭다는 '액비맨'이 되었다.

 

"제복 입고 철통같이 막아서는데 달리 방법이 있어야지요. 주민들이나 도청 경비들이나 다 같은 제주사람인데 싸우다보면 다칠 수밖에 없잖아요. 서로 안 다치고 도청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궁리했죠."

 

형제조차 갈라놓는 이 괴이한 아픔

 

 

부당한 행태를 체질적으로 못 참는 강단과 결기가 백합꽃처럼 순한 미소에 숨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마을사람들 다 아는' 아픔이 있다. 형이 사는 집과의 거리는 불과 200m. 그러나 형제는 말 한마디 섞기는커녕 따스한 눈길 한번 나누지 않고 살고 있다.

 

"해군기지 문제 하나로 이렇게 됐다는 것이 너무 우습고 억울해요. 미리 알고 의논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느닷없이 자기들끼리, 그것도 대다수 주민들 몰래 결정해놓고 주민들보고 '시간이 없으니 빨리 판단하고 결정해라' 하는 상황이 와 버린 겁니다. 가족들끼리 의논할 시간도 없이 형님은 해군기지 찬성, 나는 반대 이런 식이 돼버린 거죠. 함께 의논을 했다면 결론이 어떻게 나왔든 간에 가족을 좋게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마을에서 신망 두텁기로 유명한 그는 마을해군기지대책위가 꾸려지자 조직담당 부위원장을 했다. 그의 형은 해군기지찬성대책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이를 두고 한 마을 주민은 "4·3때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제주사람들이 4·3을 먼저 말하거나 인용하고 비유하는 일은 드물다. 특정한 날짜에 온 마을이 다 제사를 치르는 잔인하고 모진 슬픔을 어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라는 매끈한 의학용어 하나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 서북청년단이라는 외지깡패들한테 당하는 해코지가 아니다. 집안 다르고 좌우 이념 다른, 옆 동네사람과의 싸움도 아니다. 한 여자를 어미로 둔 자식들 간의 결별이다. 생모는 그가 열여덟 살 때 돌아가셨으니 하늘에서도 기가 막힐 것이다.

 

지금 어머니도 두 아들 갈등이 아프기만 하다. 30∼40대 젊은 남자가 사별을 하면 100일 안에 빨리 재혼시키던 제주도 풍습에 따라 생모 돌아가신지 석 달 만에 어머니는 오셨다. 제주도를 바람과 돌, 여자가 많다고 삼다도(三多島)라 한다. 어쩌면 그 말은 제주 바람과 돌과 여자가 그만큼 강해서 그들에게 의지하고 산다는 뜻 아닐까.

 

"어머니나 아버지를 생각하면 빨리 푸는 게 좋겠지만 지금 형님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서로 치유되는 게 아니라 더 상황만 안 좋아질 것 같아요. 그래도 언젠가 만나야죠. 한 핏줄을 나눈 형제인데요."

 

해군기지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 형제조차 갈라놓는 이 괴이한 밑둥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그는 지나친 행정조직의 영향력을 첫째로 꼽았다.

 

"제주도에 공장이 많아서 노동자나 다른 사람들과도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큰 공장 하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생각 나눌 수 있는 바깥사람이라 해봤자 행정조직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전부죠. 그만큼 공무원들 영향력이 셉니다. 마을 유지라는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 아십니까? 행정조직과 얼마나 친한가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러다보니 행정부에서 한다는 일이면 동네는 생각도 않고 무조건 찬성을 합니다. 이번 해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였죠. 행정에서 군사기지 필요하다고 한 마디 하니까 유지라는 사람들이 주민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불법적으로 날치기 찬성한 것 아닙니까."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이 궨당의 그물

 

눈만 뜨면 밭이나 바다에 나가 일하는 시골마을로 갈수록 '행정'은 괴력을 발휘한다. 주민등록증 하나 발급받는 것부터 태풍 피해 신청하는 것까지 행정조직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세상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심보 비틀어진 몇몇 공무원들은 진작 처리해줄 일도 온갖 핑계를 들이대며 몇 달을 끌기도 한다. 반대로 '행정기관 말 잘 듣는 이들이 오면 없는 보상도 만들어서 해 준다'는 말이 돌 정도로 특혜를 준다.

 

"해군기지 찬성이란 말이 일부 유지들과 주민들에게 왜 그토록 쉽게 나왔겠습니까. 먹고사는 일에 바쁜 사람들한테 '행정'이 '발전'이란 새로운 단어를 내미니까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혹 해서 그렇습니다. 무슨 발전을 시켜준다는 것인지, 발전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발전'이라고 하는 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다 행정이 주민과 접촉이 많고 그만큼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둘째 이유는 지금 내는 문제의 정답에 있다.  제주도에서는 어느 정당이 영향력이 가장 클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아니다. 제1야당 민주당도 아니다. 미안하지만 민주노동당도 아니다. 그럼 어느 정당일까?

 

'궨당'이다. 궨당은 제주말로 친척을 뜻한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제주지역이 그만큼 친척 간 유대가 강하고 끈끈하게 얽혀 있음을 말해준다. 궨당은 씨족공동체가 어느 순간엔 가장 결성하기 쉽고 결속력이 강력한 사회정치적 결사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해군기지를 놓고 보면 이 궨당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형이 찬성이면 아우도 찬성이다. 아버지가 반대면 아들도 반대다. 입장이 없었다면 궨당에 물어보면 된다.

 

독특한 제주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 궨당 정서를 '자기생각 없이 친척의 주장이나 따라다니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제주에선 궨당이 힘을 발휘하는 독특한 배경이 있다. 제주에선 친척이 같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씨족공동체는 곧 생산공동체·노동공동체인 것이다. 식구, 한 솥밥을 먹는 이들이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일체감이다. 

 

그래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이 궨당의 그물을 피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으로 궨당의 끈끈한 관계마저 외면하며 형처럼 해군기지를 찬성하지 않고 반대했을까. 그냥 "형이 찬성하니까 나도 찬성합니다"하며 살짝 비겁하게 말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을 텐데 왜 굳이 앞장서서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 때문이에요. 아이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에요. 저야 그렇다 치지만 아이들은 무슨 죕니까. 전쟁이 영화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전쟁을 막으려고 군사기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군대가 있으니까 전쟁이 나는 겁니다. 상대방이 군대를 만들어서 새 무기로 덩치를 막 키워요. 그러면 옆에 있는 내가 가만히 있습니까. 나도 새 무기로 힘을 막 키우죠. 그렇게 서로 경쟁하다가 상대방 어깨라도 스쳐봐요. 바로 전투 나고 전쟁 납니다. 지금 제주에 만들겠다고 하는 해군기지가 딱 그 모양으로 중국과 일본을 자극합니다. 전쟁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전쟁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 내 아이들이 전쟁판에서 고통 받게 생겼는데 세상 어느 부모가 그것을 모른 척 합니까."

 

내일을 기약하는 이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에 있는 85호 크레인을 찾는 이들에게도 '외부세력'이라며 "3자는 빠지라"고 하는 세력이 있다. 희한하게도 그 세력들은 강정마을을 찾는 이들에게도 '외부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돌아가라"고 요구한다.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과 기득권세력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외부인이라면 남의 일이라는 얘긴데 대한민국 군대가 남의 군대입니까. 우리나라 군대가 다른 나라 군대 자극하며 새 기지를 짓는 위급한 상황이 제주만의 문제입니까, 강정마을만의 문제입니까. 대한민국 문제고 국제적인 문제 아닙니까. 외부인, 외부세력이라고요? 차라리 저는 왜 이제 왔냐고 말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금 와주시는 많은 분들이 일 년 전에만 오셨어도…. 왔다가는 가버리고, 왔다가는 가버리고…. 지금이라도 이렇게 와주시니 얼마나 힘이 나고 좋은지 몰라요."

 

그는 지금을 '최악상황'이라고 했다.

 

"우리 주민들은 힘이 없으니까 해군기지 짓겠다고 막 밀고 들어오면 평택 대추리처럼 질질 끌려가 내동이질 당하겠지요. 하지만 저희들은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질 않아요. 이 싸움은 10년, 20년 안에 끝날 싸움이 아니거든요. 기지건설을 못 막았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기지를 감시하며 새로운 평화운동을 할 겁니다. 지금 우리 주민들 심정이 그래요."

 

제주도에 온전히 제 혼과 살과 뼈를 묻은 사진작가 고 김영갑이 그러지 않았던가. "새길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슬퍼한다"고. 내일을 기약하는 이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만들어갈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올레길 걷듯 '놀멍(놀면서) 쉬멍(쉬면서)' 가겠다는 이들을 대체 어떤 군대가 이길 수 있을까.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제주도, #올레길,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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