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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네 번째로 프랑스 출신 '마음치료사' 뱅자맹 모네 이야기입니다. 통역은 마을대책위 국제팀 영실 님과 사진작가 임지은 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편집자말]
프랑스 출신 뱅자맹 모네는 '마음치료사'다. 공권력의 부당한 탄압을 규탄하는 강정마을사람들 집회에 함께 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 뱅자맹 모네는 '마음치료사'다. 공권력의 부당한 탄압을 규탄하는 강정마을사람들 집회에 함께 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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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바람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바람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파도는 높아진다. 높은 파도는 사람의 배를 포구에 묶어둔다. 거친 바람은 인간의 거처를 낮게 웅크리게 한다. 섬마을 집들의 지붕이 낮은 이유다. 

또 바람은 땀구멍을 타고 몸 안에 들어와 혈소판을 흔든다. 눈을 지그시 감으면 그 바람결 따라 길을 나서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물컹한 그 무엇이 사람의 길, 생명의 길을 지어내는 것!

'바람의 말'을 타고 나타난 프랑스 출신 뱅자맹 모네

프랑스 출신인 뱅자맹 모네(31)도 어쩌면 그렇게 '바람의 말(馬)'을 타고 왔는지 모른다. 그가 한동안 머물렀다는 네팔, 히말라야 능선에 휘날리던 룽다처럼. 태어난 곳이 프랑스의 화산지대여서 제주도가 친숙하다는 그는 "바람과 결혼했다"고 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매순간 바람을 만났고 바람을 느꼈어요. 네팔에서는 바람이 다양한 방향에서 불어오는데 제주도에 요새 부는 바람은 날마다 항상 같은 방향에서 오는 것 같아요. 남동쪽에서요. 오키나와서 불어오는 바람인가요? 군사기지로 겪는 아픔이 비슷하니까요."

그는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에서 제주도와 오키나와가 품은 아픔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렇다, 계절풍은 여름엔 남쪽에서 불어온다. 거기 바람 지나온 자리 어디쯤 오키나와가 있을 테고, 그가 흘러온 인생의 별점 하나 있을 게다. 그렇게 바람과 함께 흐르다가 제주도를 만났으니, 지독한 인연이다.

그는 13년 동안 약 40개 나라를 유랑하고 있다. 강정마을과는 지난 5월에 연이 닿았다. 미국 유니언신학대 정현경 교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과 함께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하러 와서다.

6월부터는 아예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텐트를 치고 살며 마을 해군기지 대책위원회 국제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가 자유로운 그는 온라인 네트워크(www.savejejuisland.org)에 강정마을 소식을 전하는 글을 날마다 올리고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통해 군사주의의 위험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이 국제적인 네트워크엔 세계 각국의 저널리스트, 교수, 정치인, 학생, 평화활동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후원금을 모아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상공사 감시용 보트를 살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온라인 네트워크에 올린 소식들에 대해서 유럽과 아메리카대륙, 러시아와 일본, 레바논 등지에서 많은 조직과 활동가들이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미국 하와이와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즉각적이고 뜨거운 편이라고. 그는 "두 곳 모두 미국에 의해 군사기지가 건설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주도 강정마을 소식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미국은 가장 많은 파괴를 일삼고 있는 나라"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6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예멘, 시에리아 그리고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미국은 세계의 구세주를 자처하고 있지만 파괴자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군사주의로는 어떤 긍정적인 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군사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어떤 파괴를 했는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이게 너희들이 바라는 모습이니?'.

그리고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를 지배해선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제주도도 자기 스스로의 목소리를 가져야 하고, 다른 이에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주도는 지금 군사기지 대신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평화의 소리를 들어줘야 합니다."

삐딱하게 보는 이들은 그의 말에서 전 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는 '반미주의자'와 '극렬한 평화활동가'의 냄새를 맡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직업은 '마음치료사'다. 치료수단으로는 마그네틱테이프나 마사지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저 눈빛 나누기만으로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치료하기도 한다. 강정마을에서는 지금까지 30여 명의 상한 마음을 치료했다.

강정마을 사람들이 영험하게 여기는 '넷길이소'에서 뱅자맹 모네는 "샤먼을 느끼며 평온했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사람들이 영험하게 여기는 '넷길이소'에서 뱅자맹 모네는 "샤먼을 느끼며 평온했다"고 말했다.
ⓒ 조성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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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치료는 순수한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기쁩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장애가 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치료를 하고 나면 마을사람들과 한결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밝게 웃으며 눈으로 인사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벤자민'이라고 부르고 있다. 벤자민은 뱅자맹의 영어식 발음이다. 자기문화와 자기언어에 대한 고집이 유독 센 프랑스에서 왔지만 그는 자기이름이 영어식으로 불리는데 크게 개의치 않는 '수상한 프랑스 사람'이다.

"제주도 강정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러고 보니 그는 수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프랑스 사람 특유의 수다도 없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 낮고 조용하며, 입으로 말할 때보단 눈으로 말할 때가 더 많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하는 육식도 하지 않는다.

강정사람들이 비경으로 꼽는 '넷길이소(폭포와 절벽, 물과 은어 등 네 요소가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에선 "강한 샤먼의 기운을 느껴 영적으로 마음이 편안했다"고 했다. 실제로 그곳엔 '할망(할머니) 사당'이 있다. '설문대 할망' 설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제주도는 모계 샤먼의 원형지다. 그래서 그는 "제주도 강정과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강정마을에서의 그의 일상이 유난하거나 특별하진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꾼 꿈을 다시 더듬어보고, 빨래를 한 다음엔 기도를 한다. 바깥 일이 궁금해 인터넷 뉴스사이트를 들락거리고, 국제사회를 향해 강정마을 소식을 전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마을대책위 국제팀 소속이라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회의를 하기도 하고,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마음치료를 하기도 한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다. 그러나 그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도 어떤 이들에겐 '분노의 대상'이 되고 '시비꺼리'가 된다. 타자의 평온한 일상에 신경질적으로 역성을 내는 자 누구겠는가. 타자의 안온한 일상이 자신의 돈벌이나 집단의 힘 과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망나니 행패를 부리는 이들이 누구겠는가. 

"평화를 지키려는 이들은 전쟁을 만든 이들이 아니에요. 오히려 전쟁을 피하려는 이들이죠. 전쟁을 만드는 이들은 평화를 깨려 하죠. 그래서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 세대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죠.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일이 몽상가나 하는 짓이라구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평화를 위해 일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몽상가로 보여요. 왜냐면 전 세계 70억 명 가운데 대다수는 평화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곳 강정마을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평화는 조화입니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기지를 만들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나요?"

그는 평화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는 강정의 생활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평화에 닿기 위해서는 평화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평화에 대한 신념은 어떻게 품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너무 자주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이 세계에는 광물과 식물, 동물, 곤충들이 모여 사는데 이 네 가지 사이의 조화가 바로 평화입니다. 인간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인간 외의 다른 생명들을 존중해야 하죠. 그래야 평화가 지속가능해집니다. 인간 사이의 평화는 대화하고 나누는 데 있습니다. 무기를 들고 대화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하다가 벌써 세 사람이 구속되었고 주민들에게 계속 소환장이 발부되고 있다. 그는 "주민들은 전함도 없고 미사일도 없고 심지어 막대기조차 들지 않았다"며 "가슴 속 품은 신념으로 평화로운 방식으로 싸우는 이들을 사법처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에겐 한국에서 머물 날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훗날 다시 한국을, 강정마을을 찾을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바람만이 알고 있겠죠. 제주도 바람이 다시 나를 이곳에 데려온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여기 있겠죠."

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 쪽빛 제주바다 위를 일렁거렸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사람은 참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야 흰 비둘기는 하얀 모래밭에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휩쓸고 지나가야 더 이상 사용되는 일이 없을까
오 나의 벗이여 해답은 바람에 실려 있다오,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오...."

제주바람에 긴 스카프를 날리고 있는 뱅자맹 모네.
 제주바람에 긴 스카프를 날리고 있는 뱅자맹 모네.
ⓒ 김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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