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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5월 15일, 상하이의 일본계 직물공장에서 직장폐쇄에 항의하던 중국인 노동자 구정홍(顧正紅)이 일본 수비대가 발포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중국인의 분노와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6명의 학생이 체포되었다.

 

5월 30일, 난징루(南京路)의 공공조계에서 체포 학생의 석방과 불평등조약의 체결된 조계의 반환을 요구하는 노동운동과 반제국주의 성격이 혼합된 시위가 벌어졌다. 영국군은 시위대를 향해 44발의 사격을 가했고 11명의 시위자가 죽고 2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50여 명이 체포되었다. 중국은 이를 '5.30참안(慘案, 학살사건)'이라고 부른다.

 

외국인이 자행한 중국인에 대한 발포 소식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 약 30여 개 도시에서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사건의 진원지 상하이에서는 노동자 20만 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6월 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으며 홍콩에서도 16개월간 이어진 대규모 파업과 동시에 영국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광저우(廣州) 샤몐(沙面)에서는 또 시위대에 대한 총격사건이 발생하여 52명이 죽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다.

 

1919년 5.4운동에서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서구의 '민주'와 '과학'을 배우자고 주장했지만 6년 뒤인 1925년 5.30사건에서 노동자가 중심이 된 중국인들은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며 중국적인 민족주의의식을 한껏 고양하게 된다.

 

창당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도하에 도시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중국인민의 분노와 좌절을 공산당의 발전 동력으로 규합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유명한 중국의 현대문학 작가 마오둔(茅盾)은 그날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평온하기만 한 상하이의 풍경을 <5월 30일 오후(五月三十日下午)> 라는 산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얼마나 많은 용감한 젊은이들이 이 회색빛 대지를 그들의 피로 붉게 물들였는가! 누가 이곳에 운집한 군중을 향해 총을 발포했는지 기억하고 있는가? 선진문명의 탈을 쓴 자들의 추악하고 잔악한 본모습을 누가 기억하고 있는가? 잊었다. 모두 잊었다."

 

마오둔은 그의 글에서 폭력적인 서양제국주의에 대해서 중국인민들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以眼還眼,以牙還牙)"식의 강력한 무력투쟁을 바라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너무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하고 만다. 서양 제국주의의 만행을 아직도 기억하고 열악한 노동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중국인들 또한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노동의식의 성장이라기보다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노동운동 상황은 지금도 그때와 비슷하다.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는 근로조건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도 중국의 자국기업이나 국영기업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중국정부가 순차적으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법적 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인금인상, 유급휴가, 보험 의무 가입 등의 가시적인 성과물들이 내놓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정부가 정해 인정하는 틀 안에서의 소폭의 변화들뿐이다.

 

지난 5월 10일,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시린궈러멍(錫林郭勒盟)에서 모르건(漠日根)이라는 몽골족 유목민이 무분별한 탄광 개발로 생기는 소음과 분진에 항의하다 한족기사가 모는 대형트럭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칫 민족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중국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 사건과 관련한 보도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이런 불투명하고 언제든 정치적 개입이 노동현장을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중국에서 노동운동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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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