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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맞은 마틴이 슈투트가르트 역에서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벌이고 있다.
 생일을 맞은 마틴이 슈투트가르트 역에서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벌이고 있다.
ⓒ 한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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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히터 마틴은 만 50세를 맞아 생일 파티를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서 했다. 생일축하 노래도 부르고, 샴페인과 카나페를 놓고 먹고 떠드는 생일잔치였지만 좀 특이한 점도 있었다. 생일 주인공인 마틴은 축하차 찾아온 친구들에게 왜 '21세기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공사가 부당한지 설명과 토론을 열심히 이끌었다.

"여기서 생일 파티를 하는건,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중앙역 공사가 얼마나 부당하고 자연환경을 파손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꼭 막아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기 위해서다. 물론 매주 월요일 시위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고 더 나아가 '21세기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공사'를 지지하는 친구도 있다. 물론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친구가 아닌건 아니지만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 설득하고 싶다."

실제 마틴의 오랜 친구로 생일축하하기 위해 온 한스 후버는 그 자리에서 자신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공사가 "낡은 중앙역 청사도 현대화 되며, 무엇보다도 10년이라는 공사기간을 통해 일자리가 생겨 심각한 실업률 타개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주 용감하게 수많은 시위대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은 후버는 물론 벌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에게 둘려싸여 토론을 감당해야 했고 끝내 자신의 의견을 수정했다.

마틴이 친구들에게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공사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마틴이 친구들에게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공사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 한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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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이유

메르세데스 벤츠의 태생지이고 보쉬 등 많은 기업이 있어 독일내에서 뮌헨과 함께 1, 2위의 경제력을 다투는 독일 부자도시 슈투트가르트가 아주 시끄럽다. 2차대전 이후 단 한번도 야당에 기회를 주지 않고, 기민당(CDU)을 선택했던 보수성향이 강한 슈투트가르트이다. 

정당 정치가 자리잡은 독일에 2011년 3월 치러지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연방정부 구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선거다.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은 그런 면에서 보수당인 기민당의 중요한 텃밭이다. 이런 슈투트가르트에 대 반역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집안 대대손손 보수당인 기민당을 찍었다는 많은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이 "기민당에 실망했다. 이번에는 기민당을 찍지 않겠다"고 TV토론에 나와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투표를 통해 심판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또 매주 월, 금요일 저녁 7시가 되면 도시 각 동네 역근처에서 사람들이 모여 호루라기, 북, 자동차경적(Schwaben Streich)을 울려대며 저항하고 있다. 

이렇게 일만 하는 구두쇠로 유명한 슈투트가르트 슈바벤(이 지역사람들을 뜻하는 호칭) 시민들이 뿔이 난 이유는 기독민주연합당(이하 기민당 CDU),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 SPD),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FDP)이 합의하에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다시 짓고, 선로를 지하에 건설해 파리에서 울름까지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형 건설프로젝트와 관련있다.

그동안 계속 기하학적으로 늘어나는 건설비, 건설기간, 도시 폐역할을 해온  공원파괴, 환경문제, 대기업 중심 프로젝트, 정보 불투명성 등 많은 반대와 논란이 수년에 걸쳐 시민사회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단단히 뿔이 난 것은 단지 건설프로젝트의 비효율성이나 부당성에만 있지 않다.
 
문제는 이런 반대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슈투트가르트 시정부가 지난 8월말부터 포크레인으로 북쪽 중앙역사 한쪽 벽을 허무는 삽질을 시작하면서 슈바벤 사람들이 뿔이 난 것이다. 반대하는 시민조직과 대화를 하겠다는 약속을 시정부가 해놓고는 다른 한편으로는 무조건 포크레인으로 중앙역사를 허물었던 것이, 조용히 지켜보던 시민들까지 월요시위에 모이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시정부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반대의견과 '진지한 대화와 소통의 의지'가 전혀 없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행태로 독일 사회의 근간인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배반하는 것으로 보여지면서, 기존의 기민당을 지지했던 시민들까지 월요시위에 참가하게  된 계기가 됐다.

자신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있는 판쿠헨(왼쪽)과 2백년 된 나무를 지키기 위해 깃발을 든 야콥.
 자신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있는 판쿠헨(왼쪽)과 2백년 된 나무를 지키기 위해 깃발을 든 야콥.
ⓒ 한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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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여생 편하게 즐기며 살려 했더니..."

처음 수 천명 정도만 모이던 것이 매주 월요일은 물론 금요일까지 적게는 5만명에서 7만명까지 정기적으로 모인다. 이는 1968년 유럽을 휩쓸었던 68혁명이래 최대 규모이다.

이렇게 대화와 소통 대신 삽질을 시작한 시정부의 권위적 행태는 고령자인 볼프강 판쿠헨으로 하여금 직접 선전문구 피켓까지 만들어 3개월째 꼬박 시위에 참가하게 했다.

"나는 연금생활자로 얼마전까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남은 여생 편하게 즐기며 살면 되지 싶었다. 그런데 이건 아닌 것 같다. 대화와 소통 대신 일방적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며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흔드는 것이다. 그래서 5개월째 매주 금요일 데모에 참가한다. 사실 이 시간은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해야 할  때다. 나이들면 건강이 최고 아닌가. 그 운동시간을 포기했다."

가족과 함께 온 야콥 스타웁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야콥이 참가하게 된 동기는 "중앙역 옆의 200년 된 나무들을 잘라야 한다"는 말을 듣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2010년 봄부터 월요시위에 꼬박꼬박 참가하고 있다. 월요시위에서 나눠주는 배지와 스티커도 주워다가 같은 반친구들에게도 열심히 나눠주고 있다.

"우리반 친구들이 서로 가방과 옷에 배지와 스티커를 붙이려 해서 갖다 주었어요.  매일 학교가야 해서 8시면 자야 하기 때문에 아쉽게도  빨리 들어가야 해요."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이 중앙역 공사를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이 중앙역 공사를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 한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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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삽질인가? 아이들 위해서라도 막아야"

한국의 촛불시위가 그랬듯이, 월요시위 역시 생판 모르던 사람들끼리 소통하게 하고 자발적으로 뭔가를 조직하게 한다. 교회 올겐 연주자인 야콥의 아버지인 마티야스 스타웁도 월요시위에서 자주 보던 사람들과 콤파냐 사크반호프(Companya Sachbahnhof)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취미음악가와 음악 전문인으로 구성된 밴드는 길거리 행진시 맨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다.

"음악인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맘에 맞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 밴드를 만들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누구를 위한 건설인가 라는 건설 프로젝트의 비효율성, 부당성만이 아니라, 경제 위기 운운하며 교육, 문화, 복지등 시민생활에 꼭 필요한 투자는 대폭 삭감하면서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한 건설을 강행하는 시정부의 태도이다.

<디 자이트>나 <슈피겔>에서 한 여론조사에서도 슈투트가르트 시민의 60%이상이 반대하거나 건설을 지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꼭 강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건설 카르텔에 있다고 본다.

이 건설 카르텔에 관련된 소수자의 이해관계가 달린 건설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시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민주주의 기본 원칙까지 배반하면서 무조건 삽질을 하는 것이다. 이건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퇴행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꼭 막아야 한다. 우리는 부모로서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결정적으로 부정부패 혐의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실제 전 주정부 시장이였던 로타 스페스가 건설과 관련된 터널굴착회사의 감사인 것, 전 재정부시장인 미카엘 푈이 건설회사 볼프운 뮐러회사의 상임이사인 것 등 이 건설을 지지하고 추진하는 정치인들과 이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회사들과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점점 더  의심의 눈초리가 시민들 사이에서 높아가고 있다. 

이런 건설 추진 배경 의혹들이 조금씩 제기되면서 시민들은 '누구를 위한 건설프로젝트인가', '누가 실제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각 속에 월요시위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건설프로젝트의 부당성과 함께 독일 사회민주주의 퇴행을 막기위해 할 수있는 최선을 하고 싶다는 아빠 엄마, 그리고 200년 된 나무가 한번 잘리면 다시 심어도 또 2백년이 걸려야하기 때문에 함께 깃발을 들고있는 야콥, 생일 파티를 시위장소에서 하면서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마틴, 이들은 단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건설과 관련된 갈등 해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퇴행을 막고 독일 사회가 더 나은 복지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은 1989년 동독의 월요시위에서 울려퍼져 결국 독일 통일로 이어졌던 "우리가 국민이다(Wir sind das Volks)"를 오늘도  힘차게 외치고 있다.

중앙역 공사에 반대하는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이 밴드를 앞세우고 어두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중앙역 공사에 반대하는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이 밴드를 앞세우고 어두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 한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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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월요시위, #슈투트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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