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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사진을 찍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2년 전이다. 22년 전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둘은 사랑을 하고 콩깍지가 씌어 결혼할까? 지금 생각해 봐도 '콩깍지'가 씌지 않으면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나는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결혼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1년도 안 되어 결혼에 골인했다.

꽃다운 스물 여덟의 청년과 스물 여섯의 처녀가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지 22년이 되었다.
▲ 1989년 4월/ 웨딩사진 꽃다운 스물 여덟의 청년과 스물 여섯의 처녀가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지 22년이 되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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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칸방에서 시작된 신혼생활,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던 시간을 지나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아내는 결혼생활 22년 중에서 신혼 1년을 포함해 7년여를 제외한 시간을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아야 했다.

전세금까지 다 까먹고 건강까지 잃고 하던 일을 그만둔 일이며, 막내가 태어난 1998년 IMF 직격탄으로 퇴직금까지 다 날려버린 일, 신혼여행지인 제주도에서 6년 동안 생활하다 서울로 돌아온 일, 자리가 좀 잡히나 싶었더니만 직장상사와의 갈등을 끝내 풀지 못하고 사표를 낸 남편 때문에 마음 아팠던 시간. 그래도 그 사이에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건강한 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게 22년 동안 있었던 일인지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이 우리 가정사에 빼곡하다.

결론은? 행복에 겨워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만사 긍정적인 아내와 매사 부정적인 남편은 서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닮아가고 있다.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바퀴벌레, 찰떡궁합이다. 내 말이 아니고 주변의 평가다. 살아보니 거짓말인 것이 두 가지 있는데, '부부는 닮는다'는 말과 '애 낳아 보면 부모 마음 안다'라는 말인 것 같다. 전자는 포기의 개념이 들어 있고, 후자는 애증의 개념이 들어 있다.

아내는 손해, 나는 이익?

"와, 장인어른 잘생기셨네? 영화배우 뺨친다."
"그걸 인제 알았어? 크크, 그런데 자긴 이게 뭐냐?"

장모님 칠순잔치를 위해 사진자료를 수집해 동영상자료를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아내와 나는 우리의 결혼 사진앨범도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미소년인 나와 미소녀 아내가 행복한 미래를 다짐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와, 엄마하고 아빠다."
"지금은 다 늙었지만, 아빠 젊었을 때 멋있었지?"
"엄마가 손해 본 것 같아. 아빠가 이익인데?"

내 나이 스물여덟, 아내 나이 스물여섯, 정말 꽃다운 나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젊음만 있으면 무엇인들 못할까 싶다. 그래서인지, 둘은 결혼 후 지금까지 퍼주면서 살았다. 그리하여, 일용할 양식은 하늘에 계신 그분께 맡기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모아둔 재산도 돈도 없지만, 마이너스 인생도 아닌, 조금은 섭섭하지만 절망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은 삶으로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내와 나, 둘 다 돈 모으는 재주가 없다. 그것은 내 직업인 목사와도 관련이 있다. 큰돈을 벌어다 준 적이 없으나 아내는 알뜰살뜰 빚지지 않고 살아왔고, 아이들 셋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주고 있으니 그게 우리의 재산인 셈이다. 결국, 우리 부부는 둘 다 손해를 보지 않았다.

22년 동안 우리 부부는 세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은 성공적이다.
▲ 지난 여름 휴가 22년 동안 우리 부부는 세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은 성공적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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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힘만으로 살 수 있나

'베이비 붐 세대'의 특징은 이러하단다. 부모세대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주고자 희생하며, 부모세대를 모시는 일에도 책임감을 느끼면서 노년의 삶은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는, 그래서 어느 세대보다도 이타적인 세대란다.

다니지도 못했던 학원비를 대느라 끙끙대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노년에는 조촐하게 둘이 시골에 가서 텃밭을 일구며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사는 꿈을 꾸는 우리 부부는 베이비 붐 세대가 맞다. 대학시절 80년대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던 기질이 아직도 남아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부부가 4대강 문제에 대해서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이해하질 못한다. 우리 부모세대도 마찬가지다. 그저 제 밥벌이나 잘하고 살면 되지 오지랖이 넓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결혼식 주례를 몇 차례 선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신랑 신부에게 하는 당부하는 말이 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다.

'사실 연애할 때에는 콩깍지가 씌면 안 됩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상대방을 봐야죠. 그리고 결혼하면 이젠 콩깍지가 씌어야 삽니다. 부부가 된다는 것, 그것은 이전에 신비스럽게 남아있는 것들을 날 것으로 본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그때 콩깍지의 힘이 없다면 결혼생활이 힘들어집니다. 이제부터는 두 분 서로에 대해 콩깍지가 씌어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어디 콩깍지의 힘만으로 살아지는가? 그런데 결혼생활 20년이 넘고 보니 콩깍지의 힘이 아니더라도 살아진다. 서로 간에 '아'하면 '어'하고 알아듣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정말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런 싸움들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 포기하는 법도 배우고, 그 포기가 때론 삶을 더 유익하게 한다는 사실도 하나 둘 깨달았다.

장인어른 생신을 맞이하여 처가식구들과 함께 모여 조촐한 식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다(2010년 9월). 필자는 왼쪽에서 네번째, 아내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다.
▲ 처가집 식구들과 장인어른 생신을 맞이하여 처가식구들과 함께 모여 조촐한 식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다(2010년 9월). 필자는 왼쪽에서 네번째, 아내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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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찌검 안 했다, 그러나 부귀영화도 못 줬다

나에게는 한 가지 삶의 원칙이 있다. 나보다 약한 사람 혹은 여자에게 손찌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지켜져 왔고, 부부간에도 이것은 지금까지 지켜졌다. 그래서 심한 싸움을 한 뒤에라도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나면 서로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아보며 화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간혹 눈 감아버리는 것, 즉 콩깍지를 쓰고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보자보자 하니까 보자긴줄 알아? 우리 부부가 요즘 간혹 서로에게 던지는 농이다. 상대편이 "가만가만 있으니까, 가마닌 줄 알아?"하면 상대방이 "보자보자 하니까, 보자긴 줄 알어?"하고 웃으며 응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충 무슨 말들을 하는지 안다. 무슨 문제 때문에 상대방이 불편해하고 있는지 읽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열세에 몰린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남자들처럼 돈을 팍팍 벌어다 주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고(이상하게도 빚지지 않을 정도로만 생긴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다. 게다가 몸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 같지 않고, 직장 일에 시달리다 보면 집에서 가사를 도와줄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아이들도 거반 아내 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아내 편이다 보니 나는 외톨이다. 그때 한마디 한다. "가만가만 있으니까, 가마닌 줄 알아?"

22년 동안 삶의 동지로 살아온 우리 부부, 젊은 청춘들의 사랑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가장 편안한 삶의 동지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서 아이들 독립시키고 단둘이 사는 것이 꿈인데, 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내 덕분에 손자 손녀들 좀 봐줘야 할 것도 같고, 아직도 정정하신 우리 부모님들 앞으로도 10년 20년 더 사실 것 같다. 그때면 우리 부부도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니, 둘만의 사랑 꽃피울 날 있을까 싶다. 그래도, 여전히 맛나게 산다.


태그:#결혼생활, #베이비 붐 세대,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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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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