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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볼로냐 경제모델의 비밀이다. 인구 40만이 채 안 되는 이탈리아 북동부 중소도시 볼로냐. 1970년대 경제위기와 불황 속에 한때 빈민의 도시로 전락하기도 했던 곳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대신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오늘날 볼로냐를 이끌었다. 일부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도 볼로냐가 던지는 시사점은 많다.

경제전문가와 협동조합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볼로냐 취재팀은 농업을 비롯해 소비자, 건설 등 각 분야 협동조합과 기업 등을 방문했다. 또 사회적 경제의 권위자인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볼로냐대학) 등 주요 전문가들의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편집자말]
 노숙자들의 저녁을 챙겨주고 있는 안드레아 몰리나르(Andera, Molinard). 그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이 노숙자 센터를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라 루페>의 직원이다.
 노숙자들의 저녁을 챙겨주고 있는 안드레아 몰리나르(Andera, Molinard). (사진 오른쪽) 그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이 노숙자 센터를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라 루페>의 직원이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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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정리 : 이승훈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대충 묶어 올린 머리, 민소매 티셔츠와 힙합 바지 차림의 안드레아 몰리나르(Andera Molinard), 볼로냐 시 외곽의 한 노숙자 센터에서 만난 그는 센터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센터를 찾은 노숙자들의 저녁 식사를 챙기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이 노숙자 센터는 몰리나르의 일터다. 그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 <라 루페>(La Rupe)에 속해 있는 직원이다. 몰리나르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라 루페>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1주일에 일하는 시간은 평균 30시간, 낮에는 주로 노숙자들의 일자리 찾기와 직업 교육을 돕고 밤에는 이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시설에서 실무를 담당한다.

노숙자 자활 돕는 젊은이들, 직업 만족도도 높아

몰리나르가 받는 임금은 시 정부에서 나온다. <라 루페>는 시로부터 노숙자 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그 대가로 일종의 용역비를 받아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시설을 운영한다. 시가 직접 나서기보다 전문성을 갖춘 민간 부문을 통해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몰리나르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모두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서 노숙자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며 "임금 수준도 일반 기업체에 비해 낮지 않아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센터를 찾는 노숙자들도 마찬가지로 만족도가 높았다. 이곳에 둥지를 튼 노숙자만 63명. 이들 중 상당수는 알콜이나 마약 등 약물 중독 문제도 가지고 있어 사회적인 보호가 절실한 상황이다.

2층으로 된 센터 건물에는 침대는 물론 TV가 설치된 휴게실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 그리고 자동세탁기까지 비치돼 있다. 노숙자들이 생활하면서 기본적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은 갖췄다.  

2개월 전 이곳으로 온 중년의 죠반니 델라 포르타(Giovani della Porta)는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것은 전혀 없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트럭운전사였던 그는 2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으면서 일자리를 잃고 노숙자 신세가 됐다. 가족들은 이탈리아 남부 살레르노에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알리는 게 싫어 도움을 받는 것도 포기했다.

죠반니가 현재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은 일자리. 그는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장애인을 고용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에 지원을 하고 있다"며 "시켜만 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은 이곳에서 최대 9개월 동안 머물면서 일자리를 찾는 등 자활에 나서게 된다. 몰리나르는 "노숙자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본인의 의지가 강한 경우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자립에 성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회적 협동조합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노숙자 센터에는 침대는 물론 TV가 설치된 휴게실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 그리고 자동세탁기까지 비치돼 있다. 노숙자들은 이곳에서 저녁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노숙자 센터에는 침대는 물론 TV가 설치된 휴게실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 그리고 자동세탁기까지 비치돼 있다. 노숙자들은 이곳에서 저녁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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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사회적 협동조합은 주나 시 정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취약 계층이 필요로 하는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이 제공하고 있는 사회적 서비스에는 보육, 급식, 교육, 간병, 장애인 돌봄 서비스, 노숙자 자활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돼 있다. 

사회서비스 제공 뿐 아니라 장애인이나 노약자, 전과자, 마약중독자 등 취약 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 같은 형태의 협동조합은 전체 고용인 중 30% 이상이 취약 계층으로 채워져 이들의 고용 안정을 돕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빈곤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 자선 조직이 뿌리였다.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지가 취약하고 가족이 사회서비스 공급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역할이 복지 확대에 결정적이었다. 특히 볼로냐 지역에서는 1974년부터 고령화,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 등으로 복지와 보육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본격적인 발전기를 맞았다.

제도적 뒷받침도 뒤따랐다. 1991년 사회적 협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 사회적 협동조합의 법적 지위가 확립됐다. 현재 사회적 협동조합은 이탈리아 전체 사회서비스 지출의 13%에 해당하는 17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볼로냐 지역에서는 민영화한 사회서비스의 60% 이상을 협동조합이 제공하고 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집권당인 민주당의 차기 볼로냐 시장으로 유력한 마우리죠 체베니니(Maurizio Cevenini) 주 의원은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높아지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협동조합이 사회적 양극화를 줄이는 효과적인 완충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복지, 그리고 일자리

 '빨간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도시 전체에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중세 르네상스양식의 건물들을 가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19세기이후 좌파 정치 성향을 보이면서, 자본주의 보다 여전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19세기 이후 좌파가 정치적 주류를 형성한 볼로냐에서는 민영화된 사회적 서비스의 60% 이상을 사회적 협동조합이 제공하고 있다. 더 적은 비용으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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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민간 부문에서 사회서비스 제공에 나서는 시스템의 장점은 정부가 직접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관료제의 비효율성이나 비전문성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공무원 확충 등 정부 비대화를 막으면서도 사회복지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또 기업으로서 정부가 나서지 않는 사회서비스 대상을 발굴해 새로운 복지 영역을 개척하는 데도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더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협동조합 직원들의 인건비가 공무원 인건비의 70% 수준이라 민간 부문에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더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은 "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기업은 국가보다 더 효과적으로 새로운 복지 수요를 발굴하고, 다양한 수요자에게 복지를 전달할 수 있다"며 "국가가 정치적 이유로 복지 서비스 공급을 정체시키거나 줄일 때 시장을 통해 그 빈자리를 메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2006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됐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미미하다. 참여정부는 2006년 발표된 <비전 2030>에서 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성장동력 확충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등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있어 민간의 역할 확대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사회적 기업들은 그 수도 적을 뿐 아니라 대부분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취약계층에게 단순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양극화·고용 위기의 대안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도 사회서비스 공급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 영역에서 사회적 서비스 공급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성장률이 높아져도 고용은 늘지 않고 그만큼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악순환 구조에 사회적 기업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은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경제성장을 했듯이 사회서비스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사회적 기업은 취업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고, 제도적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공공서비스를 모험적으로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극화와 고용위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또 "사회적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정부는 복지정책의 큰 틀만 짜고 전달과 기획, 실행을 모두 사회적 기업을 통해서 할지, 정부가 모든 기획을 하고 단순 실행만 사회적 기업에 맡길지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현지 취재 : 김종철 기자(팀장) 이승훈 기자, 편집 자문 : 정태인 박사(경제평론가), 신성식 경영대표(아이쿱 생협), 정원각 사무국장(아이쿱 생협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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