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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천넌의 신화, 앙코르 와트를 가다>
 책 <천넌의 신화, 앙코르 와트를 가다>
ⓒ 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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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마하바라타' 안에 있나니,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소 신화에 관심이 있는 편이지만 힌두교의 신화 '마하바라타'는 금시초문이다. 이런 신화가 있다는 것도 새로운데, 인도에서 시작된 이 신화가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벽 부조의 기본 스토리라는 사실은 더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머나먼 인도에서 시작한 이 신화가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이기에 한 왕국의 거대한 건축물에까지 묘사가 되었을까?

책 <천년의 신화, 앙코르 와트를 가다>(임헌갑 지음, 이가서 펴냄)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해온 앙코르 와트 안내서와 무척 다르다. 다른 캄보디아 여행서가 앙코르 와트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이 책은 신화적 측면에서 독특한 시각으로 앙코르 와트를 다룬다.

책의 서문은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말로는 앙코르 와트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말로는 앙코르 와트의 여신상을 몰래 빼돌리다가 문화재 불법 반출 혐의로 체포당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왕국의 멸망과 함께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한 채 정글 속에 버려져 600여 년간 깊은 잠에 빠졌던 앙코르 와트는 프랑스의 동식물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발견된다. 정열적인 탐험가였던 앙리 무오는 사재를 털어 여행하는 동안 자기가 본 유적들에 대한 아름다운 도면을 작성하고 채색화를 제작했다.

"나는 지금 막 보고 돌아온 멋진 건축물에 대한 황홀한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아주 웅장한 유물이 존재한다는 것, 서양의 고대 문명이 우리에게 남겨 준 것 이상으로 완벽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유적이 아시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둘러 알리고 싶다."

식민지 확장 시절, 인도차이나를 보호령으로 결정한 프랑스는 베트남 하노이에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예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극동학원을 설립한다. 이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파견되어 연구를 하고 유적을 발굴하면서 효과적인 연구를 벌였지만, 한편으로는 씨엠립 주민들이 타프롬 유적을 감싼 나무뿌리 제거에 반발하는 바람에 고생도 했다.

주민들의 반대로 지켜진 나무뿌리들은 유적을 파괴하며 자라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적을 감싸고 함께 존재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철학적 화두를 제시하곤 한다. 한때 최고의 영광과 번영을 구가했던 앙코르 왕조 역시 기간을 비켜가지 못했던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바람과 먼지로 돌아가리라.

앙코르 와트는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바탕으로 하여 우주의 축소판 모형을 하고 있다. 사원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중앙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며 그 외곽에 돌을 깎아서 쌓아 올린 성벽은 세상을 에워싼 산맥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시 사원 전체를 품에 안은 형태로 만들어진 커다란 인공 연못인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뜻하고 있다.

앙코르 와트의 부조 중에는 지옥의 풍경도 묘사되어 있다. 밧줄에 코가 꿰어 끌려가는 사람, 사지에 톱질을 당하는 사람, 형틀에 묶인 채 전신에 못이 박힌 사람 등 저자는 이 풍경이 비록 조각이지만 살벌하기 짝이 없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형벌 가운데 일부는 실제 앙코르 시대에 행해졌다고 하니, 인간 군상의 끔찍한 비극성이 느껴진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회랑을 장식한 68개의 가짜 창문들이다. 일반 건축물에서 창문은 원래 채광이나 통풍을 위해 다는데 앙코르 유적과 같은 석조 건물은 내벽에 창문과 같은 구멍을 만들면 충격과 하중을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석조 건축의 취약점을 보완하면서 단조로운 벽면에 시각적 변화를 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 가짜 창문이다.

앙코르 와트를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풍경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중앙 신전에서 즐길 수 있는 저물녘의 일몰 풍경이다. 여기서 서쪽 정면으로 바라보면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참배로가 눈에 들어오고, 인공 연못과 도서관 등 정확하게 좌우로 대칭을 이루어 서 있는 앙코르 와트 전체가 웅장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앙코르 톰에는 미소를 띤 커다란 두상들의 행진으로 압도당하는 풍경이 있다. 불교문화의 번성으로 사면불상의 얼굴들이 거대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유럽의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은 이를 두고 '소름 끼치는 악마의 얼굴'이라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사면 불상이 보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비춰지는 듯하다고 평가한다.

"나는 갑작스러운 공포감에 휩싸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두상의 얼어붙은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미소도 보았다. 그런 미소가 셋, 다섯, 열 아니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 거대한 눈들이 사방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얼굴들은 반쯤 감은 눈, 불가해한 미소와 자비의 표정을 내보이며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앙코르의 순례자>라는 책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구절이다. 그만큼 앙코르 와트는 각양각색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름도 많은 이들이 앙코르 와트를 찾았을 것이다. 여행의 동기야 어떻든, 모든 이들의 마음에 이 어마어마한 공간이 무지개 빛깔의 신비와 환상으로 남길 바란다.


천 년의 신화, 앙코르 와트를 가다 - 앙코르 문화유산 답사기

임헌갑 지음, 이가서(2009)


태그:#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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