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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오후 4대강 사업이 진행중인 경기도 여주군 강천보 공사현장 부근에 강 바닥에서 퍼낸 모래가 수미터 높이로 쌓여 있고, 준설토 적치장 주위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달 6일 오후 4대강 사업이 진행중인 경기도 여주군 강천보 공사현장 부근에 강 바닥에서 퍼낸 모래가 수미터 높이로 쌓여 있고, 준설토 적치장 주위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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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나는 관상용 자연에 익숙하다. 우레탄이나 보도블록 등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보기 좋게 배열된 나무, 꽃, 그리고 인공적으로 조성된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 등에 나는 길들여져 있다.

태생이 도시가 아님에도 원시 그대로의 자연에 대한 동경이 별로 없다. 간혹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곤 하는 TV의 자연 다큐멘터리조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손에서 리모컨을 놓고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밀림 또는 북극의 신비한 광경에 감탄할 때, 그곳까지 가기 위해 감내해야 할 갖가지 육체적 고통들을 먼저 생각한다. 수풀의 억센 힘을, 온갖 벌레들의 왕성한 생명력을 관상용으로 순치시켜 한 옆으로 밀어 놓은 산책로 이외로 걷는 불편함을 감내한 적이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관상용 자연이 최대한 원시에 가깝기를 바란다. 가장 편리하고 깔끔한 방법으로 야생에 가장 가까운 호랑이를, 꽃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욕심에 나는 익숙해 있다.

이때 나는 거만해진다. 한강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보는 강물은, 호수공원을 걸으며 보는 나무들은, 또는 청계천의 직선 수로를 따라 가면서 보게 되는 물고기들은 나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덜기 위한 잠시 잠깐의 소모품에 불과하다. 자연 소모품들은 철저히 돈과 상관관계를 가진다.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할수록 보다 세련된 관상용 자연 소모품을 소비 할 수 있다. 보다 많은 돈을 쓰고 보는 자연 소모품일수록 나는 그 앞에서 거만해진다. 자연 소모품을 접하는 길에선 걸음이 잘 멈춰지질 않는다. 나를 지우고 내 앞에 펼쳐진 나 이외의 것들에게 몰입하지 못한다. 

관상용 자연에 익숙한 인간, '강'에서 야성을 보다

4대강정비사업 이후 낙동강 6곳의 부유물질 조사 결과 이전보다 최대 16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낙동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준설작업 모습.
 4대강정비사업 이후 낙동강 6곳의 부유물질 조사 결과 이전보다 최대 16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낙동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준설작업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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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과 금호강이 합수하는 유역의 습지로 들어가는 길은 불편했다.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수풀이 앞서 가는 사람들을 자꾸 가리고, 가시를 가득 곤두세운 이름 모를 나뭇가지들이 발목에 엉키기 시작할 때 나는 후회했다. '괜한 짓을…… 한강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 볼 수 있는 것을, 아니면 식물원에라도 가면 되는 것을 굳이 뭐 다를 게 있다고.'

여름의 한복판, 누군가 습지에 들어갈 때 낭패 보지 않을 복장이라고 알려 준 대로 구색을 갖춰 입은, 긴 바지와 목까지 가린 긴팔 옷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기와 땀이 후회와 함께 온몸에 흘러 넘쳤다.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풀 위를 밟고 나아가는 조심스런 걸음걸이가 조금씩 빨라질 무렵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야생화들이 있었다. 짤막한 감탄사가 입에서 나도 모르게 툭하고 떨어졌다.

기생초, 들국화 그리고 굳이 이름을 몰라도 좋을 꽃들. 노랗거나 그렇지도 않은, 자주색이거나 꼭 그렇지도 않은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색을 가진 꽃들이었다. 야생화들의 낯선 아름다움은, 내가 걷고 있는 습지가 인간의 발자국이 아닌 고라니, 수달, 멧돼지의 발자국으로 길을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의 길 사이사이 관상용으로 잘 정리되고 개발되어 순치된 꽃이나 나무, 강물에게서는 느끼기 힘든 야성(野性)! 그것은 내 언어로는 감히 다 밝힐 수 없는, 다가설 수 없는 자연의 이면이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벤치를 만들고, 인간을 위한 가로등을 설치한 한강의, 청계천의 관상용 자연에게는 있지 않은 원시 자연의 은밀한 속내였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을 기꺼이 흘리며, 저 수풀 안 어디에서 짝을 짓고 있을 수달에게 방해라도 될까 조심스러워하며 살금살금 다가서야 비로소 엿볼 수 있는 속내였다. 속내를 간직한 자연 앞에서 비로소 나는 나를 낮출 수 있었다. 순치되지 않은 자연의 신비 앞에서 비로소 나의 앎이 알량해지고, 나의 세속적 욕망이 초라해졌다.      

나는 간혹 한강이나, 청계천을 걸을 때 누군가 이곳을 잘 만들었다 놓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강을 한강처럼 바꾸어 놓는 식의 4대강 정비 사업이라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한강은 한강 하나로 족하다. 청계천 식의 산책로는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자연을 소비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은 결국...

환경연합 활동가 3명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경기도 여주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후 이포보 부근 '대신 희망 장승공원'에서 '4대강 공사 중단과 대안기구 마련 촉구 이포 집회'가 시민단체와 야당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환경연합 활동가 3명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경기도 여주 이포보 공사현장에서 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후 이포보 부근 '대신 희망 장승공원'에서 '4대강 공사 중단과 대안기구 마련 촉구 이포 집회'가 시민단체와 야당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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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잠시잠깐 휴식을 취하고, 주변 곳곳의 가게에서 먹을 것, 마실 것 등을 사서 그 지역인들의 삶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자연의 속살을 도려내 관상용으로 만들어놓고 소비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4대강 홍보책자에 실린 거창한 조감도에서 강물은 그리고 강의 자연 생명들은 철저히 인간을 위한 개발 대상일 뿐이다. 조감도 옆에 실린 다음과 같은 문구는 현 정부의 4대강 정책이 얼마나 인간 중심의 가치관으로 실행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가 말하는 "환경과 문화가 만나 강과 하천이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아름다운 수변 도시"에는 인간의 돈을 위한, 인간의 문화를 위한 관상용 자연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연을 소비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은 결국은 인간을 더욱 거만하게 할 것이며, 그래서 더욱 인간을 피로하고 외롭게 할 것이다. 강가에서조차도 이것을 어떻게 개발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질투와 동경의 감정을 끊임없이 갖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동강 유역의 습지들 한복판을 절개하고 정부가 말하듯 21세기 경제가 흘러가게 한다면, 그곳에서조차도 돈의 물결이 출렁이게 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강을 만나고, 강과 이야기하며 나를 낮출 수 있을 것인가. 그때 우리는 인간의 역사 가장 먼데서 흘러오던 강물을, 강의 생명들을 박물관의 박제처럼 말려 놓고 그리워해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 장무령 기자는 시인입니다.



태그:#4대강반대, #문화예술인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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