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볼로냐 경제모델의 비밀이다. 인구 40만이 채 안 되는 이탈리아 북동부 중소도시 볼로냐. 1970년대 경제위기와 불황 속에 한때 빈민의 도시로 전락하기도 했던 곳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대신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오늘날 볼로냐를 이끌었다. 일부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도 볼로냐가 던지는 시사점은 많다.


경제전문가와 협동조합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볼로냐 취재팀은 농업을 비롯해 소비자, 건설 등 각 분야 협동조합과 기업 등을 방문한다. 또 사회적 경제의 권위자인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볼로냐 대학) 등 주요 전문가들의 심층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빨간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도시 전체에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중세 르네상스양식의 건물들을 가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19세기이후 좌파 정치 성향을 보이면서, 자본주의 보다 여전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빨간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도시 전체에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중세 르네상스양식의 건물들을 가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좌파 정치 성향을 보이면서 자본주의보다 여전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 김종철

관련사진보기


취재정리 : 정태인, 김종철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지난달 27일, 날씨는 쾌청했다. 선선하기도 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이 글을 읽을 독자들께는 정말 미안하지만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이탈리아 취재팀은 모두 "초가을 날씨 같다"며 즐거워했다. 물론 이탈리아 날씨가 원래 이런 것은 아니다.

"밀라노는 해가 하나 반, 로마는 해가 둘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작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아내의 말이다. 그 사이에 있는 볼로냐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온도만 높을 뿐 아니라 습도도 엄청나단다.

이는 취재팀이 이곳에 도착하기 하루 전만 해도 사실이었다. 40도를 오르내리면서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날 정도로 습한 날씨였다. 하지만 신통하게도 거짓말처럼 온도가 30도 아래로 내려갔고 습기도 날아가 버렸다. 한낮의 햇살은 제법 따갑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했다. 더구나 이틀 연속 새벽에 비가 쏟아지고 아침에는 개어 바람이 불면 오싹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볼로냐는 고도(古都)다. 중세의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다. 콘크리트 덩어리 광화문 광장을 다 뜯어내고 옛 육의전 거리를 다시 살려 놓으면 이 모습일까? 차가 다니지 못하는 샛길도 많고 건물마다 처마처럼 나와 있는 회랑이 구불구불 이어져서 그 밑으로만 산 정상 가까이 있는 성당까지 갈 수 있다.

볼로냐대학은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이다. 취재팀은 이날 오전 이 학교 경제학과 자마니교수(Stefano Zamagni)를 만나러 갔다.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에 심취해서 구글로 각종 논문을 찾아 헤매다가 조우한 당대 최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협동경제(cooperative economy), 연대경제(solidarity economy)의 기원을 르네상스 시대, 이 지역에서 꽃핀 시민적 인문학(civic humanism)에서 찾는다.

아담 스미스의 원래 통찰대로 시장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이기심과 함께 도덕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협동조합이야말로 이런 연대의 정신이 철저하게 스며들어 있는 제도이다. 이같은 정신은 일반적인 자본주의기업에도 녹아들어가 경제 전체가 평등하면서도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얘기다. 따뜻한 인간애가 살아 있으면서도 혹독한 경쟁 속에서도 늠름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실제로 인구 400만 명의 에밀리아 로마냐 주(state, 우리의 도에 해당)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에 이른다. 더구나 대기업도 거의 없이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이뤄져 있다. 과연 이런 경제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1950년대 이탈리아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이었던 에밀리아 로마냐가 어떻게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가장 잘사는 지역으로 꼽히게 되었는가? 한국에서는 시장경제의 군더더기 취급을 받는 협동조합이 그렇게 엄청난 존재란 말인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의 석학인 스테파노 자마니 볼로냐대학 경제학과 교수. 그는 협동경제(cooperative economy), 연대경제(solidarity economy)의 기원을 르네상스 시대에 이 지역에서 꽃핀 시민적 인문학(civic humanism)에서 찾는다.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의 석학인 스테파노 자마니 볼로냐대학 경제학과 교수. 그는 협동경제(cooperative economy), 연대경제(solidarity economy)의 기원을 르네상스 시대에 이 지역에서 꽃핀 시민적 인문학(civic humanism)에서 찾는다.
ⓒ 이승훈

관련사진보기


따뜻한 인간애가 살아 있으면서도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경제

"미시경제학 교과서도 쓰셨네요"라고 묻자, 자마니 교수는 슬그머니 웃으면서 그 옆에 있는 책을 가리킨다. 유럽 경제사다. 그는 에밀리아 모델(Emilian Model, 이탈리아 경제학자 브루스코가 1983년 케임브리지 저널에 쓴 논문에서 이 지역의 사회경제에 대해 붙인 이름이다)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간여의 짧은 인터뷰(그는 인터뷰 중에도 걸려오는 전화를 자주 받아야 할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다ㅠㅠ)였기 때문에 짧은 그의 '정답'에 독자를 위해 주석을 달 수밖에 없다. 

-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협동경제"라는 말도 쓰고 "연대경제"라는 말도 쓰는데...
"연대경제란 분배가 공평한 경제, 즉 결과를 표현하고 협동경제란 매니지먼트, 즉 경제 과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협동을 통해 경제를 운영하고 그 결과 평등한 사회이다."

이런 꿈같은 경제가 가능한가? 곧바로 "협동조합은 왜 희귀한가"라는 화두를 놓고 지난 30여 년간 경제학자들이 논쟁 끝에 내놓은 결론을 들이밀었다.

- 자본주의 기업과 비교할 때 협동조합기업(노동자관리기업)은 자본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우수한 인력이 오지 않으며 기술혁신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협동조합 중소기업의 숫자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에선 어떻게 이런 문제를 극복했는가?
"자본은 우선 조합원 스스로 해결한다." (물론이다. 협동조합에 가입하려면 몇 백만원에서, 많게는 천만원이 넘는 가입비(출자금)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동자들이 이렇게 돈을 낸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에 모이는 돈은 기껏 몇 억원에 불과할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하고 채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도 초기에는 협동조합에 선뜻 거액을 대출해 주는 은행이 없어서 훗날 협동조합은 자체적인 금융기관을 갖게 된다.)

"제도적으로 중요한 것은 1947년 바세비법(Basevi law)에서 비(非)분리자산(indivisible reserve)을 인정하고 그 부분에 관한 세금을 면제하기로 한 것이다." (만일 조합원 총회에서 이윤 중 20%를 유보하기로 하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협동조합에 재투자 기금으로 쌓이는 것이다. 시간관계상 자마니 교수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1992년 모든 조합이 이윤의 3%를 갹출해서 발전기금을 만들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것도 협동조합의 자본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레카쿠프(Legacoop) 등 협동조합 연합체는 이 발전기금을 새로운 협동조합 설립, 어려운 협동조합에 대한 대출, 일반기업 인수 등에 사용한다.)

"협동조합이 미래의 지배적인 경영형태가 될 것"

- 협동조합은 가장 높은 임금과 낮은 임금 간의 격차가 적기 때문에(보통 6배 이상 받지 못하도록 한다) 우수한 고급 인력은 협동조합을 꺼릴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협동조합에선 노동자가 자본을 통제한다. 노동자들 스스로 경영에서 완전한 자유를 만끽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협동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마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명령을 기본으로 하는 위계질서 체계인 기업에서 자유를 누리다니... 협동조합은 노동자 스스로 출자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1인 1표의 방식으로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자유-어쩌면 골치아픈 경영을 떠맡는 일이기도 한데-를 누리기 위해서 고액 연봉을 포기할까?)

"자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에밀리아 로마냐는 중세시대부터 그런 정신이 가득하다. 그래서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대가도 협동조합이 미래의 지배적인 경영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일부 생협이 악전고투할 뿐 협동조합의 전통이 말라붙어버린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현실이다. 참고로 이야기 중에 나온 밀은 이렇게 말했다. "(협동조합 등) 결사체 형태(the forms of associations)는, 인류가 계속 발전한다면 결국 세상을 지배할 것임에 틀림없다... 노동자 자신의 결사체가 평등과, 자본의 집단적 소유를 기초로, 스스로 선출하고 또한 바꿀 수 있는 경영자와 함께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형태이다"라고.

- 강력한 이윤동기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술혁신이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혁신에는 생산물 혁신(product innovation), 과정 혁신(process innovation), 조직 혁신(organizational innovation)이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각 산업분야는 이들 중 어떤 혁신인가를 끊임없이 이뤄내고 있다. 예컨대 기계협동조합은 생산물 혁신에, 건축혐동조합은 과정 혁신에, 금융과 소비자협동조합은 조직 혁신에 뛰어나다." (실제로 에밀리아 로마냐의 기업은 이탈리아 전체의 7%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특허의 30%를 가지고 있다.)

- 그래도 실리콘 밸리와 같은 돌파혁신에는 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박사과정에서 실리콘 밸리를 연구했다는 점도 슬쩍 덧붙였다.)
"사실이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적 주식 거래소(social stock exchange)를 만들려고 한다. 여기서 사회적 주식(social equity)이 거래될 것이다. 나와 몇 명의 학자가 프로그램을 거의 다 만들었다. 이런 시장이 만들어지면 실리콘 밸리와 같은 거대 혁신도 가능해질 것이다."

"사회적 주식 거래소를 만들고, 사회적 주식 거래할 것"

 볼로냐대학은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이다. 지동설을 주창했던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해 '신곡'을 썼던 단테, 움베르토 에코 등이 이 학교를 거쳐갔다.
 볼로냐대학은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이다. 지동설을 주창했던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해 '신곡'을 썼던 단테, 움베르토 에코 등이 이 학교를 거쳐갔다.
ⓒ 김종철

관련사진보기

이건 처음 듣는 소리다. "자본주의 기업의 주식시장에 해당하는 협동조합의 회원권 시장(membership market)을 의미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니다"고 했다. 그 내용을 소개하는 논문이 있으면 달라고 했더니 불행하게도 이탈리아어로 된 것은 있지만 영문으로는 아직 없다고 했다. 그와 동료들이 완전한 자신감을 얻어 영문으로 논문을 쓸 때를 기다릴 수밖에... 단 영국의 전직 장관도 그런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니 그쪽에서 자료를 구하면 더 빨리 어떤 모습일지 독자에게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것이다.
- 실리콘 밸리에서는 스탠포드대학과 버클리대학이 기술혁신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볼로냐대학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얘긴 읽어보지 못했다. 왜 그런가?
"스탠포드는 사립이고 버클리는 주립대학이다. 반면 볼로냐대학은 국립이다. 기업과 관련한 일을 하려고 해도 관료주의라는 벽을 통과해야 한다." (이건 의외의 대답이다. 취재팀 통역을 맡았던 김현숙씨에 따르면, 자마니 교수는 사전에 이와 유사한 질문에 대해 "대학이 왜 그런 일을 하느냐?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고 맞받았다고 한다. 인문학의 전통이 강한 것도 볼로냐 대학이 그런 '속된' 역할을 하는 것을 막았는지도 모른다.)

- 에밀리아 로마냐는 공산당, 그리고 후신인 좌파민주당이 100년을 지배해 왔다. 이런 정치적 상황과 협동조합의 발전은 어떤 관계인가?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은 독특하다. 붉은 협동조합, 하얀 협동조합, 그리고 녹색 협동조합이 있는데 각각 공산당, 기독교민주당, 공화주의당(republican)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의 협동조합 연합체가 레가쿠프(공산당), 콘프쿠프(confcoop, 기독교사회당), 아지치(Agci, 공화주의당)이다. 지금은 레가쿠프와 콘프쿠프가 서로 협력하고 있다. 어쨌든 지방정부가 협동조합을 육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협동조합이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까 말한 바세비법이 특히 중요하다."

외국의 학자들은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지의 학자나 관계자들은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더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국가로부터 자율성은 협동조합의 원칙 중 하나이다.

그러나 1947년에 제정된 헌법 제45조에 협동조합의 역할이 규정되어 있을 정도로 정부나 정치권이 친협동조합적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자마니 교수가 덧붙였듯이 워낙 협동조합원이 많으니까(볼로냐 시민의 반 이상이 이러저러한 협동조합에 속해 있다) 이들의 표를 의식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때 한 노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는 자마니 교수에게 신이 나서 뭔가 떠들다가 급기야 우리에게도 자랑을 했다. "유누스 알지요? 방금 유누스 재단과 이 지역에 마이크로크레딧 은행을 설립하기로 계약했어요"라고 말이다. 무함마드 유뉴스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의 설립자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소액대출을 해주면서 빈민 퇴치 운동을 벌였던 사람이다. 그는 그 공로로 지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사회적 경제의 총아인 이 지역에 아직도 마이크로크레딧이 없다는 게 오히려 떨떠름한 나에게(이 지역은 그야말로 자신의 전통 속에서 모든 걸 만들어 왔는데, 마이크로크레딧의 전통은 없었나 보다) 그녀는 그야말로 엄지손가락만한 명함을 주었다. 그녀는 볼로냐대학의 치리그 미오 교수이다.

"사회적 경제가 유럽에서 핵심 제도로 자리 잡을 것"

그녀가 나가고 자마니 교수도 신난다는 듯 말을 이었다. "2009년 2월 19일에 통과된 유럽의회의 결의(resolution of European Parliament)를 읽어 봐라.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사회적 경제가 유럽의 핵심적인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에밀리아 로마냐 모델이 적어도 유럽에서는 확실하게 중요한 체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 어제 방문한 테스토니라는 업체는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유연생산체계 속에서 세계적인 명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협동조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에밀리아 모델의 경쟁력은 일반 클러스터와 같은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협동조합 자체가 이 모델의 필수적 구성요소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협동조합이 이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미묘한 질문이었다. 그는 의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맞다. 협동조합이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들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 경제가 위기를 만나면 언제나 노동자들은 해고의 위협을 받는다. 위기 때가 되면 협동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노동자들이 협동조합 형태를 선택할 것이다."

- 에밀리아 모델에서 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금융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즉 컨소시아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달라.
"컨소시엄, 즉 협동조합을 이어주는 지역별/산업별 네트워크는 작은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서도 각 단위 조합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들 네트워크는 자본의 조달이라는 면에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정보를 유통시키고 혁신을 공유하도록 해 준다."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에선 노동자가 자본을 통제한다. 노동자들 스스로 경영에서 완전한 자유를 만끽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협동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에선 노동자가 자본을 통제한다. 노동자들 스스로 경영에서 완전한 자유를 만끽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협동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김종철

관련사진보기

자마니 교수의 설명이 더 짧아졌다. 시계를 자꾸 들여다본다. 협동조합의 네트워크는 지역별/산업별로 교차하는 다층적 조직이며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소 협동조합들이 세계적 대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들 네트워크의 역할에 대해서는 별도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 에밀리아 로마냐 주정부는 지역개발기구인 에르벳(Ervet)을 세웠고 리얼서비스센터(Real Service Center)를 운영했다. 그 성과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에르벳은 협동조합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정부기구이다. 이 기구와 산하 리얼서비스센터는 지역 내의 모든 기업들과 연구기관, 대학, 중소기업협동조합연합(CNA)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중소기업들이 접하기 어려운 기업 관련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의미가 있다."

취재팀은 자마니 교수 인터뷰가 끝난 후, CNA와 리얼서비스센터 중 한 곳을 방문하기로 했으니 이 부분도 추가 질문 없이 넘어갔다. 인터뷰를 약속한 한 시간에서 이미 15분이 지났다.

- 최근 유럽 남부국가들의 재정위기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탈리아도 이들 국가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협동조합은 어떤가?
"(이탈리아는) 경제위기 상황이 아니다. 그건 언론이 잘못 알고 하는 소리다. 아직 한 명의 해고자도 없고, 단 하나의 협동조합도 파산하지 않았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를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대안이 될 수 있다"

- 경제위기보다는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그건 오래된 문제다. 경제학자라면 이탈리아를 위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협동조합은 문제가 거의 없다." (실제로 여기서 만난 이탈리아 사람들은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협동조합의 타락(degeneration), 즉 자본주의 기업화를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위험이 실제로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협동조합은 역사가 깊고 에밀리아 로마냐에는 시민정신이 충만하다. 중세시대에 이미 마틸드 카노사(Matilde Cassno) 부인은 땅의 공유를 선언하고 생산물을 나눠 가졌다. 나는 이런 사회에서 협동조합이 자본주의기업으로 타락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경제를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에 대항한다(against capitalism)거나 대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대안(alternatives)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시장경제 안에는 자본주의적 경제, 공공경제와 함께 협동조합경제가 공존할 수 있고 사회적 경제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에는 협동조합의 전통이 거의 없다. 자마니 교수의 얘기는 에밀리아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오랜 전통이라는 것 아닌가? 짧은 시간에 에밀리아 로마냐와 같은 경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2주 전에도 캐나다의 학자와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다녀갔다. 매년 여름에 2주 동안의 협동조합 코스를 개설하는데 이들은 매년 빠지지 않고 온다. 실제로 밴쿠버 등지에서는 여기서 배운 것이 현실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책과 논문으로 알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이 지역의 문화를 느끼고 체득하는 것이다. 밥도 같이 먹고, 같이 토론하면서 알아 나가야 한다."

이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단시간에 모든 걸 해결하는 묘약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문화라니... 이건 더 절망적이다. 물론 한국에도 두레의 정신이 있고 일제 침략기에는 전국에 수백 개의 소비조합이 있었으며 해방 후에는 온갖 협동조합이 비 온 뒤 죽순처럼 솟아났었다. 그러나 일제 총독부에 의해 해산되고 한국전쟁으로 맥이 끊겼다. 게다가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이 모든 것을 획일화했고 또 이제 그마저 사라졌다.

맨 밑바닥부터 연대와 협동의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19세기 중반부터 협동조합의 전통이 있었다지만 실제로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1950년대부터이다.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만들고 가꾸는 데 발벗고 나선다면 우리 아이들 세대부터는 따뜻하고 평등하면서도 경쟁력에서 전혀 뒤처지지 않는 사회를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주위의 생활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에밀리아 로마냐와 같은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얘기를 했다. 당연히 수박 겉핥기에 그쳤다. 미묘한 이론적 문제는 꺼내지도 못했다. 못다 한 질문은 이메일로 보내겠다고 하니 "대환영"이라는 듯 명함의 이메일 주소를 짚어 준다. 문을 나서면서 다음 행선지는 어디냐고 묻는다. 이어 "내 연구실 문을 열어놓고 가겠다. 여기서 기다려라. 나는 사람을 믿는다(I trust you)"라며, 문을 활짝 열어놓고 총총히 계단을 내려간다. 역시 문제는 신뢰인가?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현지 취재 : 김종철 기자(팀장) 이승훈 기자, 편집 자문 : 정태인 경제평론가, 신성식 경영대표(아이쿱 생협), 정원각 사무국장(아이쿱 생협연구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많은 분들께 배우고, 듣고, 생각하는 고마운 시간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