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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동이>.
 MBC 드라마 <동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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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에서 천민 출신이란 핸디캡을 극복하고 정1품 후궁에 오른 최 숙빈(숙빈 최씨, '동이'는 실명 아님)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MBC 드라마 <동이>.

우여곡절을 거쳐 궁녀가 된 주인공 동이(한효주 분)는 2가지 측면에서 요즘 꽤 잘 나가고 있다. 자칫 영구미제가 될 뻔한 사건들을 척척 해결하는 '에이스 감찰궁녀'라는 점이 한 가지고, 지존인 숙종 임금과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신데렐라 후보'라는 점이 나머지 한 가지 측면이다.

드라마 속 동이가 상승무드를 타는 데에는 몇 가지 비결이 있다. 대담성, 판단력, 부지런함, 영리함, 붙임성, 악착같음 등등이다. 동이는 이런 특성들을 발판으로 신분적 제약을 뚫고 숙종의 후궁이 되고 나아가 자기 아들 영조를 '포스트 숙종'으로 키워나가게 될 것이다.

숙종·경종·영조 시대에 생산된 사료들을 볼 때, 실제의 최숙빈도 그런 특성들을 상당 정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드라마 속 동이는 말을 거침없이 잘하는 데에 비해, 실제의 최 숙빈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을 최대한 아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 숙빈과 숙종이 만나던, 그 운명적 순간

위의 특성들은 '최 숙빈 신화'의 각 단계에서 최숙빈이 각각의 도약을 일궈내는 데에 기여했다. 그중에서도 최 숙빈 신화의 제1막인 숙종과의 첫 만남에서 빛을 발한 특성은 '대담성'이라는 요소였다. 평소에는 과묵하던 최 숙빈의 내면에 잠재된 대담성이 숙종 18년(1892) 어느 날 한밤중에 숙종 임금과 우연히 부딪히면서 그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숙종 18년(1892) 시점은 인현왕후가 죄인이 되어 궐에서 내쫓기고 그 대신 장 희빈이 중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 침방나인(바느질 궁녀)으로 근무하던 최 숙빈은 인현왕후의 시녀가 되었다가 왕후가 쫓겨난 뒤로 다시 침방나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궐내의 '봉제공장'에서 다시 예전처럼 '미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리즈의 열 번째 이야기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밤중에 궁궐을 거닐던 숙종은 조명이 유독 화려한 어느 궁녀의 방에 주목하게 되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이 방안을 몰래 엿보니, 웬 궁녀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그 앞에 꿇어 앉아 무언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숙종은 방문을 열어젖혔고, 그렇게 해서 최 숙빈과 숙종이 조우하게 되었다.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숙종이 방문을 열어젖힌 뒤의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을 통해, 우리는 최 숙빈이 그 순간에 얼마나 대담성을 발휘했는지를 알 수 있다.

방문을 열어젖힌 숙종은 "너 지금 뭐하냐?"고 물었다. 당시의 정황을 다룬 이문정의 <수문록>에서는 "선대왕(先大王, 숙종)이 매우 이상히 여겨 그 문을 열고 연유를 물어보았다"고 기록했다.

왕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최 숙빈의 '대담성'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한밤중에 잔칫상을 차려 놓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숙종이 묻자, 최숙빈이 자신과 인현왕후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한밤중에 잔칫상을 차려 놓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숙종이 묻자, 최숙빈이 자신과 인현왕후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 <수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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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누군가가 방문을 열어 젖히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임금의 얼굴이 보인다면, 웬만한 궁녀들은 기겁을 하고 놀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임금이 "너 지금 뭐하냐?"라고 물어보면, 아마 말을 더듬거리며 제대로 대답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최 숙빈은 마치 사전에 준비라도 해놓은 듯이 매우 침착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녀는 중전(폐비 인현왕후)의 시녀로서 특별히 총애를 받았습니다."

"너 지금 뭐하냐?"라는 질문에 대해 "네, 저는 지금 뭐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지 않고, 그는 자신이 인현왕후의 시녀였다며 자기소개부터 먼저 했다. 최 숙빈이 침착성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현왕후와의 관계를 밝힌 다음에 최 숙빈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은 중전의 탄신일입니다.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계시면서 죄인으로 자처하며 수라를 들지 않으시고 조석으로 드시는 것이라곤 거친 현미뿐입니다. 내일이 탄신일인데 누가 좋은 음식을 올리겠습니까? 소녀로서는 슬픔을 이길 수 없어서 이것을 차린 겁니다. 중전께서 좋아하시는 것들이지만 도저히 진헌할 길이 없어서, 마치 실제로 진헌하는 것처럼 소녀의 방안에 차려놓고 정성을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당시 인현왕후가 죄인이고 장 희빈이 중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대답은 사실상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인현왕후를 죄인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숙종이었다. 그런 숙종 앞에서 폐비를 두둔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숙종을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웬만한 궁녀 같았으면 이런 경우에 자기 부모님 생신이나 기일 등을 들먹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인현왕후의 생일을 들먹인 것은 최 숙빈이 보통 이상의 대담성을 소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 할 수 있는 위의 행위를 결코 '무모함'이라 표현하지 않고 '대담성'이라 표현한 것은, 최 숙빈의 행동이 평소에 축적된 고도의 상황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숙종은 '폐비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서인들의 상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숙종은 그런 상소들을 무시하곤 했지만, 계속 올라오는 상소문이 숙종의 심경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폐비의 탄신일을 기념하고 있다고 최숙빈이 대답하자, 숙종이 그로부터 감동을 받아 최숙빈을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다.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폐비의 탄신일을 기념하고 있다고 최숙빈이 대답하자, 숙종이 그로부터 감동을 받아 최숙빈을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다.
ⓒ <수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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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숙빈은 인현왕후전에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 숙종의 질문에 대해 "저는 지금 폐비의 탄신일을 축하하고 있습니다"라고 당돌하게 대답한 것은, '이렇게 말해도 숙종이 진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상황판단을 했다 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폐비에 대한 숙종의 마음이 바뀌고 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아직까지는 폐비가 죄인의 신분을 탈피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전을 쫓아낸 것은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임금에게 전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칭찬을 들을 가능성보다는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일이었다.

결국 최 숙빈의 대담성은 진가를 발휘했다. 숙종은 "죄인의 생일을 기념하다니! 이런 발칙한!"이라고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최 숙빈의 행동으로부터 신선한 감동을 받아 그를 가까이하게 되었다. <수문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임금이 그제야 생각해 보니, 다음 날이 정말로 중전의 탄신일이었다. 느끼는 바가 있어, 그 성의를 가상히 여기시고는 마침내 그를 가까이하셨다."

침방나인으로 바느질 생활을 하던 최 숙빈이 숙종과 친분을 맺도록 하는 데에 기여한 결정적 요소는 위와 같이 최 숙빈 특유의 대담성이었다. 판단력을 실행에 옮기는 에너지인 대담성이 그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최 숙빈 대담성 없었다면 영조대왕도 없었다

 드라마 <동이>.
 드라마 <동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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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 출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영의정과 동급인 정1품 빈에 오른 최 숙빈의 성공비결 중 하나가 대담성이라는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까?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남들이 놀 때 죽어라고 열심히 일하면 출세할 수 있었던 1980년대 이전과 달리,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죽어라고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후천적인 요인(노력·능력)보다는 선천적인 요인(부모·외모 등등)이 개인의 사회적 성취를 더 많이 좌우하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한국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신분이동 혹은 신분상승의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은 점차 '정체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 같은 사회풍조는 소극적인 사람들을 양산하기 쉽다.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자포자기를 하도록 만들기 쉬운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판단이 드는데도,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드는데도, '우리 집은 가난하고 나는 배경이 없으니까'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고 만다.

만약 내 자신에게서 그런 나약한 마음을 발견했다면, 숙종과의 첫 만남에서 진가를 발휘한 최 숙빈의 대담성을 항상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이 판단한 것을 과감히 행동으로 옮긴 최 숙빈의 대담성을 늘 기억하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또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대담하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나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은 어떨까.

한밤중에 지존을 만난 그 떨리는 순간에 대담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한국 역사에서 영조라는 걸출한 임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능력이 좋더라도 대담하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크라잉넛이 부른 <사노라면>에서는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라고 했다. '봉제공장'에서 열심히 '미싱'을 돌리던 젊은 날의 최 숙빈도 마음속으로 늘 그런 노래를 읊조리지 않았을까.

천민의 한계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모범을 보인 최 숙빈이 '정체된 사회'인 21세기 대한민국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 "대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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