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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다니는 촌동네 길 가에 창고를 빌려 운영하는 전시장 겸 도자기 작업장. 청자가 유난히 많았슴.
▲ 도자기 전시장 버스가 다니는 촌동네 길 가에 창고를 빌려 운영하는 전시장 겸 도자기 작업장. 청자가 유난히 많았슴.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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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고려청자 만드는 도공이 있다는데 같이 가 볼래요?"

평소 볼수 없었던 도자기 고려청자.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고 저처럼 서민들에게는 보기 드문 도자기. 아는 분이 고려청자를 만드는 도예가를 알고 있다니 이게 웬 일입니까? 그것도 울산에도 그런 분이 계시다니요?

저는 지체 없이 시간 낼 필요도 없이 당장 가보자고 했습니다. 어차피 저는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 된 상태라 할 일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남는 게 시간인지라 무료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습니다. 다행히 그분도 마침 오전 중에 짬을 낼수 있다고 하네요. 잘됐습니다. 오전 10시경 그분과 만나 바로 출발했습니다.

도공 선생이 사는 곳은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538번지'였습니다. 저는 울산에 40년 넘게 살아도 그 곳엘 처음 가보았습니다. 함께간 분 차를 타고 가서 그런지 갈 때는 얼마 안 가서 그곳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울산에서도 아주 깡촌 같았습니다. 산도 많고 들녁도 많고 집은 몇 채 없이 듬성듬성 있을 뿐이었습니다.

여의치 못해 도자기 전시장을 빌려쓰고 있는 중

길 가엔 도자기에 '전시장'이라 글이 쓰여진 것을 보니 이 곳인가 봅니다. 길 건너편엔 멋진 벽화와 함께 '세일도예'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 전엔 무슨 창고로 쓰이던 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술한 건물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그동안 도공 선생이 구워 낸 것으로 보이는 청자가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도공 선생은 우리가 들어 서거나 말거나 여전히 작업대에 앉아 도자기 빚는 일에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유난히 청자가 많았다.
▲ 도공 선생의 작품들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유난히 청자가 많았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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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시던 마님이 손님이 왔다고 하자 그제서야 하던 작업을 멈추고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도공 선생은 말 수가 적은 것 같았습니다. 뒤이은 설명은 모두 스스로 제자라고 하시는 옆에 계신 마님이 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은 경기도 이천에서 활동하시다 15년 전에 울산으로 오셨어요.  울산에 와서 네차례나 이사 다녔고 몇 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잡아 작업하고 있어요. 이곳은 창고로 쓰던 건물인데 현재 빌려 쓰고 있지요."

이번엔 말없이 앉아 작업에 열심인 도공 선생께 직접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 어떻게 해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는지요?
"아버님이 이천에서 옹기를 만드셨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흙을 가지고 놀았지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지금까지 흙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도공 선생은 저에게 명함 한장을 주었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세일(世一)도예 도예가 남궁선한

도공 선생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던 옹기공장에 가서 흙을 가지고 놀았답니다. 직접 아버지 흉내를 내며 옹기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갖가지 모양의 도자기류를 만들어 보였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남달랐던지 아버지는 아들을 말리지 않고 그냥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고 합니다.

손님이 왔다고 해도 작업에 몰입하여 모르고 있는 도공 선생
▲ 지금 이순간 오직 몰입 할 뿐이고~ 손님이 왔다고 해도 작업에 몰입하여 모르고 있는 도공 선생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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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후반 아버지가 하는 흙일이 싫어 잠시 가출을 합니다. 형님이 운영하던 구두공장에서 형님을 도우며 2년간 지냅니다. 2년 후 다시 흙이 그리웠고 도공 선생은 다시 아버지가 만지던 흙일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20대 초반부터 도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도공 선생은 고려청자 기법을 전문으로 구사하기로 유명한 무형 인간문화재 고 해강 선생을 찾아 갑니다.

"당시 해강 선생님은 경기도 이천에서 인간문화재셨어요. 고려청자의 맥을 잇는 유일한 분이셨어요. 저는 그분에게 고려청자에 대해 모든 기법을 전수 받았지요. 그분은 몇 해 전 돌아 가셨습니다."

도공 선생은 고려청자 기법에 이어 백자, 분청, 막사발에 대해서도 전수 받았다고 합니다. 청자 기법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청자 기법만 완전 터득하고 나면 다른 도자기류는 만드는 것은 그만큼 쉽게 익힐수 있다고 합니다. 도공 선생은 이어 말했습니다.

초벌 구이후 유약을 바르고 다시 한번 더 굽는다고 함.
▲ 초벌 구이후 초벌 구이후 유약을 바르고 다시 한번 더 굽는다고 함.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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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만들기는 흙, 물, 불, 재료, 유약과 같이 모든 게 잘 맞춰져야만 하지요.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 밑에서 제대로 배워야 제대로 된 청자를 만들수 있습니다."

청자를 만들수 있는 흙은 따로 제조된다고 합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청자 흙이 생산되고 있고 청자를 만드는 점토는 10여 가지 종류의 흙을 합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 다른 직업을 가질 생각은 없는지요?
"저는 흙 만지는게 천직인가 봅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눈에 들어 오지도 않고 오직 이 흙으로 도자기 만드는 일만이 좋습니다"

도자기 만드는게 천직이라는 도공 선생

도공 선생은 도자기를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말합니다. 정성들여 만든 도자기를 잘 구워 내서 작품이 잘 나오면 또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작품을 볼 줄 아는 좋은 분에게 갔을 때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도공 선생은 가끔 단체에서 도자기 체험을 요청하면 실습을 할수 있는
도자기 체험방을 운영하고 있슴.
▲ 열린 도자기 체험방 도공 선생은 가끔 단체에서 도자기 체험을 요청하면 실습을 할수 있는 도자기 체험방을 운영하고 있슴.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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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하나를 진흙으로 빚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떤 도자기는 한 달이나 걸리는 작품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하나 작품을 만들어 가마 안에 꽉 들어차게 완성 시키고 나면 다시 초벌구이를 하고 그 작품을 식혀 다시 유약 작업과 두번째로 굽기 작업에 들어 간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1년 내내 많이 해봐야 8차례 정도 작품을 완성해 낸다고 합니다.

- 전시회 같은건 얼마나 해보셨는지요?
"더러 도예가 협회에서 하는 합동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도공 선생은 아직 개인전을 해본적 없다고 합니다. 그분의 실력은 벽에 붙어 있는 상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벽에 빼곡히 붙어 있는 수많은 상장은 그분이 크고 작은 공예품 공모에 작품을 만들어 선보였고 그때마다 받은 크고 작은 상장들이었습니다. 한 때 공모 특선작품을 도예가 협회에서 주최하여 일본에 전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작품은 얇게 만든 사발이었는데 어떤 일본 사람이 그 도자기를 높은 가격대에 구입하겠다고 알려 왔으나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 보았습니다.

일본 전시후 일본 사람이 높은 가격으로 사겠다고 했으나 거절
했다고 함. 귀한 거라서....
▲ 일본 전시에 갔던 사발 도자기 일본 전시후 일본 사람이 높은 가격으로 사겠다고 했으나 거절 했다고 함. 귀한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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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발은 더이상 구워 낼수가 없어요. 얇아서 만들기도 어렵고 구워 내기도 어려워서 몇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아직 완성해 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비싸게 쳐준다 해도 팔 수가 없는 작품이지요. 제가 아끼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 도자기를 무엇이라 여기는지요?
"도자기 안에는 그림도 들어가고 서각도 들어가니 종합 예술품이라 할수 있습니다."

도공 선생은 청자 속 백로 그림을 예로 설명해 보였습니다.

"일일이 그림을 칼로 도려내고 거기다 다시 흰 흙과 검은 흙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그것을 상감기법이라 하지요. 음각기법이 있는데 그것은 홈을 하고 무늬를 만들면 그 속에 유약이 채워지고 청자색이 더 진하게 보이며 문양이 엷고 진하게 보이게 되지요. 또 양각 기법이 있어요. 이 기법은 문양을 도드라지게 나오게 하는 기법입니다"

울산시에 바란다

꿈이 무엇이냐 물어 보았습니다. 도공 선생은 작품 하나하나마다 온 열정을 다 쏟아 넣으므로 더이상 꿈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아무리 정성들여 만든 작품인데도 언제나 조금 부족함을 느낀다며 보다 더 좋은 작품 만드는게 꿈이라면 꿈이라 합니다.

- 울산에는 옹기가 유명하던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울산시에서 옹기만 키우고 있는거 같아 아쉬워요. 도자기도 형평성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가을 되면 매년 옹기축제가 있잖아요. 그건 형평성에 어긋나요. 울산 옹기마을에 가보니 옹기 만들어 굽는 사람이 8명 있더군요. 도자기 굽는 사람이 울산에 몇 명인지 아세요? 작으마치 100여 명이나 됩니다. 그 중에도 청자를 구울수 있는 도예가는 저를 포함하여 2명 있구요. 그런데 왜 옹기만 옹호하는지 이해 할수가 없어요. 옹기축제만 할 게 아니라 도자기류도 함께 취급하면 규모도 크고 볼거리도 더 많아 더 풍성하고 멋진 축제 행사가 될 텐데 말입니다."

도공 선생은 강한 말투로 울산시에 그렇게 부탁 할 게 있다고 했습니다.

고려청자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삶의 몸부림

도공 선생의 작업실에서 도구를 넣어 둔 도자기 하나를 발견 했습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살다가 살다가 못살겠거든
다시 한 번 살아 보고
그래도 못살겠거든
딱 한 번 만 살아 보고
그래도 못살겠거든
사는데까지 살아 보자

- 이건 언제 만든 작품인가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15년전에는 참 많이 힘들 때였지요. 그 때 어느 책엔가 그 글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도자기로 만들어 놓고 힘들 때 마다 힘내자고 들여다 보고 있어요."

15년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려고 글자를 새겨 만든 도자기라 함.
▲ 15년전 만들었다는 도자기 15년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려고 글자를 새겨 만든 도자기라 함.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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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거의 마치고 나자 도공 마님이 소박한 밥상을 차려 주어 함께 먹었습니다. 갈 때부터 그러더니 오후 내내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도공 선생의 작업실을 나설 때도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비가 오지 않아 우산을 두고 왔습니다. 도공 선생은 남은 우산 하나 있으니 쓰고 가라며 건네 줍니다. 도공 선생은 차길까지 바래다 주겠다며 함께 작업실을 나왔습니다. 시골이라 버스가 가끔 다니고 시간 맞춰 나가야 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가는 말로 물어 보았습니다.

- 도공 생활 후회하지 않으세요?
"제가 도자기 만들어 온 지 30년됐는데 단 한번도 후회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어요. 이게 아마도 제 업인가 봐요."

그 이야기를 끝으로 버스가 왔고 저는 도공 선생과 마지막 악수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도공 선생은 잘가라는듯이 몇차례 손을 흔들고는 도예 작업실로 들어 가고 버스는 점점 도예 작업실과 멀어지다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하늘의 비는 울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멈출 줄 몰랐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진짜 예술은 밥먹는 걱정 없으면 나온다.
궁핍한 현실 속에서
진짜 예술 도예는 나올수 없다.

여성 제자 분이 이야기 도중 하실 말씀입니다.
정부의 예술가에 대한 생계 지원이 아쉬운 부분인거 같습니다.
예술가에 대해 등한시 하는 국가는 야만의 국가다라고 하는 말도 생각 나네요.

이땅에 수많은 예술가가 있지만
예술로 생계를 잇지 못해
자신의 예술성을 썩히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헛 돈 좀 날리지 말고
배고픈 예술가들에게 폭넓은 지원 좀 해주시면 어떨까요?

도공 선생은 올 9월 중 울산 범서에 있는 울주문화원에서
생애 첫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라 합니다.
고려 청자의 맥을 이어가는 도공 선생의 이번 전시회가
성황리에 잘 되기를 바라 봅니다.



태그:#고려청자, #도예가, #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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