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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 2000년 2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시민참여저널리즘의 새 장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매년 시민들과 함께 한 참여민주주의의 현장 속에서 의미있는 뉴스의 인물들을 찾아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왔습니다. 그들의 면면이 바로 <오마이뉴스>가 만들어낸 지난 10년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에, [창간 10돌 기념] '올해의 인물, 그 후'를 조망하는 연속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2001년 '이문열 책 반납운동'을 벌여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네티즌)에 뽑혔던 화덕헌(46)씨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행동하는 시민'으로 거리에 있었다. 지난 18일 저녁 중소상인들이 부산 해운대 홈플러스 센텀점 앞에서 연 '기업형 슈퍼마켓(SSM) 허가제 도입, 가맹점 규제 촉구 촛불문화제'에 그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1년에도 '언론개혁'이 사회의 큰 화두였다. 작가 이문열씨는 그해 7월 언론개혁론자들을 지칭해 '홍위병'이라고 표현했다. 반발이 컸다. 화덕헌씨는 이문열씨의 '홍위병' 발언에 분노했고,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이문열 돕기 운동본부'가 만들어졌으며, 화씨는 '본부장'을 맡았다.

 '이문열 도서 반환운동'을 벌여 2001년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뽑혔던 화덕헌씨가 당시 받았던 액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문열 도서 반환운동'을 벌여 2001년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뽑혔던 화덕헌씨가 당시 받았던 액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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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씨가 쓴 책을 샀던 사람들이 반납하겠다고 나섰다. '이문열 책 반납운동'에는 당시 4개월여 만에 100여 명의 동참자가 나타났다. 그해 11월 3일 운동본부는 이문열씨가 사는 '부악문원' 앞에서 '책 장례식'을 치렀다. 당시 독자들이 자진반납한 책은 733권. 장례식을 마친 뒤 이 책은 단돈 10원에 고물상에 넘겨졌다. 화덕헌씨는 이 일로 오마이뉴스 '2001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화덕헌씨는 사진관을 운영하며 사진작가 활동을 해왔다. 이문열씨와 인연이라면 그의 책을 읽은 것뿐이다. 그야말로 평범한 한 시민인 그가 우리 문단 주요 작가의 발언에 분노해 일어났고, 그것이 불씨가 되어 '책 반납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화씨는 10년 사이 '행동하는 시민'의 모습을 줄곧 보여 왔다. 특히 사진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을 고발해 왔다. 2005년 부산 서면메디칼센터 아트룸에서는 "길에서 천국으로"라는 제목의 첫 개인전을, 2008년 12월 부산디자인센터 전시실에서 "홀리시티" 사진전을, 지난해 10월 해운대 '미고'갤러리에서 "AID'S"전을 열었다.

첫 개인전은 부산역 노숙자들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었고, 당시 18쪽 분량의 사진집 맨 뒤에 500원짜리 동전을 비닐 포장지에 넣어 붙여 놓았다. 길을 가다가 그 동전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면 주라는 의미였다.

"홀리시티"는 대규모 아파트와 대형교회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었고, "AID'S"는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있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AID'의 재개발 현장을 담은 사진을 담았던 것이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던 그는 취미로 사진을 익혔고, 사회에 나와 사진관을 차렸다. 그는 1992년부터 최민식 사진작가의 사진집을 교재로 삼고 사진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저녁 부산에서 그를 만나 10여년 전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2001년 '올해의 인물'이란 상을 받을 때는 얼떨떨해서 잘 몰랐죠"며 "어느덧 10년이 지나고 보니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큰 상을 주신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계면쩍기도 합니다"고 말했다.

다음은 화덕헌씨와 나눈 이야기다.

 화덕헌(46)씨가 18일 저녁 부산 해운대 홈플러스 센텀점 앞에서 열린 중소상인연합회의 'SSM 입점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들었다.
 화덕헌(46)씨가 18일 저녁 부산 해운대 홈플러스 센텀점 앞에서 열린 중소상인연합회의 'SSM 입점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들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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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이문열씨한테 책을 반납했던 일을 지금 생각하면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일을 어떻게 했나싶어요. 쉬운 일이 아니었죠. 생활인으로서 그 일을 진행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문열'이라는 거인과 다투는 일 역시 일개 네티즌으로서는 심리적으로 만만찮은 일이었어요. 부족하지만 그 일을 치른 것 자체가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데 지금도 그때 소포로 사연을 적어서 일일이 책을 제게 보내주신 분들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 책 반납운동 이후 혹시 이문열씨와 만났거나 마주친 적은 없는지요? 만약 마주치거나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요?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고요. 그 일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 영광도서에서 이문열 선생과 노혜경 선생이 토론회를 하게 되었는데 멀찍이서 봤죠. 마주치지는 못했어요. 마주 쳤다면 인간적으로 유감을 표했겠죠. 이유야 어쨌든 저로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것이니까요."

- 그 일 이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는지요?
"유명세에 좀 시달렸어요. 격려와 비난 모두 받았지요.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몇 분이 저를 불러 밥을 사주시기도 했고, 일부러 제가 일하는 사진관을 구경하러 오시는 분들도 있었지요 물론 좋은 일만 있은 것은 아닙니다. 사는 동네에서, 부끄럽지만, 그 일로 인해 험악한 말을 듣기도 했죠. 저를 나무라는 선배랑 멱살잡이를 하는 일도 벌어졌으니까요. 한 동안 전화에 시달려 사진관 업무를 방해 받기도 했습니다."

- 요즘 이문열씨의 사회적인 발언이 이전과 비교할 때 많이 줄어들었다고 보는지요?
"일단 제가 모든 매체를 다 훑어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요즘 그 분이 어떤 발언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잘 모릅니다. 최근에 K-tv에서 인터뷰 하는 것을 잠시 봤습니다. 건강해 보이시더군요. 그분 오래 동안 미국에 가 계시지 않으셨나요?"

- 그때 이후 이문열씨의 작품을 읽었거나 대해본 적은 었었나요?
"<신들메를 고쳐 매며>라는 산문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분이 무슨 작품을 내셨는지 제가 알지 못합니다."

- 문화예술인들이라고 해서 사회적인 발언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나요?
"문화예술인은 허공에서 이슬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당연히 작품이든 작품 외적이든 사회,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이문열씨는 사회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제가 먼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그 일은 이문열씨가 사회적 발언을 해서가 아니라, 그 발언의 내용을 문제 삼은 것에서 촉발이 되어 그 분의 부적절한 태도에 대한 반감으로 나아간 것이지요." 

- 일부에서 이문열씨를 보고 노벨문학상을 탈 만한 작가라고 하는데, 동의하는지요?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지요.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장르든 작업이라는 것을 상과 결부 시켜 저울질하는 것에 대해 조금 어색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의 작업이 좋다면 상을 못 받아도 길이 남을 것이고, 또 누군가의 작업이 큰 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그 작품이 생명력을 보장 받지는 않습니다.  

- 본인도 사진예술을 하는데,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적, 정치적 시각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저는 미를 다루는 데 사진을 사용하는 것을 신통찮게 여기는 입장이라서 사진예술이라는 말 자체가 좀 거북합니다. 물론 사진술의 결과로서 어떤 기록이 시간과 함께 다양한 층위에서 평가를 받고 생명력을 이어가다보면 예술 같은 존재감을 뿜어내기도 하겠지만 제가 발휘하는 사진술이 흔히 말하는 예술인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술, 그 이상이라고 보지요. (웃음) 아마도 모든 작가들의 바람은 작업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영감을 얻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작가들도 생활인으로서 육성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화덕헌(46)씨가 18일 저녁 부산 해운대 홈플러스 센텀점 앞에서 열린 중소상인연합회의 'SSM 입점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들었다.
 화덕헌(46)씨가 18일 저녁 부산 해운대 홈플러스 센텀점 앞에서 열린 중소상인연합회의 'SSM 입점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들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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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헌씨는 오는 6월 지방선거 때 진보신당으로 해운대 구의원(해운대 '나'선거구)에 도전한다. '행동하는 시민'의 모습을 보여온 그가 정치에 뛰어든 배경에 대해 물었다.

- 지방선거에 나서는 동기가 있다면 어떻습니까?
"지난 19일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습니다. 제가 사는 부산에서는 진보신당이 당세가 워낙 미미하다 보니 저 같이 미천한 사람의 일손도 필요한 형편인 것 같습니다. 일단 당이 임한 선거에 힘을 보태기 위해 입후보했고요, 제가 사는 해운대 좌2동, 송정동 그리고 달맞이가 좀 더 실질적인 주민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동네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동네 정치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 선거나 정치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요?
"구의원 입후보자의 정치는 일단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인사 잘하고 동네일에 솔선수범하는 일일 겁니다. 또한 주민들의 작은 권익을 보호하고 이웃들의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내는 일이 최우선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민들에게 구정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많이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오마이뉴스>가 10년을 맞았는데, 어떻게 보는지요?
"2002년 대선 투표일을 이틀 앞두고 진보정당에 입당을 했습니다. 비판적 지지로부터 저 스스로를 단속한 것입니다. 늘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지만 입장이 조금 다르다보니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참 잘하고 있는 부분이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건강한 여론, 귀한 담론을 계속 생산하길 바랍니다."

 화덕헌 작 "아파트".
 화덕헌 작 "아파트".
ⓒ 화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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