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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 2000년 2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시민참여저널리즘의 새 장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매년 시민들과 함께 한 참여민주주의의 현장 속에서 의미있는 뉴스의 인물들을 찾아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왔습니다. 그들의 면면이 바로 <오마이뉴스>가 만들어낸 지난 10년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에, [창간 10돌 기념] '올해의 인물, 그 후'를 조망하는 연속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국민주권 시대, 인권존중 시대로 간다면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그녀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여의도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날씨는 매일 최저기온을 갱신하고 있었고 유난히 바람이 찬 여의도공원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무리지어 날아온 비둘기들이 그녀 앞에 내려앉아 땅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단식 18일째,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여의도공원에서 농성 중인 그녀는 22세의 대학생 김진이었다.

그는 감옥에 있었다. 국회의사당이 바로보이는 길 한가운데 사방이 창살인 모형감옥이다. 길을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그를 쳐다본다. 그가 앉아 있는 감옥 뒤로는 1000여 명의 사람이 한 목소리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고 있다. 그 함성 앞에서는 몸에 기력이 다해도 누울 수 없다. 그는 농성단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곡기를 끊었다. 60일 단식. 농성의 시작과 끝에 송현석, 그가 있었다.

얼어붙은 아스팔트에 눌러앉은 1000명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단은 매일마다 국회 앞 도로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뿐만아니라 추위와 배고품과도 싸워야 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단은 매일마다 국회 앞 도로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뿐만아니라 추위와 배고품과도 싸워야 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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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우려 속에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말을 찾아보기도 힘든 요즘, 한겨울 여의도의 얼어붙은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던 1000여 명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당시 <오마이뉴스>가 인터뷰(관련기사 "단식농성단, 우리 역사에 분명한 힘 보탰다" )했던 김진, 송현석씨를 지난 17일 송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청년통일문화센터 푸른공감'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마이뉴스>는 2004년 '올해의 인물'로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무기한 국민단식농성단'(이하 농성단)을 선정했다. 그해 12월 6일 300명으로 시작한 농성단은 일주일 후 560명으로 늘어났고 또다시 일주일 뒤 1000명을 넘어섰다. 농성단이 잠을 자기 위해 쳤던 천막은 6개에서 18개로 늘어나 있었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대규모 단식농성이었다.

그러나 농성단이 목표로 했던 연내폐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듬해 2월 임시국회로 연기된 국가보안법 폐지안 처리는 4월 임시국회로 다시 연기됐고 5월에서야 한나라당이 제출한 개정안과 함께 상정됐지만 결국 17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단의 천막. 처음 6개였던 천막은 18개까지 늘어났다. 농성단은 한 달 가까이 차가운 여의도 아스팔트 위에서 잠을 잤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단의 천막. 처음 6개였던 천막은 18개까지 늘어났다. 농성단은 한 달 가까이 차가운 여의도 아스팔트 위에서 잠을 잤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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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했던 김씨, 진지했던 송씨

22살의 인기 많은 여학생이었던 김씨에게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다. '농성단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김씨는 "먹지 않으니까 하루가 너무 길었다"라며 비둘기를 보고 부러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거기에 덧붙여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농성 할 때 노숙을 하면서 비닐을 덮고 잤는데 아침에 비닐에 하얗게 낀 서리가 아이스크림으로 보였다"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을 주었다.

 송현석 청년통일문화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현석씨.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농서단 가운데 가장 긴 60일 단식을 했었다.
 송현석 청년통일문화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현석씨.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농서단 가운데 가장 긴 60일 단식을 했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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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위원장의 기억은 매우 진지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달여 단식을 먼저 시작한 송 위원장은 "2004년 한 해를 통틀어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겠다'고도 해봤다"는 그는 그해 여름,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도보행진을 한다.

국가보안법폐지를 알리며 전국을 돌아 다시 서울로 온 송 위원장은 여의도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고 단식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많은 분들께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라고 말하며 "마지막 해단식에서 한사람씩 포옹할 때 큰 감동을 받았다"며 2004년을 회상했다.

인상 깊은 기억은 조금 다르지만 그들의 투쟁이 만든 성과와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일치했다. 송 위원장은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개개인의 자존감을 높이고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느꼈던 자리"라고 말했고 김씨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는 분위기를 타고 좀 더 진지하게 흘러갔다.

불통 MB, 어떻게 기억되고 싶어 저러는지

한편 송 위원장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다 문제"라며 현 정부를 비판했다. 또 "정치적 견해가 달라 정책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권한임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국민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안 된다"라며 "국가보안법도 국민의 권한을 침해하는 법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를 지난 10년 동안의 정권과 비교하며 말을 이어갔다. "노무현, 김대중 정권 시기에 잘한 일이 많아도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 한다"고 지적하며 "잘한 일도 잘 기억 못하는데 명박산성(촛불집회 당시 컨테이너 벽)이나 쌓고 있으면… 나중에 뭐로 기억되고 싶어 그러나"라고 고개를 저었다.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 농성단이었던 김진씨. 원광대학교 법학전문 대학원에 입학예정이고 현재 비영리 법무법인인 '공감'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 농성단이었던 김진씨. 원광대학교 법학전문 대학원에 입학예정이고 현재 비영리 법무법인인 '공감'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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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도 비슷하게 소통하려 하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했다. "대통령을 아무리 비판해도 '소귀에 경 읽기'다"라며 "광우병 쇠고기 촛불 때와 세종시 수정안 때문에 두 번이나 사과를 했지만 말뿐이지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툭하면 잡아간다고 협박하고 뻑하면 구속시키니… 국보법에 집시법에 이젠 마스크법까지 만들어 잡아가려고 하니" 오히려 "우리가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특히 국가보안법에 관련해 김씨는 "참여정부 시절 여야간 충돌을 일으키며 사회적 이슈가 됐던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한 논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2년 동안 완전히 실종된 상태"라고 말했다.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반대로 '체육관으로 보내 뛰어 놀게 해야 한다'라고 얘기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말처럼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동안 사라졌던 국가보안법 관련 수사가 지난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간부 3명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간첩 혐의로 구속된 것을 비롯해 청주, 제주 등의 통일관련 단체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간부들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빈번해지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 해킹, 도감청 등 불법수사를 한 것으로 들어나 구속이 중지되고 증거가 불충분해 무혐의 처리가 되는 등 무리한 기획수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높아졌다.

젊은이들을 만나는 그, 로스쿨 입학한 그녀

농성단 활동 이후 '푸른공감'으로 자리를 옮긴 송 위원장은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에 대해 "세상과 사람들을 조금 여유 있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예전에는 자신을 '거창한 운동가'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한방에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갔다"며 "평화, 통일, 민주, 인권, 환경 등을 문화와 참여라는 키워드로 일상의 변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른공감'은 청소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생태캠프, 인문학교육, 평화봉사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재밌는 단체를 만들어서 재밌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송 위원장은 농성당시에 한국청년단체협의회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한국청년단체협의회가 지난해 1월 대법원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판결해 해소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유쾌하지는 않았다"면서 "탄압에 좌절해 흩어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한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 위해 발전적으로 해소한 것"이라 말했다.

송 위원장은 "진보에서 큰 담론을 많이 이야기 했는데 잘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실망할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진보가 이룬 것이 없어 보이지만 많은 것을 해왔다"라며 "거대 담론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 말했다.

 6년만에 만난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단 김진, 송현석. 두 사람은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6년만에 만난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단 김진, 송현석. 두 사람은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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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예전보다 여유로워졌다는 송 위원장에 말에 "난 더 여유롭지 못하게 됐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자신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꿈을 찾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올해 3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지난 4년간 굴곡이 심한 변화를 겪었다.

2005년 경희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김씨는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서총련)의 의장으로 선출됐고 1년간의 임기가 끝나자 수배자가 됐다. 서총련은 국가보안법에서 이적단체로 규정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이었다. 김씨는 "2년 동안 학교 안에서 수배생활을 했다"면서 "2007년 대선 때 'BBK사건'의 이명박 후보가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한나라당 당사로 항의방문을 갔다가 체포됐다"고 말했다.

 김진씨는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당사 내에 대통령후보사무실로 항의 방문을 갔다가 체포됐다. 그후 3개월 여간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됐다.
 김진씨는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당사 내에 대통령후보사무실로 항의 방문을 갔다가 체포됐다. 그후 3개월 여간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됐다.
ⓒ 연합뉴스 진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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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약 3개월 동안 오마이뉴스로 네 통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관련기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친 것도 죄입니까") 편지에도 쓴 것처럼 김씨가 포기했던 법학도의 꿈을 되찾은 것은 구치소, 검찰, 법원에서 겪은 부당함 때문이었다.

김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진술거부권을 쓰려고 할 때마다 매번 검사에게 강의를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진술을 강요받아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던 반민주 독재 시절에나 필요해서 만든 것'이라고 강요아닌 강요를 받았다"라며 '떳떳하다면 진술해서 검사를 이겨봐라'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법을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 공부해야 하고, 그래야 뭔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로스쿨에 진학한 이유를 밝혔다.  그녀는 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약 6개월 동안 비영리 법무법인 '공감'에서 인턴활동을 했다.

1000여명의 단식농성단과 <오마이뉴스>에게

인터뷰를 마치면서 함께 농성했던 1000여 명의 농성단 분들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김씨와 송 위원장이 함께 1000여명의 단식농성단에게 인사를 전했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건강해야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한 달 가까운 단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인천지역에서 올라온 의료봉사단이 농성단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한 달 가까운 단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인천지역에서 올라온 의료봉사단이 농성단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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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이어 "오마이뉴스는 항상 젊고 역동적인 느낌이었는데, 벌써 10년이나 된 매체라니 매우 놀랍다"라고 말하며 "지금도 신선한 매체인데 10년이라니까 괜히 '올드'해 보인다"며 10년이나 됐다고 너무 알리고 다니지는 말라고 충고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씨와 함께 농성장이었던 여의도공원을 찾았다. 날씨도 그때처럼 싸늘하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공원에 놀러와도 그때 기억 때문에 신나지 않다"는 김씨는 "그때 국가보안법을 폐지시켰으면 올 때마다 신났을 것"이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 농성장이었던 여의도 공원을 김진씨와 함께 찾았다. 농성을 통해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지 못해 공원에 오면 아쉬움이 커진다고 말했다.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 농성장이었던 여의도 공원을 김진씨와 함께 찾았다. 농성을 통해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지 못해 공원에 오면 아쉬움이 커진다고 말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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