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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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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최대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곧 막을 내린다. KBS <천추태후>나 SBS <자명고> 같은 다른 여걸 소재 드라마들이 맥없이 잊힌 반면 <선덕여왕>은 대한민국 드라마의 새 장을 연 드라마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선덕여왕>이 후한 평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한때 40%를 넘나들었던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요즘 시청자들은 냉정해서 잠시라도 마음이 떠나면 채널을 돌린다. <선덕여왕> 뒷부분의 시청률은 그래서 떨어졌다. 블록버스터 대작이라 불리는 <아이리스>가 40%를 넘지 못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선덕여왕>이 호평을 받아야 하는 이유, 그래서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누구나 이미 다 알고 있기도 하지만) 그 창조적인 캐릭터 덕분이다. <선덕여왕>은 기본적으로 마키아벨리적 2인자 미실과 그를 동경하면서도 그와 맞설 수밖에 없는 1인자 덕만의 관계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덕만] 요순하지 않았던 여왕 캐릭터

 선덕여왕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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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선덕여왕> 하면 미실을 매우 성공적인 캐릭터로 꼽지만, 그것이 사실임에도 우리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덕만도 눈여겨봐야만 한다. 왜냐하면 덕만은 전통적인 주인공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개 사극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왕은 지극히 요순적인 도덕주의자이다. 그래서 항상 정도를 걸으며 백성이 곧 나라의 근간이요 민심은 천심이라는 교과서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태조 왕건> <대조영> <대왕세종> <이산> <태왕사신기> 등 거의 예외가 없다.

그러나 덕만은 여기서 엇나간다. 덕만은 공주 신분을 되찾기 위해 여론조작과 왜곡, 심지어 날조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예 한술 더 떠서, 자신과의 약조를 지키지 않은 안강촌 우두머리들을 직접 베어버린다. 앞서 열거한 임금님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난 2007년 대선이 끝난 뒤 인터넷에는 유시민의 '국개론(국가개조론)'을 빗댄 새로운 '국개론(국민 개xx론)'이 횡행했었다. 자기 아파트 값이 오를 기대로 MB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을 향한 일부 누리꾼들의 원망 섞인 표현이었을 것이다.

예전의 드라마에서는 백성들이란 대체로 순박하고 어진 이들로만 묘사되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백성들은 다르다. 인터넷 표현을 빌자면 '국개'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특히 미실은 적나라하게 '국개'들의 본성을 설파한다. 백성들이 첨성대 앞에서 기도만 할 것이다, 원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백성들은 진실을 두려워한다 등등.

덕만은 그런 미실에 맞서 당당하게 반론하지 못한다. 오히려 미실의 말이 사실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칼을 빼서 '국개'들을 처단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선덕여왕>은 대중과 지도자와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덕만 vs. 노무현] 드라마같은 노, 현실같은 덕만

대개 드라마는 현실과 무척 동떨어진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는 <선덕여왕>을 보면서 드라마와 현실이 새로운 양태로 동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7개월 전에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이 말하자면 요순적인 도덕주의자였다. 그가 집권한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보수언론은 그의 입바른 소리를 질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칙, 도덕, 정의를 강조하면 보수언론은 그런 가치들이 이제는 더 이상 먹고 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쇼'를 싫어해서 후보시절에는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도 했고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MB처럼 시장골목 돌아다니며 떡볶이를 사먹지도 않았다.

여론조작이나 왜곡? 노무현과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런 그가 '국개'를 두들겨 패거나 하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경찰폭력에 시위대가 사망하자 즉각 사과성명을 내고 관련자를 문책했다. 한마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덕여왕> 이전의 전형적인 도덕주의적 왕들의 모습에 가깝다. 그만큼 그는 비현실적인, 드라마 캐릭터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런데 덕만은 그런 노무현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니 보란 듯이 여론조작을 밥 먹듯이 하고 심지어 '국개'를 베어버린다! 덕만은 그렇게 '쇼'를 즐겼다. 현실의 노무현은 오히려 드라마 캐릭터에 가깝고 드라마 속 덕만은 속세의 정치인을 더 닮았다. 누군가는 BBK나 용산참사를 떠올리며 MB와 덕만이 닮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는 미실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분명해진다.

 칼 든 덕만공주.
 칼 든 덕만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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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수단과 방법 가렸으나 정의롭지 못한 '고수'

미실은 아마도 2009년 최고의 히트상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 사회적인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미실의 무엇이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훔쳤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고수의 경지'이다.

거의 반사적으로 우리는 미실을 악역이라고 부른다. 미실은 왜 악역일까? 그것은 그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실이 원하는 것은 권력과 사리사욕뿐이다. 미실의 실체는 여기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실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 권력과 사리사욕을 채우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린다.'

미실은 완벽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수를 할 수 있어도 미실의 사람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권력 획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제 배로 낳은 새끼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던진다. 한마디로, 미실은 사리사욕 채우기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그는 언제나 남들보다 두 수는 앞을 내다본다. 군사와 외교에도 능통하며 인간과 사물의 본성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졌다.

미실의 카리스마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주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
▲ 미실의 카리스마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주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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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미실은 <와호장룡>의 리무바이(저우룬파)와도 같다. 리무바이는 청룽과 리롄제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무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가깝게는 <하얀거탑>의 천재적인 외과의사 장준혁과도 무척 닮았다. 장준혁은 의사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줄서기와 공작, 사태 수습에서도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 고수의 경지를 투박하게 표현하자면 자신과 주변에 대한 완벽한 통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미실의 미소는 대나무 숲을 유유히 거니는 리무바이의 발걸음과도, 수술실의 공기마저도 숨죽이게 하는 장준혁의 현란한 손놀림과도 같다.

완벽을 추구하는 고수의 경지가 없다면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그저 평범한 악역에 머물렀을 것이다. 보통 드라마에서 성공적인 캐릭터는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자신만의 존재 이유가 뚜렷하다. 장준혁을 위한 변명은 <하얀거탑>이 빼어나게 그려 낸 현대사회조직의 치열한 생존경쟁으로도 충분하다.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원과 정도전 누구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각각 왕권강화와 신권에 의한 견제라는 나름대로의 새 왕조 건국이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 존재이유가 전혀 없다. 미실은 그저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탐할 뿐이다. 자신만의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삼한일통의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캐릭터의 입체감이 반감되어야 하는데, 이를 완벽을 추구하는 고수의 경지로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미실을 이렇게 설정한 것은 의도된 것이다. 내 생각에 <선덕여왕>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대사는 덕만의 이 질문이다.

"미실의 시대에는 왜 신국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미실
 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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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덕만은 곧 찾게 된다. 미실의 가장 큰 약점, 그것은 신국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미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덕만의 말대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거나 삼한일통을 꿈꾸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국의 발전과 백성의 존재를 의식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미실은 대의명분과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획득한 입체적 캐릭터가 된다.)

이것은 미실에게 가장 뼈아픈 약점이다. 덕만의 우려대로 덕만과 춘추가 잠자는 용을 깨워 미실이 대의를 품게 돼 결국 난을 일으키고 내전의 상황으로 치닫지만, 여기서 미실은 결정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새로운 대의로 일어섰으니 신국에 대한 주인의식도 없다가 살아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전의 대치상황에서 덕만과 미실이 담판을 지을 때 덕만의 말처럼 미실은 처음으로 왕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내비치게 된다. 미실은 신국 땅의 동서남북 경계선을 언급하며 그 전선에 뿌린 자기 동지들의 피를 되새긴다.

여기서부터 미실은 신국에 대한 주인의식을 체화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그래서 아무리 대야성 대치상황이 급박해도 전선의 병력 이동을 금지시킨다. 비로소 신국 황제의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주인으로서의 황제의 마음은 어버이의 마음과도 같다. 주인의식이 없던 미실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핏덩이도 내던졌지만, 이제 주인으로서의 황제의 마음을 품고 보니 버렸던 자식(비담)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주인의식, 그것은 모성애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런 새로운 주인의식으로 다시 자신을 돌아보니 지금의 이 난리는 도무지 신국 황제로서의 처신이라고는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신국에 대한 황제로서의 주인의식으로는 도저히 상대등 시해를 조작하고 황제를 납치구금하고 자신보다 왕위 서열이 높은 덕만과 춘추를 추포하고 급기야 신국을 반토막 내는 내전의 상황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미실은 설령 자신의 반란이 성공하더라도 온전히 신국의 주인노릇을 못하리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덕만은 자신과 춘추가 잠자는 용을 깨웠다고 두려워했지만 정작 그 용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더 이상 용으로서의 삶을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미실에게 자살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비담이라고 하는, 훨씬 더 '완벽한' 카드가 남아 있음에랴.

이쯤이면 MB가 덕만 혹은 미실과 어떤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지 명확해졌을 것이다. 덕만이 미실에게 품었던 그 의문을 이제 MB에게 적용해 보자.

"MB의 시대에는 왜 대한민국이 후퇴하고 있을까?"

[MB vs. 미실] 거짓말의 경지 MB, 딜레마로 마감한 미실

덕만은 이미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주었다. 주인의식! MB는 대한민국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다. 주인의식이란 모두가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이 아니라 모두를 품고 아끼려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에서도 전선의 병력이동을 금지시킨 덕만과 미실의 마음은 솔로몬 앞에서 자기 자식을 내어주는 어미의 마음과도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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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하면 참모총장을 바꾸고 활주로를 틀면서까지 롯데타워를 허가한 MB의 마음은 모성과는 무척 거리가 멀다. 국민들에게 위험한 쇠고기를 먹이게 하는 협상을 억지로 성사시킨 것도 어미의 마음이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는 국민들의 애원을 컨테이너 산성으로 틀어막고 되레 두들겨 패는 것도 모성이라 할 수 없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용산 주민들을 공권력으로 무참히 죽여 놓고도 아직 사과의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MB의 백년대계라는 말도 믿기 어렵다. 공기업과 온갖 기관과 언론사까지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법과 관행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낙하산을 내려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면서까지 자신에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가차 없이 날려버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하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손쉽게 밀어붙이기 위함이다.

이렇게 반대 목소리를 미리 모두 잠재우고 불도저로 미는 방식은 흡사 집 지키는 개들과 경보장치를 먼저 해제하고 남의 집에 침입하는 약탈자의 습성과도 같다. 미디어법과 세종시와 4대강이 대표적인 예다. 이미 사회적 합의로 법까지 만들어 시행단계에 들어간 세종시를 갑자기 모두 없던 일로 돌리고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미디어법과 4대강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가장 큰 원인은 집권 5년간 크게 한건 해 먹겠다는 약탈자의 심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MB는 잠에서 깨어나기 전의 미실과 닮았을까? 앞서 말했듯이 미실은 모든 주변상황을 완벽하게 꿰뚫고 제어할 수 있는 고수의 능력을 지녔다. 지난 대선에서 많은 유권자들은 MB가 도덕적 흠결은 있지만 능력은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능력의 실체는 신기루와도 같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졌다. (미디어법 하나 엉망으로 처리한 'MB의 사람들'은 '미실의 사람들'과는 달리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는지!)

지금은 '미실(未實)의 공화국'

무엇보다 그가 한국경제를 살린다는 주장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 글로벌 경제 위기 때 유독 한국 경제가 취약했던 이유는 대외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이것을 적정 수준으로 낮춰 외부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려면 내수시장을 상대적으로 육성해야만 한다. 인구가 5천만에 불과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고용의 과반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인구 8천만의 새로운 한민족 경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고수하고 집권하자마자 남북한 상황을 91년 기본합의서로 되돌린 MB는 완벽하게도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아직도 MB는 대기업과 건설사들 중심으로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고 철학 없는 대외정책으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미실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MB에게 예술적인 경지가 있다면 그것은 그의 거짓말이다. BBK 동영상에서부터(검찰 수사결과가 사실이라면 MB는 BBK가 자기 것이라고 대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거짓말한 것이 된다.) 최근의 총기 든 괴한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표를 얻기 위해 지난 대선 때 세종시 원안을 약속을 했다는 MB의 '솔직하고 화끈한 사과'는, 오히려 지금 또 그가 무엇을 위해서 뭔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만 키웠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는 세간의 푸념은 아마도 백년 쯤 뒤의 어느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재미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MB치하 3년을 더 살아야 하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의 예술적 경지를 감상만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 거짓이 횡행하고, 이제는 거짓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소리조차 사라진 대한민국은 확실히 진실이 실종된 미실(未實)의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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