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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시사자키 양병삼입니다>의 주말 방송을 맡았던 김용민씨가 가을 개편을 맞아 '잘렸다'. 마지막 방송 때 담당 PD를 만나 "왜 김용민씨가 하차하게 됐느냐"고 묻자 "외부 진행자를 쓸 돈이 없어서 내부 아나운서로 교체됐다. 그것뿐이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대단히 유감"인 상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오프닝 멘트를 날린 게 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용민씨는 지난해 KBS 라디오 4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이병순 사장 취임 후 모두 잘렸다. 심지어 방송 한 시간 전에 퇴출 통보를 받기까지 했다.

 

지난 10월 22일 <한겨레> 인터넷방송 <하니TV>의 '김어준의 뉴욕 타임스' 녹화 현장에서 김용민씨를 만났다.

 

- '잘린' 소감이 어떤가.

"오래 하고 싶었는데 대단히 유감이다. 나는 문제가 된 오프닝 멘트가 매우 훌륭했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중심을 잃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귀를 닫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 멘트에는 논쟁성이 있었다. CBS 시청자위원회에서도 격론이 있었다. '사회자의 발언으로서 부적절했다'라는 지적과 '촌철살인의 멘트 아닌가'라는 반박이 오간 것으로 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논증하는 일을, 사회자라는 이유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CBS는 그동안 민주 언론을 자임해 왔다. 말하자면 CBS야말로 내가 주장하는 가치를 선구적으로 구현해 온 방송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교체에 심각한 의문을 갖는다. 논쟁적 사안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교체를 결정한 것인가, 아니면 권력에 눈치가 보여 해임한 것인가."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대했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약자에 대해 배려했는지도 짚어봐야 합니다. 권력을 본인을 위해 사용했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한편 이런 의문도 듭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한 뒤에, 즉 힘이 없어지는 그때에 과연 국민으로부터 존엄하게 예우받는 지도자가 될지 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3년 반 뒤 애청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튿날, <시사자키>오프닝 멘트 중

 

- CBS 측은 '돈이 없어서'라고 하던데.

"돈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 아닐 거다. 그러나 그건 파편에 불과하다. 본질이 아니다. 단편적 사실이 진실 전체를 설명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부 관계자가 그러더라. 이번 개편안은 백지상태에서 나는 무조건 날리는 대상이었다고. 사실 상식적으로, 정말 돈이 없다면 내가 받는 출연료 몇 배를 받아가는 주중 프로그램 외부 진행자부터 교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나의 이런 비판이 두고두고 '주홍글씨'가 돼 영원히 CBS에 출연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앞서 언급한 그 '옹졸함'은 CBS에게 박히는 주홍글씨가 될 것이다.

 

사실 개편 전 제작부장이 나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면 수용하려 했다. 나도 PD 생활을 해 봤고, CBS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임 사실을 목동 CBS 사옥 2층 편성국 게시판에 붙은 A4 용지로 프린트된 공고문을 통해 접했다. 그 순간, 휴대전화 문자·이메일로 해임을 통보받은 불우한 노동자들이 갑자기 부러워졌다. 구질구질하게 이런 얘기 더 하고 싶지 않다. 사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이 시대 참 많은 언론인의 바닥을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길이 없다."

 

마지막 방송에서 '방송의 비판 기능 강화' 주장

 

- 후회하는 마음은 없나.

"양심에 비춰서 원칙과 상식에 맞게 이야기했기에 뒤탈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적지 않은 분들이 '그런 얘기'하면 데미지(손해)가 있지 않겠나, 낙인찍히지 않겠는가 걱정을 하신다. 나는 이런 야만의 시대가 길어야 3년이라고 본다. 3년 뒤엔 지금 침묵하는 자들이 데미지 고민 좀 해야 할 거다. 우리 국민은 이 정권 들어 '권력이 바뀌면 언론도 달라진다'는 점을 직시했다. 이 시대가 지나고 기자·PD 명함 갖고 폼 좀 잡으려면 '그 시절 뭐 했냐'라는 되물음부터 접하게 될 것이다."

 

- 마지막 방송 클로징 멘트에서 '방송의 비판 기능 강화'를 주장했던데. 

"CBS가 최근 개편을 했는데 시사 프로그램 개편 방안을 보니까 '공정성 및 균형감 확대'를 언급하고 있더라. 그러나 비판 기능이 빠진 공정성 및 균형감 확대는 견제 기능을 약화시킬 소지가 있다. KBS를 보라. 올해 방송 지표가 '공정 공익'이다. 김제동씨를 내쫓은 것은 누구를 위한 공정이고 또 무엇을 위한 공익인가. 요즘 이명박 대통령에 줄 섰던 미디어계 인사들 상당수가 줄줄이 공영방송 운영기구 요직에 임명되고 있다. KBS 및 EBS 이사, 방송진흥위원회 이사들이 그렇다. 이들과 코드를 같이하는 인사들이 사장 주요 간부로 발탁되고 있다. 이들 입에서 요새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공정'이다.

 

이명박 정부, 또 정권에 줄 댄 일부 인사들이 정의하는 '공정 방송'의 개념은 이런 것 같다. 과거엔 좌편향 방송이 주류였으니, 방송을 오른쪽으로 끌고 오면 '공정'이 될 거라고. 그렇다면 다음 정권에서는 또 다시 왼쪽으로 가야 하나. 저급한 논리는 공론화할 가치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런 억지가 어느새 정설이자 현실이 돼 버리고 있다. 이를 견제하고 저지해야 할 일부 공영방송 구성원들은 뭐하나. 이들에 대한 실종 신고를 내고 싶은 심정이다. 방송은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나는 본질을 간파한 상황에서, 양심에 비춰서 부끄러움 없이, 원칙과 상식에 따라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공정성'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이 부자 권익 옹호, 개발 이권 확대라는 이명박 정권의 숨은 의도를 제대로 고발하고 있는가. 오히려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형식의 기사가 범람한다. 이런 기사 쓸 거면 중학교 졸업한 학생을 기자로 채용해도 된다. 그 정도 학력이면 받아쓰기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 연예인의 사회 활동, 정치적 발언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다.

"연예인이 정치 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정치는 정치인만 해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정치 자영업자라는 말이 있다. 정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정치는 어느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무원, 학자, 언론인, NGO 관계자뿐 아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사진관 아저씨도 정치할 수 있다. 당연히 연예인도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제동씨의 발언이 과연 정치적인지는 의문이다. '쌍용, 이란을 잊지 맙시다'라는 견해를 인터넷에 남겼고, 돌아가신 분 가는 길에 사회를 본 정도다. 그 때했던 발언들이 그렇게 좌편향이었고 정치적이었나.

 

물론 연예인의 한마디는 다른 사람의 한마디와는 다르기에 정견 발표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이미 민주 혁명, 정권 교체를 여러 번 성사시킨 수준 높은 우리 국민의 역량을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방송사 사장, 국회의원 등이 연예인의 사회 참여적 발언에 독소가 있는지를 가려 퇴출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연예인의 정치 참여를) 더 권장한다. 연예인뿐 아니라 청소년, 어린이도 사회 참여적 발언을 쏟아내야 한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에 글 올리는 것으로 참정(參政)한다. 그러나 아쉬운 면이 많다. 요건이 됐을 때 피선거권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적극성을 띠면 좋겠다."

 

주제를 돌려 이십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지난 6월 충남대학교 학보인 <충대신문>에 기고한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는 글이 인터넷상에서 블로거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 글에서 김용민씨는 "이십대가 가치보다는 자신의 유·불리에 방점을 두고 사리판별을 한다"며 촛불을 일으킨 십대에게 모든 판돈을 걸겠다며 이십대를 향해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다"며 글을 맺었다.

 

- 그 글의 요지가 뭐였나.

"사실 이십대에게 화가 난 건 아니다. 그건 이런 거다. 어머니가 아들이 얻어맞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화는 아들한테 내지만 그게 아들에게 화가 나서 그런 걸까. 팬 놈이 더 미울 거다. 팬 놈은 말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십대에 대한 대통령의 푸대접 때문에 불거진 분노가 이십대를 향한 거침없는 말로 나왔다."

 

- 그 글에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댓글을 달았는데.

"논리적 빈틈이 많았다. 논란이 이렇게 커질 줄 알았다면, 거두절미하고 이십대를 저주하는 듯한 언사는 삼갔을 것이다. 진보 논객 한윤영씨는 '(보수 논객) 변희재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고 썼더라. 어떤 댓글에는 '변희재는 약 팔고 김용민은 술 사주며 뒤통수 친다'라는 내용도 있더라. '이십대에 희망이 없다'는 말만 부각되고, 그 글의 본질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점,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그렇게 해석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주체는 나인데. 하지만 이런 아쉬움이 이십대에 대한 나의 걱정스런 관념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다. 이십대들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의 목소리까지 도매금으로 부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농담 삼아 얘기 하나 덧붙이겠다. 나는 변희재와 많이 다르다. 나는 토요일 밤에 목욕재계하고 고소장 쓰는 즐거움을 모른다. 온라인에서 맞부딪혀 설전을 벌였다면 그걸로 끝내야지 공적 영역 즉 재판정으로 그 문제를 가져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을, 낯 뜨거워서라도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변희재를 비교는 물론 대조도 삼가 달라. 아주 당혹스럽다."

 

- 이십대를 어떻게 보나.

"내가 이십대를 비판하긴 했지만 이십대는 능력 면에서 (십대 빼고) 현존하는 세대를 압도한다. 다만 시대에 대한 분노, 이를테면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또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지혜가 부족하다. 이건 연대의식과 연계해 설명할 수 있다. 이십대가 이런 가치에 주목한다면 프랑스 68혁명 세대가 그랬듯,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주도세력이 될 것이다. 이런 출중한 세대가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세대가 만든 프레임에 자청해서 자조한 채 갇혀 있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생각난 김에 이야기 하나 더 하자. 한 이십대 사이트에 가 보니까 68혁명을 '실패한 것'으로 규정한 글이 있더라. 물론 권력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실패한 게 맞다. 두 달 뒤 선거에서 깨끗하게 졌으니까. 하지만 전후 프랑스 사회에 인권·평화·평등·환경 등 '가치'에 대한 고민을 안겨 준, 그래서 꽤 의미 있는 성과물을 싹 틔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68혁명이 실패했다면, 촛불 집회, 4·19, 5․18, 6·10도 실패한 거다. 혹시 '이념과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없으면 무의미하다'라는 관념에서 그런 생각이 나온 것일까. 실용적 학문에만 몰두한 채 역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십대를 욕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십대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일을 하고 있다고 써 주면 좋겠다.(웃음) 사실 내가 강단에서 만난 이십대 수백 명은 진정성 있고 솔직 담백한, 인간미 넘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 이명박 정부의 어떤 점이 이십대를 향한 분노로 나온 건가.

"등록금 해결책이 '취업 후 상환제도'다. 이건 조삼모사다. 취업한 다음에 갚으라고? 취업하면 돈 쓸 일이 없나. 등록금을 깎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 책임을 고스란히 시간의 영역으로 돌려버리는 편법을 썼다. 청년 일자리 대책도 마찬가지다. 인턴으로 활동한 이십대 중 10퍼센트만 취업을 했고, 90퍼센트는 곧 실업자가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예측했던 일이다. 공적 영역의 업무를 인턴에게 전수할 정부기관, 공기업이 어디 있겠나. 1년 동안 터득한 실력은 다방 커피 만들기, 복합기 수리하기 정도였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이십대의 금쪽같은 청춘을 책임지지 않는다. 나는 분노한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숱하게 '수백만 일자리 마련' 운운해 왔다. 그런데 마련된다는 일자리 중 대다수는 4대강 사업이 끝나면 '쫑' 날 한시적인 것들이다. 게다가 막노동하고 하루 4만 원 받고 끝나는 일도, 1/n이다. 이건 이십대를 갖고 노는 거다. 그런데도 이십대는 거창한 시국담론은 고사하고 자기들 밥그릇 문제에 대해서조차 분노하지 않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분노한다고, 집단 행동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느냐'는 반박이 뒤따른다. 효율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싸워 보자'라는 방향성을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고 효율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일까? 여전히 내가 이십대를 비난하는 것이 마땅찮나. 엄마가 맞고 들어온 아들에게 '나가 죽어'라고 말하면 '어떻게 엄마가 아들에게 자살을 권장할 수 있는가'라는 반응을 보일 셈인가."

 

- 386세대는 그 안 뭐했나.

"그들이라고 대수인가.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광풍 아래 휘말린 현실의 포로, 그저 전설 속 '워리어'일 뿐이다. 애 있고 마누라 있는데 어떻게 분노를 하나. 참고 살아야지. 나 같은 삼십대는 386과 다른 면이 있나.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이십대가 더 무섭게 30~40대의 현실에 영합한다면 이거 문제 아닌가. '이십대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야기, 정말 귀 따갑게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십대의 시대 역할론을 희석시키는, 그래서 본질을 호도하는 방어기제일 뿐이다. 내 얘기는 요컨대 이렇다. '기성세대의 무능 및 신자유주의의 환경 그리고 MB의 이십대 무시 기조로 인해 이십대가 체념한 채 주저앉는 모습을 못 보겠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한 말이다. '절망하면 안 된다. 절망하면 변절한다.'"

 

- 여전히 희망이 없다고 보는 건가.

"<지식채널 e>를 제작한 EBS의 김진혁 PD, 인기 블로그 '독설닷컴'의 운영자 <시사IN> 고재열 기자와 같이 식사한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이 나랑 나이가 같다. 최근 뉴라이트로부터 '불온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지목받은 <무한도전>의 MBC 김태호 PD, KBS로부터 퇴출된 윤도현·김제동씨도 실은 한두 살 차이다. 유명세의 차이는 좀 있지만, 나와 이들의 공통점은 계급의식·이념지향성과는 무관하게 살다가 이명박 시대에 이르러 사회 구조적 모순에 눈을 뜨고 있다는 점이다. 삼십대가 각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십대의 각성은 더욱 가능하다고 본다. 희망, 없을 수 있겠나."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만들고 싶다"

 

김용민씨는 대단한 달변가였다. 어떤 질문에도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화법으로 화통하게 대답하기에 과거사도 잠시 들어 보았다. 극동방송, 기독교TV, <뉴스앤조이> 등 기독교권에서 두루 활동한 이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 기독교 언론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점은.

"극동방송의 김장환 목사님(현 이사장, 과거 30년 재임 사장)은 '왕'과 다름없다. 그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분이 돌아가시더라도 유훈통치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다. 극동방송에서 일하면서 (종교) 권력의 힘을 봤다. 또 기독교TV 들어가서는 자본의 논리에 워낙 충실한 감경철 장로님(사장)을 보면서 자본의 힘을 보았다. 권력과 자본, 그렇다.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요소다. 이게 힘을 발휘하면 발휘할수록 막장으로 치닫게 된다."

 

- 기독교TV에서는 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하다가 구조조정 당했는데.

"사장의 회계 부정 의혹을 지적하고 난 뒤, 몇 달 후에 구조조정 당했다. 퇴직 결정 후 일주일 뒤에 결혼식을 올렸다. 참 많이 잘려 봤다. 하지만 그렇게 쫓겨나고 잘려도 망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역산해 보면, 직장 다닐 때보다 잘린 뒤에 돈벌이가 훨씬 더 좋았다. 또 이렇게 '유명'해지는 부수입도 얻었다.(웃음) 그러나 가장 큰 성과는 두 다리 쭉 뻗고 자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과 자본 앞에 굴했다면 못했을 일이다."

 

- 한국교회에 지금 가장 시급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아직은 나도 기독 청년이다. 늘 청년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목사님이고 내가 가는 곳은 늘 집·학교·교회였다. 또 신학을 전공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기독교 직장도 많이 다녔다. 기독교 범주 안에 계속 있었던 사람으로서 한국교회에 대한 관념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나의 멘토가 한 달 정도 교회를 나가 보고서 '교회가 살 길은 선교를 안 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셨다.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점이 '선교'에 농축돼 있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교회 선교는 말이 좋아 선교지, 한마디로 '영업'이다. 교인 끌어모아 교세를 늘리는 것, 그래서 교회가 커지고, 목사가 정치에 눈을 돌리는 현실, 이게 '영업'이 아니고 뭔가.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선교는 설득의 영역에 있다. 선교는 한 사람의 신념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전도지 나눠 주고, 교회에 부르고, 경품 주고, 등록하고 사진 찍으면 끝. 이런 찍어내기식 선교가 과연 의미 있는 결신을 부를 수 있겠나. 이런 선교는 타 문화권에서는 분쟁의 불씨가 되는데다가, 한국교회에 대한 반감만 부추긴다. 한국교회는 세 불리기식 선교를 지양하고 신뢰받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시급하다. 목사들은 신학교 졸업 당시의 초심을 잃고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후천성 개혁 결핍증'에 걸려 있다. 그렇다면 교인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 '나쁜 교회 안 나가기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주님이 머리 되지 않는 교회, 사람과 돈이 머리 되는 교회, 이런 교회가 나쁜 교회다. 이런 운동을 펼치면 누군가 '친북좌파의 교회 파괴 책동'이라고 할 것 같지만, 나는 원래 시장주의자다. 나쁜 제품은 시장에서 외면 받듯, 나쁜 교회는 교인들로부터 외면 받아야 마땅하다. 아무리 잘못해도 교인수가 줄지 않는 일부 교회의 현실. 이거 바꿔야 한다. 현실 바꾸기가 어려운 이유 중 상당 부분은 '부조 문화' 때문 아닐까 싶다. 교회나 목사에게 만정이 떨어져도 '내가 김 집사 아들 결혼 때 부조했는데', '박 권사 어머니 장례 때 부조했는데' 이런 '회수 심리'가 부패한 교회를 연명케 하는 고리이자 힘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부조 안 하기'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 개인적 전망과 시대적 전망을 한다면.

"이제 고민을 대안으로, 대안을 현실로 만들 시대가 왔다. 내년 중에는 반드시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려고 한다. 권력과 자본에 예속되어 있는 방송사의 본질적 한계를 깰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연구해서 실천에 옮길 거다."

 

- 특별히 '내년'에 어떤 의미가 있나.

"망조 들린 권력이 어느 정도 정리 수순을 밟을 시점이 내년 상반기다. 지방 선거를 기점으로 권력의 절반이 지나가고 이명박 정부는 본격적인 레임덕을 맞을 것이다. 그러면 이명박대통령의 힘은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민주 진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정권 교체 열망이 표면화될 것이다. 당연히 보수 진영의 이른바 '주자'들의 허울이 다 벗겨질 것이다.

 

그러나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권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뀐다 한들, 부동산 부자가 떵떵거리며 살고, 비정규직이 공포에 떨고, 철거민들이 날마다 우는 시대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지난 10년 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독교 방송사에서 음악 방송하는 PD가 되는 게 유일한 꿈이었던 김용민씨를 시대가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가는 곳마다 '잘리는' 그런 현실로 말이다. 그래도 그는 <88만원 세대>의 부제처럼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만들고 싶다'고 끝인사를 했다.

 

"생각해 보면 내 지평이 많이 넓어졌다. 상황마다 하나님이 일하신 손길이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답답하고 화가 나긴 하지만 절망적이진 않다. 하나님이 어떻게 흥미롭게 일을 펼쳐 가실지 기대하는 마음도 샘솟는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만들고 싶다. 그게 바로 하루하루 나의 생명을 연장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본다. 이제부터 거꾸로 갔던 역사가 제자리를 찾는 즐거움을 누려 보자. 이는 하나님 주신 선물이다."

 

김용민씨는 누구?
김용민씨는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다. 1998년 극동방송 PD로 방송계에 몸담았다. 2000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아들이 만드는 <스포츠 투데이>에 교회 헌금 쓰는 것을 개인 홈페이지에 비판했다가 극동방송 김장환 사장이 글 삭제 및 조용기 목사에 대한 사과를 지시하자 회사를 그만뒀다. 기독교TV에 입사한 후, 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감경철 사장의 회사 사유화에 맞서 싸우다 구조조정 당했다. 그 후 <라디오21><뉴스앤조이> 등을 거쳐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복음과상황>(www.goson.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용민, #복음과상황, #CBS, #시사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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