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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을 무효로 할 만한 정도의 명백한 이혼사유가 있는데도 이혼선언도 하지 않고 합의로 (이혼)하라고 모순된 결정을 한 격이다. 국회가 다시 논의해 절차적 하자를 치유하라는 취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법의 무효를 선언하지 않아 신문법과 방송법은 국회에서 손질할 때까지 유효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 이석연 법제처장

 

"(헌법재판소는) 미디어법을 무효로 해달라는 결정을 기각했을 뿐이다. 국회의 자율적인 시정에 맡기는 게 옳다는 것은 (결정문에) 분명하게 들어있다. 언론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 '권한침해는 인정했지만 유효'라고 보도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는데, 이번 결정 어디에도 유효라고 한 것은 없다, (국회가) 스스로 시정하는 게 옳다." - 하철용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한 미디어법의 권한쟁의 심판 청구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권한침해는 인정하되 미디어법의 무효청구는 각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언론은 이에 대해 미디어법은 국회처리절차는 위법이지만 '유효하다'는 결론이라고 봤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술은 먹었어도 음주운전은 아니다', '도둑질한 장물은 도둑의 것이다', '위조는 했지만 지폐는 유효하다', '강간은 했지만 임신은 유효하다', '대리시험은 쳤지만 합격은 유효하다' 등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비꼬는 패러디가 회자됐다.

 

'미디어법 재논의 필요성' 다시 확인된 것

 

언론단체와 야당은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에 대해 국회에서 재논의 하도록 권고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의 무효청구를 기각한 이유는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절차상 위법성이 확인된 미디어법은 국회에서 해결하도록 권고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국회는 미디어법에 대해 국민여론을 경청하고 충분한 심의를 거쳐 다시 표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이어졌다. 이러한 여론이 이석연 처장과 하철용 처장의 말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나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마디로 '무시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장의 측근은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직접 관여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문을 해석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자체가 재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국회가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방해하는 행위 등을 보완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며 재논의에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미디어법 '재논의 의무'를 헌법재판소와 법제처가 '국회 답변'을 통해 명료하게 밝혔다"며 "과정이 잘못됐고 결코 유효라는 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에서 논의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국민의 뜻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외면한 채 언론악법 재개정을 거부하고 언론악법 시행을 강행한다면, 민주당은 부작위 소송을 통해 헌법재판소 결정의 강제 이행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작위 소송'이란 법원의 판결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부작위 사항이 위법한 것이라는 확인을 받는 소송을 말한다.

 

국제사회에서도 비판받는 한나라당의 '모르쇠'

 

 

미디어법 국회 재논의 문제는 국제사회에서까지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사무직노조연합(UNI Global Union) 산하 국제미디어연예노련(MEI)은 "한국 정부에게 언론노조와 시민사회의 (국회 재논의) 요구에 대해 당장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UNI MEI는 "헌법재판소는 불법적인 대리투표, 일사부재의 위반, 토론절차 생략 등의 절차상 위법성을 지적했다"며 "OECD 가입국인 한국정부가 입법절차에서 핵심적인 민주적 원리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UNI는 세계 140개 국의 900여개 노조, 1550만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는 세계 최대의 산별노조다.

 

국내 시민단체들도 미디어법 국회 재논의 촉구 운동에 불을 붙였다. 시민단체들은 야당들과 연합, 언론악법 폐기 및 국회 재논의를 비롯하여 4대강 예산 삭감 및 복지예산 확충 등을 내걸고 누리꾼들과 함께 온라인 청원운동과 대규모 집회 등 공익로비 활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대전충남언론공공성수호연대는 미디어법을 불법적으로 처리한 김형오 국회의장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 제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언론공공성 연대는 "김형오 국회의장은 국민의사에 반하는 법 내용과 처리 과정의 명백한 위법 행위를 주도해 국론 분열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하게 하는 등 국민들의 정신적 고통과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시켰다"며 국민청구인단을 모집해 정신적 피해 배상을 위한 위자료 1000원 청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시민단체들이 위법으로 처리된 언론악법의 대표적 문제점으로 꼽는 것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확대함으로써 미디어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훼손시키고 방송의 공공성을 침해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다원주의는 민주사회의 핵심기둥인데 이러한 기둥들이 축소되면 민주주의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UNI도 성명서에서 "새로운 미디어법은 한국 미디어지형의 다양성에 대한 타격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소리를 막음으로써 사회적 단결을 저해할 것"이라며 "미디어독재가 빠르게 확산돼 서민은 정보권이 침해받아 결국에는 눈 먹고 귀 먹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독선과 아집' 고수하다간 내년 지방선거 '일패도지' 할 것

 

이명박 정부가 국민여론을 무시한 독선의 길을 가고 있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나왔다. 국민여론도 미디어법 국회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쏠려 있다. 국민의 65%이상이 '처리과정의 문제가 확인된 만큼 국회에서 다시 처리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방송법 시행령을 제정해 조속히 시행할 방침이다.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셈이다. 이런 걸 일컬어 '우이독경'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제부터라도 국민여론을 가슴 속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한나라당이 지난 10월 재보선에서 패배한 것도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아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원순 변호사의 지적대로 내년 지방자치선거에서 패배해 일패도지하고 말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김주언 기자는 언론광장 감사입니다. 


태그:#언론법, #미디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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