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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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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헌재)가 세상을 우롱했다. 국민을 기만했고, 헌법과 법률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졌고, 민주주의와 상식을 내팽개쳤다. 이 정도면 정말 국민과 민주주의를 갖고 장난하느냐는 한탄이 절로 나올 만하다.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신문법과 방송법에 대한 위헌심판에서 '절차는 위법하지만, 법적 효력은 유효하다'는 헌재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쌓아온 보편적 민주주의 가치와 법치주의, 의회주의의 뿌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다. 헌재에 의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의회주의에 대한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마키아벨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권모술수주의의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저항과 싸움의 역사였다. 결국 민주주의는 이겼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합의했고, 인류의 역사가 동의한 민주주의에 대한 지금까지의 가장 높은 가치의 정의다.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는 '목적'이고, 민주주의는 '절차'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권력의 원천, 즉 권력이 나오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목적도 정당해야 하고,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부합되어야 한다는 말도 같은 의미다.

어느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기초적인 판단기준으로 먼저 정권이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는지, 아니면 쿠데타에 의해 권력을 잡았는지를 따지는 것도 민주주의에서 절차가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아무리 자신들이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해도, 우리가 민주정권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다.

대의민주주의와 더불어 민주정치의 기본원리로 받아들여지는 '다수결의 원리'도 절차적 정당성이 갖춰졌을 때, 민주적 방법으로서의 그 정당성을 제한적으로 인정받는다. 다수결로 의결하기 전에, 반드시 소수자의 주장이 자유로이 표명될 수 있도록 충분한 토론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신문법과 방송법 등 미디어법을 날치기 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바로 다수결 원리와 절차적 민주주의였다. 안 원내대표는 "국회 내 불법과 폭력이 종식되지 않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부정되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더 나아갈 수 없다"면서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표결처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법 날치기의 정당성을 바로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합리화했던 것이다. 그 절차적 민주주의가 헌재에 의해 위배 결정을 받았다.

민주주의를 왜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겠는가. 민주주의는 목적이나 목표보다, 과정과 절차가 더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역시 절차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법치주의와도 같은 말이다.

왜 '이인제법'을 만들었는가

우리 헌법에는 헌법을 개정할 때는 반드시 국회와 대통령의 발의에 의해 제안하고,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 의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헌법 개정안만이 헌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게 된다. 달리 말해, 아무리 좋은 헌법이라 해도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쿠데타에 의한 방법에 의해 개정된 헌법은 헌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헌법을 유린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게 된다. 헌정질서 파괴가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과 같은 비난을 받는 이유는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중요성이 가히 절대적 가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이런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선출직 공무원에 출마하려는 정치인이 경선불복을 하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명문화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이인제법'이라는 '경선불복금지법'이 그것이다. 우리 정당법 31조에는 당내경선에서 패배한 사람은 그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예전에는 없던 이 조항을 새로 집어넣은 것은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는 경선불복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헌법과 정당법 뿐 아니라 형사소송법에서도 사실상 법치주의에 따른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원칙'이 하나의 사례다. '독수독과이론(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에도 독이 있다)'에 따른 이 원칙은 고문이나 불법도청, 영장 없는 압수수색 등 증거수집의 방법 자체가 위법한 경우에는 아예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이다.

헌재는 결과에 손을, 대법원은 절차에 손을 들어주다

최근 대법원은 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해 바로 이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원칙'에 따라 사실상 무죄판결을 내렸다. 영장에 없는 압수수색으로 수집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법치주의에 있어서 '결과'가 아니라 '절차'를 중요시해, '선거법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검찰이 증거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혐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과 대법원의 최근 판결은 정반대다. 헌재는 '절차는 위법하지만, 법적효력은 유효하다'고 결정했지만, 대법원은 '절차가 위법하기 때문에, 법적효력도 무효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실상 똑같은 원칙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이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정신에 부합되는 판결일까. 당연히 대법원의 판결이다. 헌재를 폐지하고 그 권한인 법률 위헌 심판권을 미국처럼 대법원으로 넘겨주자는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 헌재는 반성해야 한다.

헌재 결정으로 국회법은 사실상 사문화

무엇보다도 헌재의 이번 결정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근간한 의회주의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후퇴가 우려된다. 앞으로 민주주의 전당인 국회 안에서 민주주의 원칙, 특히 절차적 민주주의는 설 땅을 잃고 말았다.

헌재의 엉터리 결정으로 국회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국회법이 사실상 무력화, 나아가 사문화됐기 때문이다. 국회법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절차와 과정을 규정하는 절차법적 성격이 강하다. 의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의회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의회는 어떤 기관보다도 절차적 정당성이 요구되는 기관이다. 국회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는 경우에 더욱 그 책임을 묻고, 법적 효력을 무효화해야 하는 이유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신문법과 방송법의 국회처리과정에서 제안취지 설명과 절차의 권한침해, 질의와 토론 절차의 위법, 일사부재의의 위배 등에 대해서는 절차상 하자를 인정하면서도 그 법률적 무효의 확인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헌재가 절차상 위법성이 있음에도 그 법안의 효력을 인정한 이유는 '절차상 위법은 인정되지만, 가결 선포를 취소하거나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는 아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설령 제안취지 설명과 절차의 권한침해 등에 대해서는 그 권한의 침해정도를 따져 가결 선포된 법안의 효력을 무효화할 정도가 아니라는 헌재의 결정을 인정한다하더라고, '한번 부결된 의안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제출하지 못한다'는 일사부재의의 원칙 위배만큼은 다른 것 아닌가.

일사부재의는 살인혐의와 마찬가지로 원칙을 어겼느냐 아니냐는 일도양단의 명확한 판단만이 존재하는 것이지, 침해의 정도가 크냐 작으냐의 권한침해의 정도나 수준을 갖고 다툴 사안도 아니고, 양형참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대상도 아니다. 국회법의 취지상 일사부재의를 위반했다면 당연히 그 법률은 원천무효가 되어야 한다.

일사부재의는 국회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규정한 일사부재의는 의회주의와 법치주의의 뿌리다. 헌법학에서도 국회의 의사절차의 4대 원칙으로 정족수, 의사공개의 원칙, 회기계속의 원칙, 일사부재의의 원칙을 들고 있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우리나라는 비록 헌법이 아닌 국회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사실상 헌법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일사부재의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이인제와 마키아벨리가 웃을 결정

일사부재의가 헌법적 가치라는 것은 우리 헌정사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952년 이른바 '발췌개헌'이라는 제1차 헌법 개정이 문제가 있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일사부재의의 원칙을 어겼다는 점이다. 장기집권을 획책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한번 부결된 대통령 직선 개헌안을 다시 제출해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헌재의 결정대로 다수당이 일사부재의를 위반하며 멋대로 통과시킨 법률과 의안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면,  굳이 국회법 92조에 일사부재의 원칙을 별도로 규정해 놓을 필요가 있겠는가. 일사부재의가 의회주의와 법치주의의 상징적 내용이 아니라, 아무런 쓸모가 없는 권고조항으로 전락하게 된다. 민주주의 핵심가치인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국회법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해괴한 결정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어느 면으로 보나 보편적 민주주의 가치와,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발달사, 의회주의와 법치주의의 근본정신을 부정하는 잘못된 행위다. 헌재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다가 헌법 정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다.

이인제가 웃고 앨 고어가 우는 판결이고, 마키아벨리가 환영하고 간디가 허탈해 하는 결정이다. 헌법 대신 정치를 선택한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 정신을 지킨 대법원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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