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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법기로 처마 끝을 장식한 숨첼링 사원의 대경당과 자창전.
 금빛 법기로 처마 끝을 장식한 숨첼링 사원의 대경당과 자창전.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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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첼링 사원은 라싸의 포탈라궁을 본떠 만들어 작은 포탈라궁이라 불리기도 한다.
 숨첼링 사원은 라싸의 포탈라궁을 본떠 만들어 작은 포탈라궁이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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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인에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Avalokiteśvara)은 특별한 존재다. 관세음보살은 티베트 민족의 창조자이자 수호자로 여겨진다. 티베트인은 역대 왕과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모신다.

불세출의 영웅 송첸감포(松贊干布, Songtsen Gampo)왕이 대표적이다. 송첸감포왕은 7세기 초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봉건 영주들이 난무했던 티베트를 처음 통일했다.

달라이 라마도 송첸감포왕의 환생이자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달라이 라마는 15세기부터 티베트를 실질적으로 이끈 게룩파(格魯派, Dgelugspa)의 영수다.

티베트는 관세음보살의 후예들이 사는, 관세음보살의 축복을 받은 땅이다. 티베트인은 언제나 육자진언(六字眞言)인 '옴 마니 파드메 훔'을 읊조리며 보살의 자비에 감사드린다. '옴 마니 파드메 훔'은 산스크리트어로 불교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다.

샹그릴라는 티베트 캄(康巴, Kham)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캄은 티베트 동부 지역으로, 티베트 본토와 중국 사이에서 발전한 영주 연합체다.

전체 티베트의 1/3을 차지하는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평균 해발은 3500m에 달하고, 성스러운 도시 라싸와 멀리 떨어져 있어 바깥세상과도 교류가 많지 않다. 언어와 문화에 있어서도 캄과 라싸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캄의 주민은 캄파라 불리는 유목민이다. 거친 대지 위에 사는 유목민답게 정열에 넘치고 억세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이후 1960년대까지 무장투쟁을 주도한 이들이 캄파였다.

중국정부는 티베트와 중국 문화를 흡수, 융합하여 독자적인 문화예술을 창조한 캄파의 생명력을 두려워했다. 티베트가 시장(西藏)자치구로 바뀐 뒤 캄도 공중분해 당했다. 캄은 칭하이(靑海), 간쑤(甘肅), 쓰촨(四川), 윈난(雲南)으로 찢겨 나뉘었다.

숨첼링 사원은 샹그릴라 외곽 포핑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숨첼링 사원은 샹그릴라 외곽 포핑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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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첼링 사원으로 오르는 계단은 고난의 수련 생활을 상징하듯 무수히 많고 가파르다.
 숨첼링 사원으로 오르는 계단은 고난의 수련 생활을 상징하듯 무수히 많고 가파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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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은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라마불교가 지배한다. 최대 종파는 단연 게룩파다. 중국에서는 누른 모자를 쓴 승려 집단이라 하여 황교(黃敎)라고 한다.

게룩파는 14세기 라마불교를 일신한 대학승 총카파(宗喀巴, Tsongkhapa)가 창시했다. 총카파는 무분별한 라마승의 생활을 비판하고 전통 수련 생활로 돌아갈 것을 갈파했다. 티베트에 만연했던 신비주의적 의식과 주법(呪法)도 타파했다.

1409년 티베트력 1월 1일부터 15일까지 총카파는 라싸의 조캉 사원(大昭寺)에서 신년 법회 몬람을 열었다. 이 몬람을 계기로 라마불교는 다시 티베트에서 흥성하고 게룩파가 정식 출범했다.

이후 409년 간덴 사원(甘丹寺), 1416년 드레풍 사원(哲蚌寺), 1419년 세라 사원(色拉寺)이 잇따라 세워졌다. 이 세 사원은 라싸 3대 사원이자, 게룩파 6대 사원이기도 하다. 게룩파의 영수는 몽골인들에 의해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얻고 티베트의 통치자로 모셔졌다.

샹그릴라 도심에서 5㎞ 떨어진 포핑산(佛屛山) 기슭에는 게룩파 사원 간덴 숨첼링 곰파(松贊林寺, Ganden Sumtseling Gompa)가 있다.

숨첼링 사원은 1676년 세워졌다. 달라이 라마 5세가 청나라 강희제에게 주청하여 황명에 따라 건설된 라마불교 13대 사원 중 하나다. 디칭(迪慶)티베트자치주 내 24개소의 라마사원 중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 20세기 초까지는 윈난성 티베트인 거주지의 최고 권력기관이기도 했다.

숨첼링의 어원은 '3명의 신선이 살던 땅'이라는 뜻이다. 전체 면적 10만㎥에, 라싸의 포탈라궁을 본떠서 건축했다. 웅장하고 아름다워 '작은 포탈라궁'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였다.

대웅전 격인 대경당(大經堂)과 양대 주전인 자창(扎倉)과 지캉(吉康), 중소 불전인 8개의 캉찬(康參), 300개의 크고 작은 승방이 있다. 가장 흥성했던 시기에는 1600여 명의 승려와 8명의 활불이 있었다.

숨첼링 사원의 대경당과 주전 앞에 있는 담벽. 따스한 색채미가 돋보인다.
 숨첼링 사원의 대경당과 주전 앞에 있는 담벽. 따스한 색채미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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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창전 외벽에 그려진 탱화. 라마불교의 법신은 무시무시하고 위압적이다.
 자창전 외벽에 그려진 탱화. 라마불교의 법신은 무시무시하고 위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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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언덕 하나를 넘으면 숨첼링 사원이 전면이 들어온다. 사원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처럼 다가온다. 숨첼링 사원은 캄 남부에서 가장 큰 라마사찰답게 마치 궁전 같은 느낌을 준다.

사찰 건물은 푸른 초목을 가운데 흰색과 붉은색이 단순하고 절제되어 있다. 황금 빛 장식을 한 지붕은 햇빛이 있는 날이면 강하게 반짝여 강렬함을 준다. 크고 화려한 대경당 및 두 주전과 달리 크고 작은 승방은 잿빛을 띠면서도 전체적으로 묘한 운치를 더한다.

왼쪽 끝에는 라마불교식 백탑 쵸르텐이 보인다. 사원 입구에 도착하면 관광객과 더불어 전통의상을 입은 티베트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멀리서 티베트 본토와 쓰촨 티베트인 거주지에서 온 사람들까지 눈에 띈다.

외부인들 사이로 붉은 가사를 입은 라마승들이 분주하게 오고 간다. 현재 숨첼링 사원에 거주하는 라마승은 600여 명에 달한다.

숨첼링 사원의 티베트식 이름은 '간덴 숨첼링 곰파'다. 간덴은 겔룩파를 상징하고 곰파는 승원(僧院)이라는 뜻이다. 이는 겔룩파 최초의 사원인 간덴 곰파에서 유래됐다.

지금은 티베트식 명칭보다는 '쑹찬린쓰'라는 중국식 발음으로 불린다. 대부분 한국인 여행객들도 중국식 이름을 선호한다.

사원 곳곳을 거닐다 보면 대전과 승방 안에서 라마승들의 경전 읽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한해 100만 명 이상 관광객이 숨첼링 사원을 찾지만, 라마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련 생활을 매진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밀려오는데다 함부로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관광객과의 소통을 꺼린다.

하지만 4~5년 전만 하더라도 라마승이 거주하는 승방에 불쑥 들어가도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1998년 처음 숨첼링 사원을 찾았을 때 여러 라마승들이 먼저 얘기를 걸면서 자신의 승방에 데려가 쑤요차(酥油茶)를 대접했었다.

지붕 처마 끝은 악어의 몸과 코끼리의 코를 지닌 수호 영물의 추신(Makara)이다.
 지붕 처마 끝은 악어의 몸과 코끼리의 코를 지닌 수호 영물의 추신(Makar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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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을 장식한 법기는 부처에 대한 기원(祈願)을 상징한다.
 지붕을 장식한 법기는 부처에 대한 기원(祈願)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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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첼링 사원 중앙의 대경당은 108개 기둥으로 지워진 5층 건물이다. 1층 대전에서는 1000여 명의 라마승이 동시에 앉아 법회를 열 수 있다.

본래 숨첼링 사원은 불상, 승려, 법기 등 삼보(佛·僧·法)를 구비한 승원이었다. 대경당과 자창전 안에는 달라이 라마 5세와 7세 때 만든 8존의 금도금 석가모니상이 있었다. 경내 모든 불전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불상, 비단에 화려한 무늬를 수놓아 탱화를 그려놓은 탕카(唐卡), 오랜 세월을 견딘 법기 및 경전 등도 있었다.

1959년 티베트 무장봉기와 이에 따른 탄압, 1966년 문화대혁명의 광란 등으로 숨첼링 사원은 거의 잿더미가 되다시피했다. 문혁 시기에는 홍위병들이 몰려와 사찰에 불을 지르고 라마승들을 쫓아냈다.

방화로 수많은 불상, 탕카, 법기 등이 전소됐다. 일부 승려가 쫓겨나면서 챙긴 소량의 법기와 경전 제외하고 온전한 것이 없었다.

개혁개방정책 후 중국정부가 티베트인에 대한 유화정책이 쓰면서 숨첼링 사원도 부활했다. 부활의 속도는 아주 더디었다. 티베트 본토 특히 라싸의 라마사원도 대부분 파괴되거나 훼손당해서 거기를 우선순위로 두었기 때문이었다.

1998년만 하더라도 불전보다는 티베트 주민의 민가가 더 많았다. 몇몇 불전과 20여 채의 승방이 있었지만, 대경당과 자창전은 한창 3층 이상 건물을 짓고 있었다. 지캉전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당시는 승원이라기보다 티베트인 마을 안에 사찰과 승방이 있는 격이었다.

지금은 지방정부의 이주정책으로 사원 내 주민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숨첼링 사원은 화려하던 옛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디칭자치주 내 있는 라마사원 24개소도 모두 복원됐다. 그 중 게룩파 사원은 13개소로 가장 많다.

하지만 파괴의 악몽은 모두 지을 수 없었다. 지금도 지캉전 밑에는 문혁 시 불에 타 기둥과 벽만 남은 승방 터가 여러 곳 있다.

마니통을 돌리는 티베트 소녀. 티베트인은 마니통을 한 바뀌 돌릴 때마다 죄업이 하나씩 사라진다고 믿고 있다.
 마니통을 돌리는 티베트 소녀. 티베트인은 마니통을 한 바뀌 돌릴 때마다 죄업이 하나씩 사라진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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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당 옥상에 안치된 북을 치는 라마승. 날마다 6번씩 친다고 한다.
 대경당 옥상에 안치된 북을 치는 라마승. 날마다 6번씩 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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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첼링 사원 내 라마승은 엄한 위계질서 속에 자유로운 수도 생활을 한다. 티베트인에게 있어서 불교는 신앙에 그치지 않는다. 생활의 일부요, 정신세계의 지주다.

티베트인은 아들을 낳으면 장남은 집안의 대를 잇게 하고 차남은 출가를 시킨다. 보통 5~6살 때 동자승으로 승원에 들어간다. 동자승이 한 명의 어엿한 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15~20년의 세월이 걸린다. 이 때문에 20세가 넘어서 출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출가는 부모의 의지로 혹은 본인이 원해서만 되지 않는다.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신체장애자가 아니어야 하며, 거세한 자는 안 되고, 출가하려는 사원 주지의 윤허를 받아야 한다.

티베트인의 출가를 통제하기 위해 중국 내 일부 지방정부는 출신지 마을 촌장이나 주민위원회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특이한 점은 출가 뒤 일정한 기간은 가족이 직접 돈이나 곡식으로 출가한 자녀를 돕는다.

숨첼링 사원의 라마승은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하고 불경 공부를 착실히 해야 한다. 라마승은 티베트 문화와 예술의 전승자로, 출가하면서부터 제대로 된 티베트 전통교육을 받는다.

갓 출가한 승려는 티베트 문자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전도 한 자씩 떠듬거리며 읽는다. 경전 공부는 5년 이상 되어야 티베트 문자를 막힘없이 강독할 수 있다.

날마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라마승의 하루 일과는 바쁘고 고달프다. 경전 공부에 텃밭 농사, 사찰 청소, 부엌 일까지 하루해가 언제 가는 줄 모른다.

교리학습은 경전 암송과 스승 및 동급생과의 문답으로 철학적 사고를 갖추도록 되어 있다. 속세의 학교처럼 매년 말 시험을 거쳐 한 학년씩 올라가는데, 유급이 되면 다시 1년을 되풀이 공부한다. 두 번 이상 유급이 되면 승원을 떠나야 한다.

긴장된 하루를 보내면서도 라마승들은 언제나 밝은 웃음과 넉넉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관세음보살의 축복을 받아 선택 받은 수행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경당 뒤뜰에서 바라 본 쵸르텐과 숨첼링 사원의 티베트 및 한자식 표기.
 대경당 뒤뜰에서 바라 본 쵸르텐과 숨첼링 사원의 티베트 및 한자식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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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첼링 사원 바로 앞에는 민가가 여러 채 있다. 한 민가에서 재배하는 티베트인의 주식 칭커(靑?).
 숨첼링 사원 바로 앞에는 민가가 여러 채 있다. 한 민가에서 재배하는 티베트인의 주식 칭커(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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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Tip

샹그릴라는 아주 작은 도시다. 열심히 발품을 팔면 걸어서도 돌아볼 수 있는 크기다. 샹그릴라를 돌아다닐 때 중요한 버스 노선은 1번과 3번이다. 1번은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성(古城) 사이를 오가고, 3번은 고성과 숨첼링 사원 구간을 다닌다.

버스는 짐칸이라 느껴질 정도로 오래 됐지만, 그만큼 버스비도 싸서 단돈 1위안(한화 약 170원)이다. 고성에서 택시로 갈 경우 15위안(약 2550원)이 든다.

숨첼링 사원의 개방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략 8:00~18:30이다. 입장료는 2009년 5월부터 갑자기 2.5배 뛰면서 85위안(약 1만4450원)이 됐다. 사원은 구석구석 볼 것이 많아서 넉넉잡고 3시간 이상을 잡아야 다 볼 수 있다.

사원 내에서는 사진과 캠코더 촬영이 가능하지만, 불당 안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특히 법회가 열리는 불당은 밖에서 안을 촬영하는 행위를 가급적이면 피해야 한다. 숨첼링 사원 라마승 대부분은 관광객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이다. 지금은 모두 간단한 중국어를 할 줄 알고 영어를 구사하는 라마승도 간혹 있다.

몇몇 사교적인 라마승은 자신이 거처하는 승방을 공개하기도 한다. 티베트어로 된 불교 경전을 보여주며 라마불교의 세계를 열정적으로 소개한다. 불자라면 라마승과 양국의 불교 철학과 문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좋다.

라마승은 평생을 승원에서 살아야 하기에 가보지 못한 외국의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다. 라마승과의 교류는 티베트인을 사귈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라마불교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윈난, #샹그릴라, #티베트, #라마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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