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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서울 광진구의 한 주민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동네에 있는 한 애완동물가게가 문을 닫게 되었는데 주인이 19일 가게를 정리하며 남아있는 동물을 모두 버리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

그 주민은 3년간 그 가게의 손님으로 다니며 주인이 평소에도 가게 동물을 돌보지 않아 직접 청소도 해주며 돌봐주었는데 이제 와서 문을 닫으며 동물을 버리겠다는 것에 매우 분개해 있었다.

동물자유연대는 주인이 동물을 유기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최후의 방법으로 모두 동물을 양도받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16일 금요일 광진구청의 동물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협조요청을 했고 주인으로부터 동물에 대한 소유권 포기와 양도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광진구 유기동물 담당 수의사들로부터 일부 햄스터의 보호(10여 마리)와 입양에 대한 협조도 받을 수 있었다. 

폐업 가게, 동물 소유권 포기하고 양도

폐업한 애완동물가게에 남아있는 동물들
 폐업한 애완동물가게에 남아있는 동물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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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남아있는 동물이 햄스터 70여 마리, 기니피그 12마리, 토끼 3마리라는 것이다. 애완동물산업의 확장으로 개와 고양이를 제외한 다양한 동물들이 거래되고 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이 동물들의 양육방법이나 생태조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실지로 햄스터 등이 굶어죽고 방치되는 일은 흔하게 발생하곤 한다.

19일 사무실에 도착한 동물들. 고양이가 있기 때문에 설치류인 햄스터를 오래 둘 수 없는 상황.
 19일 사무실에 도착한 동물들. 고양이가 있기 때문에 설치류인 햄스터를 오래 둘 수 없는 상황.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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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저녁 사무실에 도착한 동물들. 더욱 큰 문제는 그 안에서 암수 구분이 안 되어 일부 햄스터가 새끼를 낳았다는 것이다. 암수의 분리가 시급했다. 그러나 분리의 작업 또한 쉽지 않았다. 20일 분리작업을 하려고 우리 안에 손을 집어넣자 햄스터들이 손을 물고 자기들안에서 심하게 싸우는 광경을 목격한 것.

햄스터를 키워본 경험 있는 회원들의 조언에 따르면 햄스터들은 암놈, 수놈끼리 붙어 있으면 격렬하게 싸운다고 한다. 그렇다고 중성화수술도 불가능한 동물들을 합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암수 한 쌍이 한 달에 한번 번식이 가능하니 조금만 지나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70마리 이상의 햄스터를 한 마리씩 분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고 우리 또한 70여 개 이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제는 동물자유연대의 사무실은 보호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곳은 가정집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고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사무실은 학대받다 구조되어 온 30여 마리의 개와 고양이들로도 이미 포화상태다.

진퇴양난, 최후의 시간이 온다면?

햄스터는 동성끼리 서로 격렬하게 싸운다. 따라서 한 마리씩 격리해야 한다.
 햄스터는 동성끼리 서로 격렬하게 싸운다. 따라서 한 마리씩 격리해야 한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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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모든 동물단체가 직면하게 되는, 우리가 필요악이라고 부르는,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보았던, 그러나 생각하기 싫은 문제에 직면한다. 안락사.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장기간 이 동물들을 보호할 수 없으며 엄격한 조건하에 입양이 완료되고 더 이상 입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21일 오후 간사들은 햄스터 분리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암수를 구분하고 격렬한 싸움으로 많이 다쳐 치료도 불가능한 동물, 이미 몸이 쇠약해있거나 다친 동물들은 모두 일차 안락사 대상이다. 

소식을 접한 회원들 중 경험자들이 사육 방법에 대해 조언을 주었고 현재 책임감 있는 회원들이 한 마리씩 입양신청을 하고 있다. 모두 구조되어 온 개나 고양이를 이미 입양한 분들이고 또 한 마리의 동물을 데려간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그러나 언제나 부담은 우리들에게 돌아온다. 누군가는 동물을 함부로 키우고 버리고 돈을 벌며 이득을 취하고 그 뒤처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이런 사람들을 천사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절대 선을 실행하는 천사는 없다. 그것은 오직 책임감 없는 사람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방패막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사회 구조의 모순을 가려 본질을 왜곡하는 역할을 한다. 무분별한 애완동물 산업은 필연적으로 동물방치와 학대로 이어진다.

규제없어 방치되는 동물 늘어나

현재 우리나라의 애완동물산업의 규모는 1조 원에 달한다. 산업 규모가 커지는 만큼 햄스터, 이구아나, 뱀, 새 등 키우는 종도 다양해지고 있으나 이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은 미약하다. 현재 동물보호법상 보호 동물의 범위는 포유류, 조류에 한정되어 있고 파충류 양서류 어류의 경우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장과 협의를 거쳐야지만 보호대상이 될 수 있다.

동물보호법상 판매업을 규제하기 위한 판매업등록제도 개에 한정되어 있다. 이는 판매업의 시설과 인력기준이 개를 제외한 다른 동물에 대한 판매행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 이외에 다른 동물들을 사고 파는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은 없는 셈이다.

희귀한 동물에 대한 애착은 이들 동물에 대한 수입의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7년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국내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외래종은 4억 9700만 마리로 이는 2003년에 비해 600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 파충류와 양서류는 검역의 대상조차 아니니 각종 질병과 환경생태계 파괴에 대한 고려조차 없는 상황. 희귀동물에 대한 애착은 증가되었으나 이들 동물에 대한 습성이나 생태 조건에 대한 인식은 전무하다. 수 만 년을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개들조차 제대로 양육되지 못해 방치·학대·유기되고 있는 실정에 토끼·햄스터·이구나아· 뱀 등 생태 습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동물들이 일반인들의 손에 손쉽게 들어가면 이는 바로 학대와 방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분리 작업. 작업시에는 사람의 냄새가 묻지 않게 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
 분리 작업. 작업시에는 사람의 냄새가 묻지 않게 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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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을 가기 전 한 마리씩 분리된 햄스터들.
 입양을 가기 전 한 마리씩 분리된 햄스터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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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작업이 끝난 후 확인한 기존 우리. 햄스터의 피와 배설물로 악취가 가득하다. 동물을 방치하는 것 역시 학대다.
 분리작업이 끝난 후 확인한 기존 우리. 햄스터의 피와 배설물로 악취가 가득하다. 동물을 방치하는 것 역시 학대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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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값싼 동물이며 키우기 쉽다는 인식으로 무분별하게 판매 양육되는 햄스터, 기니피그, 토끼들.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21일 오후 안락사 할 동물들을 선별하던 중 광진종합동물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선별된 동물들 중 기니피그를 광진구에 있는 한 동물병원에서 보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입양과 보호를 도와줄 분들로 안락사를 면한 동물들.

현재 사무실에 남아있는 동물은 토끼 1마리, 기니피그 4마리, 햄스터가 30마리. 심하게 다쳐 회복이 불가능한 햄스터 8마리만 안락사되는데 그쳤다. 2005년 개고기로 전락할 뻔한 시츄 78마리가 들어왔던 사건 이래 두 번째 대량 동물 입소다. 또 언제 이런 일이 발생할지 우리는 항상 불안하다. 

책임지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2005년 개고기가 될 뻔한 시츄 78마리가 사무실로 입소한 사건. 질병이 심했던 일부 개들은 결국 안락사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또 이런 비극이 발생할지 불안하다.
 2005년 개고기가 될 뻔한 시츄 78마리가 사무실로 입소한 사건. 질병이 심했던 일부 개들은 결국 안락사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또 이런 비극이 발생할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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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들어온 지 6일째. 보면 정든다고 했던가. 녀석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그냥 키울까? 하지만 인간이든 동물이든 책임지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 골치 아픈 잉여동물을 책임지는 천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현상을 구조적인 문제로 파악해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 안에 살고 있는 대부분 동물들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과잉 생산되고 있으며 그들 삶의 끝은 대부분 비극적이다. 다른 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 동물자유연대는 남아있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입양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호기심과 충동에 의한 일시적인 입양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동물의 생태적 조건을 지켜주고 죽음의 순간까지 책임져 줄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www.animals.or.kr



태그:#애완동물산업, #동물방치, #동물학대, #햄스터,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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