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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공연을 맞아 그의 공연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에세이 연재입니다. <편집자말>
 송경동 시 '대추리에서'

 

정태춘/박은옥 선배가 오랜만에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5년 6개월만이라고 한다. 다시 또 끌려나온 자리인 줄을 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아."

"노래가 무슨 힘이 된다고."

 

몇 년 사이 그들은 한사코 노래하기를 마다했다. 그런 그들의 노래를 다시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많은 날을 여러 사람들이 설득했다고 들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쓸쓸해져 가는 우리 시대에 대한 사랑. 진정한 예술에 대한 사랑. 우리 이웃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 작지만 깊은 사랑의 마음들이 그들로 하여금 다시 무대에 서게끔 했다.

 

대추리에서 그들은 우리들의 대책 없는 대장이었고 따뜻한 누이였다. 대추리 투쟁이 끝난 후 우린 모두 쓸쓸해졌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를 위해 싸우다 패배하고 대추리를 떠나오던 마지막 날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린 그날 우리 손으로 황새울에 세웠던 최평곤형의 <들지킴이>에 석유를 끼얹곤 불태웠다. 대추리에서 너희들이 파괴한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길이길이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 인천 산동네 '기차길 옆 공부방' 아이들이 와서 그려놓은 벽화 한쪽은 떼어 인근 농협 창고로 실어 날랐다. 대추초교 운동장에 언젠간 다시 돌아오리라는 소망과 약속의 타임캡슐을 눈물로 묻었다.

 

마지막으로 평화동산에 세워두었던 <파랑새 소녀>를 평택호 쓸쓸한 공터로 옮겨 주었다. 빛 하나 없는 평택호에 <파랑새 소녀>를 세워두곤 서러워 흘린 눈물만큼 찬 소주를 들이켜기도 했다. 어디로도 갈 곳 없는 마음들이 평택역 뒷골목 시장 좌판으로 어디로 몰려다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우리는 대추리로 다시 돌아와 이젠 무너져가야 할 빈집들의 세간들을 내어 불태우며 빼앗긴 들에서 밤을 새웠다.

 

그 후로 3년여. 그들은 밖으로도, 거리로도 잘 나오지 않았다. 기륭비정규 투쟁을 하며,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용산과 함께 하며 나는 때때로 필요에 따라 그들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 그들의 노래보다 그들의 대중성과 인지도가 더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뼈아픈 호명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곧잘 그들의 상처를 헤집곤 했다.

 

"봐줘. 경동이. 나의 노래는 이제 힘이 안돼."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싶진 않아. 근본적인 싸움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갈게. 그때 불러줘."

 

수십 년 동안 늘 소모적인 일들로, 도구적으로 쓰임을 당한다는 것이 문화예술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기에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사랑했던 속칭 386들은 모두 변해갔고, 노동자민중들은 시대의 주체로 서지 못했다. 미완의 87년은 자기 갱신을 통한 재도약으로 가지 못하고, 오히려 거덜나 시대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대의 시궁창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그들은 이런 시대의 혼탁한 공기를 참지 못하는 여린 새들. 잠수함의 토끼들이었다. 아직 꺾이지 않은 푸르른 싹들이었다. 타협이 불가능한 양철북들이었다. 갈리아의 수탉이며, 아직 어린 모모들이었다. 아직 꿈을 접지 못한 로맨티스트였고, 오지 않은 세계를 아직도 꿈꾸는 몽상가들이었다. 부조리한 세계와 화해하지 않고 불화하기 위해 제 노래를 접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예술가들이었다.

 

그런 문화예술인들이 이젠 많지 않다. 시대의 짠 소금으로, 신선한 대기로, 고독한 피뢰침으로 외롭게 서 있어야 할 문화마저 어느새 모두 상품이 되어버리고 만 이 쓸쓸한 시대에 아직 그들이 있다는 것이 따뜻하다. 소비되는 노래, 소비되는 시가 되지 않기 위해 노래를 멈춘 그들의 고통이, 완고함이 나의 폐부를 자르듯 아프지만 향기롭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고귀한 자산이었다. 이젠 우리가 다시 그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어야 할 시간이다. 그들의 노래가 지난 30여 년간 우리에게 사랑을 나눠 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참 부족하고 늦은 일이다. 우리가 정태춘/박은옥을 기억하는 일은, 때로 우리의 시대를 우리 스스로가 지키고 사랑하는 일의 한 가지가 될 것이다.

 

그들의 노래는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아픔과, 우리의 좌절과, 우리의 꿈을 노래해 주었다. 이제 다시 우리들의 노래를, 시를, 그림을, 조각을 되찾아야만 한다. 가수가 목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화가와 시인이 죽봉을 들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우리는 다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그 가수가 다시 우리 시대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 노래할 수 있도록,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해 줄 수 있도록 우리가 이젠 그의 다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절망하지 말아야 하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정태춘·박은옥 30주년 기념 콘서트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 때 : 2009년 10월 27일(화) - 11월 1일(일), 평일 8시, 토·일 5시

- 곳 :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 공연장 옆 '경향아트 갤러리'에서는 정태춘·박은옥 트리뷰트 미술전 <다시 건너간다>가 열린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송경동씨는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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