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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갈아엎는 트랙터 29일 오전 여주농민회 회원들이 쌀값폭락에 항의하며 트랙터를 이용해 논을 갈아엎고 있다.

 

진흙탕으로 변한 논 1000여평의 논은 20여 분만에 진흙탕으로 변했다.

 

"봄부터 1년 내내 뼈 빠지게 고생했는데, 요즘은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잠도 안 옵니다."

 

29일 오전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본두리 신동선(여주군 농민회장)씨 소유 논두렁에 100여 명의 농민들이 서 있었다. 여주뿐 아니라 포천, 화성, 평택, 안성 등지에서 온 이들 농민들이 두른 머리띠에는 '쌀값보장'이라는 구호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이 바람에 넘실댔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이윽고 굉음을 내면서 트랙터 3대가 논으로 들어섰다.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1년간 애써 키운 벼를 갈아엎기로 한 것.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벼가 트랙터 바퀴 아래 무참히 깔리는 것을 바라보는 논주인 신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농민들은 남의 밭에 나는 곡식 하나도 함부로 밟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오죽했으면 이렇게까지 했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연 신씨는 "그래도 누가 한 발을 들여 놓아야지만 제2, 제3의 논 갈아엎기를 막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주르르 흐르는 눈물 "남의 곡식도 함부로 밟지 못하는 게 농민들인데..."

 

신씨뿐 아니라 이 광경을 바라보던 다른 농민 여러 명도 긴 탄식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트랙터를 운전한 박광백(53)씨는 "아침저녁으로 돌본 벼 이삭을 추수도 하지 않고 갈아엎는 심정은 농민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자식을 밟는 것과 똑같은 아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비료값, 농자재값이 얼마나 올랐는데, 아직 수매가격도 정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농민들보고 땅 팔아서 먹고살란 얘긴가요?" 이원근(55, 가남면 신혜리)씨는 "농약값과 비료값, 기름값 등이 계속 오르고 생활비도 치솟았지만, 쌀값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정부가 수매가를 올려주지는 못할망정 떨어뜨리지는 말아야지, 이대로 가다간 우리 농촌은 얼마 못 가 파산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민들은 현재 정부가 잠정적으로 정한 쌀 목표가격 17만83원(80Kg 기준)은 생산비에도 턱없이 못 미칠 뿐 아니라, 순수익으로 따지면 작년에 비해 소득이 40% 가까이 감소하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쌀이 남아도는 것이 농민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이전 정권에서는 남아도는 쌀을 이북 사람들 돕는 데 보내기도 하고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밖에는 머릿속에 없나봐요."

 

40대 후반의 박아무개씨는 "일하면 일할수록 빚만 느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라며 "미안해서 아들에게는 농사지으라는 말을 차마 못 하겠다"고 말했다.

 

벼를 갈아엎는 트랙터 추수를 기다리던 논은 금새 누런 진흙탕으로 변했다.

"쌀 대란 대책은커녕 쌀값 하락 부채질하는 정부"

 

쌀값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작년에 이은 풍작이다. 작년의 쌀 수확량은 484만톤으로 평년 수준(457만톤)을 넘었는데, 농식품부는 올해 수확량을 465만 톤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민들의 쌀 소비가 줄어든데다 쌀 시장 개방 유보의 대가로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도 30만 톤이 넘는다. 거기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매년 북한으로 향하던 40만톤 규모의 쌀 지원이 중단된 것도 쌀 재고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한 가마(80Kg)에 16만 2000원이었던 쌀값이 현재 산지에서는 13만원 이하로 떨어졌으며, 수확기에 햅쌀이 쏟아져 나오면 13만원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농민들은 "이미 봄부터 쌀 대란을 예견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수수방관하던 정부는 오히려 공공비축미를 시중에 방출해 쌀값 하락을 부채질했다"며 "8월에 들어서야 쌀 10만톤을 사들이는 늑장 대응을 해 농가를 파탄 나게 했다"고 비판했다.

 

여주군 농민회 김주철 정책실장은 "쌀 문제는 시장 논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입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실장은 또 "이번 쌀값 폭락은 정부가 쌀값을 잡는다고 공공비축미를 푸는 바람에 발생했다"며 "농민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정부 대응은 말도 안 된다"고 성토했다.

 

이어 김 실장은 "지난 정권에서는 해마다 40만 톤가량의 쌀을 북한에 지원해왔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 중단되었다"며 "이것이 쌀값 하락을 부채질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지원하는 문제는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결정되어선 안 되고, 인도적 견지에서라도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랙터 세 대는 20여 분 만에 1000여 평의 논을 다 갈아엎었다. 알알이 익어 수확을 기다리던 논은 누런 진흙탕으로 변했고, 농민회에서 내건 플래카드만이 가을바람에 나부꼈다.

 

"쌀값은 농민의 생명값이다."

 

정부는 책임지고 쌀값을 보장하라! 29일 오전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본두리에서 농민들이 쌀값폭락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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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