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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 집주인들은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대가로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내놓기도 한다. 사진은 서울 반포동의 한 아파트.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 집주인들은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대가로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내놓기도 한다. 사진은 서울 반포동의 한 아파트.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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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를 구하는데요. 시세보다 좀 싼 게 있나요?"
"있긴 있는데…."

서울 반포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말을 하다 뜸을 들였다. 다음 달에 입주할 수 있는 인근 아파트에 3000만 원 정도 싼 매물이 있긴 하지만 조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말을 이어가면서 그는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도 비쳤다. 

"시세보다 3000만 원 정도가 싸긴 한데 전입신고를 못해요."

이처럼 시세보다 싼 '물건'들은 집주인들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내놓은 것들이다. 서울의 경우 3년 보유, 2년 거주 요건을 갖춰야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집주인들이 이 기간을 채우기 위해 실제로는 전세를 내주면서 주민등록은 본인 명의로 해놓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위장전입을 할 경우 집주인은 수천만 원대의 세금을 피할 수 있다.

만약 위장전입이 적발되면 형사처벌과 함께 국세청으로부터 40%의 가산세가 부과되지만 단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설사 단속에 걸린다 해도 처벌은 가벼운 벌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입신고를 안 하겠다는 세입자를 찾기 힘들어서 그렇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느냐'가 일반적인 정서"라고 말했다.

수천만 원 세금 포탈 위한 위장전입... 처벌은 경미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되어버렸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민일영 대법관은 부동산 취득을 위해 부인이 위장전입을 했고,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공무원 신분으로 장인의 선거를 돕기 위해,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교육을 위해 각각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각 부처 장관은 물론 대법관, 검찰총장 등의 실정법 위반 사실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의 필수 코스'라는 자조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도덕적인 비난 여론이 높다.

하지만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일반 국민들도 아파트 분양을 받기 위해, 자녀 교육을 위해, 세금을 줄이기 위해 호시탐탐 위장전입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강남 지역에서는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에 배정받기 위한 중학생들의 위장전입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3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위장전입 '지침'을 가르쳐줘 물의를 빚기도 했다. 강남지역에 있는 인기 고등학교를 가려면 학교 인근으로 주소지를 옮겨놓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교사는 인터넷 IP 주소 옮기기 등 단속을 피하는 방법까지 알려줬다.

서울시 교육청은 일반계 고등학교에 배정된 학생이 거주지를 속인 것이 확인되면 실제 거주지 학교로 재배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위장전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이 서울인데도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찾는 학부모들이 종종 찾아온다"며 "이 경우는 대부분 강남권 학교 배정을 위해 자식들의 주소지를 임시로 옮겨놓을 집을 찾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서민층에서는 출산장려금이나 복지 지원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기도 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위장전입 후 지원금을 타내는 부정수급자를 막으려고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고 전라남도의 경우 인근보다 출산장려금이 높은 지역의 위장전입과 '먹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김준규 검찰총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청약통장 관련 의혹에 대해 추궁하고 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김준규 검찰총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청약통장 관련 의혹에 대해 추궁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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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 범죄 아닌 절세·재테크 수단?

하지만 위장전입에 대한 처벌은 그로 인해 얻는 유무형의 이익에 비해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때문에 위장전입은 범죄라기보다 절세나 재테크의 수단, 또는 사회·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처세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검찰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입건된 1504명 가운데 기소해 처벌받은 사람은 733명에 그쳤다. 처벌 받은 경우도 벌금형에 해당하는 약식기소가 693명으로 대다수였고 벌금액수도 수십만 원대로 경미하다. 정식 재판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대부분 사기 등 다른 범죄와 연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솜방망이 처벌'의 대표적인 사례가 충청남도 당진군의 '위장전입 작전'이다. 지난 2007년 충남 당진군은 '도·농복합시' 승격에 필요한 인구 5만 명을 채우기 위해 군청 차원에서 위장전입 작전을 세웠다. 3만8000명 선이던 인구를 그해 말까지 5만 명으로 늘리려고 민종기 당진군수는 부하 공무원들에게 목표를 할당하고 실적을 점검하는 식으로 위장전입을 주도했다. 하지만 검찰은 민 군수를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하고 실무자들에게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또 인사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이 드러나 형사처벌된 공직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만도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김준규 검찰총장 등은 모두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졌지만 공소시효(3년)가 지나 처벌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모두 '면죄부'를 얻었다.  

하지만 위장전입은 가볍게 볼 '범죄'만은 아니다. 부동산 취득을 위한 위장전입은 타인의 부동산 취득 기회를 박탈해 경제적으로 이익을 취하는 행위이고 자녀 교육 목적의 위장전입도 타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는 사기 행위라는 것이다.

주민등록법상에서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폭행죄(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나 과실치사(2년 이하 금고나 700만 원 이하 벌금) 등과 비교해도 경미한 범죄는 아니다.

외국에서는 강하게 처벌... "고위공직자 위장전입부터 엄벌해야"

실제 외국에서는 단순히 교육목적의 위장전입이라고 하더라도 강력하게 형사처벌하고 있다. 

민주당 인사청문 태스크포스(TF) 자료에 따르면, 미국 뉴욕주에서는 학교 입학을 위한 위장전입 사건에서 학부모에 대해 3급 중절도죄 및 1급 문서위조죄를 적용해 기소했고 자녀들은 당일 퇴학시켰다. 또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는 자녀들을 좋은 학군의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주소를 거짓으로 작성한 부부가 구속됐고 자녀 1인당 1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영국에서도 입학원서에 자신의 어머니 주소를 쓴 한 여성이 허위대리에 의한 사기죄로 기소됐다.

때문에 우리도 실정법이 금지하고 있는 위장전입에 대해 법을 제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위공직자의 위장전입이 용인되고 이게 다시 사법기관으로 하여금 일반 국민들의 위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황희석 변호사는 "법무장관 후보자부터 검찰총장, 대법관까지 줄줄이 위장전입에 얽혀 있어 사법부가 제대로 법집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딱하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고위공직자들부터 위장전입이 적발될 경우 법대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너도나도 위장전입에 나서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그:#위장전입,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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