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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신작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를 낸 한비야씨가 31일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 초청돼 강연하고 있다.
 최근 신작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를 낸 한비야씨가 31일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 초청돼 강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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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언니,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걱정 말고 잘 다녀와요."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가 오고 간 뒤, 한비야씨는 그 여대생의 손을 꼭 잡고 있는 힘껏 포옹해줬다. 여대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의 체구보다 더 작은 '비야 언니'의 품에 안겼다. 멀리서 지켜보다 괜히 심술이 났다. 이 사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야?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놔도 되나... '주책바가지' 같아서

"나중에 책을 펴놓고 보니까 너무 주책바가지 같은 거예요. 이렇게 속마음을 툭툭 털어놔도 되나… 그래도 친구들이 내 속마음을 잘 알 수 있겠다 싶어 용기를 냈어요."

31일 저녁,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그건, 사랑이었네>를 펴낸 한비야씨와 독자들이 '도란도란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명목은 '저자와의 대화'지만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늦은 오후, 우리 집에서 따끈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얘기해 보자"는 자리다.

한비야씨는 자신이 펴낸 책을 '딸'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이 책은 '막내딸'이다. "예전 책들이랑 다르다. 어떻게든 길을 떠나봐라, 행군하라, 지도 밖으로 나가라고 하며 험난한 여행기를 썼었는데, 이번에는 <그건, 사랑이었네>지 않냐"며 이 책이 본인의 '사랑 고백서'임을 밝혔다.

그런데 쓰고 보니 '주책바가지' 같아 걱정했다니 그럴 만도 하다. 언제나 당당하고 활기찬 '여전사'로만 생각했던 그가 이 책 속에서는 흔들리고 원망하는 한 여자일 뿐이다. 첫사랑을 고이 간직하고 싶어 하는 소녀이기도 하다. 물론 늦은 저녁, 한비야씨와 만나기 위해 모인 독자들에게는 '주책바가지'가 아닌 '친한 언니'며 '좋은 누나'였지만.

'바람의 딸' 한비야씨가 31일 저녁 오마이TV 생중계 '저자와의 대화'에 출연해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낸 책 <그건, 사랑이었네>에 대해 강연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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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꿈을 꾸는데 당신은 뭘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800대 1의 경쟁을 뚫고 오신 분들입니다. '저자와 대화'를 하러 오셨으니까 내 얘기 말고 여러분과 함께 소통하고 돌아가고 싶어요. 솔직히 난 이 늦은 시간에 작가를 만나러 '상암동 골짜기'까지 온 여러분이 '돌았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나보다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지요. 호칭은 '비야 언니'가 좋습니다. 먼저 질문하실 분?"

그녀는 거침없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모인 70~80여 명의 독자들, 자리가 부족한 탓에 서서 듣는 이들에게 '돌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니 말이다. 그만큼 '저자'와 '독자'라는 벽을 허물고 가깝게 다가가려는 열정이 뜨거웠다. 어쩌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중국견문록><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등의 책을 통한 소통으로 벽 따위는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열혈 독자들이 모인 자리다 보니 그들의 책 사랑도 남달랐다. 대화의 '스타트를 끊은' 30대 여성은 "긴급 구호 현장에서도 책을 읽는 한비야에게 '책의 힘'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재난 현장에 가면 다 '죽상'을 쓸 것 같죠? 아니에요. 쓰나미 현장에서 부모며 동생이며 다 잃고 혼자 살아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에게 '어쩔 수 없었다. 네 탓이 아니다. 파도가 휩쓸어 가지 못한 네가 멋있는 생존자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그 아이는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구구단을 외고 있죠. 중요한 건 '희망'이예요. 책이 나에겐 그런 '희망'입니다. 시체가 널려 있고 온몸에 땀띠가 나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날에도 책을 봐요. 대신 유치찬란하고 황당무계한 로맨스 소설 같은 걸로. 안 그럼 견딜 수가 없거든요."

덧붙여 초등학생에게 '니체'를 읽히는 어른들이 너무 "미안하다"며 "나이에 맞는 독서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40대 여성은 "선생님이 너무 뵙고 싶어서 광주에서부터 12시에 '목욕재계'하고 이곳까지 왔다"며 "꿈을 포기한 우리에게, 여전히 꿈을 꾸는 선생님이 한 말씀 해 달라"고 말했다.

"40대는 꿈꾸기 어려워 보이죠. 그런데 요즘 10대 20대도 자꾸 늦었다고 해요. (한 학생에게 몇 살이냐고 묻자 그가 27살이라고 대답했다) 스물일곱이요? 인생이란 축구경기에서 겨우 27분 뛰고 있는 거예요. 전반전은 끝나지도 않았고, 후반전도 있고 연장전도 있는 걸요.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무엇이 정말 가슴 뛰는 일인지 찾아보면 꼭 있을 거예요. 거창하게 몇십만 명 살리는 것도 좋지만 한 사람을 살리는 것도 굉장히 가슴 뛰는 일이잖아요. 쉰이 넘었지만 저는 제 인생의 후반전에 고작 5분 뛰었어요."

"비야 누나의 <중국견문록>을 읽고 중어중문과에 갔다"는 20대 남성은 "어떻게 하면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물었다.

"에너지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남을 위협하고 장악하려는 힘. 다른 하나는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하는 힘이죠. 저는 '바람의 딸'이라는 예쁜 별명이 있지만 '빛의 딸'이란 별명을 더 얻고 싶어요. 온 인류를 비출 순 없겠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 내 책을 읽는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요. 난 내가 참 맘에 들어요. '긴급구호 팀장' 뭐 이런 게 아니라 정말 소소한 것들. 내가 한씨라는 것, 58년 개띠라는 것이요. 내가 너무 호들갑스럽게 날 좋아하는 것 같지만, 이건 내가 맘에 들기로 결심한 거예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까요? 

그녀는 계속해서 얘기했다.

"두 번째는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그걸 아는 사람은 겉으로 티가 나요. 이라크에 갔을 때 무전기를 들고 찍힌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볼 때마다 '자뻑'하는 걸요. 사실 그때 방탄조끼를 입어 온몸에 난 땀띠가 짓물러 있었고, 눈은 실핏줄이 터져서 피눈물까지 나던 상황이었는데도. 하지만 정말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고로 예뻤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싶으면 어떤 것도 아낌없지 드리고 싶어요. 100도로 끓는 삶은 어떤 건가. 다 받아가세요. 전 이미 100도로 끓는 삶을 알았기 때문에 99도의 삶을 살 수 없고 앞으로도 펄펄 끓는 삶을 살 겁니다. 나, 우리 집, 대한민국,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사람으로."

그곳에 모인 독자 중에는 부모님 몰래 온 고3 학생도 있다. "대입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꿈이 없어서 걱정된다"며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꿈을 꾸든 크게 꿨으면 좋겠어요. 누가 당신들의 꿈이 안 이뤄질 거라고 해요? 무슨 달나라에 가겠다는 꿈도 아니잖아요. 사실 가장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 사람은 구호 일을 하는 우리예요.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 모든 이들이 공평한 삶을 사는 세상,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세상이죠. 그런 세상이 올까요?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요? 난 40대 때의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부었어요. 그런데 세상은 변했나요? 그대로예요. 바보들의 행진.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나는 너무 행복해서 포기할 수가 없어요. 대체 무슨 꿈이 길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58년 개띠, 그런데 난 아직 내가 뭐가 될지 궁금해요. 열아홉 살인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생각해보니' 사랑이었네

 최근 신작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를 낸 한비야씨가 31일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 초청돼 강연하고 있다.
 최근 신작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를 낸 한비야씨가 31일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 초청돼 강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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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신작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를 낸 한비야씨가 31일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 초청돼 강연하고 있다.
 한비야씨를 초청한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 수많은 독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행사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푸른숲 출판사가 공동주최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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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씨와의 '늦은 오후 티타임'이 끝난 시간은 저녁 9시, 이 전의 다른 작가들보다는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먼 곳에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 '상암동 골짜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빨리 보내나? 바쁜 줄은 알지만 섭섭했다. 사실 '그렇게 바쁜가?'란 생각이 먼저였다.

그러다 어딘가 구석에서 한 여대생의 고민 상담을 받으며 손을 꼭 잡아주는 한비야씨를 본 거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 그녀와 함께 온 관계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눈치를 주고 있었지만, '비야 언니'의 눈은 그 여대생만을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느꼈던 괜한 '심술'은 위로하고 위로받는 '그녀들의 소통'에 대한 질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비야 자신의 고백처럼, 세상과 그녀를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또 내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 지도 알 것 같다.

"'그건 사랑이었네'가 아니에요. '그건 콤마가 있고 사랑이었네'에요. 그건… '생각해보니' 사랑이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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