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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현병철 교수는 그야말로 '누구세요?'다. 1992년부터 인권운동을 해 온 류은숙 활동가는 '현병철'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현병철 임명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장은 잘 모르지만, 30년간 법학을 했기에 인권문제에 대해서 알고는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30년 동안 무슨 공부하셨는지 알아보려고 논문을 살피다보니 인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나온 것이라고는 '자기 표절'이었다. 검찰총장 후보자는 생중계되는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하고, 학자 경력 하나로 국가인권조직의 수장에 임명된 이는 논문 표절이다. 나라 꼴이 비참하다.

 

거짓말한 검찰총장 후보자는 결국 사퇴했다. 2003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현병철 인권위원장 임명자는 인권단체들의 반발에 취임식을 연기했다. 2001년 인권위 설립 이후 최초의 사건이다. 17일에 치르지 못한 취임식은 20일로 연기되었으나 이 역시 거센 반발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가인권위원장이 한 평생 인권을 위해 살아온 이들의 거센 반발로 취임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자격이 없음을 말한다. 자격이 없는데 자리를 맡는 것은 죄다.

 

거세지고 있는 신임 인권위원장 논란에 있어서 논문표절과 인권영역의 문외한이라는 비판과 함께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회장국 수임 가능성이다. 우리가 봐도 이 사람이 왜 인권위원장인지를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는데, 국제 인권전문가들이 보면 오죽하겠는가? 이 임명이 철회되거나, 임명자가 자진사퇴하지 않는다면 국제적 망신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리고 그 망신은 현병철 위원장 개인을 넘어서서 국가적 망신이 될 것이다.

 

예정된 국제적 망신

 

지난 6월 30일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내세웠던 이유 중 하나가 "오는 8월 3일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APF)' 연례총회에서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회장 후보국과 후보자가 선출되는 사실을 감안하여" 조기 사퇴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은 ICC 단독 부의장국인데, 차기 의장국 선출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세계 120여 국가의 인권기구를 연합기구인 ICC 회장은 국제인권 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이다.

 

안경환 전 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 관계자들은 차기 회장국 선출을 위해서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이는 개인의 영광을 넘어서서 ICC 회장국으로서 갖는 '인권 선진국'의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일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이후 인권위원회의 국제적 위상은 추락을 거듭했고, 차기 회장국은 불투명해져갔다. 현 ICC 회장인 제니퍼 린치는 지난 4월 인권위 조직축소 논의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며 "정부의 인권위 축소 방침은 인권위가 국내적·국제적으로 쌓아온 신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서한을 보내왔다. 구체적으로 현재 A등급인 한국 인권위원회의 강등 가능성과 ICC회장 수임이 무산될 수 있음을 명시했다. 다른 국제 인권단체들과 UN 인권기구 역시 한국의 인권상황이 열악해지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경환 전 위원장은 사퇴의 변에서 "조속히 후임자가 임명되어 국민과 정부의 지원 아래 그동안 크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회복하고 ICC 회장국직을 수임하여 인권선진국의 면모를 일신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할 듯하다. 전 세계의 인권전문가들이 회장의 자리를 현병철과 같은 인권 문외한에게 결코 허용할리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안경환 전 위원장은 이임식 뒤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ICC 의장이 되려면 그 인물이 국제사회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안 전 위원장 사퇴 이후 인권위 관계자는 "국제적 역량이 없는 인사가 인권위원장으로 올 경우 영어권 국가에서 회장국을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회장국 수임 여부에 회의를 표하기도 했다. 국제적 역량은커녕 국내에서도 그 30년 학자인생에 인권 관련 논문 하나, 역할 하나 한 것이 없는 이가 국제사회의 검증을 통과할 리 없다. 도대체 처음보는 저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부터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사람이 없냐는 조롱에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현병철 임명은 ICC 의장국 포기 선언

 

현병철 교수의 임명은 이명박 정권이 ICC 회장국을 포기했다는 선언에 다름아니다. 알고 한 것이라면 포기의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고, 모르고 한 것이라면 도대체 제대로 아는 게 무언지를 말해해 한다.

 

삽질 마인드로는 '인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21세기의 브랜드이자 아이콘인지를 알 턱이 없다. 하긴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방한했을 때 UN이 지속적으로 권고한 병역거부 사안에 대해서 백지화 발표를 하는 수준의 정부이기에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용산 철거민 분들이 경찰 폭력에 목숨을 뺏긴 지 여섯 달이 되어가는데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나라에서 ICC 의장국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민망한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아깝지 않은가. 정말 대한민국에 그토록 사람이 없는가? 당장 인권위원장 취임식을 막으며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인권활동가들을 보자. 그 활동가들이 누군가. 인권위가 만들어질 때 보다 높은 독립성을 요구하며 추운 겨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단식농성했던 이들이다. 이명박 정권이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화 하겠다고 하자 다시 혹한 속에서 농성을 이어갔던 이들이다. 이들이 엄동설한에 노숙하고 굶어가며 지켜왔기에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국제사회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칭송 받았으며, 강력한 회장국 후보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역사와 사람들을 다 부정하는 이 정권의 천박한 인권의식이 한탄스럽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의 본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권위원회를 '좌파정권 10년'의 소산이며 통제해야 할 무언가로만 봤다. 그러나 인권은 권력과 끊임없이 대립하고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인권위의 진정 건수 중 80%가 국가 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라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인권위는 설립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도 끊임없이 갈등해 왔다. 인수위 시절부터 인권위에 대한 적대감을 보여주던 정권은 결국 현병철이라는 인권문외한을 위원장으로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실패한 인사의 책임은 오롯이 정권의 몫

 

이미 수많은 영역에서 인권의 후퇴가 일어나고 있다. 서울시내 큰 경찰서 하나보다 못한 규모의 인력으로 축소된 인권위마저 꼭두각시 위원장으로 무력화시킨다면 힘없는 이들은 정말 기댈 곳이 없다. 그것은 정권에게도 섬뜩한 일이 된다. 또한 곧 있을 ICC 회장국 선출에 예정된 실패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병철 임명자가 국제사회에서 거부당했을 때 그 뒷감당은 오롯이 무책임한 인사의 몫이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사퇴에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자격 논란까지, 정권도 난감하겠지만 이 임명은 철회되어야 한다. 자진사퇴가 아름다운 모습이겠으나, 신영철 대법관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한국에서 자진사퇴만을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과감하게 자격을 갖춘 이를 새롭게 임명하고, 예정된 회장국으로의 선출이 이어진다면 정권 차원에서 이만큼 생색을 낼 수 있는 인사도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에는 현병철 교수보다 뛰어난 인권전문가가 수백 명도 넘을 것이니 물색에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오는 8월 3일부터 ICC 회장 후보국과 후보자가 선출된다. 채 보름이 남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현병철, #국가인권위, #안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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