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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읍 고려궁지 올라 가는 길가 작은 언덕 위에 강화성당이 방주처럼 자리하고 있다.
 강화읍 고려궁지 올라 가는 길가 작은 언덕 위에 강화성당이 방주처럼 자리하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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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는 특이한 성당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강화읍에 있는 강화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길상면에 있는 온수리 성당이다. 모두 한옥절충식으로 지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종군사제 출신이며 한국에 선교활동을 위해 파견된 존 코프 주교(한국명 고요한) 덕분이다. 존 코프 주교는 동행한 미국인 의사 랜디스와 2명의 간호사 수녀와 함께 인천에 성누가병원이란 작은 병원을 짓고 포교를 한다. 병원은 10년간 성공적으로 운영되었으며 랜디스가 죽자 아깝게도 후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리고야 만다.

외삼문. 성공회 강화성당이란 편액이 붙어있다.
 외삼문. 성공회 강화성당이란 편액이 붙어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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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그들 속에 살지 않는 한 결코 사랑을 배운다거나 나의 선교활동에 대해 (조선인들은)알 수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신의 모습 속에서 익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과 여동생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희망과 공포·자연숭배·일반적인 인간의 감정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무서운 표정의 영국인입니다" (주성식 신부의 인터뷰 중에서)라고 토로했는데 강화도 성당이 지금과 같은 면모를 지니게 된 데에는 바로 이러한 존 코프 주교의 자기성찰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마침 일요일 미사 직전이어서 신부님이 신도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마침 일요일 미사 직전이어서 신부님이 신도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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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옥성당은 1891년 서울에서 먼저 출발하는데, 지금의 성공회 대성당 뒤편에 작은 한옥을 사들여 왕족과 귀족 자제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는 수학원을 개설하고 이것이 최초의 성공회 성당인 강림성당이 된다. 1896년 강화도에서 첫 세례자가 나오자 존 코프 주교는 1899년 강화도로 가서 철종의 잠저(潛邸)인 용흥궁 곁의 작은 언덕을 사들이고 성당건립에 나서는데 이것이 바로 강화성당이다.

내부전경. 벽돌로 지은 교회처럼 가운데는 높은 공간을 만들고 좌우로 회랑을 만들었다. 앞에 유일하게 매달려 있는 대들보에는 십자가와 성모상이 올려가 있다.
 내부전경. 벽돌로 지은 교회처럼 가운데는 높은 공간을 만들고 좌우로 회랑을 만들었다. 앞에 유일하게 매달려 있는 대들보에는 십자가와 성모상이 올려가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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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불교가 처음 이 땅에 전래되었을 때 만들어진 불상들이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처럼 연상되어 흥미로운데, 전면 4간 측면 10간이라면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건물을 언덕 위에 짓고 그것을 방주로 삼았다 하니, 불교에 익숙한 백성에게는 마치 반야용선처럼 보여 낯설지 않았다면 조선사람의 삶과 함께 하려는 존 코프 주교의 의도가 제대로 들어맞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신부서품증서. 면허장이란 말이 좀 생소하다.
 신부서품증서. 면허장이란 말이 좀 생소하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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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대고 언덕길을 오르면 범선 뱃머리 조각상처럼 가운데 크게 솟아 있는 외삼문을 만난다. 계단 위에 솟을 대문이 있으니 말을 탄 양반에 대한 배려는 아닐 것이고 교회 첨탑과 같은 의미로 만든 것이 아닌가 짐작되는데 온수리 성당의 솟을대문은 실제 이런 용도로 서양식 종이 매달려 있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강화방주.  이렇게 뒤에서 보면 배란 말이 실감난다. 양쪽 아치문은 영국에서 직접 제작한 문이라고 한다.
 강화방주. 이렇게 뒤에서 보면 배란 말이 실감난다. 양쪽 아치문은 영국에서 직접 제작한 문이라고 한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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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을 들어서자 내삼문이 나온다. 나 원 참, 절의 천왕문, 금강문도 아니고... 내삼문에는 동양식 범종이 한켠에 달려있다. <천주성전>이란 편액이 이곳이 성당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입구에서 신도들을 맞는 신부님이 재차 확인을 시켜준다.  1자나 됨직한 올곧은 굵은 고주(高柱), 들보, 도리들이 과연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라는 것이 크게 그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치문. 갖가지 자물쇠와 걸쇠가 걸렸던 흔적들이 세월을 말해준다.
 아치문. 갖가지 자물쇠와 걸쇠가 걸렸던 흔적들이 세월을 말해준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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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는 높은 기둥으로 가로지른 대들보가 없는 뻥 뚫린 이층 공간을 만들어 창문으로부터 채광이 되게 하고, 바닥에는 가운데 통로를 놓아두고 양쪽으로 예배석이 있다. 유일하게 가로지른 대들보에는 십자가에 걸리신 예수상과 성모상들이 올려져 있고 입구에 화강암으로 만든 성수대가 놓여있다. 셔터 몇 번 누르고 돌아 설려니 문지방에 첫 한인사제 김희준 신부의 서품증서가 걸려 있다.

'면허장 / 조마가(趙瑪可)는 / 천주의 윤허하심과 간드베리 대주교의 관할함을 / 복종하야 조선성공회 주교 되었으니 /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사제 김마가 안녕하기를 축원하노라...'

측면.
 측면.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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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단청을 하였으되 서까래 등 자재의 마구리에는 태극과 십자가 문양을 그려 넣었고 용마루 위에도 십자가가 걸려 있다. 아치 형태의 널문이 측면에 각 하나씩, 뒷면 양쪽에 하나씩 배치되었는데 이것은 영국에서 직접 짜서 들여왔다고 한다. 불모의 땅에 성당을 신축했으니 '간드베리' 대주교도 이 정도의 사치는 쾌히 눈감아 주지 않았을까 싶다. 태극과 십자가를 절묘하게 짜 맞춘 문양이 그려진 문을 나서며 보니 석축 쌓은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요철이 잘 맞추어진 돌과 제각각 돌 색깔이 잘 어우러져 한 폭의 모자이크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한폭 그림같은 멋들어진 축대
 한폭 그림같은 멋들어진 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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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면 온수리교회(성 안드레성당) 솟을대문. 종루로 쓰이고 있다.
 길상면 온수리교회(성 안드레성당) 솟을대문. 종루로 쓰이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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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하면 온수리 성당은 아담하다.

지금은 곁에 새로운 성당을 신축하여 그곳에서 예배드리고 한옥성당은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날개를 펼친 학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솟을대문에 설치된 종은 아직도 사용해서 성당을 돌아보고 있는 중에도 종이 울렸다. 내부배치는 강화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수리성당(성안드레성당) 비록 단층이지만 단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온수리성당(성안드레성당) 비록 단층이지만 단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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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내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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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이지만 양쪽에 회랑을 만들고 가운데는 높은 기둥을 써서 들보를 중보 위치로 올려 시야가 가로막히는 것을 정리했다. 벽면에는 온수교회의 옛 사진들과 복음서, 성작, 촛대, 십자가들이 진열되어 있고 가운데 사제복, 깃발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복판에는 'ROUND OAK'라고 써있는 고색창연한 주철제 목탄난로가 있었는데 어찌나 문양이 섬세하고 탐스러운지 하마터면 장발장이 될 번 하였다. 

나를 장발장으로 만들뻔한 잘 만들어진 목탄난로
 나를 장발장으로 만들뻔한 잘 만들어진 목탄난로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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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화성당, #온수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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