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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방문자>.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방문자>.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무청 연구용역 결과가 오늘 발표되었습니다. 국민여론조사결과 대체복무에 대한 반대가 68.1%, 찬성이 28.9% 랍니다. 각 언론들은 대체복무제 도입의 백지화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 정권에서 가장 '두드러진' 행보를 보여주었던 국방부의 성향과 연관 짓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정해진 수순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이명박 정권에게 뭘 기대하냐고, '이명박,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는 국방부나 병무청의 입장이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조사와 이전에 진행했던 공청회 및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겠다고 합니다.

백지화, 안됩니다. 임박한 국방부 결정은 이번 정권 내내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감옥에 가야 합니까.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위한 운동에 6년 넘게 참여한 사람으로서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소수자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합니까?

병역거부자들은 신념을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고, 20대의 나이에 감옥에 가고, 평생 전과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입니다. 당연히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비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다니요. 국민 과반수의 찬성이 쉽게 나올 사안이라면 지난 60년 동안 1만3천 명의 젊은이들이 침묵 속에서 감옥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미 오래 전에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었을 것입니다. 여론조사에서 50%는 고사하고 10%, 20%의 동의를 얻지도 못할 수 있는 것이 소수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인권입니다. 감옥행만은 멈춰달라는 것이 병역거부자들이 간절하게 요구했던 바로 그 '인권'이었습니다.

현재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된 인원은 400여명 정도입니다. 이번 병무청 보도 자료를 보면, 대체복무 제도 도입시 복무대상 총인원을 약 2400명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복무기간을 3년이라고 본다면 1년에 8백 명 정도입니다. 1년에 8백 명의 젊은이들에게 감옥 대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곳에서 일하게 하자는 것에 50% 이상의 국민동의가 필수조건 입니까?

조금 양보해서 여론조사의 결과 역시 정책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조건이라고 합시다. 하지만 병역거부 문제나 동성애, 이주노동자와 같은 소수자 문제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민감한 사안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병역거부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군대와 병역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 역시 설문방식과 시기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2007년 9월에 대체복무제 허용 안을 낼 당시에 근거했던 자료는 2007년 7월의 KBS의 여론조사 결과였습니다. 당시 50.2%가 대체복무제에 찬성했죠. 2008년 9월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역시 찬성한다는 의견이 44.3%로 반대한다는 38.7%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서 상반된 결과가 확인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는 다양한 변수에 의해서 매우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사안을 단 한 번의 여론조사만을 근거로 국민공감대 형성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 전에 이번 여론조사와 3개월 전에 조사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의 결과가 왜 정반대인가에 대한 대답부터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수자 문제일 경우에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 방법이 아닌 전문가나 사회여론 주도층의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여론을 수렴하는 것을 택합니다. 이 방식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보다 일관적이고 심층적인 사회내부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10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은 국회의원, 법률가, 대학교수 등 전문가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전문가 의식조사’를 진행했었습니다. 그 조사결과 80%가 넘는 전문가들이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현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명백한 차이 역시 이 문제가 단순한 한 번의 국민여론조사로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군대와 병역이 한국사회에서 민감한 이슈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대신 택하게 될 대체복무제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부족입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대체복무제를 모릅니다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체복무제 선진국입니다. 이미 전·의경과 경비교도대, 의무소방관 등의 수많은 이들이 대체복무제를 통해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체복무제 선진국입니다. 이미 전·의경과 경비교도대, 의무소방관 등의 수많은 이들이 대체복무제를 통해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 육군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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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가 인정되면 병역의 형평성이나 현역병들의 사기저하가 문제시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대체복무제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기에 잘못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여론조사는 이러한 이해부족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대체복무제는 병역의무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겠다는 것입니다. 특권이나 면제가 아닌 형평성을 맞춘 복무로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체복무제 선진국입니다. 이미 전·의경과 경비교도대, 의무소방관 등의 수많은 이들이 대체복무제를 통해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의무소방관을 도입할 때에는 병역 형평성의 문제나 현역병들의 사기저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의무경찰에 지원자가 몰려서 '그럼 군대는 누가 가냐'하는 걱정이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형평성이기 때문입니다.

2007년 9월, 국방부에서 발표한 안을 봅시다. 당시 국방부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었습니다. 육군이 18개월로 줄어든다는 것을 기준으로 36개월 복무였습니다. 당연히 합숙생활이고 난이도 역시 사회복무 분야 중 24시간 근접관찰이 필요한 최고난이도의 업무로 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국방부 인력관리팀장은 한 인터뷰에서 직접 시설을 살펴보니 형사처벌을 감수할 만큼의 신념이 아니라면 택할 수 없는 업무라며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대체복무제는 특정 종교나 신념에 대한 특권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상황에서는 감옥보다야 낫겠지만 2배나 되는 복무기간을 감수해야 할 '처벌'에 가깝습니다. 과연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속이고 2배의 기간을 복무할까요? 이 문제가 공론화된 지 8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체복무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거의 부재했기에 사람들은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상당히 편한 일, 심지어는 면제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국민공감대' 이야기하는 국방부가 만약 팔짱끼고 있다가 어느 시점에서 여론조사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의 책임부처로서 꾸준하고 홍보활동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요? 병역거부자들이 수행할 대체복무제란 것이 이런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감옥에 갈 젊은이들이 이러한 사회적 봉사를 한다는 것을 알렸다면 어땠을까요? 국민여론이 바닥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그렇게 세금 쏟아가며 신문 1면 광고로 '국민공감대' 형성하려고 노력하더니 1년에 수백 명 감옥 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참 다른 모습입니다.

감옥행은 멈춰져야 합니다

최초의 양심적병역거부자로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진 오태양씨.
 최초의 양심적병역거부자로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진 오태양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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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행이라는 것은, 사실상 국가가 한 개인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자 차별일 것입니다. 그 감옥행을 멈춰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묵살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국 북한과의 대치상황이라는 논리입니까? 분단 이후 계속 우리의 모든 민주주의를 억눌러왔던 그 논리입니까? 오히려 병역거부는 전쟁 시기에 도입되었습니다. 미국은 남북전쟁시기에, 영국은 1차 세계대전시에 도입한 대체복무입니다.

또한 병역거부자들은 군대가 아닌 감옥에 가고 있기에 국방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으며, 현역복무의 2배의 기간으로 최고난이도의 합숙복무에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는 예상은 매우 비현실적입니다. 혹시나 하는 우려마저 불식시키기 위해서 병역거부운동단체들이 대체복무 신청자의 인원을 제한해서 시행하는 쿼터제를 제안한 바도 있습니다.

북한 국가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국방예산으로 사용하면서 언제까지 젊은이들을 감옥에 보내야만 국가가 지켜질 수 있다고 겁줄 것입니까. 게다가 한국의 맥락에서 이 문제는 안보의 문제라기보다는 소수자의 인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모든 것이 뒷걸음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국방부의 모습은 가장 두드러져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를 살펴본다면 국방부는 뒷걸음 칠 곳이 없습니다. 병역거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늘 속에서 감옥행을 이어 왔습니다. 더 감옥행을 이어가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는 멈춰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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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모임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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