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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들꽃 아이

- 글 : 임길택

- 그림 : 김동성

- 펴낸곳 : 길벗어린이(2008.7.10.)

- 책값 : 9800원

 

(1) 도시에서 읽는 책

 

책을 읽으면서 고운 빛을 느껴서 가슴 속에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 세상에서 얼마든지 어디에서나 고운 빛을 느끼며 가슴속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날마다 마주치는 사람들하고, 한집에서 이불 함께 덮고 자는 살붙이하고, 늘 디디고 있는 흙길이나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에서 자라는 수많은 들풀과 들꽃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빛을 건네고 빛을 받습니다.

 

끝없이 퍼붓는 빗줄기를 보면서, 비는 그쳤어도 짙게 드리운 구름을 보면서, 말끔하고 파란 하늘 한복판에 걸린 해를 보면서, 별빛 없는 외로운 달을 보면서, 고요히 빛 한 줄기 쓰다듬습니다. 툭 치기도 하고 발을 밟기도 하고 옆구리로 쿡 찌르기도 하는 짓궂은 사람들을 부대끼는 버스와 전철에서, 북적거리는 도심지 길거리에서, 촛불 들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딱딱한 말씨로 마주하는 관청 민원실에서, 자기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책은 부지런히 읽지만 고운 빛도 미운 빛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책을 안 읽으면서는 바보가 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바보가 된다고 느끼면서도 텔레비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몸이 찌뿌둥하다면서 자가용 몰기를 그치지 않을 뿐더러,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거두어 밥상까지 흘러왔는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 꼭 스무 해 전의 일입니다. 도회지에서만 살아오던 김 선생님이 첫 발령을 받아 간 곳은 면 소재지의 열두 학급짜리 아담한 학교였습니다. 닷새마다 장이 서서 처음으로 대장간 구경도 할 수 있었고, 물레방아 돌아가는 한가한 마을이었습니다 ..  (3쪽)

 

학교를 오래 다닌 분들은 학과 공부에 쫓기어 책을 가까이하기 힘겨워 합니다. 보고서 숙제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자기 학과 공부와 안 얽힌 책을 읽지 못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그럭저럭 읽는다 해도, 중고등학교만 되어도 학년 등수에 목을 다느라 옆눈도 뒷눈도 돌리지 않아요. 그러면 대학교에 간 뒤라도 책을 읽어 줄 만하지만, 대학교에서는 노느라 바쁘고 놀다가 지치기도 하는 한편, 또다시 시험에 목매다느라 바쁘고 시험공부에 지쳐서 책장 넘길 힘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학교를 그리 오래 안 다닌 분들은 학교 다닐 적에도 책하고 담을 쌓기 일쑤였습니다만, 학교 오래 다닌 분과 마찬가지로 ‘책 = 교과서’라는 틀을 쉬 떨쳐내지 못합니다. ‘책 = 교과서’가 아니라 ‘책 = 삶’임을, 또 ‘삶 = 책’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어쩌면, 집과 학교 모두에서 아이들한테 삶과 책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가르쳐 주지 못한 탓입니다. 삶과 책이 이어진 끈을 알려주면서 아이들이 세상에 눈을 뜨고 자기 마음 문을 열까 두려워한 탓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돈바라기 어른’이 얼마나 얄궂으며 잘못되었는가를 깨닫는다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몰아넣는 입시지옥에 끄달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길을 뚫으려고 몸부림을 치기 마련입니다. ‘책 = 교과서’라는 지식을 자꾸자꾸 집어넣어서 길들여 놓으면, 굳이 ‘마음 밝힐 책’이나 ‘마음에 밥이 되는 책’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착한’ 아이가 됩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니 ‘용돈’을 두둑히 받는 아이가 됩니다.

 

.. 6학년을 맡고서 선생님은 보선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익혔습니다. 지각이 잦아 생활기록부를 들추어 보니 거기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공부는 뒤떨어지나 정직하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함.’ ..  (9쪽)

 

뜻과 생각이 있다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은 자기 집이나 일터에서 으레 ‘한겨레신문’을 받아서 봅니다. 가만히 보면 ‘읽’지는 못하고 ‘봅’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을 보든 경향신문을 보든, 또는 조선일보를 보든 중앙일보를 보든, 이러저러한 신문을 보는 분들 마음결이나 생각깊이나 눈높이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두 마찬가지 아니냐 싶습니다.

 

때때로 ‘한겨레신문 보는 분’한테 ‘송건호 선생님을 아십니까?’ 하고 여쭙습니다.

“송건호요? 모르는데요.”

 

“아무개 씨가 받아보는 그 한겨레신문을 만든 사람이에요. 몇 해 앞서부터 그 신문사에서는 ‘송건호 언론상’도 주고 있잖아요.”

“아, 들어 본 이름 같아요.”

 

“그 송건호 선생님이 살아 계신 동안 책을 마흔 권 남짓 냈어요. 그 책들을 한길사에서 전집으로 내면서 스무 권에 사십만 원 전집으로 묶었지요. 그래서 한 번에 사십만 원 치러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송건호 선생님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답니다.”

“…….”

 

“송건호 님은 한국일보,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분인데, 1975년에 동아일보 편집국장 자리에서 사표를 내고 물러나셨어요. 나라에서 신문사를 억누르면서 후배 기자를 백마흔 사람이나 내쫓아 버리니 선배 기자로서 얼굴을 들 수 없다고 느끼며 누가 나가라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박차고 나오셨지요. 그런 뒤 1988년에 한겨레신문을 만들 때까지 실업자가 되어 대학강사도 하고 번역도 하고 책도 내고 위인전도 쓰고 하셨어요.”

“…….”

 

“이분이 쓴 글이 참 좋아요. 그런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조차 이분 이름을 잘 모르고, 이분이 쓴 책도 읽지 않아요.”

“…….”

 

“세상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책방을 바라지 않으니, 지금 있는(책방에서 일하는) 분들이 다 세상을 떠나면 책방은 모두 없어지고 말 테지요. 책으로 돈벌이만 일삼는 꾼들만 남고.”

“…….”

 

“책은 숲이나 들에서 읽을 때가 가장 좋아요. 숲소리와 들소리를 들으면서 책에 빠지고, 그러다가 한동안 책을 덮고 숲과 들을 느끼고, 다시 책을 펼쳐 책에 빠지고. 도시에서는 옆사람한테 마음쓰지 않는 소리만 가득해서 책을 읽기에 무척 나빠요. 기차 지나가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를 노래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 누가 시킨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보선이는 꾸준히 새로운 꽃을 꺾어 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붓꽃, 원추리, 참나리 같은 꽃들을 꽂아 놓고 정물화를 그리기도 하고, 패랭이꽃의 씨를 받아선 집에다 심어 보자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제까지 팬지나 달리아 같은 외국 꽃들이 이름도 꽃도 좋다고만 여겨 오던 선생님은 은은한 우리 꽃들이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17쪽)

 

저를 취재하겠다는 어느 방송국에서 전화가 옵니다. ‘요즈음 책을 멀리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책이란 무엇이라는 한 마디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줄거리만 읽으려면 책이 아니에요. 책은 줄거리를 알려고 읽지 않거든요. 좋아서 읽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으로 자기 삶을 바꾸려는 마음을 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스스로 책을 읽으며 삶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을 읽지 않으면 좋겠어요. 삶을 바꾸지 않고 지식만 쌓으려고 읽는 책은 ‘지식 사기꾼’만 만드는 책읽기가 돼요. 책을 내는 분들도 줄거리만 건네는 책으로 그친다면 책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고, 책 하나로 어떤 삶을 어떻게 바꾸어야 아름답고 좋은가를 깨닫고 곱씹으면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헌책방이 나날이 사라지고 있는데 안타깝지 않으시느냐’고 묻습니다.

 

“헌책방도 사라질 수 있고, 다른 모든 것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헌책방이 사라지는 일은 안타깝지 않습니다. 기자 분들이 취재를 하면서 자꾸만 ‘헌책방은 사라지는 곳’이라는 데에 눈길을 맞추면서 이야기를 퍼뜨리는데, 사라져야 한다면 사라질 뿐이고, 사라져야 하지 않다면 사라지지 않게 하면 됩니다. 바로 내일 헌책방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그 헌책방에 볼 만한 책이 있으면 이 헌책방이 사라지든 말든 이곳에 찾아가서 책을 읽으면 돼요. 안타까운 일은, 헌책방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헌책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헌책방을 알아보지 못하니 그분들이 안타깝고, 헌책방에 깃든 책을 알아보지 못하니 더 안타깝습니다. 헌책방에서 사람들 눈길을 타지 못하고 스러져 버리는 좋은 책들 또한 안타깝고요. 우리는 무엇이 사라지느니 마느니 하는 대목이 아니라, 우리 둘레에서 무엇이 아름답고 애틋하며 값어치가 있는지를, 그리고 어느 곳에서 우리 마음을 살찌우거나 가꿀 빛줄기를 잡아채어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면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느냐’고도 묻습니다.

 

“저는 제 마음에 와닿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책이라면 어떤 갈래 책이라도 좋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굳이 어떤 갈래를 나누어야 하지 않다고 느껴요.”

 

 

(2)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

 

.. 돌이켜보니 날마다 보아 오던 학교 안 나무들도 모르는 것들이 여럿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등생이라는 말을 집안 식구들이나 선생님에게 수도 없이 들어왔건만, 지금에 이르러 생각하니 대학을 다닐 때까지 무얼 배웠나 싶었습니다 ..  (10쪽)

 

사람들을 만나 함께 길을 거닐다가 문득문득 몇 가지 나무를 알아보고 ‘와, 방울나무다!’ ‘이야, 오동나무네! 저기 봐요. 오동나무가 이 골목에서 자라요!’ ‘어머나, 이팝나무가 조렇게 조그마한 꽃그릇에서 잘도 자라네!’ ‘이 꽃은 라일락이 아니에요. 수수꽃다리예요.’ 하고 외치곤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무 박사네!’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고작 몇 가지만 알아볼 뿐입니다. 이 나무 이름도 흔히 보니까 알지,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아보지 못해요.

 

그렇지만 나무들 이름이며 꽃들 이름이며 풀들 이름이며 하나라도 아는 이가 생각보다 아주 적습니다. 이제 우리 삶터에서 나무와 꽃과 풀은 곁에 있지 않으니까요. 나무와 꽃과 풀이 자랄 땅은 온통 아스팔트가 깔려 자동차가 내달리니까요. 아스팔트가 깔리고 자동차가 싱싱 달리니, 달리는 모습을 얼핏 보면서도 무슨 차인지 용하게 알아맞힙니다. 어른도 아이도 잘 알아맞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터가 아스팔트가 아닌 흙이요, 이 흙에서 나무와 풀과 꽃이 마음껏 자라나고 피어난다면, 우리들은 슬쩍 보아도 무슨 나무요 무슨 풀이요 무슨 꽃인지 모두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 하늘엔 벌써 별들이 하나 둘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보선이가 이토록 먼 길을 다니고 있었구나!’ 비로소 선생님은 보선이가 손전등을 가지고 다니는 걸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  (37쪽)

 

아침에 이불을 헹구어 옥상마당에 널었으나 다시금 쏟아붓는 비 때문에 부리나케 거두어 집안에 들입니다. 비가 퍼붓다가도 햇볕 쨍쨍 개는 날이 있어서 밀린 이불 빨래를 해 볼까 했는데, 오늘로 사흘째 담가만 놓고 있으면 썩을 듯해서 빨아서 헹구었는데, 다시 빨아야 할 듯 싶습니다. 하는 수 없지요. 이번 이불은 두 번 빨아서 좀더 깨끗하게 간수한다고 생각해야지요.

 

엊저녁에는 비옷을 빨았습니다. 비올 때만 입고 말려 놓느라 빗물 냄새 가득 배어 있더군요. 어제는 주안으로 자전거를 타고 어느 모임에 갔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는 길은 비가 안 뿌렸고 오늘 길에만 비가 살짝 뿌렸는데, 오다가 제물포역 앞을 지날 무렵,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택시 한 대가 찻길에 고인 물을 좌왁 흩뿌리는 바람에 자전거와 저는 빗물을 옴팡 뒤집어썼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비옷을 입었어도 안쪽으로 물이 새어들고, 신 또한 물범벅이 되었습니다. 비옷을 안 입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싶고, 비옷을 안 입고 자전거를 탔다면 아마 눈에 빗물이 들어가며 앞을 못 보고 차에 부딪히거나 길에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렴풋이 그 택시를 눈으로 좇으니 저 앞에서 신호에 걸려서 멈췄습니다. 얼마 달리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다니. 설마, 자전거를 보고 놀려 주려고, 괴롭히려고 그랬는가? 빗길에 자전거를 탄 일도 없고 탈 일도 없으니, 이렇게 자전거꾼한테 함부로 굴어도 되는가? 집 앞에 거의 닿을 무렵 좁은 골목길에서 자전거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 주는 차가 있으나, 자전거가 있건 말건 좁은 골목 다 차지하며 확 밀어붙이는 차가 있습니다. 그 차를 모는 분 아이가 밤에 비 맞으며 자전거를 탄다고 할 때에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 선생님이 보선이네 집에 다다랐을 땐 열 시가 이미 넘어 있었습니다. 그곳엔 다섯 집뿐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0년 전 학교가 생긴 이래 마을을 찾아 준 이론 김 선생님이 처음이라는 거였습니다 ..  (40쪽)

 

 

(3) 빛나는 그림에 빛이 바래고 만 <들꽃 아이>

 

그림책 <들꽃 아이>가 나왔습니다. 몸이 아파 일찍 세상을 등진 교사 임길택 님이 남긴 짧은 글 <들꽃 아이>에 그림을 넉넉하게 입혀 산뜻하게 묶어냈습니다.

 

그림결은 부드럽고 빛깔은 고우며 느낌은 싱그럽습니다. 아이들을 좀더 사랑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산골마을 교사 삶과, 먼길을 걸어서 오가는 동안 지루해 하지 않고 외려 들꽃과 함께 맑은 웃음을 간직하는 아이 삶이 고루 녹아난 작품입니다.

 

.. “야, 그 많은 꽃들을 보선이는 이런 데서 꺾어 왔구나!” 저절로 감탄이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아이라면 마음도 더없이 아름답게 자라겠지…….’ 꽃들마다 어떤 숨결이 느껴지는 이런 길을 선생님은 처음 걸어 보고 있었습니다 ..  (33쪽)

 

그런데, 그림책을 펼치는 눈이 홀가분하지 못합니다. 무겁습니다. 그림책 <들꽃 아이>가 요즈음 이야기라면 모르되, 1990년에 나온 동화책 <우리 동네 아이들>(나중에 <산골 마을 아이들>로 책이름이 바뀜)에 실릴 때만 해도 ‘적어도 스무 해 앞선 때’ 이야기였기에, 일러도 1970년 이야기이고, 작품은 훨씬 앞서서 썼을 테니 1960년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책에서도 첫머리를 “꼭 스무 해 전의 일입니다”로 엽니다. 더욱이 사잇그림을 보아도 옛날 교무실에다가 옛날 책상에다가 서류뭉치며 주전자며 ……. 이런 여러 가지 모습을 헤아려 보았을 때, 그림책 <들꽃 아이> 주인공이 된 아이 얼굴이 ‘1960년대 산골마을 어린이 얼굴’이 맞는가 싶어서 고개를 자꾸만 갸우뚱갸우뚱하게 됩니다.

 

도서관 책시렁을 뒤적이며 1950년대와 1960년대와 1970년대 국민학교 졸업사진책을 살펴봅니다. 1980년대 서울 쪽 국민학교 졸업사진책도 뒤적여 봅니다. 아이들 옷이며 신발이며 머리띠며, 또 차림새며 키며 몸집이며.

 

그림책 <들꽃 아이>에 나오는 보선이나, 같은 반 다른 동무들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옛 졸업사진책과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모습이 사뭇 다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꼭 스무 해’를 묵은 예전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요즘 어린이들 모습에다가 ‘보선이 머리’만 예전 느낌이 나게 꾸몄구나 싶습니다.

 

밝은 그림, 빛나는 그림, 눈부신 그림입니다. 그러나 이 <들꽃 아이>는 ‘호사스런 화집’은 아닐 테지요. 외딴 산골마을에서 교사로 일하는 한 사람이 ‘교사인 자기가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똑똑하다고 느꼈으나, 정작 아이들한테 나무 이름과 풀꽃 이름 하나 알려주지 못할 만큼,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아이를 가르치는 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여러모로 부끄러움을 곱씹는 가운데, 참답게 아이들하고 벗삼으면서 즐겁고 슬기롭게 가르치고 배우는 길이란 무엇일까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책일 테지요.

 

교사 임길택은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아이들 삶과 삶터를 가까이에서 느끼며 껴안고자 〈들꽃 아이〉라고 하는 짧은 글을 비롯해 수많은 글을 남기며 <우리 동네 아이들>(창작과비평사, 1990)을 묶었습니다. <수경이>(우리교육, 1998)도, <느릅골 아이들>(산하, 1994)도, <탄광 마을에 뜨는 달>(다솜, 1997)도, 어수룩하게 우쭐거릴 뻔했던 자기 몸가짐을 추스르면서 아이들 앞에서 키를 낮추며 어깨동무를 하려는 몸짓이었어요. 동시를 모은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이나 <할아버지 요강>(보리, 1995)이나 <산골 아이>(보리, 2002) 또한 허투루 겉치레를 하려는 마음이 깃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거나 다독이는 움직임이었습니다. 학급문집 <물또래>(종로서적, 1987)와 <광부 아저씨와 꽃게>(웅진, 1985) 또한 아이들 스스로 참삶을 찾아서 일구어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교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실어 놓은 발자국이었고요.

 

.. 말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쓴 이야기들도 하나의 역사라 여겼다. 나는 역사책에 나오는 큰 사건들도 중요하나, 이에 못지않게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없는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는 정서 또한 중요한 역사로 대접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고 있다 … 아이들과 나름대로 그렇게 글짓기를 하다 보니 생각되는 게, 정직한 아이들의 글 속에는 ‘역사성­’ 그대로 담긴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 〈들꽃 아이〉에 나오는 ‘보선’이도 실제 아이다. 이름 또한 그대로 썼다. 다만 내가 가르친 아이가 아니고 옆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였다. 예전엔 보선이처럼 먼 데서 걸어 학교에 다닌 아이들이 많았다. 이야기 끝쪽을 너무 성급히 맺는 바람에 이야기 맛이 줄고 말았지만, 지금 아이들이 보선이가 걸었던 길을 잃어버렸다는 게 안타까워 이 이야기를 썼다. 이런 길을 잃었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꿈을 잃어버린 거나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종로서적,1996) 154∼157쪽

 

곱다시 그린 그림은 고와서 좋습니다. 어여삐 담아낸 그림은 어여뻐서 좋습니다. 그렇지만, 고움과 어여쁨에 가려지는 빛줄기가 있다면 어찌하나요. 고움을 고움대로 키우고 어여쁨은 어여쁨대로 북돋우면서, ‘어른과 아이가 똑같은 한 사람’임을 느끼도록 이끄는 빛줄기를 나란히 세워 줄 수 있는 그림으로 삭이기는 힘들었는가요.

 

이야기 '들꽃 아이'를 읽으면, 보선이를 맡은 교사 마음이 수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낍니다. 설레임이 있고 두근거림이 있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이 있는 한편, 기쁨과 고마움이 있고,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뒤이어 땀흘리는 보람에다가 함께 나누는 눈물과 웃음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책 <들꽃 아이>에 나오는 교사 얼굴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합니다(마지막에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만 조금 다를 뿐). 살짝 웃음 띈 모습일 뿐입니다. 보선이가 머나먼 길을 오가던 그 산길에서 헤매면서 들었던 교사 마음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꽃이름을 물어 볼 때 처음에는 쭈뼛쭈뼛 대답을 못하던 모습이 담기지 않습니다. 나중에 식물도감 마련해서 꽃이름을 익히고 난 다음 척척 알아맞히며 슬그머니 우쭐거리는 모습 또한 안 담깁니다.

 

출판사에서 ‘시대배경’을 2008년에서 꼭 스무 해 앞으로 돌린 1988년으로 잡았는지 모르겠는데, 1988년으로 잡았다고 한다면 교무실 모습이나 교실 모습은 그때 모습하고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 옷에 ‘88 Olympic’이라 새겨진 모습은 맞겠지요. 산골마을 보선이가 그 먼길을 ‘단화’를 신고 ‘나풀치마’를 입고 다닐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1988년까지도 ‘채색이 곱게 되고 예술품처럼 정물그림으로 담아낸 한국 식물도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곱게 그린 분이나 책을 예쁘장하게 꾸민 출판사나, 틀림없이 짧지 않은 동안 땀흘리고 애써서 잿빛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철근밖에 없는 도시 삶에 푸른빛을 선사하고픈 마음이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애써 흘린 땀방울이 동화 〈들꽃 아이〉를 좀더 살갗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 열매로 나타났을 때에는, 섣부른 ‘분칠’이 될밖에 없습니다. 고욤은 고욤대로 맛이 있습니다만, 고욤은 감이 아닙니다. 고욤을 일러 감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운동장 가엔 이른봄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손을 보아 정성껏 가꾼 봉숭아, 맨드라미, 백일홍, 채송화 들이 벌써부터 화려하다. 그러나, 나는 그 화려한 꽃들에다 결코 우리 아이들을 견주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누가 뭐래도 벼꽃이나 옥수수 또는 콩꽃이거나 감자꽃이다. 언제 피었다 지는지를 모르는 그 꽃들만이 우리를 먹여살릴 수 있음을 볼 때는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  《물또래》(종로서적,1987) 184쪽

 

들꽃은 눈부시게 빛나는 꽃이 아닙니다. 수수한 꽃이 들꽃입니다. 들꽃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많으며, 사람이 이름을 미처 못 붙인 꽃도 있습니다. 그래서 들꽃입니다. 들사람, 들풀, 들마음 모두 수수함이 가득합니다.

 

교사 임길택은 〈들꽃 아이〉를 말 그대로 ‘들꽃’ 같은 아이가 사랑스럽고 믿음직해서 써 냈습니다. 그렇지만 그림책 〈들꽃 아이〉는 ‘교장 선생님이 시켜서 억지로 날마다 가꾸어야 했던 봉숭아, 맨드라미, 백일홍, 채송화’ 그리고 여느 도시 학교 선생님 책상을 수놓는 ‘장미, 라일락, 수선화, 백합’ 같은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들꽃도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들꽃도 빛깔이 곱고 번쩍번쩍한다’고 말씀을 한다면 저는 두 손을 들겠습니다. 다만, 들꽃은 들에 피는 꽃이고, 이 나라 이 땅 이 겨레 모든 아이들은 들판에서 자기 마음껏 해를 바라보고 바람을 맡고 물을 마시면서 커 가면서 빛줄기를 품에 안고 있는 그 들꽃하고 똑같은 목숨붙이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들꽃 아이

김동성 그림, 임길택 글, 길벗어린이(2008)


태그:#그림책, #임길택, #산골학교, #보선이,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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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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