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치솟는 유가가 한국경제의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셀프주유소. 치솟는 유가가 한국경제의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셀프주유소.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속담처럼 주유소 아르바이트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믿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고3 때 인생 경험 삼아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해봤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생 경험이 아닌 인생 쪽박(?)이 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 있다. 부끄럽고 황당한 일이라 그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을 지금 꺼내보려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02년, 고3 수능시험이 끝난 12월이었다. 당시 난 수능을 끝내고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친한 친구였던 경원이란 아이와 함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특별히 돈이 궁했던 것은 아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속담처럼 그저 힘든 아르바이트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기쁜 마음으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몰랐다. 그 선택이 엽기적인 사건을 만들어 낼 줄은.

주유소에서 만난 짠돌이 사장님

주유소 아르바이트는 만만치 않았다. 주유소에서 만난 사장님 때문이다. 그 분은 희대의(?) 짠돌이셨다. 당시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시간당 2000원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것은 기본이고 원칙도 칼처럼 철저하셨다. 5분만 늦어도 월급을 깎는다는 경고는 가난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 사장님이 짠돌이계의 대부가 됐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번은 주유소에서 경품행사가 열렸는데 행사가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당첨된 사람이 없는 것이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이상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그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거 사장이 당첨 안 되게 해놨어. 아마 평생 가도 당첨 없을걸?"

친구의 그 말에 적잖이 놀랐다. 세상엔 정말 별사람이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사장님의 구두쇠 정신을 은근히 흉보곤 했다.

"야, 사장. 너무 짠돌이 아니냐? 완전 못됐어"
"그러게. 어떻게 요즘 시대에 저런 짠돌이 처음 봤어"

우리의 흉처럼 짠돌이 사장님은 계속 미운 행동만 골라했다. 하루는 사모님이 아르바이트생들 먹으라고 맛있는 순대를 사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좋아라 하며 순대를 먹으려 했다. 그런데 짠돌이 사장님이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셨다. 그리곤 순대의 맛있는 부분을 자신이 키우던 개한테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 행동에 내가 놀라 물었다.

"아니, 사장님. 왜 개한테 비싼 음식을 줘요? 그것도 맛있는 부분을?"
"개도 생명인데 영양가 있는 것을 많이 먹여야지."
"그럼 우리는요?"
"저 개는 뱃속에 새끼가 있잖니"

순대를 먹으려던 아르바이트생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짠돌이 사장님의 엽기성이 빛났다고 해야 할까?

쪽박(?) 찰 뻔한 위기! 짠돌이 사장님이 구해주다

짠돌이 사장님의 화려한 구두쇠 정신은 쭉 이어졌다. 돈내지 않고 도망가던 사람 두 명을 잡아다 결국 주유비를 받아낸 전설 같은 일화도 만드셨다.

그런 대단한 사장님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째였다. 하루는 당시 최고급 승용차가 주유를 하러 왔다. 무슨 기업체 사장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타는 그런 검은색 차였다. 나는 속으로 '오, 대단하네'라고 생각하며 창문 틈으로 "얼마나 주유해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야, 나 지금 급하게 부산 가고 있으니까 빨리 채워, 가득!"

순간, 무시하는 투의 반말이 눈에 거슬렸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손님에게 듣는 말이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이었기 때문에 애써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손님"

그런데 뭔가 일이 잘못되려 했던 것 같다. 그날따라 주유소에 차들이 밀렸던 것이 나쁜 징조였나 보다. 나는 대충 그 고급 자동차에 주유기를 넣고 다른 자동차들을 향해 바쁘게 움직였는데 다시 그 자동차로 돌아와보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했던 그 실수.

'으아악! 이럴 수가! 휘발유차에 경유를 넣어버리다니' 세상에, 고급 자동차에 경유를 넣고 만 것이다. 그것도 몇만원 어치나 되는 엄청난 양을 넣어버렸다. 차는 이미 배탈이 난 듯했다. 차에 다른 연료를 넣으면 차 엔진이 나가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손님에게 덜덜 떨면서 말했다.

"헉, 손님…"
"뭐야? 귀찮게"
"저 죄송한데요… 제가 그만 차에 경유를 넣고 말았습니다"
"뭐… 뭐라고?"

황당해하는 그 운전자의 표정.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그랬다. 나는 그날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은 욕보다 더 많은 욕을 들었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친구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푸념하듯 말했다.

"야, 어떡해. 우리 망했다. 잘렸다"

친구의 말 그대로였다. 우린 망했고 잘릴 거라고 생각했다. 짠돌이 사장님이 우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고급 승용차 주인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고 주유소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나와 경원이는 나름 대책회의(?)를 했다.

결국 사장님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내 말에 놀란 사장님은 정말 쏜살같이 도착하셨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보다도 더 빠르게 말이다. 현장을 본 짠돌이 사장님은 표정이 굳어진 채로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걸 어쩌나. 엔진 나갔으면 최소한 몇백에서 천만원 정도 나갈 텐데…."

천만원? 세상에!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인생 쪽박이 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머리가 띵하니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짠돌이 사장님, 감동을 전해주다

그래도 정신없는 나와는 달리 짠돌이 사장님은 상황을 재빠르고 침착하게 수습하셨다. 차를 견인 당한 그 남자에게 사장님 차를 빌려주고 가는 길에 쓰라며 돈까지 몇만원 챙겨주신 것이다. 물론 기름까지 빵빵하게 넣어서 말이다.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사장님한테 미안했다. 주유소의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민 끝에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심각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다. 뭐 얼마냐고, 그깟 것 물어주면 되는 일 아니냐고 고칠 돈이 얼마냐고 물어보셨다.

"그게 좀 많을지도 몰라."
"많아 봤자 얼마나 많겠니? 오십만원? 백만원? 말해봐."
"저기… 그게 좀 많아. 천만원."
"처… 천… 천만원?"

천만원이란 말에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잠시 후,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애써 표정 관리하신 어머니가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셨지만 대체 누가 괜찮겠나? 졸지에 생돈 천만원이 날라가게 생겼는데 말이다.

그날부터 인생경험차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던 나의 이상주의는 천만원을 어찌 갚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용주의로 바뀌었다. 하지만 천만원이란 그 돈은 시간당 2000원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몇년을 일해도 부족할 돈이었다.

고민 때문에 잠도 안왔다. 정말 그날 밤처럼 길게 느껴진 밤도 별로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고민 끝에 짠돌이 사장님께 부탁할 작정이었다. 그 돈, 천천히 갚으면 안 되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와 사장님을 찾아뵙고 말을 꺼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짠돌이 사장님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다행히 엔진은 안 나갔더구나. 그래도 수리비 몇십만원 든 것 알지? 이번 달 월급은 없는 거야."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나라 월드컵 4강보다 더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었다. 엔진이 고장나지 않았고 천만원을 물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몇 번이고 속으로 외쳤다. 비록 이번달 월급 못 받는다고 짠돌이 사장님이 말했지만 그건 정말이지 별 대수가 아니었다.

그렇게 숨 막힐 듯한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짠돌이 사장님께 정말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물론 사장님을 짠돌이라고 놀리지도 않고 말이다. 그리고 운명의 월급날이 왔다.

예상대로 내 손에는 월급봉투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받은 월급봉투를 보며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천만원을 물어주는 것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짠돌이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진성아"
"네?"
"자, 월급"
"네? 저 월급 깎였잖아요"
"받아. 월급 없이 무슨 낙으로 일해!"

세상에, 우리 짠돌이 사장님. 알고보니 은근 멋진 사람이었다. 월급에서 딱 3만원만 본보기로 감하고 나머지 월급을 고스란히 주신 것이다. 본인이 큰 손해를 감수하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월급을 챙겨 준 것이다.

정말 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울어 버렸다. 너무 미안했다. 금전적 피해를 줬던 것이, 그리고 사장님을 괜히 안좋게 생각했던 것이, 짠돌이 사장이라고 놀렸던 것이.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제 그때의 일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의 황당한 사건 때문일까? 이제 난 주유소 아르바이트 같이 힘든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날의 기억은 나를 바꾸어 놓은 것 같다. 흉보다 칭찬을 하게 된 것이다. 한 번의 편견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아르바이트의 추억은 사람을 올바로 바라보게 하는 내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문득 생각난다. 그 짠돌이 사장님이, 그리고 주유소 아르바이트의 아련한 추억이.

덧붙이는 글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