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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 프랑스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68혁명'으로 불리는 '중대사건'이 일어났다. 문화적 저항과 정치적 저항이 섞여 있던 68혁명 이후 프랑스 구체제는 붕괴해갔고, 여성운동 등을 비롯 '신사회운동'으로 불리우는 새로운 운동이 싹텄다.

[2008년 5월] 서울의 광화문에서는 '촛불시위'가 두 달 넘도록 열리고 있다. '쇠고기 재협상' 요구에서 시작된 촛불시위는 '의료·수도·공기업 민영화-시장주의 교육정책 반대' 등으로 이슈가 확대되며, 장기전으로 갈 채비를 차리고 있다.   

68혁명-촛불시위의 공통점과 차이점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그는 "최장집 전 교수는 민주화 이후 디지털시대에 일어난 촛불시위 같은 운동이 가진 진보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그는 "최장집 전 교수는 민주화 이후 디지털시대에 일어난 촛불시위 같은 운동이 가진 진보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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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상호 연구교수(제3섹터연구소)는 "촛불시위는 68혁명의 전조"라고 평가했다.

"생활정치 측면에서도 그렇고, 그동안 표출되지 않았던 이슈들이 나온 점에서 그렇다. 이전의 촛불은 한미관계(효순·미선이사건), 대통령 탄핵 등 중앙권력과 관련된 거대담론이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은 광우병, 교육, 의료민영화 등 시민적 이슈들이 정당에 앞서 아래로부터 표출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활정치가 자리잡으면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조직화되지 않은 주부나 (중·고등)학생들이 새로운 참여자로 등장했다. 68혁명 이후 구체제(Ancien- re'gime)적 요소가 문화적 측면에서 확 바뀌었다. 우리의 경우도 문화적 전복 같은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68혁명과 2008년 촛불시위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이란 무엇인가?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의 발언에 그 답이 들어 있다.

"(한 조합원이) 전기가 끊겨 아이들이 촛불을 켜놓고 공부한다고 했다. 엄마한테 되려 그 아이들이 '엄마, 텔레비전도 안 나오고 컴퓨터도 안 되니까 집중이 잘 돼'라고 했다고…. 촛불만 보면 그 얘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촛불을 차마 못 켜겠다."(2008년 6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촛불집회 때문에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고도 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촛불은 거대했지만 이슈는 잠식당했다."

68혁명 때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이 이루어졌지만, 촛불시위는 아직 그런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 교수의 진단이다.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모든 운동들은 노동운동과 (제대로) 대면하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이슈와 만나는 순간 (운동과 노동은) 분리·분산됐다. 87년 6월항쟁 이후 일어난 88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중산층과 제도야당이 운동대오를 이탈했다. 운동이 급진화되는 순간 그렇게 됐다. 그런 점에서 촛불과 노동의 균열적 요소가 있다."

또 촛불시위가 '수도 서울 중심' 즉 '중앙집권적'이라는 사실이 68혁명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정 교수도 "쇠고기라는 동일한 이슈이고 전국적 이슈인데 왜 지역에는 서울만큼의 열기나 참여가 없는 걸까?"라며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에) 자칫 촛불이라는 것이 과잉대표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진단의 연장선상에서 정 교수는 "우리는 운동과 정당이라는 두 개의 영역이 분리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68혁명은 신사회운동으로 이어졌고,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제도권정당의 새로운 세대로 편입됐다. 슈뢰더 등 68세대들이 정당개혁을 위한 '신중도', '제3의 길'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정당과 운동, 제도정치와 거리정치가 분리돼 있다. 그래서 촛불시위의 경험이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겠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중·고등학생들이 386세대처럼 새로운 '촛불세대'를 만들 수 있을까?"

"운동과 정당이 분리돼 진보가 나타나는 역사적 경험은 없다"

정 교수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과제'라는 논문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대 대의제민주주의' 논쟁이 "정확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한국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정당이다 하며 한쪽 편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내게 불편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민주주의를 대치시키고, 정당정치-운동정치, 제도정치-거리정치 등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조차 지식인적 사고 같다. 소통과 연계는 이 둘 사이에서 맺어지고 강화돼 민주주의가 한단계 발전한다는 것이 보편적 패턴이다. 미국에 제도정치, 정당정치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은 직접민주주의 기제들이 가장 발달한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자율적 운동단체(이익집단)는 크게 발달했지만 정치체제는 보수적인 미국과, 정당이 발달하며 대체로 진보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서유럽의 경우 사회경제적 의제가 정당을 통해 관철되고, 생활정치나 지역정치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의 기제들이 일상에서 작동되고 있다. 어떤 경우를 보더라도 두 가지(정당과 운동)가 분리되는 영역 속에서 진보가 나타나는 역사적 경험은 없다. 그래서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전제 속에서 논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둘 중 하나가 선택되고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만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불충분하다'며 정당정치의 복원과 활성화를 강조한 최장집 전 교수의 견해와 관련, 정 교수는 "정치를 선거와 정당으로 협소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최 전 교수는 운동정치를 정치의 부수적 요소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촛불시위는) 운동도 한국정치를 여전히 활성화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기제라는 것이 드러났다. 운동이 정치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동력이자 발전기제라는 것이다. 한국은 운동사회(Movement Society)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대선 끝나고 5개월 만에 촛불시위와 같은 진화, 전환이 있을지 누가 알았겠나? 내재적 힘이 없다면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이다. 최 전 교수는 민주화 이후 디지털시대에 이런 운동이 갖는 진보적 요소를 간과했다."

다만 정 교수는 "직접민주주의자들은 최장집 교수를 너무 협소하게 의회중심자로 보는 것 같다"며 "하지만 최 교수는 운동이 갖는 의미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운동과 정당(정치)이 연계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정치적 부작용을 고민해왔고, 그 고민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직접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옹호하는 지식인그룹에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운동 역시 정치의 부분요소일 뿐이다. 운동은 정치의 부분집합인데 완결적인 요소로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의제민주주의 없이 직접민주주의의 순수한 형태가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가? 조희연 교수처럼 촛불시위를 지나치게 긍정일변도로 보는 시각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진 그룹은 '촛불만으로 한국민주주의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최근 직접민주주의자들은 너무 나가서 일체의 지도적 권위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정 교수는 "직접민주주의자들은 현재 주민투표·발의·소환·소송제, 참여예산제, 시민배심원제 등 서구에서 얘기하는 이상화된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택 후보가 뽑히는 것은 촛불의 배반"

정상호 연구교수는 "오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교육분야의 리틀이명박'인 공정택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촛불으 배반"이라고 일갈했다.
 정상호 연구교수는 "오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교육분야의 리틀이명박'인 공정택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촛불으 배반"이라고 일갈했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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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일관되게 '직접민주주의-대의제민주주의' '거리정치-정당정치'의 이분법을 비판한 정 교수는 '대의민주주의를 견인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는 "국민투표, 국민소환 등을 중앙정부 수준에서 도입해야 한다"며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이 정당정치의 역동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으로 상징성이 큰 농협 등의 조직에서 대표를 뽑거나 중요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다양한 의사결정 구조에 다양한 (직접민주주의) 실험을 착근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직접민주주의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정당정치가 비례한다는 자료가 더 많다."  

그렇다면 정 교수가 생각하고 있는 '촛불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는 "촛불은 정당과 병행하면서 진화해야 한다"며 촛불이 가야 할 몇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이슈의 다원성으로 가야 한다. 노동, 교육 등 사회경제적 이슈까지 포괄하는 형태로 지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촛불은 노동, 정당과 만나야 한다. 또한 왜 지역의 촛불시위 참여나 열기가 서울만 못하는가? 그런 점에서 촛불은 풀뿌리로 내려가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는 독선이나 부패, 일방적 행정은 이명박 정부 못지않다."

정 교수는 특히 "촛불이 진보적이라는 근거를 가지려면 우리 사회의 핵심의제인 교육과 비정규직문제를 돌파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단초를 마련해줘야 한다"며 '7·30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이기도 하지만 촛불시위의 중간평가이기도 하다. 공정택 후보는 교육분야에서 '리틀 이명박'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공 후보가 다시 뽑힐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진짜 이렇게 되면 촛불의 배반이다. 그런 결과는 이율배반적이다. 또 아무런 대안도 없이 '또다른 공정택'이 당선된다면 그것도 촛불의 바른 승계는 아니다."

한편 정상호 교수는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며, 연구대상으로 한국정치, 정당과 이익집단, NGO와 시민사회, 풀뿌리민주주의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유신과 반유신> <6월항쟁과 한국의 민주주의> <민주주의 대 민주주의>(이상 공저), <NGO를 넘어서> 등이 있다.


태그:#촛불논쟁, #정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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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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