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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이 있다. 보수적 관점은 이명박 정부를 위협한다고 보고 비판적이다. 진보파는 직접 민주주의 요소의 확대를 통한 어떤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선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두 관점 모두를 수용하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운동을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들, 즉 선거·정당·자율적 결사체·참여·대표-책임의 원리 등의 실패의 결과로 이해한다. 따라서 나는 정당정치의 복원 내지 활성화를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 강화, 이를 통해 운동의 역할을 축소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다."

 

한국 정치학계의 석학 고려대학교 최장집 교수가 20일 현역으로 마지막 강의를 하면서 한 말이다. 최 교수는 이날 인촌 기념관에서 '한국의 정치와 나의 정치학'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수업을 했다.

 

평소 이 과목 수강생은 150여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 인촌기념관 강당 1층과 2층은 1000여명의 학생과 교수들로 가득 찼다. 20여명의 취재진들도 나타났다. 학자 최장집이 이른바 '탤런트 교수'도 아니고, 더구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런 성황을 보인 것 자체부터 뉴스거리였다.

 

최 교수는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시절 대통령자문정책 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던 때 <월간조선>으로부터 친북파라고 공격받았고 이에 반발한 지식인들이 '안티조선' 운동을 벌였다.

 

이런 무시무시한(?) 과거, <조선일보>를 지금까지 유령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안티조선' 운동의 촉발자였던 최 교수는 한국의 척박한 현실에서 '상대적 진보'이기는 했으나 결코 과격이나 근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40일 넘게 계속되는 촛불 시위가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며 찬사를 받기에 바쁜 지금 김을 확 빼는 발언을 한 것도 그의 평소 깐깐한 학자적 고집과 용기가 아니라면 하기 힘든 말이었다.

 

"내 정치학의 출발점은 서울, 나는 변방의 정치학도"

 

최 교수는 우선 자신이 정치를 보는 관점을 소개했다.

 

그는 "나의 정치의 출발점은 한국, 한국에서도 서울"이라며 "이것이 내게 있어 정치학의 출발점이고 정치를 이해하고 현실 정치에 이론적 학문적 방법으로 개입하는 산실이자, 내가 현실을 말하고 대면하는 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결코 세계 정치학의 일반적 경향을 말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면서 "나는 한국의 사례 하나에 초점을 맞춰 정치학을 탐구하는 점에서 지방(local), 그것도 변방의 정치학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동시에 "나의 학문적 성향이나 방법은 결코 민족주의적이거나 향리적(鄕里的)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항상 현실 비판적 정치학을 추구했다. 그는 맨 처음 해방이후 이데올로기적 양극화 시키기에 민중에 초점을 맞췄고, 귄위주의의 수혜 구조로부터 배제된 노동문제, 권위주의하에서 지역적으로 배제된 호남 문제 등을 다뤘다.

 

그는 "이러다보니 내게는 한 때 운동권 정치학자, 때로는 친북 좌경, 또는 좌파 진보정칙학자 등의 라벨이 붙었다"며 "그러나 스스로 급진적인가 되묻게 된다, 그런 말은 모두 잘못된 이미지와 평가의 결과"라고 반박했다.

 

최 교수는 이날 수업도중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두 사람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를 설명하면서 상대적으로 베버의 이론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어떤 면에서 나는 베버리안"이라는 말까지 했다. (대신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라이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와 권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아무튼 학자 최장집의 한국 현실에 대한 집요한 천착과 높은 성과물은 그의 정치학이 '진짜 좌파'와는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와 충돌하게 만들었다.

 

그가 <월간조선>으로부터 빨갱이라고 공격받았을 때 기자들은 "과거 좌파 전력으로 따지면 훨씬 심한 인사들이 DJ 정부에 수두룩 한데 왜 하필이면 최장집 교수가 공격 목표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품었다. 

 

"최장집 교수 다음으로 <조선>의 공격 대상은 80년대 운동권 출판사의 대표였고 좌파 이론을 많이 전파했으며, DJP연합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했다는 H씨다"라는 소문도 기자들사이에 나돌았지만 웬걸 그 H씨는 나중에 <조선일보>에 칼럼까지 쓰는 등 사이좋게 지냈다.

 

 

"민중의 직접 통치가 아니라 통치를 위임하는 게 민주주의"

 

맨 앞에서도 인용했듯이 촛불 시위에 대한 그의 침착한 또는 냉정한 반응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최 교수가 이날 수업에서 소개한 민주주의란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일련의 제도적 장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 규범을 포괄하는, 이 양자가 서로 접합하면서 빚어내는 다이나믹스를 포괄하는 통치체제"다.

 

최 교수에 있어 민주주의는 결코 직접 민주주의일 수 없으며 절차적 민주주의다.  촛불 시위가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떠받들어지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볼 때는 민주주의의 본질 또는 미덕을 잘못 이해한 결과에 불과하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의 원리를 핵심으로 한다'는 말과 '민주주의에서 인민은 절반의 주권자'라는 말은 모두 진실"이라며 "전자는 가치에, 후자는 현실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주의는 그 어느 한 쪽만을 가질 때 그것은 민주주의 전체를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최 교수는 "민주주의는 민중이 직접 스스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선출된 대표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통치체제"라며 "민주주의는 절차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 뿐 그 내용적 측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단 공동체의 규범적 가치를 열 수 있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을 열 수 있는 체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촛불 시위가 발생하게 한 현 정권도 잘못이지만, 정권 퇴진 구호를 유지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언급했다.

 

"'촛불' 초래한 정권도 잘못이지만 정권 퇴진 구호 유지도 잘못" 

 

최 교수의 강의 후반부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민주화가 제도권 아닌 제도권 밖에서 전체 제도권을 부정하는 운동을 통해서 이뤄졌으나, 노동자·농민·하층 중산층·사회적 약자·소외계층이 민주화의 효과로 정당을 매개로한 참여의 확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현재에도 민주주의 제도화를 어렵게 만들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내용이었다.

 

최 교수는 "좋은 정당의 출현과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출현을 기대한다"며 "좋은 정당이 중요한 것은 좋은 리더십을 훈련하고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최 교수의 2시간에 걸친 강의가 많은 시사점을 줬지만 결말이 다소 허탈했던 것도 사실이다. 최 교수는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관점은)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다'라는 정의 및 민주주의 정치와 그 제도의 핵심 메커니즘인 정당의 중요성을 수용하기를 주저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른바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의 수용자들이야말로 제발 제도에 편입되어 정당으로서의 각종 혜택을 가장 갈구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과연 이런 저런 이유로 제도화에 미적거려서 현재 이런 상태로 밖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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