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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가 있다. 만화가 대부분이고, 아이들과 함께 나눌만한 이야기가 몇 꼭지 포함된 월간 교양지다. 만들어진 폼새에 비해 팔리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광고라도 많이 받아서 만드는 비용을 대야 하는데 책 만드는 이가 아이들에게 해로운 광고는 싣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 잡지에 실리는 광고도 많지 않다. 그래서 책 내용에 공감하는 이들이 '고래동무'라는 후원 조직을 만들어 비용을 대기도 한다.

아이들 책 광고가 대부분이던 <고래가 그랬어>에 얼마 전부터 세제 광고가 실렸다. 아이들이 먹어도 해롭지 않은 성분으로 만든 자연친화적인 세제란다. 개인적으로 <고래가 그랬어>에 실린 광고라는 이유로 믿음이 가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잡지에 광고를 싣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앞으로 그 세제를 쓰기로 결심했다.

예전에 대통령 후보들의 사상을 검증하겠다며 토론회를 열었던 <한국논단>이라는 잡지가 있다. 우익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잡지다. 최소한의 상식을 지닌 기업이라면 그런 극우잡지에 광고를 싣는 것은 꺼리게 마련이다. 극우잡지 표지에 실린 광고는 그 광고를 낸 기업의 성격마저 극우로 여기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논단> 맨 뒷장에는 항상 어느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가 실려 있었고, 필자는 이제 그 기업의 상표만 보면 그 극우잡지를 동시에 떠올리곤 한다.

광고는 더 이상 상품을 알리고,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광고를 실으면서 언론과 유착하기도 하고, 광고를 싣지 않는 방법으로 언론을 압박하기도 한다. 시민단체나 압력단체 역시 자신의 의견을 언론사의 성격에 따라 골라 싣기도 한다.

성조기를 흔드는 보수단체가 <조중동>을 선호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진보단체가 <한겨레>나 <경향>에 의견 광고를 싣는 게 그 예다. 광고가 아니라 광고를 싣는 매체를 통해 제품이나 기업, 단체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사실을 일반 대중들이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농협 목우촌> 홈페이지에 붙은 안내문
 <농협 목우촌> 홈페이지에 붙은 안내문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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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 <농협 목우촌> 홈페이지에는 특별한 안내문이 떴다.

"고객님들의 질책대로 금일 이후 광고에는 신중을 기하겠으며, 이 기회를 통해 고객님들의 신뢰와 사랑에 보답하는 목우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름만 '안내문'이지 사실상의 '사과문'에 가까운 내용이다. <농협 목우촌>은 과연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농협 목우촌>은 소고기 고시가 나온 다음날인 3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광고를 실었다. 누리꾼들은 정부 편에 서서 미국산 소고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보수신문에 광고를 싣는 기업은 보수신문의 주장에 힘을 보태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판단했다. 누리꾼들은 보수신문에 광고를 실은 기업들의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고, 전화를 걸어 광고 게재에 대해 항의를 했다.

<농협 목우촌>의 안내문은 누리꾼들의 주장에 고개를 숙인 결과물이다. 하필이면 30일 <조중동> 1면에 광고를 실었던 <신선설농탕> 역시 홈페이지에 안내문을 걸고, 6월 2일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도 광고를 싣는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르까프>와 <명인제약>을 비롯한 몇몇 기업들이 보수신문에 대한 광고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의사표명을 했다.

 <조중동>에 광고를 낸 이후 명인제약 게시판
 <조중동>에 광고를 낸 이후 명인제약 게시판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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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동>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소식이 전해 진 후의 <명인제약> 게시판
 <조중동>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소식이 전해 진 후의 <명인제약> 게시판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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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들의 이런 대응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기업들 역시 파악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이번 일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은 앞으로 <조중동>에 광고를 실을 때 적어도 한번 더 고민해야 하게 되었다.

시민들이 언론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언론이 아닌 광고주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까운 사례로 MBC PD수첩이 황우석 관련 보도로 곤경에 빠져 있을 당시, 황우석을 지지하는 이들이 광고주에게 압력을 가해 광고가 모두 취소되었던 일이 있었다. 광고주를 압박하는 이런 방법은 신문 절독이나 시청 거부에 비해 언론사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보다 많은 대중의 참여를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관련 졸속협상을 벌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국민들의 분노를 한낱 괴담에 휩쓸린 철없는 행동쯤으로 보도하는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역시 높다. 언론이 권력 혹은 자본과 유착하여 진실을 가리고, 현실을 오도하는 게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를 시민 학생들이 시위 현장에 직접 참여 해 봄으로써 스스로 깨우친 결과다.

그 깨달음이 보수언론에 대한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광고주를 통한 실제적 압박을 시도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이제까지 '안티조선'으로 대표되어 온 시민언론운동의 새로운 확장이며, 운동가가 아닌 시민들 스스로 언론을 견제하는 주체가 되는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새로운 시민언론운동에 연대하는 시민의 수가 늘어날수록 거기에 동참하는 기업들도 늘어날 것이며, 이는 언론이 정부권력이나 자본의 편이 아니라, 시민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낼 것이다. '미친 소'를 막기 위해 켠 촛불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 제치고 있는 중이다. 촛불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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