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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자이며 동물해방론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동물해방>은 전 세계 동물보호운동가들에게 아직도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 책의 출간은 서구에서 동물보호운동이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동물에 대한 논쟁 뿐 아니라 안락사, 낙태의 합법화 등의 논쟁에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며 <동물해방> 뿐 아니라 <실천윤리학>, <사회생물학과 윤리>, 그리고 최근 축산동물의 현실을 고발한 <죽음의 밥상>을 출간했다.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몰락한 지 20여년. 이제 좌파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낡은 이념으로 치부되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구조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구조는 더욱 복잡해졌다.

새롭게 부상하는 강국 중국은 약소국 티벳을 무력으로 침략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자본은 의혹에 가득한 식품을 자유무역이라는 명목으로 전 세계에 수출하려고 한다. 가난한 국가의 소농은 생존을 위협받고 의심스러운 농축산물을 먹어야 하는 노동자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자국의 대자본과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은 값싼 농산물이 수입되어야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출 수 있으니 더 없이 좋은 기회일 것이다. 어차피 무한경쟁 시대. 잘난 아이들을 못난 아이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공부시키는 시스템이야말로 비효율적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성공하고 싶으면 너희도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이런 구조가 약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스템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비정한 세상. 이제 약자를 보호하고 지킬 사상은 없을까. 이러한 때 나를 사로잡은 한 권의 책이 있다. 새로운 좌파의 스팩트럼을 세우고자 한 저자는 다름 아닌 <동물해방>의 저자 피터싱어이다.

이 책은 피터 싱어가 2000년에 쓴 <다윈주의 좌파: 정치학, 진화, 그리고 협조>(Darwinian Left: Politics, Evolution and Cooperation)을 경북대 국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이음출판사의 <다윈의 대답>시리즈 중 첫 번째 권이다.
 이 책은 피터 싱어가 2000년에 쓴 <다윈주의 좌파: 정치학, 진화, 그리고 협조>(Darwinian Left: Politics, Evolution and Cooperation)을 경북대 국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이음출판사의 <다윈의 대답>시리즈 중 첫 번째 권이다.
ⓒ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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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윤리학자인 피터 싱어가 제시하는 좌파의 핵심은 정치적으로 조직화된 좌파가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어내려고 하는 사상의 스팩트럼의 하나로, 다름 아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이를 기초로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행위를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저자는 다윈주의 좌파라 칭했다. 그런데 왜 하필 다윈주의일까. 이는 마르크스의 바쿠닌 비판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바쿠닌은 노동자집단이 권력을 잡는다면 더 이상 인민을 대변하지 않을 것이며 인민을 지배, 통치하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본성이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며 이것을 변화시키면 인간의 본성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세기가 조금 지나 마르크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완벽한 인간상, 완벽한 사회가 있을 수 있다는 좌파의 생각은 무너졌다. 저자는 좌파의 실패는 인간본성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인간의 평등을 실현하고 착취구조를 없애고자 하는 좌파의 핵심을 되찾기 위해 다윈주의를 다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래 다윈이 말한 진화는 반드시 옳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진화는 어떠한 도덕적 가치도 수반하지 않은 채 그냥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 좌파와 우파는 모두 다윈주의를 왜곡했는데 그것은 사실로부터 가치를 떼어내 자신들의 입장대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특히 우파는 다윈의 자연선택을 적자생존의 결과로 이해하고 이를 타민족지배, 타인종지배, 계층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왜곡했다. 그러나 이런 우파의 이데올로기에 대적하기 위한 좌파의 전략 역시 실패했다. 바로 인간의 본성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좌파는 진화이론이 인간사회에 적용된다면 공산주의 혁명으로 이 적대와 갈등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저자에 의하면 기존의 좌파는 너무 쉽게 사회의 상을 만들어내는 반면 그 사회에서 일하고 살아나가는 주체인 인간에 대해서는 알고자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본성을 잘못 이해한 결과 그들은 자신들이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내부적으로는 변절자를 탓하고 외부적으로는 악당을 만들어 비난하는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억압적 시스템을 파괴한 주체가 다시 억압적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좌파의 실패는 위계를 철폐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제 정치적 좌파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낡아빠진 견해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 것이라고 주장해서도 인간의 본성이 무한히 변할 수 있다는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된다. 혁명에 의해서든 사회적 변화나 교육에 의해서든 인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모든 불평등이 반드시 사회적 조건에서 기인했다고만 가정해서도 안 된다. 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사람들이라면 인간에 내재한 경향성을 이해하고 이에 근거하여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개개인의 극단적인 이익추구가 집단적으로 파괴를 가져오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해진다는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권력을 얻고 친족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한다. 반면 타인과의 협조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속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경쟁과 협조는 결코 모순적인 본성이 아니다.

약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야 하는 좌파가 현대의 모순을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이타성을 발휘하고 사람들간의 협조행위가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야 한다. 유토피아적 사고를 버리고 어떤 것이 성취가능한지에 대한 냉철한 현실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제도만 바꾸면 저절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신념을 가지고 변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노력에는 끝이 없다. 진화에 끝이 없는 것처럼.

현대는 계급갈등, 제국주의에 의한 제3세계침략만으로는 해석하고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는 시대이다. 중국은 빠르게 경제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반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주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구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 사람들이 고기를 즐겨 먹기 시작하자 축산업의 확장에 따른 환경파괴는 더욱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만 잘 살라는 법이 있느냐 우리도 잘 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중국인이 미국인처럼 살기 시작하면 지구환경은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동물을 착취해도 된다는 생각은 사람과 동물과의 간극을 과장하는 다윈주의 이전의 유산이며 따라서 좌파는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이유로, 포유류라는 이유로 어떤 보편적인 월등한 권리를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구상의 모든 종은 각기 특유의 생존방식을 선택하며 진화되어 왔으며 그들 간에 종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물해방의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좌파의 스팩트럼은 이런 점에서 논리적으로 전혀 낯설지 않다. 전 지구적 환경파괴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을 이해한다면 광우병과 조류독감으로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인간에 의해 착취되어온 동물들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친소는 이윤에 미친 사람들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극단적인 이윤추구가 대다수의 사람들을 죽이고 지구를 위험에 몰아넣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기꺼이 이타성을 발휘해 억압받는 모든 지구의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또한 인간본성의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인간이 진화해온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를 진화시킨 메카니즘과 이런 유산이 우리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한 첫 번째 세대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 무엇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억압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다. 알고 있다면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인류에게 필요한 좌파의 핵심이다.


다윈의 대답 1 -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피터 싱어 지음, 최정규 옮김, 이음(2007)


태그:#다윈, #진화론, #좌파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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