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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서 학생들이 촛불을 높이들고 있다.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서 학생들이 촛불을 높이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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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딸이 지난주 금요일(5월 2일) 아침 식사 때 말했다.

"아빠, 내 친구도 청계천에 나갈 거래요. 이명박 대통령 반대하는 촛불집회에요."

- 왜?
"그 친구 말이 광우병 걱정 때문에 전날 한숨도 못 잤대요. 우리 정부 태도가 너무 열 받는대요."

나는 그날 아침 우리 딸이 전해준 '중3 여학생의 민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중3이 벌써 그런 정치의식을? 참 별난 아이구나, 뭐 그런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나는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광우병 우려 미국소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처음으로 열린 그날, 청계광장에는 2만여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문화제를 생중계한 <오마이TV> 화면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도 상당수였다. 기껏해야 1천명정도 모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장에 나가 있는 <오마이뉴스> 취재기자는 "모인 숫자도 예상외였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비판의 강도도 예상 외였다"고 전했다. 집회장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젊은 네티즌들의 온라인 참여도 뜨거웠다. <오마이TV> 생중계를 본 사람들이 하루 수십만 명에 달하는 등, 지난 대선정국 때보다 많았다. 

다음날(5월3일, 토요일), 나는 두 번째 촛불문화제에 직접 나가봤다. 낮에 회사가 주최한 축구대회에 참여한 뒤여서, 트레이닝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청계광장에 나갔다. 참여도, 취재도 아닌, 그냥 구경할 셈이었다.

저녁 6시 40분경. 동아일보사 앞 청계광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수천명의 집회 참가자들, 그들의 면면과 표정과 구호는 전에 그 광장에서 봤던 것들과 달랐다.

나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익숙한 사람이다. 조중동의 분류대로라면 이른바 '좌파 386'이다. 2002년 효순, 미선 촛불집회,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좌파 386'에 속하는 세대다. 그런데, 중3딸을 둔 좌파386 아빠는 2008년 봄, 청계광장의 촛불들에 경악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적어보겠다.

'좌파 386 아빠'가 놀란 3가지

하나, 촛불을 들고 목청껏 "이명박은 물러가라" 외치는 참가자들이 대부분 여자 중고등학생들이라는 데에 놀랐다. 나는 내 눈이 믿기지 않아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정말 내 딸 또래의 아이들이, 상당수는 교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7시경, 학생 참가자들은 계속 늘어났고, 서서 구경하고 있던 나는 "앉자! 앉자!"하는 여학생들의 연호에 명령이나 받은 듯이 그들 틈에 앉아야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70%정도가 여중고생들이었다. 그들은 숫자만 많은 게 아니었다. 자유발언을 신청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이들의 상당수가 여중고생이었다. '40대 중반 좌파 남자'인 나는 그들 틈에서 주눅들어 있었다.

둘, 여중고생들의 발언과 구호에 놀랐다.

"경제를 살린다고 어른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는데, 지금 경제가 살고 있나요?"

"미국소가 안전하다고? 우리가 바봅니까? 경제 살리기 전에 우리 목숨부터 살리세요."

"이랬다, 저랬다 교육정책, 어른들이 잘못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었는데, 우리가 투표권이 없다고 해서 그대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합니까?"  

"건강보험 민영화 할 거라고 하는데, 그럼 가난한 우리 식구들은 병나면 어떡합니까?"

2만5천여명이 모인 이날, 무엇보다 내가 놀란 건 내 주변의 여중고생들이 합창하는 구호였다. 자유발언대에 오른 한 고등학생이 현직 대통령을 향해 욕설섞인 구호를 선창했다.

"이명박 XXX야, 나 좀 살려줘!"

내 주변의 여중고생들은 큰 함성과 박수를 보내면서 환호했다. 상당수는 욕설을 그대로 합창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3일 저녁 촛불문화제에는 학생과 시민 2만5천여명이 모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3일 저녁 촛불문화제에는 학생과 시민 2만5천여명이 모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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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한 지 80일도 채 안된 한 나라의 대통령에 대한 '모욕'과 '모독'은 내가 그들 틈에 앉아있던 2시간 내내 계속됐다. "미친소, 이명박 너나 쳐드삼"이라는 '모욕'은 약한 축에 속했다.

그런데 그런 현직 대통령을 향한 분노는,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걸 '놀이'로 해석했지만,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연단에서 한 고교생이 "이명박을 몰아내자"고 외치자 내 주변의 여중고생들이 마치 오랜 구호 합창 훈련을 받은 이들처럼 한목소리가 되어 외쳐댔다. "이명박을 몰아내자."

아직 대통령에 취임한 지 80일도 안됐는데, 그 구호는 좀 지나치다고 말리려드는 사람은 나, 좌파386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그 어린 여중고생들은 왜 그렇게 이명박 대통령을 미워하게 됐을까? 그 함성의 결을 볼 때, '미친소 협상' 한 건만으로는 그런 구호합창이 나올 수 없다. 이게 현장에서 목격한 나의 진단이다.

셋, 여중고생들의 정치력에 놀랐다.

오늘(5월 6일) 저녁, 다시 청계광장에서 3차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경찰은 애초에 이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 원천봉쇄하려다가 일단 허용하기로 했다. 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집회를 허용하되 "만약 촛불문화제 주최 측이 정치적 구호나 발언을 하거나, 참가자들이 이에 동조해서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흔들거나 하면 불법 정치집회로 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진희 청장의 이런 발언을 접하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의 규정대로라면 1차와 2차는 명백히 '불법 정치집회'였다. "이명박을 몰아내자"면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모독'과 '모욕'이 넘쳐나는데 어찌 정치집회가 아니란 말인가? 1차와 2차를 그렇게 진하게 했는데, '만약'이라는 전제를 달고 3차를 허용한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번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여중고생들의 '결과적 정치력'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정치적 발언과 정치적 구호를 다 외치면서도, 어느 좌파보다도 진하게 이명박 대통령을 정면 공격하면서도 경찰이 집회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의 구호는 진하지만 발랄하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발랄버전의 <애국가>와 <아리랑>이 주다.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동안의 시민단체나 대학생운동권처럼 일사분란하게 조직되어 있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조직되어 있다. 집회가 끝나자 깨끗이 집단청소까지 했다.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참여하고 있다.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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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어린 학생들을 꼬드겼다고? 정반대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많은 전문가들이 보수의 독점시대를 점쳤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무기력해질대로 무기력해졌으니 그런 전망이 나올만했다. 어느 세력도 일정기간 보수정권 이명박 정부에 제대로 된 도전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취임 80일이 안돼 "물러가라"는 촛불시위가 교복을 입은 여자 중고등학생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여리다고 여겨지던 집단이 가장 강한 권력자에 정면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20대 대학생들의 보수화 경향이 이야기되는 판에,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2008년 5월 대한민국은 여중고생들이 주도하는 '민란'에 휩싸여 있다. 이 민란에 당황해하는 것은 청와대와 여권만이 아니다. 야당과, 조중동이 좌파라고 말하는 기존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중3 딸을 둔 이 좌파 386아빠도 마찬가지다.

이 민란은, 어제 강기갑 민노당 의원이 폭로했듯이,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 때의 쇠고기협상 전략을 4월 방미 직전 전면 폐기해 미국에게 유리하게 협상을 해준 과정이 국민에게 납득할 수준으로 해명되기 전에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수입소 문제에 대해 미국과 전면 재협상을 하지 않는 한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긴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해법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민란은 이명박 정권뿐 아니라 야당과 진보사회세력, 언론 모두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가장 여리다는 여중고생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최근 보수신문 조중동은 일제히 사설 등을 통해 좌파세력에 이끌리는 어린 여중고생들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다. 청계광장이 코앞인 조중동 신문사의 논설위원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늘의 3차 문화제에 직접 가보라고. 누가 누구를 이끌고 있는지, 여중고생들의 틈에 2시간동안 앉아있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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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시위, #광우병, #이명박, #여중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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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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